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백도여행기
1. 일시 : 2012.2.29(목) 자정 ~ 3.1(금)22:40.
2. 코스 : 신사역-나로도 선착장-거문도-백도(선택관광)-거문도-나로도-신사역
3. 여행기
○ 참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여행사에서 보내온 소식을 보고 갑자기 결정을 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말 거문도 사건이 나오는 역사의 현장이기도하고 백도는 우리나라에서 자연을 가장 잘 보존해 온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든 또 한 가지는 바쁜 일정에 맞추어 무박으로 프로그램을 짠 것이 좋았다. 그래서 참여했다.
○ 신사역에 11:50 도착해 보니 통영행 버스 두 대가 대기 중이었고, 우리가 탈 차량은 도착하지 않았다.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버스 한 대가 오는데 행선지가 붙지도 않았다. 차에 오르면서 기사에게 어디 가는 버스냐고 물었더니 거제도란다. 뒤편에 여성 한 분이 거제도가 아니고 거문도라고 하여 탔다. 타자마자 곧장 장내가 정리되자 안내는 “거문도 가지 않는 분은 내리셔요.”라고하며 자정이 되자 출발 시키고 일정을 소개한 후 조식 7천원, 백도 선택 29천원, 중식 10천원을 희망대로 정리하고 갹출한다. 나는 아침과 백도를 선택하고 오찬은 거문도의 별미를 맛보고자 하여 선택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정리를 마치고 차량에 소등을 하고 잠을 청하여 본다. 침대를 지고 자려니 영 어색하다. 출발 전에 1시간동안 목욕을 하고 출발하여 좋았는데, 차가 덜컹거리고 소음이 심하여 좀 불편했다. 차량이 첫 휴게소는 02:15 공주의 탄천휴게소였고, 잠시 쉬고 보니 고속도로가 아닌 길을 서행하며 가고 있다. 아니 벌써 순천을 통과했나 싶다. 고흥은 순천-벌교-고흥으로 들어서면 나로도 행은 외길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 팔영산을 바라보며 내나로도, 외나로도로 들어간다. 얼마나 꼬불꼬불한 길인지, 기사님은 네비가 없어 고생이 많은 것 같다. 잘못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는 것이... 나로도에 도착하니 새벽 5:45분 내려서 쉬고 싶은데 차량에서 가이드의 안내도 없고 말이 없이 쉬고 있다. 06:30이 되어서야 깨워서 식사를 한다. 서울식당(061-833-8383, 835-5111)인데 공간이 넓고 좋았다. 식사도 일찍 먹는 아침인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반찬이 14가지... 식사 후 말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자유시간을 마음껏 누린다. 서울에서 옆자리에 같이 간 분은 몸집이 커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3.1. 아침식사 후 화장실이 공간이 있어 양치하고 볼 일보고 식당에서 제공해주는 커피 한잔이 좋았다. 식당주인은 나이 드신 분인데 명함을 보니 나로도 여객선터미널 대표직도 맡고 있었는데 터미널이 인근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나로도로 통일하여 쓰고 있으나 엄격히 말하면 외나로도라고 한다. 우주센터 위치와 방향을 물었더니 동남쪽으로 7km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안 되는 항구 앞쪽은 지도를 보니 “애도”란 섬이었다. 차안에서 잠시 쉬었다가 08:20분에 터미널로 향하여 간다. 가는 길에 수협공판장에는 아침의 경매가 있었다 5만원대면 아주 많은 고기를 살 수 있었다. 터미널에는 고흥군 지도, 나로도 지도 등이 잘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발하는 배는 여수-나로도-거문도 행인데 예전에는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녹동에서 다녔는데 그 선편은 2008.8.11.부터 없어지고 여수와 연결하여 운행이 되고 있었으며, 나로도 거문도간의 요금은 29천원이었다.
