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리더십- 20211.12.13.
세종은 인재 감식가였음.
○ 得人爲最(득인위최) : 인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종의 人才觀
- 治平要覽(치평요람)으로 정인지가 역대 사적에서 龜鑑(귀감)이 될만한 사실을 모아 정리한 책(1445년)
- 주나라 주공이 인재를 대하는 태도는 吐哺握發(토포악발)로 사람을 쓰되 자기 몸과 같이하였다.
* 부류를 따지지 아니하였다.
① 인재를 귀하게 여겼음 –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성을 다함
② 사람의 신분(양반, 서얼, 천민 등)을 무시하고 덕망과 재능을 우선으로 봄
- 장영실(천민)- 과학자로 종삼품까지 오름
- 황희 정승도 어머니가 천민이었음.
③ 선발은 말을 들을 때에 오롯이 함 –득용(말을 듣는 것)을 중요시함.
- 재능이 그 직분에 적합하다면 : 황희는 24년간 정승으로 국정을 안정시킴.
- 평균 6.8년간 장관급으로 일함으로 보직을 최장으로 함
④ 마음속의 열정을 파악한다. 즉 마음의 바탕이 착한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가?
- 集賢殿(집현전)과 成均館(성균관)은 벼슬길의 關門(관문)으로 인재를 길러냄
- 成均館(성균관)의 건학이념은 음악에 가락을 맞추듯이 사람의 지나침과 부족함을 조정해 인재를 고르게 양성한다. 하지만 세종 당시는 인기를 얻지 못하였음
⑤ 전문인력 양성 : 성균관 총장(대사헌)의 건의를 듣고, 성균관 유생들 숙식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
⑥ 장점은 더욱 발휘하도록 기회를 준다.
- 병조판서 조말성이 뇌물을 받고, 24명의 노비를 증여/탄핵함.
- 병법과 재능을 알고 파직 후 4년 만에 다시 함경도 감사로 부름 받아 공적을 세움
- 유능한 관료는 실수 시 만회의 기회를 제공함 : 여진족 침입 시 미보고로 김진수 파면하였으나, 재기토록 하여 여진족을 파멸시킴
⑦ 인재선발의 4단계
- 공적인 마음과 열정을 가진 인재 선발
- 유능한 인재를 길러냄
- 관직에 임명
- 장점을 발휘하게 하는 인사정책
2. 싱크탱크(세종 : 집현전, 정조 : 규장각)의 효과적인 운용
□ 집현전을 세우고 인재를 모으는 일 : 37년간 100여 명의 학사 배출
① 활발한 국정회의 – 기간 인재 육성 – 경전과 역사를 교육 – 인문학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음
- 국가고시 주관 – 우수한 인재 선발
② 인재 육성의 기관을 중시함
- 전문가 양성을 위한 사가독서제 시행
* 현재 대한민국 46개 정부출연연구소 1만 명 연구원이 있으나 만족하지 못함
* 養材用賢(양재용현) 100여명의 학사 배출 – 연구에 전념 – 오랜 시간이 필요함 (읽고/시험/발표)
※ 사ː가―독서 (賜暇讀書) [―써] : 조선 세종 때, 장래가 유망한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
※ 독서―당 (讀書堂) [―써―] : 조선 때, 문관 중에 뛰어난 젊은 벼슬아치를 뽑아 따로 휴가를 주어 오로지 학업만을 닦게 하던 서재.
-- 세종은 1426년 12월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자택(自宅)으로 한정되었으므로 독서에만 전념하기에는 미흡하였다.
--1442년 제2차 사가독서를 시행할 때 세종은 독서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 6인을 진관사(津寬寺)에서 독서하게 하는 상사독서(上寺讀書)를 실시하였다.
-- 왕조에 따라 없어지기도 했다가 부활하기도 하였으며 중종 때는 동호독서당을 이용했다.
