岳 陽 樓 記 (악양루기) / 범중엄(范仲淹)
慶歷四年春 滕子京 謫守巴陵郡 <경력4년춘 등자경 적수파릉군>
宋나라 仁宗 慶歷 4년 봄, 등자경(滕子京)이 동정호로 유배되어 파릉군으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越明年 政通人和 百廢俱興 <월명년 정통인화 백폐구흥>
이듬해가 되자 정치가 안정이 되어 인심이 화합하고 예전의 온갖 그릇된 일들이 모두 새로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乃重修岳陽樓 增其舊制 <내중수악양루 증기구제>
이에 등자경은 악양루를 중수하였는데 옛 규모를 더욱 늘리고
刻唐賢今人詩賦于其上 屬予作文以記之<각당현금인시부우기상 속여작문이기지>
唐代의 뛰어난 문인들의 詩와 賦도 그 위에 새겨 넣었는데 나에게도 글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予觀夫巴陵勝狀 在洞庭一湖 <여관부파릉승상 재동정일호>
내가 보기엔 파릉의 뛰어난 경치중 오로지 동정호 하나이다
銜遠山 呑長江 浩浩湯湯 橫無際涯 <함원산탄장강 호호탕탕 횡무제애>
동정호는 먼 산을 머금고 長江(楊子江)의 흐름을 삼키고 있는 듯 하고
호수의 넓디넓은 물은 남북으로 가로질러 끝이 없으며
朝暉夕陰 氣象萬千 <조휘석음 기상만천>
아침 햇살이 비칠 때나 어스럼 저녁이 되면 氣象이 천태만상으로 변하니
此則岳陽樓之大觀也 <차즉악양루지대관야>
이것이 바로 악양루에서 보는 가장 큰 구경꺼리였다
前人之述備矣 <전인지술이비의>
옛 사람들이 지어서 걸어 놓은 글에 의하면
然則北通巫峽 南極瀟湘 <연즉북통무협 남극소상>
그런즉 북쪽으로는 무협(巫峽)에까지 통해 있고 남쪽으로는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에까지 이르렀고
遷客騷人 多會于此 <천객소인 다회우차>
떠도는 객들이나 시인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 들었으니
覽物之情 得無異乎 <람물지정 득무이호>
경치를 보는 감정은 각기 다르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至若春和景明 波瀾不驚 <지약춘화경명 파란불경>
봄기운이 온화하고 경치가 청명하며 파도가 잔잔할 때가 되면
上下天光 一碧萬頃 <상하천광 일벽만경>
하늘과 물이 모두 하늘빛으로 온통 푸르게 널리 펼쳐지고
沙鷗翔集 錦鱗游泳<사구상집 금인유영>
물가에 갈매기떼 날아들고 아름다운 비단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며
岸芷汀蘭 郁郁靑靑 <안지정란 욱욱청청>
언덕 위엔 궁궁이 풀과 물가에는 난초가 푸릇푸릇 향기를 피우고
而或長煙一空 皓月千里 <이혹장연일공 호월천리>
가끔씩 긴 안개가 하늘 가득히 퍼지고 하얀 달빛이 천리 멀리까지 비추니
浮光躍金 靜影沈璧 <부광약금 정영침벽>
달빛 받은 물결이 금빛으로 일렁거리고 고요한 달 그림자는 마치 구슬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漁歌互答 此樂何極 <어가호답 차락하극>
그 속에 어부들의 노랫소리 오가니 그 즐기는 마음에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若夫霪雨霏霏 連月不開 <약부음우비비 연월불개>
만약에 장맛비가 계속 내려 몇 달이고 개이지 않으면
陰風怒號 濁浪排空 <음풍노호 탁랑배공>
음산한 바람이 성난 듯 불어와 흙탕물의 파도가 하늘에 치솟아
日星隱曜 山岳潛形 <일성은요 산악잠형>
해와 별이 빛을 감추고 여러 산들이 모습을 숨기며
商旅不行 檣傾楫摧 <상여불행 장경집최>
장사꾼과 나그네의 발길도 끊어지고 배의 돛대가 기울어지고 노가 부러지며
薄暮冥冥 虎嘯猿啼 <박모명명 호소원제>
저녘 무렵에 날이 어두어지면 호랑이가 울고 원숭이 울부짖는다
登斯樓也 則有去國懷鄕 <등사루야 즉유거국회향>
이 누각에 오르게 된다면 멀리 서울(國都)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일고
憂讒畏譏 萬目蕭然 感極而悲者矣 <우참외기 만목소연 감극이비자의>
모함을 당하는 것이 걱정되고 두려움을 꺼리게 되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쓸쓸하게 느껴질 터이니 감정이 격하여 슬퍼질 것이다
登斯樓也 則有心曠神怡 <등사루야 즉유심광신이>
이 누각에 오르면 마음이 밝아지고 정신이 편안해져서
寵辱皆忘 把酒臨風 其喜洋洋者矣 <총욕개망 파주임풍 기희양양자의>
영광스런 일과 욕된 일을 모두 잊고 술잔을 들고서 바람을 쏘이게 될 것이니
그 기쁨은 크고 또~ 클 것이다
嗟夫 予嘗求古仁人之心 <차부 여상구고인인지심>
아아~! 나는 일찍부터 옛 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았는데
或異二者之爲 何哉 <혹이이자지위 하재>
아마도 앞선 두 가지 예와는 다른 듯하니 무엇 때문인가?
不以物喜 不以己悲 <불이물희 불이기비>
그들은 외부의 사물을 보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슬퍼하진 않기 때문이다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거묘당지고 즉우기민>
조정의 높은 직위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처강호지원 즉우기군>
물러나서 멀리 강호에 거처하게 되면 임금을 걱정하였으니
是進亦憂 退亦憂 <시진역우 퇴역우>
이는 조정에 나아가도 걱정이요. 물러나도 걱정이니
然則何時而樂耶 <연즉하시이낙야>
어느 때나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其必曰 <기필왈>
이러하니 반듯이 해야할 말은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낙이낙여>
천하 백성들의 근심에 앞서 내가 먼저 근심하고, 천하 백성들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라는 것이니
噫~ 微斯人 吾誰與歸 <희~ 미사인 오수여귀>
아아~~! 이와 같은 어진 이들이 없다면 나는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 것인가?
<인물탐구>
범중엄(范仲淹)
(병) Fan Zhongyan (웨) Fan Chung yen. 989 중국 장쑤 성[江蘇省] 우현[吳縣]~ 1052.
중국 송(宋)나라의 학자·개혁가.
그는 송나라 인종(仁宗:1022/23~63/64 재위)의 간관(諫官)이었으며, 위대한 개혁가 왕안석(王安石:1021~86)이 개혁을 일으키는 데 계기를 제공했다. '답수조조진10사'(答手詔條陳十事)를 통해 족벌주의와 부패를 뿌리뽑고, 사용하지 않는 땅을 개간하고, 토지소유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강력한 지방군대체제를 만들고 백성들의 부역을 줄이며 과거제도를 개혁하려고 했다. 그는 행정적·경제적 능력보다 형식적 고상함을 강조하던 과거제도에 반대해 역사·정치 문제를 강조하는 시험제도를 건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국립학교의 건립을 제안했다. 1044년 황제는 이 제안을 수용해 모든 지방행정구역에 국립학교를 설립하도록 했다. 그는 또한 불교를 반대한 대유학자로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예전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유교경전인 〈역경 易經〉과 〈중용 中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효성'(孝性)을 강조하는 성리학파의 주장을 널리 퍼뜨렸으며, 성리학을 관학(官學)으로 성장시켰다
출처 : ilove 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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