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세종의 리더십 강의를 듣고-박현모 교수

이찬조 2022. 7. 26. 14:28

세종의 리더십- 20211.12.13.

 

세종은 인재 감식가였음.

得人爲最(득인위최) :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종의 人才觀

- 治平要覽(치평요람)으로 정인지가 역대 사적에서 龜鑑(귀감)이 될만한 사실을 모아 정리한 책(1445)

- 주나라 주공이 인재를 대하는 태도는 吐哺握發(토포악발)로 사람을 쓰되 자기 몸과 같이하였다.

* 부류를 따지지 아니하였다.

인재를 귀하게 여겼음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성을 다함

사람의 신분(양반, 서얼, 천민 등)을 무시하고 덕망과 재능을 우선으로 봄

- 장영실(천민)- 과학자로 종삼품까지 오름

- 황희 정승도 어머니가 천민이었음.

선발은 말을 들을 때에 오롯이 함 득용(말을 듣는 것)을 중요시함.

- 재능이 그 직분에 적합하다면 : 황희는 24년간 정승으로 국정을 안정시킴.

- 평균 6.8년간 장관급으로 일함으로 보직을 최장으로 함

마음속의 열정을 파악한다. 즉 마음의 바탕이 착한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가?

- 集賢殿(집현전)成均館(성균관)은 벼슬길의 關門(관문)으로 인재를 길러냄

- 成均館(성균관)의 건학이념은 음악에 가락을 맞추듯이 사람의 지나침과 부족함을 조정해 인재를 고르게 양성한다. 하지만 세종 당시는 인기를 얻지 못하였음

전문인력 양성 : 성균관 총장(대사헌)의 건의를 듣고, 성균관 유생들 숙식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

장점은 더욱 발휘하도록 기회를 준다.

- 병조판서 조말성이 뇌물을 받고, 24명의 노비를 증여/탄핵함.

- 병법과 재능을 알고 파직 후 4년 만에 다시 함경도 감사로 부름 받아 공적을 세움

- 유능한 관료는 실수 시 만회의 기회를 제공함 : 여진족 침입 시 미보고로 김진수 파면하였으나, 재기토록 하여 여진족을 파멸시킴

인재선발의 4단계

- 공적인 마음과 열정을 가진 인재 선발

- 유능한 인재를 길러냄

- 관직에 임명

- 장점을 발휘하게 하는 인사정책

 

2. 싱크탱크(세종 : 집현전, 정조 : 규장각)의 효과적인 운용

 

집현전을 세우고 인재를 모으는 일 : 37년간 100여 명의 학사 배출

활발한 국정회의 기간 인재 육성 경전과 역사를 교육 인문학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음

- 국가고시 주관 우수한 인재 선발

인재 육성의 기관을 중시함

- 전문가 양성을 위한 사가독서제 시행

* 현재 대한민국 46개 정부출연연구소 1만 명 연구원이 있으나 만족하지 못함

* 養材用賢(양재용현) 100여명의 학사 배출 연구에 전념 오랜 시간이 필요함 (읽고/시험/발표)

ː독서 (賜暇讀書) [] : 조선 세종 때, 장래가 유망한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

독서(讀書堂) [] : 조선 때, 문관 중에 뛰어난 젊은 벼슬아치를 뽑아 따로 휴가를 주어 오로지 학업만을 닦게 하던 서재.

-- 세종은 142612월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자택(自宅)으로 한정되었으므로 독서에만 전념하기에는 미흡하였다.

--1442년 제2차 사가독서를 시행할 때 세종은 독서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6인을 진관사(津寬寺)에서 독서하게 하는 상사독서(上寺讀書)를 실시하였다.

-- 왕조에 따라 없어지기도 했다가 부활하기도 하였으며 중종 때는 동호독서당을 이용했다.

 

- 집현전에 물어보라(요즘은 네이버 시대)

* 경연은 세미나 식으로 국정을 운영함

* 경전과 역사는 실용지학 중요

역사의 의미

- 역사를 모른다면 현재의 좌표를 모르는 것

- 장차 나아갈 방향 찾기 정책 셜정의 중요성

- 역사는 정치적 임상실험의 축적으로 봄 옛 제도를 참고하여 아뢰라

실용하기 위하여 경서와 역사를 함께 연구함

집현전은 어떻게 씽크탱크가 될 수 있었나?

- 학사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대한 자료들(집현전)

- 서적은 경사자집(경서, 사서, 諸子(공자, 맹자, 주자 등), 집은 시문집)으로 분류함

- 연구와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계됨 경국대전에 반영됨

- 집현전 학사들의 정치적 독립성 保障(보장)

* 양녕대군 처벌문제 : 이 나라는 조종의 국가요, 전하의 사유가 아닙니다.(신숙주)

*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킬 것

* 궁궐 안에 불당을 짓는 일 등을 의논함에 반대상소, 임금이 잘못하면 연좌 농성함(성균관 유생들)

정책적인 검토 철저

- 과거 사례에 대한 철저한 검토

- 발생이 예견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 철저

- 대한민국의 집현전 만들기가 필요함

 

3. 창의성 어떻게 회의하였나?