- 집현전에 물어보라(요즘은 네이버 시대)
* 경연은 세미나 식으로 국정을 운영함
* 경전과 역사는 실용지학 중요
③ 역사의 의미
- 역사를 모른다면 현재의 좌표를 모르는 것
- 장차 나아갈 방향 찾기 – 정책 셜정의 중요성
- 역사는 정치적 임상실험의 축적으로 봄 – 옛 제도를 참고하여 아뢰라
④ 실용하기 위하여 경서와 역사를 함께 연구함
⑤ 집현전은 어떻게 씽크탱크가 될 수 있었나?
- 학사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대한 자료들(집현전)
- 서적은 경사자집(경서, 사서, 諸子(공자, 맹자, 주자 등), 집은 시문집)으로 분류함
- 연구와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계됨 – 경국대전에 반영됨
- 집현전 학사들의 정치적 독립성 保障(보장)
* 양녕대군 처벌문제 : 이 나라는 조종의 국가요, 전하의 사유가 아닙니다.(신숙주)
*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킬 것
* 궁궐 안에 불당을 짓는 일 등을 의논함에 반대상소, 임금이 잘못하면 연좌 농성함(성균관 유생들)
⑥ 정책적인 검토 철저
- 과거 사례에 대한 철저한 검토
- 발생이 예견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 철저
- 대한민국의 집현전 만들기가 필요함
3. 창의성 – 어떻게 회의하였나?
○ 세종식 회의법으로 의논하자마자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① 인재들의 말문 여는 법
- 황희 (1365년, 3세) - 공민왕 신돈 등용 개혁실패
(1374년, 12세) - 왕이 시해됨
(1389년, 25세) - 이성계 위화도 회군 – 1년 사이 3명의 왕이 교체
- 22세 때 세종의 말씀
② 말과 일로 엮는 토론 분위기를 쇄신하라
- 당시 관료사회는 복지부동이었음
- 경연 – 왕과 신하들이 고전을 읽고 함께 나랏일을 토론하는 회의였음
경연을 총 1898회(월 5회 회의) 개최하였고, 3가지를 주요하게 생각함
ⓐ 제도의활성화 – 유교이념에 부합
ⓑ 독특한 형식 – 정책사안까지 의제를 넓힘
ⓒ세종 자신이 잘하는 학문에 토대를 둔 회의
③ 경연에서 말과 일을 엮다.
- 시사회의(조참, 상참, 윤대) 그리고 차대 등이 해당
조참 (朝參) : 한 달에 네 번 백관이 정전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政事)를 아뢰던 일.
상참 (常參) : 의정(議政)과 중신·시종신(侍從臣)이 날마다 편전(便殿)에서 임금께 국무를 아뢰던 일.
윤대 (輪對) : 조선 때, 매월 세 번씩 각 사(司)의 낭관(郞官)이 차례로 임금에게 직무에 대하여 보고하던 일.
차대 (次對) : 매달 여섯 차례씩 의정(議政)·대간(臺諫)·옥당(玉堂)들이 임금 앞에 나아가 중요한 정무(政務)를 아뢰던 일. 빈대(賓對).
議政=삼정승/ 臺諫= 사헌부·사간원의 벼슬의 총칭/옥당=홍문관
- 언관과 재상이 고전을 놓고 공부하면서 당면과제를 풀어감
· 처음 교재는 ‘대학연의’ 였음
- 인재 선발방법 – 변계량은 암기식에서 논술식을 주장함
- 科擧制度(과거제도), 古典講讀(고전강독)과 당면 국정 사안까지 함께 의논하는 자리로 활용
- 성균관에서 선비를 講(강)하게 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어떤가?/ 동부대인 변계량이 좋은 생각입니다.
