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 2019-참고

이찬조 2019. 2. 14. 13:38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hwp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길-2019.1.22(화)-2.1(금)

내용

내용

순례개요

현지 경로--------- 2

일정표 ----------2

각 나라 정보 ------- 2

숙소정보(생략)

 

Ⅰ. 이스라엘 -------6

1. 샤론평야 지역 ----7

가이샤라

2. 갈멜산 지역 -----7

갈멜산

3. 이스르엘 지역---- 7

므깃도

텔 벧산

4. 나사렛 지역 ----8

나사렛

5. 가나 지역 ------8

가나마을 혼인잔치교회

6. 갈릴리 지역-----8

가이사랴 빌립보

텔 단

팔복교회

베드로 수위권교회

오병이어 비적교회

가버나움

7. 여리고 지역-----10

여리고

시험산

8. 사해 지역 -----11

카르스 엘 야후드

쿨란

맛사다

엔게디

사해

9. 베들레헴 지역--------12

양치기 들판교회

예수탄생기념교회

10. 예루살렘 지역-------13

감람산

눈물교회

주기도문 교회

예수승천 기념교회

겟세마네 동산

마가의 다락방

다윗의 가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비아돌로로사)

골고다 언덕 성묘교회

베드로 통곡교회

통곡의 벽

11. 기타 지역---------16

베다니

 

Ⅱ. 요르단----------16

1. 데가볼리 지역-------17

펠라

2. 길르앗 산지 지역-----17

그릿시냇가

3. 아모리 지역--------17

마다바

느보산

4. 페트라 지역--------18

페트라와 에돔족속의 땅

바울과 페트라


Ⅲ. 현지에서 말씀과 찬양--21

 

  

 

□ 현지경로

1. 인천-텔아비브-2. 하이파(나사렛/가나4)-3. 갈릴리6-단-4. 길르앗3-5. 페트라4-6. 여리고5-

7. 사해3-8~9. 베들레헴/ 예루살렘-  ­10. 예루살렘/엠마오

 

월일/지역/ 교통

시간

일정

식사

1일차(1/22,화)

인천

KE000

텔아비브

전용차량

11:30

14:35

19:55

 

-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3층 H카운터 앞 집결

- 인천 출발→텔아비브 행

- 텔아비브국제공항 도착 후 가이드미팅

- David Tower Hotel Netanya 호텔 투숙/휴식

석: 기내식

2일차(1/23,수)

텔아비브

나사렛

가나

갈릴리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가이샤라로 이동

-원형극장, 대전차경기장 등 로마 유적지 순례

○ 갈멜, 나사렛, 가나 지역 순례

- 갈멜산, 므깃도,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마리아수태고지 기념교회

▶티베리아스로 이동

- 갈릴리 유람선(선상 특별예배)

▶Leonardo Club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3일차(1/24,목)

 

갈릴리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 갈릴리 지역 순례

- 가이샤라 빌립보, 텔 단

- 갈릴리 호수 주변 기념교회

(팔복교회, 오병이어기념교회, 베드로수위권교회)

- 가버나움 등

▶Leonardo Club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4일차(1/25,금)

 

갈릴리

벧산

 

암만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벧산으로 이동

-텔 벧산 조망

▶벧산 국경 통과

○ 길르앗 산지 경유

- 펠라, 그릿 시내, 디셉

▶얍복강 통과 후 암만 도착

 

▶Olive Tree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 일정표

월일/지역/ 교통

시간

일정

식사

5일차(1/26,토)

암만

페트라

암만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페트라 이동

○ 에돔 유적지 페트라지역 순례

- 마바다 정교회 방문

- 페트라 순례 후 암만으로 이동

- 세렛강 및 아르논강 조망

▶Olive Tree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6일차(1/27,일)

 

암만

 

여리고

 

전용차량

09:00

 

 

 

 

 

 

 

▶호텔 조식 후 느보산으로 이동

- 주일예배

▶알렌비 국경 통과

○ 사해, 여리고 지역 순례

- 요단강 세례터(카스르엘 야후드)

- 돌무화과나무, 시험산 조망

- 쿰란공동체, 사해 수영(수건지참)

▶Oasis Jericho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7일차(1/28,월)

 

여리고

 

예루살렘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 사해 지역 순례

- 엔게디(외부), 마사다(케이블카 왕복)

○ 베다니 지역 순례

- 나사로의 마을 베다니 순례 후

○ 예루살렘으로 이동

▶Dan Jerusalm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8일차(1/29,화)

예루살렘

베들레헴

예루살렘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 베들레헴 지역 순례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목자들의 들판순례

○ 예루살렘 지역 순례

- 감람산(승천교회,주기도문교회,눈물교회,겟세마네)

▶Dan Jerusalm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9일차(1/30,수)

 

예루살렘

 

전용차량

전일

▶호텔 조식 후

○ 예루살렘 지역 순례

- 시온산(마가의 다락방, 다윗의 가묘, 베드로 통곡교회)

- 베데스타 연못

- 통곡의 벽

- 비아돌로로사 순례

▶Dan Jerusalm Hotel 투숙 후 석식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월일/지역/ 교통

시간

일정

식사

10일차(1/31,목)

 

예루살렘

 

텔아비브

 

전용차량

전일

 

 

 

 

21:55

▶호텔 조식 후

○ 예루살렘 지역 순례

- 야바드셈

- 엠마오

- 욥바 등

▶텔아비브 국제공항 출발 인천행

조: 호텔식

 

중: 현지식

 

석: 호텔식

11일차(2/1,금)

텔아비브

KE958

인천

항공

15:10

▶인천국제공항 도착 후 해산

조: 기내식

 

※ 상기 일정은 항공 또는 현지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각 나라 정보

유용한

전화번호

*주 이스라엘 한국대사관: 6 Hasadnaot St., Herzliya Pituach 4672833(전화:+972-9-9596800/긴급연락처:+972-50-528-8345, 경찰100, 응급치료101)

*주 요르단 한국대사관: P.O Box 3060, Bahjat Al­Himsi St. No.7, Amman 11181, Jordan(전화번호: +962-6-593-0745~6/ 긴급전화: +962-79-750-0358/

+962-79-841-3245, 경찰911, 응급환자911

전압

▶ 전자제품은 220V/50Hz를 사용하나 콘센트모양이 한국과 다를 수 있으니 멀티플러그를 준비하시기 바람

기후

*이스라엘: 예루살렘 1월 평균 강수량이 133.2mm이고, 평균 강수일수는 13일로 여행 중 비를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저기온은 6.4℃, 최고기온은 11.8℃로 약간 쌀쌀한 날씨가 예상됩니다. 일교차는 평균 6.5℃ 차가 됩니다.