 

세종식 회의법으로 의논하자마자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인재들의 말문 여는 법

- 황희 (1365, 3) - 공민왕 신돈 등용 개혁실패

(1374, 12) - 왕이 시해됨

(1389, 25) - 이성계 위화도 회군 1년 사이 3명의 왕이 교체

- 22세 때 세종의 말씀

말과 일로 엮는 토론 분위기를 쇄신하라

- 당시 관료사회는 복지부동이었음

- 경연 왕과 신하들이 고전을 읽고 함께 나랏일을 토론하는 회의였음

경연을 총 1898(5회 회의) 개최하였고, 3가지를 주요하게 생각함

제도의활성화 유교이념에 부합

독특한 형식 정책사안까지 의제를 넓힘

세종 자신이 잘하는 학문에 토대를 둔 회의

경연에서 말과 일을 엮다.

- 시사회의(조참, 상참, 윤대) 그리고 차대 등이 해당

조참 (朝參) : 한 달에 네 번 백관이 정전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政事)를 아뢰던 일.

상참 (常參) : 의정(議政)과 중신·시종신(侍從臣)이 날마다 편전(便殿)에서 임금께 국무를 아뢰던 일.

윤대 (輪對) : 조선 때, 매월 세 번씩 각 사()의 낭관(郞官)이 차례로 임금에게 직무에 대하여 보고하던 일.

차대 (次對) : 매달 여섯 차례씩 의정(議政대간(臺諫옥당(玉堂)들이 임금 앞에 나아가 중요한 정무(政務)를 아뢰던 일. 빈대(賓對).

議政=삼정승/ 臺諫= 사헌부·사간원의 벼슬의 총칭/옥당=홍문관

- 언관과 재상이 고전을 놓고 공부하면서 당면과제를 풀어감

· 처음 교재는 대학연의였음

- 인재 선발방법 변계량은 암기식에서 논술식을 주장함

- 科擧制度(과거제도), 古典講讀(고전강독)과 당면 국정 사안까지 함께 의논하는 자리로 활용

- 성균관에서 선비를 ()하게 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어떤가?/ 동부대인 변계량이 좋은 생각입니다.

- 경연의 순서(마암일기/유희춘)

아침 경연 시간 : 날이 밝기 전

참석자 : , 대비, 재상과 언관, 승지 등

교재 : 대학

진행순서 : 입장 - 왕이 읽기 언관의 시독 왕이 읽기 및 풀이 언관들의 검토 신료들의 정사 제안 대비의 대답 퇴장

- 대학의 한 대목을 읽음 분노의 조절과 연관(국왕의 마음가짐) - ‘을사사화연루자들의 신원을 요청함

생각의 탄생 : 해결 요구 문제를 이미지 모형으로 변환 관찰과 실험을 통해 문제 패턴 찾기

- 패턴 중 중요한 것을 가지고 추상화해서 모형화 자신이 깨달은 것은 언어로 표현해 봄

세종의 창의적인 회의 법

- 유교경전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토론함 당면 문제 패턴 발견 추상의 핵심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놀이

세종대왕 시독관(김종서, 윤회) 검토관(허조,고약해) 시강관(황희)
회의 의제 결정 및 회의진행 정해진 의제의 문제점과 해법을 자유롭게 이야기 잠재 문제 분석의 역할 쟁점 핵심을 요약정리 대안 제시

읽을 강독 자료 엄선 용어 해석 설명은 집현전 학사 지원

태클이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음

아이디어의 꼬리 잇기나 추임새 넣기는 가능

- 회의 참석자들이 강독자료에 몰입 과정

 

4. 세종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였는가?

 

세종의 최대위기 강원도 대기근(최초) 20년만의 가뭄

 

. 재위 8년에 도성 대화재 사건 1426

- 위기란 표현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 처음으로 등장함

- 강원도 횡성에서 세종이 강무(군사훈련을 겸한 사냥 중)

- 동성에는 왕비와 몇몇 대신 만 남은 상태

- 세종 일행이 횡성의 사기소(횡성 댐 근처) 벌판에 있었음 - 도성 화재 소식이 전해 짐

- 민가도 많이 타고 인명 32명이 죽음 조말성 병조판서가 동행, 환궁 다음날

- 전옥서(종각 옆)와 행랑 8채가 전소하고 불길이 종루까지 미침에 피해자 식량공급과 장례비용을 국가가 지원토록 함

- 사정전 대책회의 대안 마련하고 화재 원인 파악 형조판서

- 화재 원인은 조선통보 발행 화재 3년 전에 만들었으나 물문교환을 하지 못하게 함에 반발한 백성들이 불을 지름에 2170호가 불탔고 감옥, 궁궐 등 손실이 큼

