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171)> 망국 8 - 조선의 1894년(6)
일본은 조선의 철병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 동학군이 해산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청군은 도리어 증강되었다.
그러자 청군이 함께 철병하자 제안했고, 이어서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이 중재에 나서 철군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일본은 오히려 중국에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 함께 내란을 진압하고 내정개혁에 착수하자.
중국이 일본의 의도를 알아채고 거부하자, 일본이 드디어 막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조선은 청국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청군을 조선에서 철수시켜 조선이 자주국임을 실증하시오. 기한은 3일 후인 6월 20일!
기한까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일본군은 21일 새벽 경복궁을 습격했습니다. 궁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잠시 대항했으나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한 고종이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저항 포기를 명하자 일본군은 고종 침전까지 그대로 내달았습니다.
- 전하께서 기침하셨느냐?
일본군은 고종을 협박해 원하는 바를 얻어냈습니다.
- 청국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한다.
- 청국군은 모두 조선에서 떠나라.
그리고 이틀 뒤, 청군은 일본군의 도발에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채 영국 국적의 배에 군대를 싣고 아산만 풍도 앞바다를 들어서다가, 일본 군대의 포격에 의해 침몰당하고 말았습니다.
- 선빵이 최고여!
조선땅에서 일본과 청나라가 한 판 붙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면서도 청군 리홍장은 일본이 10여 년 간 전력을 크게 강화시킨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세상이 다 청나라가 이긴다고 하는데도 싸움을 피하고자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 그렇다고 풍도에서 선빵을 맞고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
리홍장은 조선 땅 평양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 요동의 군대를 평양으로 이동시키고 아산에 주둔 중인 군사도 평양으로 집결시켜라!
그러나 아산에 주둔해 있던 청군은 평택을 지나 내려오는 일본군과 성환에서 만나 박살이 나고 말았습나다.
- 청군 사망 500명, 일본군 사망 82명!
남은 청군은 산 넘고 물 건너 평양으로 향했고 일본군도 병력을 평양으로 집결시켰습니다.
쪽발이들 썬방날리며 들어오는데 청군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그만큼 군사력에 자신이 있단 얘기인데 모든면에서 마음에 안들지만 우리 보다 힘이 센데 어쩌나.....
일본은 조선의 철병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 동학군이 해산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청군은 도리어 증강되었다.
그러자 청군이 함께 철병하자 제안했고, 이어서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이 중재에 나서 철군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일본은 오히려 중국에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 함께 내란을 진압하고 내정개혁에 착수하자.
중국이 일본의 의도를 알아채고 거부하자, 일본이 드디어 막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조선은 청국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청군을 조선에서 철수시켜 조선이 자주국임을 실증하시오. 기한은 3일 후인 6월 20일!
기한까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일본군은 21일 새벽 경복궁을 습격했습니다. 궁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잠시 대항했으나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한 고종이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저항 포기를 명하자 일본군은 고종 침전까지 그대로 내달았습니다.
- 전하께서 기침하셨느냐?
일본군은 고종을 협박해 원하는 바를 얻어냈습니다.
- 청국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한다.
- 청국군은 모두 조선에서 떠나라.
그리고 이틀 뒤, 청군은 일본군의 도발에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채 영국 국적의 배에 군대를 싣고 아산만 풍도 앞바다를 들어서다가, 일본 군대의 포격에 의해 침몰당하고 말았습니다.
- 선빵이 최고여!
조선땅에서 일본과 청나라가 한 판 붙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면서도 청군 리홍장은 일본이 10여 년 간 전력을 크게 강화시킨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세상이 다 청나라가 이긴다고 하는데도 싸움을 피하고자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 그렇다고 풍도에서 선빵을 맞고 싸움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
리홍장은 조선 땅 평양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 요동의 군대를 평양으로 이동시키고 아산에 주둔 중인 군사도 평양으로 집결시켜라!
그러나 아산에 주둔해 있던 청군은 평택을 지나 내려오는 일본군과 성환에서 만나 박살이 나고 말았습나다.
- 청군 사망 500명, 일본군 사망 82명!
남은 청군은 산 넘고 물 건너 평양으로 향했고 일본군도 병력을 평양으로 집결시켰습니다.
쪽발이들 썬방날리며 들어오는데 청군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그만큼 군사력에 자신이 있단 얘기인데 모든면에서 마음에 안들지만 우리 보다 힘이 센데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