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31)>예종 성종 1- 세조의 죽음, 예종의 등극(1)

이찬조 2021. 3. 27. 07:51

<조선왕조실록(31)>예종 성종 1
- 세조의 죽음, 예종의 등극(1)

세조는 완전한 권력을 거머쥐게 될 때까지 안평대군 등 가까운 혈육과 김종서, 성삼문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참 많이도 죽였고, 그 살육의 행진은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세조의 이러한 무력질주에 대부분의 계책을 낸 사람은 한명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난을 통해 무력으로 왕이 된 절대군주가 원활한 통치와 후대의 안정적 왕권 확보를 위해 취하는 기본 방정식은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애는 방식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 등 공신들을 끝까지 예우하며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 등 공신이 계유정난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했고 또 이들의 재주와 처세 그리고 충성심이 워낙 뛰어나 세조 역시 이들을 없앨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한명회의 세력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진데다 한명회의 전략 구사 등 개인기가 장자방 못지않으므로 이들을 함부로 거세하려다가는 세조의 처지가 오히려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세조 시대는 공신이 살맛나는 공신의 세상이었습니다. 이 당시 홍윤성 등 공신들의 전횡과 횡포가 극에 달해 백성의 원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으나, 세조는 대부분 이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공신 중의 공신은 한명회였는데, 세조 이후 연산군에 이르기까지의 왕위 승계 과정을 보면, 이 시대 한명회의 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조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세자(의경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왕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슬하에 월산군과 자을산군이라는 아들 둘을 남겼습니다.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나이 스물에 죽자 세자가 된 후 왕(예종)이 되었으나 13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예종이 죽은 후, 예종의 아들이 아닌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성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조 이후 왕이 된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모두 한명회의 여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