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熱國誌) (4) 가공할 사람장사... (진시황 출생의 비밀)
여불위는 진나라에서 돌아오자, 자초를 만나기 위해 공손건 장군 집으로 찾아갔다.
여불위는 공손건 장군을 만나자, 미리 준비해 온 옥대(玉帶) 일조(一條)를 내밀며 말했다.
"그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던 중에 진귀한 옥대가 눈에 띄어, 장군님께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아,
선물로 가져 왔사옵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공손건은 옥대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런 희귀한 물건은 어디서 구해 왔는가 ? 이것은 값을 얼마나 쳐 드리면 좋겠나?"
"값이라뇨. 무슨 말씀을 하시옵니까. 이것은 장군전에 선물로 가져 온 것이오니, 행여 돈 애기는 하지 마시옵소서."
"하하하... 번번히 신세를 져서야 되겠는가 ? "
"친분으로 드리는 선물인데, 돈 말씀을 하시면 너무 섭섭하옵니다."
"그런가 ? 그렇다면 자네의 신세는 후일, 다른 방도로 갚기로 하겠네."
공손건은 여불위에게 주연을 베풀어 주면서, 그 자리에 자초까지 불러들였다.
여불위는 자초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공자께서는 심심하실 때면 저희 집에도 가끔 놀러 와 주시옵소서. 다른 것은 몰라도 술만은 얼마든지
대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손건에게,
"공자께서 저희 집에 가끔 놀러 오셔도 괜찮겠지요?" 하고 물어 보았다.
"암 , 괜찮고말고. 자초가 여부호(呂富豪) 댁에 놀러 가는 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
이렇게 여불위는 자초를 공공연히 만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자초가 여불위를 찾아 온 것은 그로부터 2,3일 후의 일이었다.
여불위는 그동안 진나라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나서,
"안국군과 화양 부인께서는 전하를 적사자로 삼기로 결정하시고, 증표로 옥부(玉符)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는 전하께서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옵니다."
하고 말하며 화양부인한테서 받아 온 옥부를 건네주었다.
자초는 옥부를 받아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 대인께서 나를 고국으로 돌려보내 줄 수는 없겠소? "
"허락을 받고 돌아가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기필코 돌아가시려면, 결국은 탈출을 감행 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고국에 돌아가게만 해 준다면, 그 은공은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소. 아니, 그 보다도 여 대인도 숫제 나와 함께 진나라로 가버리면 어떻겠소?"
"전하께서 탈출하신다면, 응당 제가 직접 모시고 떠나야 할 것 이옵니다. 그러나 탈출을 하자면 준비도
준비지만 잘못 되면 ,목숨도 잃을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함이 문제이옵니다."
여불위는 이미 탈출할 것을 결심하고 있으면서도, 생색을 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주저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자 자초는 여불위의 두 손을 힘차게 움켜잡으며 애원하듯 호소하였다.
"여 대인의 도움이 없다면, 나 혼자서야 무슨 재주로 국경을 넘어 탈출을 하겠소. 원컨데 여 대인이
나와 생사를 같이 할 결심으로 나의 고국, 진나라로 탈출을 하기로 합시다. 거듭 말하거니와, 여 대인의 은공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오."
여불위는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 후,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사내대장부가 의리를 위해 어찌 죽음인들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탈출 계획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탈출을 하자면 준비기간이 적어도 2,3년은 걸려야 할 것입니다. 전하는 그렇게 아시고,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시되 정보 교환만은 수시로 필요하니 이제부터는 저희 집에 자주 오시도록 하시옵소서."
자초는 그때부터 여불위의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여불위는 그때마다 주연을 베풀어 주고, 애첩 주희를 시켜 자초를 접대하게 하면서,
"너는 나와의 관계를 일체 비밀에 붙이고, 무슨 재주를 부리든 간에 자초의 환심을 사도록 하여라."
하고 단단히 타이르기를 잊지 않았다.
