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86 - 고종 1
- 고종의 등극
고종은 강종 1년(1212년)에 태자에 책봉되고, 이듬해 강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이때 그의 나이 22세였습니다. 이름은 철(瞮), 자는 대명(大明) 또는 천우(天祐)로 강종과 원덕태후 유씨의 맏아들로 1192년 정월에 태어났습니다. 고종은 1197년 할아버지 명종이 유배될 때 아버지 강종과 마찬가지로 8세의 나이로 유배의 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가 유배된 곳은 안악현(황해도)이었는데 그곳에서 강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212년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린나이에 아버지도 없이 14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유배생활로 견뎌온 고종으로서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기쁨은 더더욱 컸겠지요. 어쩌면 얼떨떨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올랐다고 해서 그가 하고자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정의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자는 최충헌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그러하긴 하지만 고종으로서는 이미 노쇠한 최충헌을 바라보면서 일말의 기대감 같은 것을 품고 있었을 것이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무신들의 전횡을 종식시키고 왕권중심의 국가로 복귀하려는 꿈을 꾸고 있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오로지 본인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갓 즉위한 고종 앞에 놓인 상황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최충헌 일가의 무신정권은 바야흐로 안정기에 접어들어 탄탄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어수선한 정국이었습니다. 대제국 몽고가 점점 위협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엎친데 겹친 격으로 거란이 다시 일어나 금나라 변경에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게다가 금나라에서는 선무포선 만노가 반란을 일으켜 요동지방을 차지하고 나라 이름을 대진이라 칭하고 스스로는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등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위태로운 정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금나라로부터 공문이 날아들었는데 금나라의 상황이 반란에 거란의 침공까지 겹치고 있으니 고려는 식량을 원조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가 금나라의 요구를 거절하자 금나라에서는 군대를 보내 책망은 하였으나 다행히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맙니다.
거란의 유족인 금산과 금시왕자가 몽고 변방의 두 지방을 차지하고 천성이라는 연호를 쓰면서 대료수국왕이라 자칭하고 나서자 몽고는 군대를 파견하여 이를 토벌하러 나서자, 이에 두 왕자는 근거지를 버리고 동으로 진군하여 금나라의 군대 3만명과 개주관에서 교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금나라의 군대는 이들 두 왕자의 군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대부영으로 퇴각하여 방어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자가 부족해지자 두 왕자는 고려 북계병마사에게 사람을 보내 다음과 같이 통고를 합니다.
“고려가 식량을 보내 우리를 원조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고려를 점령할 것이다. 우리가 며칠 후 황색 깃발을 올리면 너희들은 그곳으로 와서 황제의 명을 받아라. 만약 오지 않으면 즉각 군사행동을 취할 것이다”
지정한 날에 이르러 황색 깃발이 올랐으나 고려 병마사는 전혀 움직이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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