옷차림 정보: 여행 중 비가 올 수 있으니 휴대하기 편한 우산이나 우비를 챙기시기 바랍니다. 낮에도 쌀쌀한 날씨를 보이며 추운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뜻한 옷을 준비하여 추위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요르단: 요르단의 기후는 반건조성,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고 있는 바, 겨울에는 신선하면서도 춥습니다. 기온은 6℃~12℃이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추우므로 반드시 두꺼운 스웨터나 외투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서울과 시차

서울보다 7시간이 늦습니다.

개인준비물

작은 우산

운동화 및 걷기 편한 신발

선그라스 및 모자, 썬크림

감기약, 소화제, 해열제, 두통약, 연고, 대일밴드 등 간단한 상비약

(현지에서는 의사 처방 없이는 약품구입이 어렵습니다.)

치약, 칫솔, 면도기 등 세면도구

▶사해 부영 체험을 위한 수영복, 개인타월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수영복이 부담스러운 경우, 물놀이가 가능한 반팔, 반바지 복장도 괜찮습니다.)

호텔용 슬리퍼(대부분 호텔에 슬리퍼가 없습니다.)

주의사항

▶여권 사증에 타 중동국가(이란, 시리아, 레바논, 사우디 등)의 스탬프가 찍혀 있는 경우, 입국 심사가 매우 까다롭거나 입국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출발 전에 미리여권을 재발급 받으십시오.

▶여성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한 복장 제한은 없으나, 이슬람 관습을 존중하여 노출이 심한 의상이나 다리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나 반바지 등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랍어로 된 책자나 흉기로 오인할만한 물품, 불명확한 전자제품 등은 소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2시간이상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 이스라엘 [The State of Isral]

국명 :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

면적 : 20,325km² (CIA 기준)

인구 : 830만 명(2017년 기준)

수도 : 예루살렘(인구 60만명)

언어 : 히브리어 및 아랍어(공용어), 영어

주요민족: 유대인 80%, 아랍인 등 기타 20%

종교 : 유태교 77%, 이슬람교 16%, 등등

정부형태 : 내각책임제

국회 (크네셋) : 단원제, 120석, 임기 4년, 비례대표제

국경일 : 5.14(1948년 당시 독립기념일): 유대력으로는 5월 5일이다.

화폐단위 : New Israel Shekel

1인당 GDP: 37,175$(2016년 기준)

국기: 다윗의 별

 

정치

공화제, 내각책임제(정부형태), 단원제(의회), 참정권(18세)

독립일 :1948.5.14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1948년 영국의 신탁통치가 종료됨과 동시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였다. 이후 세계 각 지역에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새로 건설된 조국을 찾아 귀국하기 시작하였고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의 통일된 민족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국가원수로서 상징적인 인물인 대통령과 행정부 수반으로서 실질적인 권력자인 수상이 있는 내각책임제이다. 총 120석이며 임기 4년의 의회는 크네셋(Knesset)이라 불리며 단원제이다. 3권분립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군사

병력수준 : 17만명, 병역제도 : 의무병제, 국방비 : 92억달러(GDP의 9.8%, 1996년) 입대 : 18세

 

1948년 이스라엘 방위군(IDF:Israel Defense Forces)이 창설되었으며 현재는 현역 17만5천명, 예비군 43명만 명의 병력이 있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18세에 강제로 징집되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 의무복무를 한다. 또한 복무 후에도 예비군으로 편성되어 남자는 51세, 여자는 미혼 때까지 매년 30일간 복무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약 80여 개국의 서로 상이한 언어, 문화, 생활환경 속에 있던 이주민을 유대사회의 시민으로 재교육시키는 산실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매주 샤바트(Shabt)라 부르는 안식일(금요일 일몰에서 토요일 일몰까지의 시간)에 대부분의유대인 상점 및 공공기관이 문을 닫으며, 대중교통 수단도 운행이 정지된다. 주요 공휴일은 부림절(Purim, 3월), 유월절(Passover, 4월), 현충일(Memorial, 4월 또는 5월), 오순절(Shavuot, 5월 또는 6월), 설(새해)(Rosh Hashna, 9월 또는 10월), 속죄일(Yom Kippur, 9월 또는 10월), 초막절(Succot, 9월 또는 10월), 하누카(성전봉헌절 8일간, Channukah, 12월) 등이다.

이스라엘은 동쪽은 아라바(Arabah) 사막 요르단, 서쪽은 지중해 사이에 놓여 있다. 계절은 여름과 겨울로 크게 나누어지고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 된다. 우기는 겨울철로 11월경에 시작되어 이듬해 3월까지이며 연간 강우량은 500~750mm이다.

 

Ⅰ. 이스라엘

 

1. 샤론평야 지역

 

□ 가이샤라(Caesarea)

가이샤라는 헤롯대왕에 의해 BC22-10에 세워진 지중해 해변의 항구도시이다. 헤롯의 건축물은 아직도 잘 보존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다. 항구와 수로, 원형경기장 및 도로, 대리석으로 꾸민 화려한 신전과 궁전 등은 당시의 건축 기술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가 남긴 극장은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로 향하는 팔레스타인 관문으로서 AD 6년 이후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총독부가 주둔하던 곳이었다.(행12:19) 이 도시의 고넬료(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는 베드로 사도를 불러 이방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수를 빋은 사람이 되었다.(행10:1~43) 아울러 바울의 선교 여행의 기지이기도 하였으며,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기 전에 2년 동안 이 도시의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때 로마의 총독 벨릭스와 후임자 베도스, 그리고 유다왕 헤롯아그립바 2세 앞에서 변론을 펴기도 하였다. 바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면서 이 항구와 작별하였던 것이다. 초기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이 도시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로서 오리겐과 그의 제자 유세비우스 등의 교부활동의 중심지였다. AD 640년 아랍에 의해 파괴된 이후 1101년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어 재건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빌립은 아도소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샤라에 이르니라.”(행8:40)

 

2. 갈멜산 지역

 

□ 갈멜산(MT. Carmel)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3번째 도시인 하이파(Haifa)시가 위치하고 있는 지중해 하이파만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스르엘 골짜기를 남동쪽으로 길게 뻗은 약 25km 가량의 산맥이다.