- 경연의 순서(마암일기/유희춘)
◦ 아침 경연 시간 : 날이 밝기 전
◦ 참석자 : 왕, 대비, 재상과 언관, 승지 등
◦ 교재 : 대학
◦ 진행순서 : 입장 - 왕이 읽기 – 언관의 시독 – 왕이 읽기 및 풀이 – 언관들의 검토 – 신료들의 정사 제안 – 대비의 대답 – 퇴장
- 대학의 한 대목을 읽음 – 분노의 조절과 연관(국왕의 마음가짐) - ‘을사사화’ 연루자들의 신원을 요청함
④ 생각의 탄생 : 해결 요구 문제를 이미지 모형으로 변환 – 관찰과 실험을 통해 문제 패턴 찾기
- 패턴 중 중요한 것을 가지고 추상화해서 모형화 – 자신이 깨달은 것은 언어로 표현해 봄
⑤ 세종의 창의적인 회의 법
- 유교경전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토론함 – 당면 문제 패턴 발견 – 추상의 핵심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놀이
세종대왕 | 시독관(김종서, 윤회) | 검토관(허조,고약해) | 시강관(황희) |
회의 의제 결정 및 회의진행 | 정해진 의제의 문제점과 해법을 자유롭게 이야기 | 잠재 문제 분석의 역할 | 쟁점 핵심을 요약정리 대안 제시 |
※ 읽을 강독 자료 엄선 – 용어 해석 설명은 집현전 학사 지원
※ 태클이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음
※ 아이디어의 꼬리 잇기나 추임새 넣기는 가능
- 회의 참석자들이 강독자료에 몰입 과정
4. 세종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였는가?
세종의 최대위기 – 강원도 대기근(최초) 20년만의 가뭄
가. 재위 8년에 도성 대화재 사건 – 1426년
- 위기란 표현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 처음으로 등장함
- 강원도 횡성에서 세종이 강무(군사훈련을 겸한 사냥 중)
- 동성에는 왕비와 몇몇 대신 만 남은 상태
- 세종 일행이 횡성의 사기소(횡성 댐 근처) 벌판에 있었음 - 도성 화재 소식이 전해 짐
- 민가도 많이 타고 인명 32명이 죽음 – 조말성 병조판서가 동행, 환궁 다음날
- 전옥서(종각 옆)와 행랑 8채가 전소하고 불길이 종루까지 미침에 피해자 식량공급과 장례비용을 국가가 지원토록 함
- 사정전 대책회의 – 대안 마련하고 화재 원인 파악 –형조판서
- 화재 원인은 조선통보 발행 – 화재 3년 전에 만들었으나 물문교환을 하지 못하게 함에 반발한 백성들이 불을 지름에 2170호가 불탔고 감옥, 궁궐 등 손실이 큼
① 생명구호 – 식량 제공, 부상자 치료, 장례지원
② 아이디어 우선순위 정해서 실행 – 아이디어 쏟아짐, 급무과 선무로 나누어 지시
③ 배울점 : 화재관리 전담기구 상설화 + 도성 재개발로 시스템 정비
나. 禁火都監(금화도감) 설치와 도성의 도로 정비
① 금화도감 설치(상설화) - 화재 방지를 위한 아이디어를 냄
- 불을 지른 사람을 잡아서 고발하는 자는 양민 계급을 초월하여 관직 상을 줌
② 도성의 도로 정비와 가옥 구조 개선
- 성내 도로망 정비 – 주례를 모델로 만듦
- 초가를 개량해서 기와집으로 화재 예방함(획기적인 발전)
③ 대책 마련 : 시스템 총체적으로 개혁 작업 진행 – 주작대로로 거듭남
- 임시방편에서 시스템으로 바꿈
- 생명구호라는 긴급조치 – 어전회의의 아이디어 收斂(수렴) - 전담기구(금화도감) 설치 및 도성의 도로 정비(주작대로 건설)와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지붕개량까지 완성함
④ 세종 32년(1450) 별세함 : 재위 30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로 왔다.
세종이 정비한 제도 : Software | ||
현능한 사람에게 맡기는 인재경영 | 과거 경혐을 토대로 국사를 기획하는 지식경영 | 현능한 인재들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일하게 하는 제도 정비 |
① 백성들이 예측 가능하도록 살아가게 함
- 도량형 정비, 의례정비, 해시계, 물시계 표준시간 반포 등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게 함
② 제도가 해답이다.
