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55 - 예종 1

이찬조 2021. 7. 31. 07:06

고려왕조실록 55 - 예종 1

* 여진정벌에 대한 맹세

 

1079년 2월 11일 부친 숙종과 명의태후 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17세의 성년이 되어 고려 제16대 황제에 오른 예종(睿宗)은 이름은 우(俁), 자는 세민(世民)으로, 일찍부터 뜻이 깊고 침착해 도량이 넓었으며 학문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는 장성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태자로 책봉되지 못하다가 1100년에야 왕태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태자 책봉이 그렇게 늦어진 것은 부친 숙종의 왕위 계승과정에서 조카로부터 왕위를 빼앗다시피 하였기에, 자신의 후속 타자를 넘보고 줄줄이 버티고 서있는 형제들을 외면하고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려고 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당시에 숙종의 뒤를 이을 만한 형제들 중에는 부친 문종과 인경현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동생 왕수가 있었는데, 왕수는 예종이 태자로 책봉되기 전에 역모혐의로 귀양을 가게 되고, 숙종이 가장 총애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마음먹고 있었던 둘째아들 왕팔 마저 갑작스레 죽자, 숙종은 예종을 태자로 책봉하기에 이릅니다.

 

비록 부왕의 절대적인 믿음 속에 왕위를 물려받기는 하였으나, 이미 장성한 태자는 부왕의 비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부왕 숙종의 여진정벌(女眞征伐)에 대한 서소(誓疏: 맹세하는 축원문)를 간직했다가, 즉위한 뒤 군법을 정비하고 신기군(神騎軍: 고려시대 별무반의 기병)을 사열하는 등 여진정벌에 힘썼습니다.

 

여진은 원래 고구려의 한 부락으로 개마산 동편에 모여 살면서 대대로 고려에 조공을 하여오던 족속이었는데, 세력이 차츰 불어나 강성해지자 고려를 배반하고 틈만 나면 경비가 약한 지역을 골라가며 재물을 약취하고, 고려 백성들을 살육하였으며 심지어 고려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기도 하는 등 피해가 크게 늘어가자, 숙종은 군대를 정비하여 여진을 정벌하려고 준비하던 차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부왕의 숙원을 잘 알고 있는 예종은, 우선 정국을 전시체제로 개편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핍박하는 탐관오리들을 척결하는 등 개혁에 힘을 쓰자 정국과 사회는 안정과 평화를 찾게 되었고 심지어는 전국의 모든 감옥이 텅 빌 정도로 세상이 평온하여졌습니다. 실제로 형조의 남쪽거리에 ‘옥이 비었다’는 의미의 옥공(獄空)이라는 방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가히 요순시대에 버금가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정국이 안정되자 예종은 드디어 여진정벌의 깃발을 들어 올립니다. 1107년에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 등이 여진을 쳐서 대파하고, 이듬해에는 함흥평야 일대에 9성(城)을 설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여진족의 침입, 9성 방비의 어려움, 또 윤관의 공을 시기하는 자들의 책동으로 1년 만에 9성을 철폐하고 여진족에게 돌려주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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