종교적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산으로 BC 860년 아합왕 때의 바알과 하세라 선지자들의 종교적 중심지였다. 850명이나되는 사제들에 의해 이방 종교는 꽃을 피우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는 이들과 맞 대결을 하여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가름하였다.(왕상18:1~40) 이 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종교 질서를 세웠으며, 기독교의 종교적 위기로부터 구했다. 엘리야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는 곳은 무크라카이며, 교회 뜰에 세워진 엘리야의 석상은 재무장 하도록 요청하는 듯하다.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왕상18:20)

 

3. 이스르엘

 

□ 므깃도(Megiddo)

BC 4000년으로부터 BC 6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최고의 요새로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도시이다. 므깃도는 이집트와 다메섹을 거쳐 메소보타미아에 이르는 주요 국제 도로인 ‘해변의 길’(Via Maris)의 가장 중요한 통로로 사통팔달 할 수 있는 곳이어서 20회 이상의 국제전쟁을 치렀던 곳이다.

1) 요한계시록에는 이 도시가 므깃도의 산을 헬라어로 음역하여 ‘아마겟돈’(Armageddon)으로 등장하는데, 종말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계16:16)도 우연이 아니다.

2) 므깃도는 BC 923년에 이집트의 시삭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아합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3) BC 609년에 요시아왕은 이곳에서 이집트 느고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4) 그 후 이곳은 폐허로 남아 있게 되었다.

---지하 수로--- 무너진 성터---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16:16)

 

□ 텔 벧산

구약성서에서 이도시의 이름으로 ‘벳스안’과 ‘벧산’이 함께 쓰이고 있다. 바로 옆에는 일 년 내내 물이 흐르는 하천이 있으며 근처에는 기름진 평야가 있다. 이곳은 원래 주위보다 20m 이상 높은 바위언덕이어서 관측 방어에 유리한 곳이었으며, 남북을 연결하는 요르단 골짜기 길과 지중해에서 이스르엘 평야를 거쳐 요르단 건너편 길르앗 땅으로 이어지는 평야길이 교차하는 등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다.

이 때문에 BC 5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벳스안은 전형적인 텔(유적 언덕)로서 수차례의 발굴에서 나온 흙을 가장자리에 쌓아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성벽으로 둘러 쌓인 넓이가 13,000만평이나 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이곳은 므낫세 지파에 배정되었지만, 그곳의 거주민은 이스르엘 평야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철병기로 무장하였기 때문에 쉽게 정복할 수가 없었다. 사울왕은 블레셋 사람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길보아산에서 전사하였는데, 그의 시신은 벳스안 성벽에 매달렸고, 그의 갑옷은 벳스안에 있는 아스다롯(Astarte) 여신의 신전에 일종의 전리품으로 바쳐졌다. 신약성서에는 이곳에 대한 언급이 없다.

 

4. 나사렛 지역

 

□ 나사렛(Nazareth)

나사렛의 중심은 성 수태고지교회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준 장소에 세워진 가톨릭 프란체스코교회이다. 이 교회 안에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마리아의 성화가 진열되어 있으며, 지하층에는 예수 수태고지 동굴(Grotto of the Annunciaton)이 보존되어 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1:31)

나사렛은 예수께서 출생 후 잠시 애굽으로 피난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태아에서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기까지 일생을 보낸 고향이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주의 사자가 이르는 대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서 정착한 곳이 나사렛이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는 나사렛을 떠나셨지만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항상 나사렛이 붙어 다닌다.

크리스천이라는 말도 히브리어로는 ‘노쯔리’, 아랍어로는 ‘낫스라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나사렛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 되었더라.”(요19:19)

 

5. 가나 지역

 

□ 가나마을 혼인잔치 교회

1) 가나는 예수님이 공생애 초에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기적을 베푸신 곳.

(요2:1-11)

2) 예수님이 말씀으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 주신 곳(요4:45~54)

3) 갈릴리 지방의 한 고을로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하다.(요21:2)

 

6. 갈릴리 지역

 

□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르몬 산의 설경을 배경으로 옛 로마시대에 놓인 다리와 수풀, 높은 절벽과 동굴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곳에 신전 유적이 남아있다. 바로 그 신전 바위 밑에서 사시사철 신비롭게 물이 솟아 강물을 이루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그것을 신성한 물로 여기고 그곳에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 신전을 세웠고(수11:17), 알렉산더가 그 지역을 정복한 후 헬라사람들은 그곳에 판(Pan)을 위한 사당을 세우고 파네아스(Panease)라고 불렀는데, 아랍사람들이 ‘판’ 신의 'P' 발음을못하기 때문에 ‘P'를 'B'로 발음하면서 현재는 바니아스(Banias)라 부르고 있다.

※ 구글에서는 Hermon Stream Nature Reserve로 기록해 두고 있다.=바니아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이름은 헤롯왕이 BC 20년경에 로마의 초대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로부터 하사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구스도의 신전을 짓고, 황제의 이름을 따라 ‘가이사랴’로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후에 헤롯의 아들 빌립이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해 ‘빌립의가이사랴’라고 부르면서 ‘가이사랴 빌립보’가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방문하셨을 때, 사람들이신성시 여기는 그 신전 앞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실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신앙고백을 한 장소이다. 이곳은 우리에게 아주 의미 있는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념하는 기념물은 전혀 없고, 고대 희랍의 판신을 섬기는 신전 유적지만 남아 있어 유감스럽다.

 

□ 텔 단(Tell Dan)-갈릴리 북부, 헐몬산 서남쪽

단 지파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제비뽑아 얻은 기업은 욥바 근처의 지중해 연안과 쉐펠라 지역이었다. 그 지역들은 대략 소라, 에스디올, 이르세메스, 아얄론, 딤나, 에그론, 깁브돈, 가드림몬, 용바 맞은편 경계까지였으나(수19:40-48), 아모리 족속을 이기지 못하고 북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라이스’(삿18:27-29), ‘레센’(수19:47)이라 불리던 이곳의 성읍을 진멸하고 빼앗아 자기들의 조상인 단의 이름을 쫓아서 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후 북 왕국 여로보암 왕 때 남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성전으로 3대 절기 때 제사를 드리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들과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이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섬기게 했다. 텔 단에는 현재에도 불법의 제단과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던 곳이 있다. 단은 구약시대에 북쪽 경계 도시였으며, 남쪽 경계도시는 벧엘이었다.