08:30, 우리가 승선한 배는 주피터호였고, 멀미 걱정은 하지 않고 탔는데 다행이 바다가 잔잔하여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다. 얼마간을 가니 선박회사 측 사람이 멀미를 대비하여 비닐봉투를 나누어 준다. 곧장 거문도로 가는 줄 알았는데 08:56에 선죽도에 도착하였고, 지도를 보니 그 위쪽에 소거문도가 있었다. 여기는 우리가 가는 거문도하고는 별개였다. 짐을 좀 싣고 09:00에 출발하였는데 09:16에 초도 대동리에 입항하였다. 그리고는 09:45에 동도에 도착하였고, 여기서 보니 동도의 마을 뒷쪽에 파란 비닐 같은 것이 밭을 덮고 있어 일하는 분들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쑥밭이라고 한다. 벌써 쑥이 출하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이 누군지 알면 이야기도 나누어 보겠지만 모두가 피곤하여 취침하고 있는 일행들뿐이다. 09:56에 거문도항에 도착하였다. 나는 이 섬이 서도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지도를 보니 고도이다. 고도에는 항구를 주변으로 삥 돌아가서 우리가 오후에 출발할 항구로 안내 되었는데 아담한 항구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고도와 서도를 있는 연결 다리는 삼호교라고 칭하며 길이는 300여미터라고 한다. 미리 보아 두었던 영국군 묘지도 인근에 가는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반가 왔다. 터미널은 도착하는 곳과 출발하는 곳이 달랐다. 현재 출발하는 곳에는 여객선 터미널 신축공사 중이었고 2013년 7월 완공이라고 한다. 화장실 가는 길을 공사 중이라서 되돌아 다녀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오찬을 위해 충청도횟집(061-665-1986)에 들렸더니 1kg에 6만원이라 한다. 횟집은 많았으나 거의 문을 닫고 있었으며, 일단 배타는 시간이 되어 되돌아 나왔다.
10:20, 거문도에서 백도는 동쪽으로 28km정도 떨어져 있다. 백도를 향하여 출발하는데 배가 소형이어서 멀미가 걱정되었다. 우리 일행이 30명이 되면 1인당 29천원에서 3천원 할인을 받는데 28명이다. 배를 타고 출발하니 선장이 거문도와 백도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3도라 불리다가 서도는 길다고 장도라 불리기도 하였다한다. 거문도는 1200명이 살고, 예전에는 초교가 4개나 되었는데 현재는 1개의 분교로 전락한 상태라고 한다. 삼도를 거문도라 명명한 것은 청나라 수군제독 정여창(丁汝昌)이 귤은(橘隱)선생 제자들과 만나 문도들이 많음을 보고 거문도(巨文島)로 건의하여 거문도로 명명되어 졌다고 한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밧데리를 사용하여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등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등대는 빛의 거리를 가지고 측정하여 최고를 구별한다고 한다. 등대는 서도의 남쪽 수월산 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등대는 6.5m 높이에서 길이 42km를 비춰주고 있다고 한다.
백도는 百島라고 썼으나, 섬의 숫자를 세어보니 99개로 확인되어 白島라고 쓰고, 실제로 파도에 쓸려 바위가 흰색이다. 66개는 물위에 나타나 있고 33개는 물속에 솟아있는 형태란다(갯수는 부정확함). 실제로 고래등바위 같은 경우 물위에 조금 나타나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물결 모양이 아름답다.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뉘어져 있고 하백도가 더욱 아름다웠다. 바위들의 이름은 다양하였다. 서도의 등대 옆에 팔각정이하나 있는데 백도가 보인다고 하여 관백정(觀白亭)이라고 한다.
상백도에는 서쪽부터 형제바위, 물개바위, 지네바위, 병풍바위, 시루떡바위, 동쪽으로는 매바위, 새들의 아파트 등이 있고, 예전에는 상백도에 배를 대어 입도하여 자연을 만끽하였는데 그 많은 풍란이 씨가 마를 정도여서 1979년부터 입도금지를 하였다고한다. 현재도 올라가는 돌계단을 볼 수 있었다.