생명구호 식량 제공, 부상자 치료, 장례지원

아이디어 우선순위 정해서 실행 아이디어 쏟아짐, 급무과 선무로 나누어 지시

배울점 : 화재관리 전담기구 상설화 + 도성 재개발로 시스템 정비

 

. 禁火都監(금화도감) 설치와 도성의 도로 정비

금화도감 설치(상설화) - 화재 방지를 위한 아이디어를 냄

- 불을 지른 사람을 잡아서 고발하는 자는 양민 계급을 초월하여 관직 상을 줌

도성의 도로 정비와 가옥 구조 개선

- 성내 도로망 정비 주례를 모델로 만듦

- 초가를 개량해서 기와집으로 화재 예방함(획기적인 발전)

대책 마련 : 시스템 총체적으로 개혁 작업 진행 주작대로로 거듭남

- 임시방편에서 시스템으로 바꿈

- 생명구호라는 긴급조치 어전회의의 아이디어 收斂(수렴) - 전담기구(금화도감) 설치 및 도성의 도로 정비(주작대로 건설)와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지붕개량까지 완성함

세종 32(1450) 별세함 : 재위 30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로 왔다.

 

세종이 정비한 제도 : Software
현능한 사람에게 맡기는 인재경영 과거 경혐을 토대로 국사를 기획하는 지식경영 현능한 인재들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일하게 하는 제도 정비

백성들이 예측 가능하도록 살아가게 함

- 도량형 정비, 의례정비, 해시계, 물시계 표준시간 반포 등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게 함

제도가 해답이다.

- 위기 절감 공동체 비전 공유 인재에게 권한 위임 전화위복의 길이 열림

- 역사 공부는 경우의 수를 얻기 위함

- 지도자가 고통의 현장에 있음 黎民同苦(여민동고)의 리더십 발휘

黎民同苦(여민동고) : 일반백성과 고통을 함께 함/ 黎民同樂(여민동락)백성과 함께 즐김

 

5. 추진력 세종은 어떻게 나라를 지켰나?

 

주요 업적 : 46진 개척과 한글 창제

- 서북지역 4, 동북지역 6: 2회에 걸쳐 여진족 토벌

- 9차례 대규모 사민 입거 및 140km 행성 구축

- 이는 포괄적 국가사업이었음

- 爲民 주장은 한편으로 勞民의 고통 隨伴(수반)

- 태조 : 북방 경략을 위해 황해도 지방의 많은 민호를 서경(평양)에 이주

- 윤관 : 9성을 축조한 뒤 남쪽 지역의 6만 호를 입거 조선시대에도 정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짐/ 변경 방어에 큰 도움이 됨

- 북변은 위험함 마천령 이북은 우리 땅이 아니라고 생각함

단계적 이주 정책과 이주민의 특혜 정책 시행

- 평안도는 46,56165,000명 정도, 함경도는 55,56055,000명 백성의 집단 이주가 행정, 군사기지 및 행성 구축과 병행됨 유인책 제공, 지원자를 받는 방식을 선택함 자발적으로 안정을 위함

- 중강진 부근에 4, 회령, 온성지구에 6진을 개척하고 350(140km)가량의 행성을 구축하고, 12,121, 12만 명이 이주함

사민을 회피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효과를 보지 못하였음

- 입거자의 10%가 도망을 감

- 저항 세력이 생기기 시작함 팔을 끊고 나는 못가오.

- 이를 피하기 위해 자살자도 속출함

 

6 세종의 영토 경영 리더십 : 장애물 극복

 

. 관가와 당시 상황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조정 대신들의 개척 반대

- 민폐 등 관리의 어려움과 근무 여건 어렵고, 장거리 이동이 문제로 대두됨

- 신료들은 경원과 회령을 우리 영토로 삼은 것은 조정에서 하신 일

- 김종서 오랑캐의 속성거론 오랑캐는 바뀜, 회유와 안으로 굳게 정비

- 황희의 현지 조사 및 국왕의 지시 수용 후퇴론을 잠재움

명나라와 여진족의 동향

- 여진족 이남주의 조선 고립시키기 위한 노력

- 명나라 사신을 초청해 극진히 대접 여진족 어진 정치/ 남만(태국)에서 집단 귀화

연이은 흉년과 백성들의 고통

- 한 해도 흉작이 아닌 해가 없었음 함경도 역병

남쪽 지방의 식량을 신속히 이동시켜 기아를 막음

- 다양한 농업기술 개발

- 농사직설 신농법을 농민들에게 알도록 함

46진을 최대한 좋은 공동체 만들기 노력

- 김종서의 요청을 수용 평안도는 두명(행정과 국방)의 행정관을 두어기관장 선임시 적임자를 뽑고 장수를 양성함

- 영토 확장을 획기적으로 백두산까지 문종실록에는 백두산이 우리나라 산천의 근원, 겨레의 숭산.