구약성경에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삿20;1, 삼상3:20, 삼하3:10) 이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르키는 것이다.

 

□ 팔복교회(tHE Beatitude Monastery)

성경에 따로 명칭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 부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 바로 이 산을 팔복산이라 하였으며 1938년 이탈리아 건축가 바루치의 설계로 이곳에 8각형의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교회의 바닥에는 라틴어로 여덟 가지의 복에 관하여 모자이크로 새겨 놓았다. 이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갈릴리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다.

산 밑의 야외극장식 벌판을 바라보면서 2천 년 전의 복음의 현장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그 모습은 변화가 없어 수천 명의 군중들이 운집하여 예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을 때의 모습을 상상을 넘어선 장소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1-12)

 

□ 베드로 수위권교회(Mensa Domini Church)

이곳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다시 오셔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와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던 곳이다.(요21:1-23) 베드로의 수위권교회라는 명칭은 요한복음 위 말씀에 근거하여 베드로가 제자들 중 으뜸가는 위치를 차지했다는 이유에서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명칭은 ‘그리스도의 식탁(라틴어로는 Mensa Christi)교회’라 불려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큰 바위가 이는데 이 바위 이름이 멘사 크리스티,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다시 갈릴리로 돌아와 고기잡이를 하던 제자들과 물고기를 구워 식사하신 곳이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 오병이어의 기적교회(Church of the Multiplication)

성경 4복음서에 모두 기록하고 있는 기적 가운데 하나인 오병이어 사건(마14:13-21, 막6:3-44, 눅9:10-17, 요:1-14), 이 기념교회는 희랍어로는 일곱 개의 샘을 의미하는 단어로 헵타파곤(Heptapegon)이라 한다. 여기는 1%가량의 식염수가 나오며, 이곳의 바위에는 ‘주님의 식탁’이란 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눅6:17) 여러 지방에서 온 무리들에게 여러 내용을 가르침 후에 빈들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5천명을 먹이셨다.(눅9:12) 이 사건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교회는 팔복산으로부터 갈릴리 바다로 경사로 내려와 바닷가에 세워져 있으며, 5세기경 비잔틴교회 위에 1936년에 다시 세워진 가톨릭성당이 있다.

 

□ 가버나움(Capernaum)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선교 본부로서 3년 동안의 공생애 활동 중 중요한 도시 중 하나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도시를 ‘본 동네’(그의 고향_his own town)(마9:11) 등으로 표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시면서 수많은 이적을 행하셨으나 그의 말씀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심하게 책망하셨다.

 

-- 고라신(Chorazin) 갈릴리 디베랴에서 로슈피나와 게네살을 지나 동쪽으로 가면 가버나움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5km 지점의 언덕 위에 고라신 마을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곳 주민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셨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크게 꾸짖으셨다.

“화 있을 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 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

-- 벳새다(Bethsaida)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1.5km에 위치하고 있다. 이 벳새다는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인공 언덕이며 갈릴리 호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벳새다란 ‘어부의 집(House of the Fisherman)’이란 뜻이다.

1)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 안드레, 베드로의 출신지(요1;44)

2)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신 곳(눅9:10-17)

3) 눈먼 자를 고치신 곳(막8:22-26)

벳새다의 유적을 발견하던 중 가단한 안마당을 가진 집들을 포함하는 주거 층이 발견되었다. ‘어부의 집’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서 고기잡이 도구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진다.

 

7. 여리고 지역

□ 여리고(Jericho)

▷ 구약시대의 여리고

1) 여리고는 길갈에서 서북쪽으로 3km지점,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 요단강을 건너서 첫 번째로 함락시킨 비옥한 도시(수5:8-10)

2) 후에 베냐민 족속의 소유지가 되었다.

3) 사사시대에 모압 왕 에글론은 이곳을 점령하였다.(삿3:13)

4) 유대 최후의 왕인 히스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쫓겨 이곳까지 왔으나 여기서 잡혀 바벨론으로 연행되어갔다(왕하25:5, 렘39:5)

▷ 신약시대의 여리고

구약시대의 여리고보다 남쪽 툴룰 아브엘 알라익이라고 불리는 폐허 지역

1)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러 번 이곳을 지났으며, 삭개오를 만난 곳이다.(눅19:1)

2)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무대로 되어있다.(눅10:30)

▷ 현재의 여리고

예루살렘에서 암만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다.

 

□ 시험산(Mt. Sinai)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시험산, 유혹의 산(The Mt. of Temptation)은 십자군 시대에는 Mons 불렀다. 여리고에서 서북쪽으로 3km 떨어진 메마른 광야에 석회암으로 앙상하게 바위산(해발350m)이 보이는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시험을 받았던 시험산이라 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전 유대광야에서 40일 주야 금식 기도하셨고 고난을 극복하신 후 곧장 유혹하는 자가 나타나 예수님에게3가지로 유혹하였다. 그 사탄은 배고픈 예수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 내려 보라고 했다. 세 번째는 높은 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대적자인 사탄에게 경배하면 이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이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모두를 다만 말씀으로 물리치셨다고 이야기 한다. 시험산 바위로 된 절벽 중턱에 유혹의 산 수도원(The Monastery of the Temptation), 시험산 수도원 또는 카란텔 수도원으로 불리는 건물이 아슬아슬하게 달려있고, 현재는그리스 정교회 소속으로 되어있다.

 

8. 사해 지역

 

□ 카르스 엘 야후드(요단강 세례터)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은 가장 유력한 곳으로 개방한 지 얼마 안된 성지이다. 요단강은 폭이 좁아 우리나라의 개울 개념이 적합하다 할 것이다. 요단은 윗 요단과 아래 요단으로 나뉜다. 윗 요단은 헬몬 산(헤르몬 산)에서 시작하여 갈릴리호수로 들어오고, 아래 요단은 갈릴리에서 사해에 이른다. 아래 요단의 길이는 약 100km 정도인데 구불구불해서 펼치면 약 200km 정도 되는 강이다.

