카이저의 “칼레의 시민들”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의 출세작이다.
이작품은 1914년 로댕의 유명한 조각에서 자극을 받아 집필한 작품이다.
내용은
영국군은 칼레시를 포위하고 시민 6인의 생명을 담보로 칼레시의 멸망을 면하게 해 주겠다고 제안 한다. 칼레시 의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지원자를 지원 받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2명이 동시에 지원하는 바람에 7명이 되어 이들 가운데 1명은 살아남아야만했다. 노령의 시민대표 유스탓슈 드 상피에르는 살아남을 한 사람을 결정하면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여 결정을 미룬다.
마침내 때가되어 약속장소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유스탓슈 드 상피에르만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이 분노하여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관에 실린 그의 시체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위해 그는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그 한 사람만으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간밤에 영국에서 왕자가 탄생하여 그것을 축하하기위해 시민 6인을 희생시키지 않고 칼레시를 구해주겠다는 전갈이 왔기 때문이다. 카이저는 표현주의 정신에 충실하여 인간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빛을 발하는 본질적인 삶의 순간을 포착하였다.
이 작품은 1914년 베를린에서 공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위 내용은 '독일 이야기"(서울대학교 독일연구소)에서 발췌한 내용임
칼레란
[그때 오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칼레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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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프랑스 칼레 시청 앞의 로댕 작 '칼레의 시민'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백년전쟁(1337~1453)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 문제가 발단이 되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군을 격파한 뒤 여세를 몰아 도버 해협에 면한 도시 칼레(Calais)로 진격, 식량보급로를 끊고 포위했다. 11개월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칼레는 식량이 떨어지자 1347년 마침내 항복했다. 항복 사절은 주민들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칼레 시의 완강한 저항에 분노한 에드워드 3세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려 했지만 생각을 바꿔 한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칼레의 지체 높은 시민 6명이 맨발에 속옷만 걸치고 목에 밧줄을 감은 채 성 밖으로 걸어 나와 성문 열쇠를 바치라는 것이다. 6명을 교수형 시키는 대신 주민들의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천천히 일어나 “내가 그 6명 중 하나가 되겠소”라고 말했다. 칼레 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였다. 그러자 뒤이어 시장·법률가 등 귀족 계급에 속한 5명이 동참했다.
다음 날 6인의 시민 대표는 시장 통에서 에드워드 3세의 진지를 향해 출발했다. 시장 통에 모인 사람들은 통곡을 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 눈에, 사라져가는 6인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이미지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영국 왕은 그들의 처형을 명했다. 그러나 임신 중이었던 영국 왕비가 왕에게 장차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 그들을 사면해달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왕은 6인의 시민을 살려줬다. 기적 같은 반전(反轉)이었다. 같은 시대 사람인 프르와사르(1337~1404)는 사건의 전 과정을 연대기에 기록했다. 6인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1884년, 오귀스트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1840 - 1917)은 칼레 시로부터 이들 위대한 6인의 모습을 형상화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6인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로댕은 10년 넘는 세월을 작품에 바쳐 1895년 완성했고, 작품은 칼레 시청 앞에 설치됐다. 시장 통에서 떠나는 6인의 모습이다.
칼레시민들은 영웅적인 선조들을 아름답게 미화하여 굳센 영웅상으로 표현되기를 바랐으나 완성된 작품은 기대한 것과 같은 애국적인 늠름한 모습이 아니었다. 의연하기 보다는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도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진짜 인간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다. 6인의 인물은 칼레시 함락에 대한 개인적인 딜레마에 고민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6명의 군상은 전체적인 통일 가운데 靜과 動의 요소가 교묘하게 교차되어, 각 개인의 표현이 평등하게 중요시되고 있다. 로댕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인물들을 흩어지게 배열했으며 개성과 고뇌를 각자의 생생한 표정 속에 불어 넣었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 Auguste Rodin / 칼레의 시민 (The Burgher of Calais),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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