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89

<조선왕조실록(193)> 망국 30- 나라가 망하다!(7)*마지막회

망국 30 - 나라가 망하다!(7)*마지막회 1910년 8월 22일 체결된 한일합방조약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 대신 이완용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인 자작 사내정의(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1.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조선왕조실록 2021.06.20

<조선왕조실록(192)>망국 29 - 나라가 망하다(6)

망국 29 - 나라가 망하다(6) 안중근은 1909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 집행을 당했습니다. 안중근은 죽기 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 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1905년의 을사조약, 1907년 의 정미7조약 등의 절차를 거쳐 1910년에 이..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91)> 망국 28 - 나라가 망하다(5)

망국 28 - 나라가 망하다(5)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원흉 이토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인단체에서는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해야 겠다는 논의가 진행되었고,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 처단에 자원을 하였습니다. 배포가 크고 사격에 능한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 처단의 적임자로 정해졌고, 안중근은 이토히로부미가 도착하기 며칠전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 했습니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에 도착했고, 이토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경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하였습니다. 일본인으로 위장해 환영 인..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90)> 망국 27- 나라가 망하다!(4)

​ 망국 27 - 나라가 망하다!(4) ​ 때는 1907년! 새 황제 순종이 즉위하였습니다. 순종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박한 것을 보면 순종은 아비 고종에 여러모로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그러나 이름뿐인 황제가 뛰어난들 또 무엇겠습니까. ​ 순종은 전에 본 상궁 출신 엄씨의 아들이자 동생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삼았고, 황태자는 곧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 말이 유학이지, 실상은 인질! ​ 새 황제는 이토 히로부미의 예상대로 일본의 야욕 충족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정미7조약에 따라 주요 자리에 일본인을 직접 배치했습니다. ​ 아울러 친일파로 내각을 채우는 한편, 보안법, 출판법 등으로 일본에 대한 저항을 막고, 삼립법, 동양척식주식회사법 등 한국의 국부를 일본이 뽑아갈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89)> 망국 26- 나라가 망하다!(3)

망국 26 - 나라가 망하다!(3) ​ 헤이그 밀사 파견이 알려지자, 고종 황제의 입장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 1907년 7월 16일 어전회의,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이 다그쳤습니다. - 이제 방법은 폐하께서 일본 천황폐하께 사과하거나 대한문 앞에 나아가 하세가와 사령관께 사과하는 것뿐입니다! ​ 이완용은 더 나아가 고종 황제의 퇴위를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물론 이토 히로부미와 사전에 논의된 일이었습니다. - 양위로써 사죄하는 길만이 대한제국의 살길입니다! ​ 같은 날 내각회의는 고종 황제의 퇴위를 결정했습니다. - 우리에게 이런 권한이 있나? 나도 몰러! ​ 고종 황제는 원군으로 박영효를 부르는 등 완강히 양위를 거부했지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88)> 망국 25 - 나라가 망하다(2)

망국 25 - 나라가 망하다(2) 을사조약 체결에 조정 대신 민영환은 비분강개하는 글을 남긴 채 자결을 했고, 그 소식을 들은 행랑채에 살던 인력거꾼도 뒷산의 소나무에 목을 매 주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보다 앞서 주영 공사 이한응이 조약체결을 막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자결하였습니다. - 슬프다! 종사는 장차 무너질 것이요 온 겨레가 모두 남의 종이 되겠구나! 갑신정변의 주역 홍영식의 친형 홍만식도, 강직한 대신 조병세도, 학부 주사 이상철도, 평양친위대 김봉학도, 경연관 송병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일본에 항거함과 아울러 고종과 대신과 백성의 각성을 구하였습니다. 이렇듯 을사조약 체결에 대한 반발이 극렬했지만, 이완용 등은 오히려 당초 다소 부득이한 찬성에서 적극적 찬성으로 선회하며 조약 하의 ..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87)> 망국 24 - 나라가 망하다!(1)

망국 24 - 나라가 망하다!(1) 아! 원통하구나. 아! 분하다. 우리 이천만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히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구나! 동포여! 동포여! -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 - 이 민영환은 한번 죽어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이천만 동포에게 사죄하려 한다. 나는 죽지만 죽지 않고 구천에서도 기필코 여러분을 도울 것이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들은 더욱더 분발하여 힘쓰고 뜻을 굳게 갖고 학문에 진력하며 마음을 합하고 힘을 다해 우리의 자주 독립을 회복한다면 나는 지하에서나마 기뻐할 것이다. - 충정공 민영환의 유언 - ----------------------- 을사조약에 따라 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겨 외국에 있던 한국 외교기관이..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86)> 망국 23 - 을사조약(2)

망국 23 - 을사조약(2) 고종황제와 대신들이 위협에 쉽게 넘어가지 않자, 이토히로부미는 11월 17일, 경운궁에서 어전회의를 열도록 강요했습니다. 궁궐 안팎이 일본 군대에 의해 몇 겹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드디어 어전회의가 열렸습니다. 어전회의가 열리자, 고종황제도 대신들도 조약의 체결을 반대했지만, 힘없는 자가 하는 반대나 거부의 모양새는 처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5시간 넘게 어전회의가 이어졌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고, 이에 초조해진 이토히로부미는 하세가와 군사령관과 헌병대장을 대동하고, 일본헌병 수십명의 호위를 받으며 궐내로 들어가 노골적으로 위협과 공갈을 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토히로부미는 직접 대신들에게 가부를 따져 물었습니다. 이토히로부미 앞에서,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85)> 망국 22 - 을사조약(1)

망국 22 - 을사조약(1)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 전인 1903년 12월에 이미 대한제국, 즉 한국을 일본의 지배 아래 둘 것을 내각회의 에서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일본은 1904년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군사를 동원해 서울을 사실상 점령하고,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여 야욕의 일단을 드러 내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은 한국의 통신 분야 장악, 러일전쟁 수행을 위한 경부선 철도 개통과 경의선 철도 건설, 필요한 토지의 무자비한 수용, 어업권 확보, 헌병의 치안권 보유, 왕릉에 대한 대대적 도굴 등 사실상 한국을 거덜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러일전쟁 승리로 러시아가 조선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자, 일본은 예정대로 한국을 손안에 넣기 위한 수순을 밟았습니다. 일본의 이토 히로부..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조선왕조실록(184)> 망국 21 - 러일전쟁(3)

망국 21 - 러일전쟁(3) 러시아는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 불리하다 싶으면 싸우지 말고 철수하라! 일본은 뤼순항 습격, 봉천전투 등 이런 저런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했지만, 러시아 못지않은 큰 피해를 입었고, 이렇게 큰 전쟁을 치를 준비가 덜 된 관계로 심한 재정적 압박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을 어느 정도 장기전으로 끌고 가던 러시아는 패배가 계속되자,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러시아는 러시아 가 자랑하는 유럽 주둔의 대규모 발틱 함대를 극동으로 출발시켰고, 1905년 5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7개월 만에 대한해협에 도착했습니다. 일본도 도고 사령관이 이끄는 연합함대를 대한해협에 집결 시켰으며, 5월 27일 새벽, 일본 해군이 2열로 동해를 북상 해오는 38척의 대함대..

조선왕조실록 2021.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