카르스 엘 야후드의 건너편에는 요르단 지역이라 늘 병사가 배치되어있어 양국 간의긴장이 늘 존재하는 곳이다.

 

□ 쿰란-현존 최고의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Qumran)

사해 북서쪽에 위치한 쿰란은 사해 사본(The Dead Sea Scrolls=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약성서를 포함한 고문서 총칭)을 기록한 에세네파 사람들의 주거지역이었던 곳이다. 이 지역의 발견은 1951-56년에 이루어 졌는데 폐허 속의 주 건물은 폭 27m 길이 44m 정도로 석고가 거칠게 발라져 있는 거대한 규모의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쪽에는 수비탑이 있으며 부엌과 붙어있는 식당에서는1000여점의 토기가 발견 되었다. 주 건물 주변에는 옹기장이 집, 방앗간, 염색집, 7개의 저수탱크 등이 발견되었다. 의자, 책상, 마른 잉크가 담긴 잉크스탠드가 있는 기록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쿰란 지역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800여개의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1/4이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 쿰란공동체의 규율집으로서 대부분 양피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놓은 것들이다. 약 2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해 구약사본은 현존하는 구약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에스더서를 제와한 모든 구약의 책들이 모두있다.

 

□ 비운의 절벽 요새 맛사다(Massada)

맛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으로 사해의 서쪽 해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유대광야의 산들과는 다르게 높이 400여m로 천혜의 절벽 요새의 정상에는 길이 600m, 폭 250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1세기경에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를 통하여 맛사다가 헤롯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Jewish War)”의 최후 비극의 격전지였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AD 66년부터 시작된 이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AD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이 ‘열심당원’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66년 당시에 소수의 로마군이 지키고 있던 맛사다를 점령하여 저장된 물과 식량, 무기를 이용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다. 예루살렘을 이미 점령하여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이미 달성한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는 장차 아라비아 광야 지역으로 진출을 예상한 광야 전투의 훈련을 목적으로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을 이끌고 이곳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로마군은2년에 걸친 무수한 정상 공격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거대한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됨으로 항쟁의 막이 내리게 되었다.

 

□ 엔게디(Engedi)

쿰란에서 20km 남쪽, 사해 서안 중앙부에 있는 샘으로 원 뜻은 ‘염소들의 샘’

1) 옛 명칭은 하손다말이며, 현재는 아인게더(창14:7, 수15:62, 대하20:2)이다.

2) 주위에 종려나무와 포도원의 고벨화가 유명하다.(아1:14)

* 고벨화는 위리나라 봉숭화처럼 손톱에 물을 들이는 꽃인데 특이한 것은 물을 들이면 지워지지 않고 향기가 난다고함 미이라에서도 고벨화로 물들인게 남아있다고 함

3) 모압인과 암몬인이 이곳에 와서 여호사밧을 치려다가 세일산인을 친 후 彼此 살육하여 한사람도 남지 않았다.(대하20:1-2)

4) 엔게디에서 예루살렘에 가려면 시스고개를 넘는다.(대하20:16)

5) 선지자 에스겔은 이곳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치는 곳이 되겠다하였다.(겔47:10)

6)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굴속에 숨었을 때, 그 굴속에 들어온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나 그의 겉옷 자락만 베고 굴에서 나와 자신의 무고함을 고했던 장소이다.(삼상23:29)

 

□ 사해(Dead Sea)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지중해보다 398m 낮아 지표에서 움푹 들어간 곳으로 남북의 길이가 75km이고 폭은 긴 곳이 17km, 둘레는 200km에 이른다. 사해의 염도는 33%로 일반 바닷물보다 염도가 5~6배나 됨으로 그 물에 들어가면 수영을 하지 않아도 가라앉지 않고 둥둥 뜨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을 다량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크레오파트라도 미용을 위해 노예들을 시켜 정기적으로 사해의 검은 진흙을 가져오게 했다고 전해지며, 진흙이 알려져 있다.

 

9. 베들레헴 지역

 

□ 목자들의 들판교회(The Shepherd's Field Chapel)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8-11)

 

목자들의 들판교회는 宏壯(굉장)한 건축디자인으로 지어진 현대식 교회이다. 20세게 중반에 지어진 유일한 개신교회로서 캐나다의 지원으로 건축되었다. 이 성스러운 땅에 수많은 그의 작품을 남긴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루치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

 

□ 예수탄생 기념교회(Church of the nativity)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좋지않으면 출입이 금지 된다는 베들레헴. 본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위에 세워졌는데, 이교도의 사원으로 되어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왕비에 의하여 AD 329년에 탄생교회로 다시 만들어 졌고 531년에 유스티니아우스 황제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교회의 지하 동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장소라는 곳에 별 모양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

 

10. 예루살렘 지역

 

□ 감람산(Mt. of Olive)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815m의 높은 산으로 현재는 아랍인 거주지역이다. 고대로부터 이곳에는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감람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올리브는 식용으로 이용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위와 관련된 의식에도 필수로 사용되었고 귀한 향유로도 애용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리브나무를 풍요와 기름진 땅의 상징으로 여겼다.

1) 구약성경에는 다윗 왕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도망할 때 감람산을 넘어 갔다는데서 나온다(삼하15:30, 삼하16:1-30)

2)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고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였다.(눅21:27)

3) 제자 유다가 배반하여 예수님이 잡혀가신 곳인 동시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던 곳이다.(마26:36)

4)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행1:11-12)

이렇듯 감람산은 예수님의 행적과 관련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예수승천 기념교회, 주기도문 교회, 주 눈물교회, 막달라 마리아교회 등 수많은 교회가 들어 서 있고,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주 눈물교회(Dominus Flevit Church)

감람산의 주기도문교회에서 비탈길을 보면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붕괴를 예언하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해지는 주 눈물교회이다. 현재의 교회는 6C경 비잔틴 양식의 소성당이 있던 자리에 1955년 겟세마네 교회를 설계하였던 이탈리안 건축가 바루치가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을 형상화하여 재건축한 것이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눅19:41-42)

 

□ 주기도문 교회(The Church of the Pater Noster)