자초는 20이 넘었지만 아직 여자를 모르는 숫총각이었다. 이런 숫총각이 보기드문 미인인 주희를 자주 만나 보게 되었으니, 처음 만난 순간부터 주희에게 홀딱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초는 주희와 1년 가까이 접촉하고 나더니 타오르는 연정을 억제할 길이 없는지, 하루는 여불위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 대인 ! 주희는 본색이 어떤 낭자요? "
여불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주희는 초나라에 있던, 제 친구의 딸이옵니다. 친구 내외가 모두 세상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제가 양녀로 데려다 기르옵니다."
"가문은 어떤 집안이오 ? "
"부모가 없는 것이 결점일 뿐이지, 나무랄 데 없는 가문입니다."
그러자 자초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 여 대인이 나와 주희의 혼인을 주선해 주실 수는 없겠소? "
"옛 .... ? 전하께서 주희와 결혼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
"나도 이제는 20이 넘어서, 결혼을 해야 할 나이요. 허기는 결혼을 하자면 공손건 장군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겠지만 ....."
"그런 허락이야 제가 나서면 문제가 될 것은 없겠사옵니다만 .... 전하께서는 주희가 그렇게나 마음에 드시옵니까 ? "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찌 결혼을 하겠다고 하겠소. 여 대인이 꼭 좀 성사 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전하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사양하겠습니까?"
여불위는 주희를 남의 품에 안겨 주기는 무척 아까웠지만, 큰일을 위해서는 그정도의 미련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여불위는 이불 속에서 주희를 마음껏 즐겨가면서,
"주희야, 자초가 너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니, 너는 그 청년과 결혼을 해야 하겠다."
하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자 주희는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안 되다니 ? 뭐가 어째서 안 되겠다는 말이냐? "
"소녀는 대인의 어엿한 소실이온데, 어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여불위는 주희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정답게 두드려 주면서 말했다.
"네가 나에게 정이 단단히 든 모양이구나, 하하하 .... 그러나 자초에게 결혼 승낙을 이미 해 두었으니, 너는 자초와 결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리우면 결혼 후에도 우리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나면 될 게 아니냐?"
여불위는 주희의 뛰어난 육체에 미련이 너무도 많았기에 이런 소리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주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도 안 되옵니다."
"이 못난 것아! 자초와 결혼하면, 너는 먼 훗날에는 진나라의 국모(國母)가 될 판인데, 그래도 싫다는 말이냐?"
그러자 주희는 가슴을 파고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대인께서는 아직 모르고 계시지만, 소첩은 이미 누구와도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몸이옵니다."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 "
"소첩은 지금 임신 중이옵니다."
"뭐야 .... ? 네가 애기를 가졌다고? "
"네, 이달에 있어야 할 달님(月經)을 못 보았사옵니다."
여불위는 <임신>이라는 소리에 기절초풍을 할 듯이 놀랐다. 임신 중이라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아아 .... ! 커다란 꿈을 성사시키려는 중요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 한 차질이 생겼구나!)
여불위는 일순간 탄식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일로 낙담할 여불위가 아니었다. 그는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을 하였다.
(주희가 임신한 사실을 감추고 자초와 결혼을 시키게 되면, 먼 장래에는 자초의 아들이 아닌, 나의
아들이 진나라의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나는 실질적으로는 진나라의 태왕(太王)이 될 게 아니겠나?)
생각이 이에 이르자, 여불위는 주희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네가 임신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너와 나만이 아니냐! 그러므로 임신한 사실을 감추고 자초와 결혼을 하게 되면 너는 후일에 왕후가 될 것이고, 지금 네 뱃속에 들어 있는 우리들의 아기는 장차 진나라의 대왕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게다가 너와 나의 관계는 비밀리에 계속 될 것이니, 세상에 그런 횡재가 어디 있다고 결혼을 못 하겠다는 것이냐?"
여불위의 능란한 설득에 주희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자의 소심함 때문인지, 주희는 이렇게 반문했다.