- 위기 절감 – 공동체 비전 공유 – 인재에게 권한 위임 – 전화위복의 길이 열림
- 역사 공부는 경우의 수를 얻기 위함
- 지도자가 고통의 현장에 있음 – 黎民同苦(여민동고)의 리더십 발휘
※ 黎民同苦(여민동고) : 일반백성과 고통을 함께 함/ 黎民同樂(여민동락)백성과 함께 즐김
5. 추진력 세종은 어떻게 나라를 지켰나?
① 주요 업적 : 4군 6진 개척과 한글 창제
- 서북지역 4군, 동북지역 6진 : 2회에 걸쳐 여진족 토벌
- 9차례 대규모 사민 입거 및 140km 행성 구축
- 이는 포괄적 국가사업이었음
- 爲民 주장은 한편으로 勞民의 고통 隨伴(수반)
- 태조 : 북방 경략을 위해 황해도 지방의 많은 민호를 서경(평양)에 이주
- 윤관 : 9성을 축조한 뒤 남쪽 지역의 6만 호를 입거 – 조선시대에도 정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짐/ 변경 방어에 큰 도움이 됨
- 북변은 위험함 – 마천령 이북은 우리 땅이 아니라고 생각함
② 단계적 이주 정책과 이주민의 특혜 정책 시행
- 평안도는 4차 6,561호 65,000명 정도, 함경도는 5차 5,560호 55,000명 백성의 집단 이주가 행정, 군사기지 및 행성 구축과 병행됨 – 유인책 제공, 지원자를 받는 방식을 선택함 – 자발적으로 안정을 위함
- 중강진 부근에 4군, 회령, 온성지구에 6진을 개척하고 350리(140km)가량의 행성을 구축하고, 12,121호, 약 12만 명이 이주함
③ 사민을 회피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효과를 보지 못하였음
- 입거자의 10%가 도망을 감
- 저항 세력이 생기기 시작함 – 팔을 끊고 나는 못가오.
- 이를 피하기 위해 자살자도 속출함
6 세종의 영토 경영 리더십 : 장애물 극복
가. 관가와 당시 상황
①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조정 대신들의 개척 반대
- 민폐 등 관리의 어려움과 근무 여건 어렵고, 장거리 이동이 문제로 대두됨
- 신료들은 경원과 회령을 우리 영토로 삼은 것은 조정에서 하신 일
- 김종서 “오랑캐의 속성” 거론 – 오랑캐는 바뀜, 회유와 안으로 굳게 정비
- 황희의 현지 조사 및 국왕의 지시 수용 – 후퇴론을 잠재움
② 명나라와 여진족의 동향
- 여진족 이남주의 조선 고립시키기 위한 노력
- 명나라 사신을 초청해 극진히 대접 – 여진족 어진 정치/ 남만(태국)에서 집단 귀화
③ 연이은 흉년과 백성들의 고통
- 한 해도 흉작이 아닌 해가 없었음 – 함경도 역병
④ 남쪽 지방의 식량을 신속히 이동시켜 기아를 막음
- 다양한 농업기술 개발
- 농사직설 – 신농법을 농민들에게 알도록 함
⑤ 4군 6진을 최대한 좋은 공동체 만들기 노력
- 김종서의 요청을 수용 – 평안도는 두명(행정과 국방)의 행정관을 두어기관장 선임시 적임자를 뽑고 장수를 양성함
- 영토 확장을 획기적으로 백두산까지 – 문종실록에는 백두산이 우리나라 산천의 근원, 겨레의 숭산.
- 김정호는 백두산을 국토의 뿌리란 표현을 쓰고 있음.
⑥ 조정의 땅의 한 뼘이라도 버릴 수 없다.
7. 인간존중 : 사람들이 왜 세종을 좋아할까?
① 세종 사후 사람들의 세종 평가
- 세종을 따라 배워야 한다. (성종, 영조, 정조, 조광조 등등은 세종을ㄹ 최고의 군주로 봄)
- 사후 130년 후 이이 율곡의 평가
· 친하게 대하기를 가인이나, 부자처럼 하였기 때문에 뭇 신하들이 은혜와 덕에 감격하여 사력을 다하였다.(感思懷德竭其死力焉(감사회덕갈기사력언)고 말했다.