감람산의 동굴 바로 위에 세워진 ‘Pater Noster’는 라틴어로 ‘우리 아버지’란 뜻을 가지고 있는 주기도문 교회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이 세상 말기에 나타나는 징조들에 관해서 설파하신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4세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념하기 위해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처음 교회가 지어졌으나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파괴되어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며, 지금의 교회는 1874년 프랑스에서 건립한 것이다. 주기도문 교회 벽면에는 희랍어, 히브리어는 물론 점자로 적힌 주기도문까지 82개국 언어로 적혀있다. 우리나라는 가톨릭 부산교구에서 보낸 한글 주기도문이 적혀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11:1)

 

□ 예수승천 기념교회(Ascension Chapel)

감람산 정상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40일 후에 승천하신 곳으로 알려진 교회가 팔각형 담에 둘러싸여져 우뚝 솟아 있다. 4세기경에 세워진 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예수님 승천 시 남긴 발자국의 흔적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예수님 승천 바위이다. 이 교회는 12세기 초, 십자군에 의해 재건된 것을 이슬람교도였던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슬람의 소유로 남아있다. 그러나 부활절로부터 40일이 되는 승천기면일 만큼은 기독교인들의 예배와 기념예식을 허락하고 있다.

 

□ 겟세마네동산(만국교회)

올리브산(감람산) 아래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은 성지에서 가장 감동 깊은 장소 중의 하나이다.

기드론 골짜기 반대편에 위치하며 예수님의 당시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지금의 올리브나무는 그때 것인지도 모른다. 세례요한은 이곳을 기드론 시내 근처의 동산이라 했으며 예수님께서 즐겨 찾던 곳이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눅22:39)

이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를 순종하는 결단의 장소였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22:42)

“유다가 대제사장의 하인들과 와서 그의 선생을 배반하였다(마26:7, 막14:44, 눅22:47. 요18:2)

“모든 제자들은 도망가고 예수님은 홀로 남아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슥13:7)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 마가의 다락방(Pater Noster:유월절 만찬장)(Cenacle: 만찬실)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만찬(최후의 만찬)을 하였던 곳이며 동시에 부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역사적인 곳이다. 마가의 다락방은 시온산 어귀에 위치해 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건물로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다윗의 가묘(Tomb of King David)

다윗왕은 40년간 재위 후 이곳에 안치되었다라고 10세기 이후 믿어지게 되었다.(다른 왕들과 함께 오펠에 묘가 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십자군은 이곳에 4세기경에 세워진 교회의 터를 발견하여 재건하였다.

1524년에는 회교도가 이것을 모스크로 전용해서 1948년까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다윗의 별이 그려진 빨간 천으로 덮인 커다란 다윗 계승자 22왕을 상징하는 22개 은제의 성서를 넣어 장식해 두고 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비아돌로로사)

라틴어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는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이 길은 본디오 빌라도(당시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향하여 걸어가신 약 800m의 길로 출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서 14세기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에 의해서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이 길에 마련된 14개 장소는 18세기에 와서야 확정된 것이다.

-제1지점 : 빌라도 법정: 예수님이 재판을 받던 곳이다.(눅23:13-25)

-제2지점 :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막15:16-20)

-제3지점 :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처음으로 쓰러진 곳으로, 1856년 세운 아르메니아 기념교회가 서 있다.

-제4지점 :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막15:21), 1895년에 세워진 프란체스코교회가 서 있다.

-제6지점 : 베로니카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다.

-제7지점 :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 1975년에 두 개의 예배실이 세워졌다.

-제8지점 :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고 말씀하신 곳

-제9지점 :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곱틱교회가 서있다.

-제10지점 :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다.(요19:23-24)

-제11지점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곳이다.(눅23:33)

-제12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운명하신 곳(마27:45-51)

-제13지점 :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후 염을 한 곳.(마27:59)

-제14지점 :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마27:60-61)

 

□ 골고다 언덕의 성묘교회(The Church of Holy Sepulcher)

예루살렘 성 내부의 서쪽 언덕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비아돌로로사의 끝 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힌 곳을 골고다(해골이라는 뜻)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제1의성지로 삼고 있으며 매년 수많은 성지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정확한 골고다의 위치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AD 33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성묘교회가 세워 졌고, 황제는 이곳을 지구의 중심을 선포했다. AD 1009년 아랍 파팀왕조의 하킴(Hakim)에 의해 破壞(파괴)되었던 것을 12세기 십자군 원정시대에 복원된 건물이다. 교회는 언덕을 포함하여 2층 구조로 만들어 졌고, 입구에는 아치형으로 설계되었다.

교회의 관리는 역사적, 종파적인 이유로 인해 복잡하게 관리가 되고 있다. 현재 교회의 내부는 로마 가톨릭과 아르메니아인의 교회, 그리스 정교회에 의해 관리를 하고, 나머지 부분은 곱틱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디오피아 교회 등 여섯 종파가 분할 소유를 하며 각각 다르게 예배를 진행한다.

 

□베드로 통곡교회(St. Peter in Gallicantu)갈리칸투: 라틴어로 닭울음소리

교회 이름은 바로 이곳에서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3번 주를 부인했다(막14:66-72)고 하는 에피소드에 의해 지어졌다. 현재의 교회는 비잔틴시대의 바실리카 痕迹(흔적)에 1931년에 세워진 이래 가톨릭에 속하는 성모 피승천 수도회가 소유하게 되었다. 여기가 제사장 가야바의 집터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곳에서는 AD 1세기의 아름다운 석단의 길 마카베아 계단이 발견되었는데 이 길은 시온 산에서 기드론 골짜기로 잇고 있다.

 

바실리카: 로마시대의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며, 교회 건축형식의 기조를 이루고, 로마네스크와 고딕식 성당 건축에 영향을 미쳤다.

 

□ 통곡의 벽(Westen Wall)

서쪽의 벽(Westen Wall)은 성전 산의 서쪽 450m의 벽으로 헤롯에 의해서 세워진 성벽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다. 오스만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가며 기도를 하였다. 로마시대에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압비월(아빕월?) 9일 하루만 성역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랍시대에는 이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아 성전에서가장 가까운 이 성벽에서 기도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에도 서쪽 벽을 포함한 성전지역이 요르단 지역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접근 할 수가 없었고 정해진 일정한 날에만 방문이 허가되었다.