하백도는 석불바위, 각시바위, 서방바위, 바둑판바위, 칼등바위, 거북바위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많았는데 일일이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백도 관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장이 났다. 속도가 여간 느리지 않았다. 배가 파도에 부딪칠 때마다 덜컹거려서 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배가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한 시간 지연되어 거문항에 입항하고 보니 다음 스케줄을 시행할 시간이 없었다. 식후에 배를 타고 등대로 가는 분은 16명으로 식후 곧장 배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별미를 찾아 나섰으나 횟집들이 대부분 문을 닫고, 음식점이 여름한철 성수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은 되돌아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중국집에 갔는데 주문하는 것이 되는 게 별로 없어 짬봉으로 해결했다. 점심시간에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여름 한 철 성수기로 사람들이 많이 분빈다 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이 가장 적은 시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중국집은 어지간히 바빴다. 등대를 포기하고 사진팀과 함께 여유롭게 영국군 묘지를 찾았다. 거문초등학교 앞에 공부하는 마음의 여학생상이 돋보였다. 또한 동도의 광경으로 파란 밭을 찾아보았더니 쑥밭에 파란 그물망을 씌워두었다. 벌써 쑥이 자라서 4-5cm 정도로 자라있었다. 밭에 새롭게 보이는 식물이 있어서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방풍”이라고 하였다. 의미는 풍을 예방하는 식물이라고 한다. 또한 영국군 묘를 향하여 가는데 쑥이 많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밭에 내려서 방풍을 사진으로 찍어 왔다. 피곤하여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데 커피집이 안 보인다. 15:10까지 거문항으로 오라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왔더니 아무도 없었다. 커피전문점에 가서 커피한잔을 하면서 거문도 소식을 접한다. 거문도는 항구주변은 땅값이 평당 6백만원 정도라고 하여 깜작 놀랐다. 항구 주변이 모두 개발이 되어 더 이상 개발의 여지는 없는 듯 보였다. 15:40 오가고호를 타고 나오는데 피곤하여 졸음이 밀려온다. 진종일 차타고, 배타고 트레킹은 거의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배는 중간 중간에 쉬지 않고 바로 나오니 1시간 만에 나로도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화장실이 없어 해양결찰서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버스에 승차하였다. 올라오는 길에 팔령산을 보니 하루묵고 올랐다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뒷좌석에 앉은 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도립공원은 무등산, 천관산, 팔영산과 경남 고성의 연화산이 있다. 버스는 네비가 없어 머뭇거리기를 수차 반복하며 속도도 90이상은 밟지 않는다. 오는 길에 오수와 천안휴게소에 들려 쉬고 온다. 22:45에 신사역에 도착하였다.
□ 거문도의 유래비
거문도는 다도해 최남단에 위치한 세 개의 섬으로 형성되어 三島라 불린다. 1885-1887년에 영국해군에 삼도(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을 당시 청나라 수군제독 정여창이 당대의 거유 귤은선생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필담에 감탄하여 문장가가 많은 곳임으로 삼도를 클거(巨) 글월문(文)하여 거문도라고 명명하여 줄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거문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섬의 유적과 유물은 첫째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이고, 둘째 “백도”는 국가 명승지 제7호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 영국군묘지
1885년(고종 22년) 4월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 항구를 구축하면서 23개월간(18854.15~1887.2.28.) 머물렀다. 영국해군이 거문도에 머물면서 총기사고 등 사고로 사망한 수병의 무덤과 다른 사병의 무덤이 있다. 그 당시 영국군이 철거확인을 위해 경략사 이원회가 조정에 보고한 영국군 수병의 묘는 9기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서구식 화강암(花崗巖) 묘비에는 1885년 총기사고로 사망한 2명은 Thmos Oliver(28세)와 Henry Green(30세)이고, 나무십자가에는 1903년에 사망한 Alexwood의 묘비이다. 이를 볼 때 우리민족이 다른 나라 가서 사망한 경우 이렇게 관리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돌아본 영국군 묘지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6.25때 전사자를 위한 묘지가 있고 여기서 두 번째 보게 되었다. 이렇게 관리되는 묘지는 영국대사관에서 1년에 한 번씩 돌아본다고 한다.
위의 내용은 설명과 본 것과 인터넷 자료를 정리한 내용임(20120302)
나로도 공판장의 생선
고흥반도
외나로도 신금리에 있는 나로도 지도
동도의 모습
거문항의 거문도 지도
삼호교(고도와 서도를 이어주고 있음)
백도
백도
백도2
서방바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겨우찍은 사진 한장
백도의 한 장면
영국군 묘지앞에 핀꽃
방풍이란 식물
거문항의 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