- 김정호는 백두산을 국토의 뿌리란 표현을 쓰고 있음.

조정의 땅의 한 뼘이라도 버릴 수 없다.

 

7. 인간존중 : 사람들이 왜 세종을 좋아할까?

세종 사후 사람들의 세종 평가

- 세종을 따라 배워야 한다. (성종, 영조, 정조, 조광조 등등은 세종을ㄹ 최고의 군주로 봄)

- 사후 130년 후 이이 율곡의 평가

· 친하게 대하기를 가인이나, 부자처럼 하였기 때문에 뭇 신하들이 은혜와 덕에 감격하여 사력을 다하였다.(感思懷德竭其死力焉(감사회덕갈기사력언)고 말했다.

· 신하들의 별명을 부르기도함. 특히 윤회하고 친하게 지냄/ 성삼문은 어려서부터 자를 부름)

· 못 먹는 술을 마시면서 접견함

· 어머니들을 감동시킴 김종사 모친, 하경복 장군 모친 등을 살핌

· 국가의 석학인 윤회가 병을 참고 종사하여 순직함/ 최윤덕 장군도 순직함 순직에 대한 보상책 마련지시

세종은 휴머니스트인가?

- 휴머니즘은 프랑스 장폴 사르트르가 주장함 즉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존재

-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스스로 미래를 향하여 내던지는 기획하는 존재라고 믿는 것

- 휴머니스트란 사람이 사람에 대해 최고의 존재가 되는 미래의 지평을 열어가려고 하는 사람임

 

. 세종은 전형적인 휴머니스트임

 

백성을 비록 천인이라도 왕이나 주인에 의해 그 존재가 규정되지 않는 사람으로 봄

- 백성의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하늘의 백성, 천민(天民)이기 때문에

양반 지배층이 독점하던 문자 권력과 시간이라는 정보를 공개하여 백성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함

(앙부일구, 자격루, 한글 창제 등등 생활에 편리)

ː일구 (仰釜日晷) = ː일영 (仰釜日影) : 조선 세종 16(1434)에 만든 해시계. 가마솥 모양의 용기 안쪽에 이십사절기를 나타내는 눈금을 새기고 북극을 가리키는 바늘을 꽂아, 그 바늘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 수 있게 만듦. 앙부일구.

자격(自擊漏) [자경누] : 조선 세종 때, 물이 흐르는 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소리를 내서 시간을 알리도록 만든 시계의 한 가지.

역사에 대한 畏敬(외경) : 기록하여 사람에게 경계를 삼도록 위함이므로 좋고 나쁜 일 모두를 기록하도록 함

 

. 세종의 옥사 판결 사례

 

세종의 인간 존중 리더십의 예

- 노비가 그 주인에게 중대한 인권 침해를 받았을 때

* 권채의 인간 돼지 사건 부인과 함께 자기 여종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 일

-- 형조판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알려 줌

사건 경과 : 가죽과 뼈가 파리하게 붙은 사람이 지게에 실려 가는 모습을 발견함 조사결과 권채의 여종으로 이름을 덕금이었음

-- 사연 : 권채가 덕금을 첩으로 삼았으나 부인이 질투하여 덕금을 인간 돼지로 만듦

-- 조사 결과 : 권채 부인이 덕금을 방에 가두고 발에 쇠고랑을 채우고 똥과 오줌을 먹게 함. 덕금이 똥에 구더기가 나오자 먹기를 거부하자 침으로 항문을 찔러 억지로 구더기까지 삼키게 하는 등 수개월 동안 몹시 악한 짓을 함

- 세종 : 권채가 성품이 안존한 사람인데 그렇게 잔인한가? - 아마도 그 아내에게 제의를 받은 것 같다.

- 세종 : 끝까지 조사해 보라.

- 의금부의 조사 결과 권채는 덕금이 학대받고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함. 부인이 그런 일이라고 한 남종과 여종의 진술에 의거한 보고를 드림

- 부인과 덕금, 권채의 말이 서로 엇갈림 - 수령고소금지법에 의거 삼자 대질 불가함

- 세종의 새로운 해석 : 주인과 종의 일이나 나라에서 형조판서가 알고 조사한 것이므로 수령고소금지법 사용 불가함

- 조사결과 권채는 그 사실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었음

- 결론 노비도 인간이다. 天民(천민)이다. (세종실록 1409.09.04.)

*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하여도 오히려 상심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진실로 차별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과 천인을 구별해서 다스리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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