1967년 6일 전쟁의 결과 유대인들은 요르단으로부터 이곳을 되찾아 이제는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의 정신적,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종교 집단 간의 葛藤(갈등)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곡의 벽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쪽은 남자들이, 남쪽은 여자들이 기도하는 장소이다. 이곳에 들어가는 모든 남자들은 “키파”라고 하는 조그만 모자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매일 24시간 개방되어 있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에 시작되는 안식일 이후부터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시간이라 이때만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통곡의 벽 앞 광장에서는 국경일 행사, 군인들의 선서식 그리고 그 외 기타중요한 행사가 행해지곤 한다.

 

11. 기타 지역

 

□ 베다니

신약성경에는 이 지명으로 불리는 장소가 두 군데 나오는데, 하나는 세례요한이 예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곳이고(요1:28), 또 다른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10km쯤 떨어진 마을이다. 이 동네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집이 있던 곳이다. 오늘 날 이곳은 엘아자리예라는 아랍 지명이 붙어있다.(자세히 보면 그 명칭에서 나사로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 전날 묶었던 곳이며, 부활 후 승천할 때에 제자들과 헤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나사로 무덤 기념교회를 방문해 볼 수도 있다.

 

 

Ⅱ. 요르단(Hashemite Kingdom of Jordan)

 

요르단은 BC 6~1세기 동안 아랍족인 나바테이안(Nabatean)족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나바테이안족은 현재의 요르단과 시리아지약을 통치했다) AD 105년 요르단은 로마 통치를 받았으며, 5~6세기에는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6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516년에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1946.5.25.에 제2차 대전이 종료된 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92%(수니파), 기독교인이 6%, 기타가 2%정도다.

요르단은 국민의 60% 이상이 팔레스타인계인 특수성으로 인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상황은 요르단의 정세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르단의 인구 구성은 토착 요르단인이 31%, 팔레스타인인이 60%, 기타 9%의 분포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역을 공격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분쟁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팔레스타인계 주민의 동요로 사회불안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명

요르단 왕국

수도

암만

면적

89,206㎢(CIA기준)

인구

980만(2016년)

공용어

아랍어

회폐단위

요르단 디나르(JOD)

국가원수

국왕중심제

정체

입헌군주제

종교

수니파이슬람92%, 기독교2%

주요민족

아랍족 98%

-요르단계 40%

-팔레스타인계60%

1인당GNP

8,745$(2016년 기준)

 

 

 

 

 

1. 데가볼리 지역

 

□ 예수님이 지목하신 피난처 산으로 추정되는 ‘펠라’(Pella)

갈릴리 호수남쪽으로 27km, 요단강 서쪽 벧산에서 동쪽으로 11km 떨어진 요단계곡에 자리한 해발-40m의 고대도시 유적지로 움므 께이스(가다라: 갈릴리 아래쪽 동쪽)에서 요르단 골짜기 길을 따라 남쪽방향으로 가면 이를 수 있는 곳이다. 요단 인근이라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좋아 고대로부터 정착 문명이 발달되었던 곳이다. 특히, 이곳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면서 피난처로 지목하신 ‘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16)여기서 ‘산’은 일반 명사처럼 되어있지만 사실상 펠라를 지목하고 있었다. 당시 10여개에 이르던 데가볼리 도시 가운데 ‘펠라’가 지닌 독특함에 바탕을 둔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데가볼리 도시들이 산기슭의 평지나 고원평야에 자리하였는데 반해 펠라는 산 자체를 도시화한 독특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펠라 지역은 키르벳 파힐, 키르벳 남쪽 텔 엘히슨, 북동쪽의 제벨 아부 엘카스 지역으로 나뉜다.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 박해가 시작되자 이곳 펠라 지역으로 피난 온 기록이 있다. AD 66년 열심당원을 중심으로 한 대로마 반란을 진압하고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고 펠라(Pella)로 도망간 사람은 4년 후 예루살렘 멸망 시 있을 참변을 피할 수 있었고, 이 일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결국 유대교에서 배척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길르앗 산지지역

 

□ 그릿 시냇가(와디 엘 야비스/Wadi el Yabis)

와디 엘 야비스는 길르앗 지방 중심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대표적인 시내였다. 엘리야가 도망갔던 그릿 시냇가는 와디 엘 야비스의 일부분이다. 아마도 요단 강변에서 멀지 않은 길르앗과 요단강 사이의 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와디 엘 야비스는 오늘날 ‘와디 아르리안’(또는 석류가 많이 나서 ‘와디 에드룸만’으로도 칭함)으로 불린다.

엘리야는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큰 위협감에 사로잡힌다. 이는 아합왕에게 가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처지에 놓인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그릿 시냇가로 이끄신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고향인 디셉과 아주 닮은 시냇가로 그를 부르심으로써 엘리야 자신을 돌아보게 한 것이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몸과 마음은 물론 소명까지 모든 부분에서 심기일전했을 것이다.

 

3. 아모리 지역

 

□ 마다바(메드바 교회/Mededa, 모자이크지도)

1) 요단 동쪽 고지대에 있는 중요한 성읍(민21:30)

2) 르우벤 지파가 차지함(스13:9)

3) 요압이 이곳에서 암몬인과 그 연합군을 격파하였다.(대상19:7-15)

세계적인 고대 문화유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모자이크지도(AD 550년경 제작)가 발견된 마다바는 350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고요하게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헤스본에서 남쪽으로 9km, 사해로 들어가는 요단강 입구에서 24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비잔틴시대에 매우 번창한 도시였고, 성경에는 메드바로 일컬어지는 도시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에 정복한 도시였다.(민21:30, 대하19:7, 사15:2) 다윗왕이 암몬을 정벌할 때에 메드바에서의 전쟁기록이 성경에 나타나 있으며(대상19:7) 모압왕 메사의 비문에도9세기 후반에 이 도시가 모압에 속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AD 106년 마다바는 아라비아 지방의 도시로 편입되면서 기독교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로마황제인 로마황제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의 박해 때에는 많은 기독교인이 순교를 당하였고, AD 451년의 칼케톤 회의록에 근거하여 마다바는 보스트라 대주교 밑에 주교를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AD 614년에 있었던 페르시아 침공에 의해 마다바의 비잔틴 도시는 파괴 되었고, 8세기 중반에 이 도시를 강타한 지진으로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880년 초에 이르러, ‘키락(Kerak)???'에서 그곳에 사는 기독교인들과 회교도의 종교 문제로 충돌하게 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크리스천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 상황에서 크리스천들은 황급히 당시 통치자인 오스만 터키(Sultan of the Ottoman Empare) 당국에 그들이 이주하여 살 수 있도록