"아들을 낳으면 그렇게 되겠지만, 만약 딸을 낳으면 어떻게 되옵니까 ? "
여불위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아 ! 우리가 진나라를 통째로 삼켜 먹으려면 네가 반드시 아들을 낳아 줘야만 하겠지만, 설사 딸을 낳기로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으냐! 아들이든 딸이든 너는 진나라의 국모가 될 것이고, 나는 너의 정부인 것은 확실한 일이 아니냐! 그러니까 아무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자초와 결혼하란 말이다."
"대인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주희와의 밀약이 성립되자, 여불위는 다음날 공손건을 만나, 자초와 주희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대의 양녀를 자초와 결혼시키고 싶다면 내 어찌 그것을 반대 하겠는가? 염려 말고 결혼시키도록 하게."
공손건은 많은 뇌물을 받아먹은 과거도 있는데다가 ,자초가 가정을 꾸리고 정착을 하게 되면 지금 같은 적국 왕자를 볼모로 잡아 놓은 감시와 견제에서 자기 자신도 보다 자유롭게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자초는 결혼 승낙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였다.
"여 대인 덕택에 내가 주희에게 장가를 들게 되었으니, 이런 고마운 일이 없소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제가 아니었으면 전하께서 장가드시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옵니다."
여불위는 이같은 말로 생색을 내 가면서 혼례식 준비를 부랴부랴 서둘렀다.
그리고 결혼식을 내일로 앞둔 마지막 밤에도 여불위는 주희의 방으로 찾아가서 그녀와의 쾌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자초와 결혼한 뒤에도 임신한 사실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어느 정도 배가 불러 올 때쯤 알게 하여야 한다." 하고 신신 당부하기를 잊지 않았다.
"염려 마세요.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 대신 대인에게 부탁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슨 부탁이냐 ?"
"앞으로도 우리가 비밀리에 만나자는 약속만은 꼭 잊지 말아 주세요."
"하하하,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애기니까, 그 점은 염려하지 말아라."
여불위는 주희와의 굳은 언약을 나누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주희의 몸을, 아까운 마음을 감추며 날이 밝도록 탐닉했다.
다음 날 아침, 여불위는 미리 준비한 대로 자초와 주희의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려 주었다.
자초는 절세미인과 결혼하게 된 것을 어쩔 줄을 모르게 기뻐하였다. 더구나 결혼식을 치룬 두 달쯤 뒤에 주희가,
"전하 ! 소첩은 전하의 애기를 배었사옵니다."
하고 임신 소식을 알리자, 자초가 춤을 덩실덩실 추워 가면서,
"오오 ! 하늘이 우리 두 사람에게 애기를 점지해 주셨구나 ! "
하고 하늘을 우러러 축수까지 올렸다.
뱃속의 아이는 날이 갈수록 거침없이 자라서 이듬해 정월 초하룻날, 주희는 조나라 국도인 한단에서 옥동자를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정(政) 으로 하였고, 아이는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왔으며,
이마가 번듯하고 이빨까지 나 있었는데, 이 아이가 후일에 천하를 통일하여 대진 제국(大秦帝國)을
이룩한 불세출의 영웅 진시황(秦始皇)이었던 것이다.
...
* 글 끝에 붙여.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중국 헌법 개정안이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됨으로써, 모택동 사후, 유지된 집단 지도체제가 막을 내리고 1인 지배체제로 회귀했다.
신문은 이를 일컬어 톱 뉴스 상단에 "시황제 시대가 열렸다" 라고 했다.
이번 개헌으로 시진핑 자신이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뜯어 고친 것을 보니,
진시황 시대나 작금(昨今)이나, 사람의 권력욕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읽고 보아 온, 역사의 수레바퀴는 묘하게도 , 비슷한 사안에 비슷한 결과를 보여 왔다.
그렇다면, 그 옛날 절대 권력을 가졌던 진시황 시대가 백성들의 원망으로 몰락한 것처럼, 오늘날 새로 법을 뜯어 고쳐 일인 장기 집권의 길을 연 ,시황제 시대도 비슷하게 가지 않을까?
기대 반 염려 반을 해본다.
[출처] 열국지(熱國誌) (4) 가공할 사람장사... (진시황 출생의 비밀)|작성자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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