· 신하들의 별명을 부르기도함. 특히 윤회하고 친하게 지냄/ 성삼문은 어려서부터 자를 부름)
· 못 먹는 술을 마시면서 접견함
· 어머니들을 감동시킴 –김종사 모친, 하경복 장군 모친 등을 살핌
· 국가의 석학인 윤회가 병을 참고 종사하여 순직함/ 최윤덕 장군도 순직함 – 순직에 대한 보상책 마련지시
② 세종은 휴머니스트인가?
- 휴머니즘은 프랑스 장폴 사르트르가 주장함 즉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존재
-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스스로 미래를 향하여 내던지는 ‘기획하는 존재’라고 믿는 것
- 휴머니스트란 사람이 사람에 대해 최고의 존재가 되는 미래의 지평을 열어가려고 하는 사람임
가. 세종은 전형적인 휴머니스트임
① 백성을 비록 천인이라도 왕이나 주인에 의해 그 존재가 규정되지 않는 사람으로 봄
- 백성의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하늘의 백성, 천민(天民)이기 때문에
② 양반 지배층이 독점하던 문자 권력과 시간이라는 정보를 공개하여 백성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함
(앙부일구, 자격루, 한글 창제 등등 생활에 편리)
※ 앙ː부―일구 (仰釜日晷) = 앙ː부―일영 (仰釜日影) : 조선 세종 16년(1434)에 만든 해시계. 가마솥 모양의 용기 안쪽에 이십사절기를 나타내는 눈금을 새기고 북극을 가리키는 바늘을 꽂아, 그 바늘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 수 있게 만듦. 앙부일구.
※ 자격―루 (自擊漏) [자경누] : 조선 세종 때, 물이 흐르는 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소리를 내서 시간을 알리도록 만든 시계의 한 가지.
③ 역사에 대한 畏敬(외경) : 기록하여 사람에게 경계를 삼도록 위함이므로 좋고 나쁜 일 모두를 기록하도록 함
나. 세종의 옥사 판결 사례
① 세종의 인간 존중 리더십의 예
- 노비가 그 주인에게 중대한 인권 침해를 받았을 때
* 권채의 인간 돼지 사건 – 부인과 함께 자기 여종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 일
-- 형조판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알려 줌
※ 사건 경과 : 가죽과 뼈가 파리하게 붙은 사람이 지게에 실려 가는 모습을 발견함 – 조사결과 권채의 여종으로 이름을 덕금이었음
-- 사연 : 권채가 덕금을 첩으로 삼았으나 부인이 질투하여 덕금을 인간 돼지로 만듦
-- 조사 결과 : 권채 부인이 덕금을 방에 가두고 발에 쇠고랑을 채우고 똥과 오줌을 먹게 함. 덕금이 똥에 구더기가 나오자 먹기를 거부하자 침으로 항문을 찔러 억지로 구더기까지 삼키게 하는 등 수개월 동안 몹시 악한 짓을 함
- 세종 : 권채가 성품이 안존한 사람인데 그렇게 잔인한가? - 아마도 그 아내에게 제의를 받은 것 같다.
- 세종 : 끝까지 조사해 보라.
- 의금부의 조사 결과 – 권채는 덕금이 학대받고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함. 부인이 그런 일이라고 한 남종과 여종의 진술에 의거한 보고를 드림
- 부인과 덕금, 권채의 말이 서로 엇갈림 - 수령고소금지법에 의거 삼자 대질 불가함
- 세종의 새로운 해석 : 주인과 종의 일이나 나라에서 형조판서가 알고 조사한 것이므로 수령고소금지법 사용 불가함
- 조사결과 권채는 그 사실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었음
- 결론 노비도 인간이다. 天民(천민)이다. (세종실록 1409.09.04.)
*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하여도 오히려 상심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진실로 차별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과 천인을 구별해서 다스리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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