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56 - 예종 2

이찬조 2021. 7. 31. 07:07

고려왕조실록 56 - 예종 2

* 예종의 치적

 

1109년 국학(國學)에 학과별 전문 강좌인 칠재(七齋)를 설치해 관학(官學)의 진흥을 꾀하였습니다.

 

1112년에는 혜민국(惠民局)을 설치해 빈민들의 시약(施藥: 무료로 약을 지어주는 일)을 담당하게 했고, 이듬해에는 예의 상정소(禮儀詳定所, 신분에 따른 의복제도와 공문서 양식 및 예의 등을 제정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서)를 설치하였습니다.

 

1115년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아구다(阿骨打)가 여진족을 통일해 자신을 황제라 칭하고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하자, 요(遼)나라에서 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 원병을 청했으나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나중에 후환을 불러오게 됩니다. 1117년 금나라에서 “형인 대여진금국황제(大女眞金國

 

皇帝)가 아우인 고려 국왕에게 글을 보낸다.”라는 글로써 화친(和親)하기를 청했으나, 이를 묵살하고 과거 고려에 조공을 바치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무시해 버리는데, 그 후 금나라는 그 세력이 크게 불어나 수도를 북경으로 정하고 120년 동안 중국대륙을 호령하게 됩니다.

 

예종은 특히 학문의 증진에 힘써, 1116년 청연각(淸讌閣)과 보문각(寶文閣)을 짓고 학사(學士)를 두어 경서(經書)를 토론하게 함으로써 유학을 크게 일으켰으며, 송나라로부터 대성악(大晟樂)을 들여왔는데 이것이 아악(雅樂)이라는 궁중음악입니다.

 

1119년는 국학에 양현고(養賢庫)라는 장학 재단을 설립하였는데, 이 때 유사(有司)에게 명해 학사(學舍)를 널리 설치하고, 국학 칠재의 정원을 유학 60명과 무학 17명으로 하며, 명유(名儒)를 뽑아 학관(學官)으로 삼아 가르치게 하니 글을 숭상하는 풍습이 크게 일어나게 됩니다.

 

1120년에는 서경(西京:평양)에서팔관회(八關會) 열고 이두문으로 된 향가(鄕歌) 형식의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짓기도 합니다. 도이장가는 고려의 개국(開國) 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과 김낙(金樂) 두 장수를 추도한 것으로, 이 두 장수는 태조 왕건(王建)이 대구의 팔공산(八公山)결전(決戰)때, 후백제 견훤(甄萱)의 군대에 포위되어 형세가 몹시 위급하게 되자 왕건 대신 나가 싸우다 죽었습니다.

 

이후 고려에서는 공식연석에서 군신이 함께 이 두 장수를 추도했는데, 예종은 팔관회 석상에서 즉시 한시(漢詩) 한 수와 함께 이 도이장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이 가요는 장절공유사(壯節公遺事)에 실려 있는데 향가식(鄕歌式) 표기로 전하는 것으로서 신라의 향가형식이 이때까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예종 때의 이러한 학문 중시의 풍조는, 그 당시 인주 이씨들이 득세하면서 문치주의가 더욱 팽배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러한 풍조가 지속되었으나, 숙종의 손자인 인종 대에는 여러 혼란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는 숙종이 조카 헌종의 제위를 찬탈할 때, 숙종은 당시 추원사 직위에 왕의 숙부라는 지위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사병까지 양성하면서 헌종의 후견인을 자처하던 이자의와 그 세력들을 제거합니다.

 

이자의는 유명한 이자겸의 사촌으로 경원(인주) 이씨 가문의 수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자겸은 사촌인 이자의가 숙종하고 권력 다툼에서 패해 암살을 당하고, 또 설상가상으로 12대왕인 순종의 왕비였던 자신의 누이가 노비하고 사통하는 죄를 짓고 쫓겨나서 이자겸 본인도 벼슬을 삭탈 당하고 귀양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숙종 대에는 이 인주 이씨들이 세력이 많이 쭈그러 들었습니다.

 

하지만 숙종이 죽고 나서 3년 뒤에 예종이 자신의 두 번째 비로 이자겸의 딸을 들이면서 경원 이씨 세력은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종 또한 강성군주인지라 외척들이 설치는 것을 그냥 두지는 않았습니다. 예종은 숙종을 능가할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자랑했다.

 

앞서 헌종 대에 경원 이씨들이 난립했다고 하는 부분도, 정작 예종 대에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작 백관들이 경원 이씨가 외척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혼사를 강행처리할 정도로 예종의 권력은 강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왕권을 튼튼히 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예종은 1122년 4월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4명의 부인과 다음 인종으로 등극하는 아들 하나 그리고 2명의 딸을 남기고 ....

 

'고려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왕조실록 58 - 인종 2  (0) 2021.07.31
고려왕조실록 57 - 인종 1  (0) 2021.07.31
고려왕조실록 55 - 예종 1  (0) 2021.07.31
고려왕조실록 54 - 숙종 2  (0) 2021.07.29
고려왕조실록 53 - 숙종 1  (0)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