당을 배정하여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 청원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카락(Karak,사해 남쪽 동부도시)에서 북쪽으로 85km 떨어진 마다바 땅을 지정해 주었다. 따라서 이곳은 기독교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오스만 제국은 집은 자유롭게 짓되 교회만큼은 비잔틴 시대 교회건물이 있던 자리에만 지을 수 있도록 제한했다. 1887년 마다바에 머물던 선교사 슈마허가 처음으로 도시의 주요 흔적을 찾아냈으며, 1897년에 마다바 지도가 클레오파스 키길리디스 신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 느보산(Mt. Nebo)

마다바시로부터 북서쪽 10km 지점, 암만 남쪽 2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802m의 산으로 신명기 34장에 언급된 곳으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 후 이곳에서 120세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죽은 곳이다. 모세의 무덤 위에 세워진 모세기념교회는 394년 처음 세워진 후 수차례의 확장 공사를 통하여 바실리카 양식으로 발전한 것인데 그 내부의 유적을 발굴 복원하여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근처에는 모세의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샘물이 솟았다고 알려진 모세의 샘에서는 32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물이 샘솟고 있다. 모세의 기념관 앞에는 뱀 형상의 놋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모세가 불 뱀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지킨 것을 상징하고 있다.(민21:6-9)

△ 모세기념교회

느보산 정상에 세워진 모세기념교회는 AD 39년 아레리아가 만든 여행순례지에 최초로 언급되었으며, 6세기 후반에 재건된 것으로 알려진다. 느보산 모세기념교회 앞 전망대에서 살펴보면 사해와 여리고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은 시야가 넓게 펼쳐져 예루살렘의 감람산까지도 식별이 가능하다.

△ 구리뱀 동상

모세가 시내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만든 놋 뱀과 인류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복합시켜 만든 동상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조각가 지오파니 판토니의 작품으로 느보산 모세기념교회 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4. 페트라(나바트 왕국) 지역

 

□ 고대도시 페트라(Petra)와 에돔 족속의 땅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서남쪽으로 150km,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역에 페트라의 유적이 있다. Petra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으로 BC 300에 나바티안족에 의해 세워진 교역중심 요새 도시로서, 사도바울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부터 나와서 피난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BC1400-1200 기간 중에는 쉘라로 알려져 있으며, BC600-AD100은 에돔족, 나비티안족의 수도였던 곳이다. AD106년에 로마군에 의해 점령된 후 제라쉬(Jerash: 암만 북쪽 48km 지점)~다마스커스(Damascus)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이 되었으나 로마가 멸망하자 수자원의 고갈로 도시가 廢墟(폐허)가 되었다.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 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영국의시인 존 버곤 신부가 페트라를 描寫(묘사)하였듯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틈새의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1.2km) 가면 웅장한 건물의 정면이 나타난다. 궁전 아니면 신전으로 생각되는 헬레니즘 양식의 건물 정면은 커다란 암벽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정면의 문으로 들어서면 복도가 나타나고 이 복도를 따라가면 암벽을 파서 만든 방들이 나타난다. 페트라는 암벽을 깍아 만든 각종 신전, 무덤들이 자연 소재 그대로의 색상과 구조로써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이외에도 구약시대 아론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페트라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암벽을 파서 만들었는데 이곳에는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대부분는 나바티안이라고 불리는 민족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동서로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수많은 대상들이 들러 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게 번창하였으나, 대상 무역의 쇠퇴와 함께 폐허가 되어 여러 세기동안 발견되지 않은채 남아있었다.

 

□ 바울과 페트라

바울과 페트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울은 자기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만난 후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1:16b)라고 증거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아라비아는 아라비아 페트라 또는 페트라, 아라비아로 불렸던 나바트 왕국의 수도 페트라를 일컫는다. 바울 당시 페트라가 로마의 속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이 지역을 로마식 지명으로 ‘아라비아 페트라’로 불렀다. 이는 요세푸스의 문헌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 페트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두고 몇 가지 이론이 등장한다.

첫째, 어떤 이들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한 이방인의 사도라는 새로운 부르심을 깊이 생각해 보기위해서 아라비아 페트라로 갔다고 추측한다. 둘째로 바울이 찾았던 아라비아를 이집트 시나이 반도 남단 시내산 지역으로 추정하는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던 하나님의 산 호렙 근처에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아라비아 사막에 갔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바울의 말에 이방인(아랍인, 상당수가 이스마엘 후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아라비아를 방문했다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내 속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1:16-17)에서 자신의 아라비아 방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기 위한 것이었을 듯싶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나기 전에 이 소병을 수행하기 시작했음을 추측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바울은 이곳 아라비아에서 조용히 묵상만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나바타 왕국의 북방 영토는 거의 다메섹 동남지역에 인접해 있었다. 바울 당시 나바타 왕국의 국왕인 아레다는 나바타 왕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잡기 위해서 방백들을 다메섹에 보낸 적이 있음을 바울의 회고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후11:32-33)

페트라를 방문하여 잠시 동안이라도 바울의 마음을 묵상하면 어떨까요?


Ⅲ. 현지에서 말씀과 찬양

 

1.23.(수) 성경(눅5:3-6)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에게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1.24.(목) 성경(마16:16)

16. 시몬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1.25.(금) 성경(창32:27-28)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네가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1.26.(토) 성경(요일1:1)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27(주일)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성경(민 20: 7-12)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28(월) 성경(요12:1)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1.29(화) 성경(눅2;13-14)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30(수) 성경(행2:2-4)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31.(목) 성경(눅24:32)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0 찬송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216. 성자의 귀한 몸

303. 날 위하여 십자가의

갈리리 호숫가에서

나는 예배자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물 가운데 지날 때에도

부흥

부흥 2000

비전(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생명과 바꾼 주의 사랑을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약할 때 강함되시메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여호와는 너에게

여호와 우리 주여

예수 사랑해요

오 신실하신 주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사명0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주만 바라볼지라.

주님의 성령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품에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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