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88 - 고종 3

이찬조 2021. 8. 15. 09:19

고려왕조실록 88 - 고종 3

- 피할 수없는 몽고와의 전쟁 


1219년 9월 임자일에 최충헌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최우가 권력을 이어받게 됩니다. 고종으로부터 왕씨 성까지 받을 정도로 부귀영화와 권력을 마음껏 주무르던 최충헌도 흐르는 세월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으니 병이 깊어 세상을 떠난 그의 나이 71세였습니다.

권력을 물려받은 최우는 교정별감이 되자마자 자신이 축적하고 있던 금은보화를 고종에게 바치고, 부친 최충헌이 빼앗은 토지와 금품들을 원래의 임자들에게 돌려주는 선심을 배풀고, 권력이 없거나 가난한 선비들 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등용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규보와 최자입니다.

1221년 8월 기미일에 몽고의 사신 저고여<著古與, 혹은 착고여(着古歟)>가 일행을 이끌고 고려에 왔는데 이들은 일행 21명이 모두 대전에 올라가 몽고왕의 명령을 전달하겠다는 무례한 요구를 합니다. 옥신각신 실랑이 중에 결국 8명만이 대전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기분이 상한 착고여는 무리하게 공물을 요구하며 불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가 요구한 공물은 수달피 1만장부터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물량을 요구하였고, 몽고왕의 편지와 공물 리스트가 적힌 문건을 전달하고 대전에서 내려가면서는 제각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고종 앞에 던졌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전에 선물로 주었던 거친 주포(紬布)였습니다. 마음에 안 들었던 선물이었다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그들이 올 때 몽고의 원수들인 찰라와 포흑이 사사로이 요구하는 편지를 보이며 추가로 더 많은 수달피와 공물들을 요구하였습니다.

9월초하루가 되자 몽고의 사신 저가가 또다시 고려에 온다는 기별이 있자 조정은 굴복파와 전쟁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으나 어쩔 수없이 약한 고려가 비위를 맞추면서 때를 준비하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됩니다. 고려가 몽고와의 전쟁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이에도 몽고는 수시로 사신을 보내 공물을 가져가곤 하였는데, 그들은 가져간 공물 중에서 수달피만 제외하고는 다른 물건들은 버리고 가버리곤 하였습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잔뜩 요구해 놓고는 압록강에 버리고 가버리는 그들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 고려 조정은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 중에서 고려와 몽고의 28년간의 전쟁의 시점이 된 사건이 발생하는데, 몽고의 사신 착고여가 다시 일행 열명과 고려에 도착한 것은 1224년 11월 을해일 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압록강을 건너가면서 고려의 예물 중에서 수달피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압록강 가의 들판에다 버려버립니다. 그런데 압록강을 건넌 후 몽고로 가던 착고여 일행이 중도에 도적을 만나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몽고에서는 고려가 저지른 짓이라고 덮어 씌웠고, 결국은 이일로 국교가 단절되기에 이릅니다. 물론 고려에서는 전쟁을 불사한 조치였습니다. 드디어 28년의 길고긴 몽고와의 전쟁이 시작되려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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