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한국적인가?(국사학과 송기호 교수)[2012.5.7]
1. 무엇이 한국적인가?
○ 국사를 볼 때 우리민족은 단일 민족으로 우수하다고 하는데 우수한 것이 아니라 남다른 것
- 외국인이 한국 체험시 비무장지대, 덕수궁, 한옥마을보다는 일상생활의 모습, 하이킹, 김치, 떡볶이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음
※ 고추 원산지는 아메리카→유럽→일본→한국으로 전래됨
- 빈대떡이 명품 패스트푸드가 될 수 있다.
→ 중국의 자금성, 만리장성,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 등은 독재주의의 유물
→ 조선시대는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공평하게 나누느냐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부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없었음. 따라서 중국이나
이집트, 유럽처럼 웅장한 건축물이 나올 수 없음
※ 외국인들은 한국은 매운 음식, 중국은 기름진 음식, 일본은 담백한 음식으로 인식
○ 빨리빨리 문화가 군사유물이 아니고 세종 때에도 나타남. 삼성전자가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은 빨리빨리 AS를 함에 성공비결이
될 수 있었음/ 한편 외국은 피자만 배달이 되었는데 다른 음식이 한국 사람들로부터 배워서 배달이 많이 늘어남
→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온돌문화, 매운맛, 빨리빨리
○ 중국, 일본과 다른 문화
- 의원 : 중국은 양의와 한의 공존, 일본은 양의, 한국은 양의와 한의원이 배척하면서 존재
- 설 : 중국은 춘절, 일본은 양력설, 한국은 양력, 음력설
- 종교 : 중국은 살아서는 도관(도교사원) 죽어서는 절에 가고, 일본은 신사
- 밥공기 : 우리나라만 놓고 먹음, 중국과 일본은 들고 먹는다.
- 수저사용은 한국만, 중국과 일본은 젓가락 사용
- 성을 갈 수 없는 우리(조선시대는 여성은 성만 사용)- 일본은 성이 30만개라고 함
- 운동 : 한국 태권도, 중국은 유수, 일본은 가라테
- 담배예절 : 중국과 일본은 그런 예절이 없음
※ 담배는 임진왜란 때에 들어옴 : 초창기는 약으로 사용(회충)
→ 왕부터 상놈까지 담뱃대에 담배를 피우니 예절을 만들게 됨
2. 먹거리 : 쌀밥에 고깃국, 커피와 술
○ 조선과 현대의 밥그릇 비교 : 조선이 3배이상 먹을 것으로 추정됨
- 중국 사람은 혀로 먹고, 일본 사람은 눈으로 먹고, 한국 사람은 배로 먹는다.
- 일본은 소식문화 : 하루 종일 삶은 토란 서너 개뿐이었다.
- 1860년대 서양신부의 글을 보면 과식을 지적하고 있다.(샤를르 달레)
- 한미 FTA의 쟁점 : 쌀과 쇠고기 개방문제
○ 음식의 변화
- 냉장고 보급됨에 따라 불고기에서 등심으로, 돼지갈비에서 삼겹살로(원말은 세겹살)삼겹은 삼은 중국식표현 겹은 우리말로 어색
- 1980년대부터 로스구이 전문점 출현, 쇠고기 선호에서 돼지고기 선호로
○ 몽골에 돼지는 한국인이 전파
- 집가자 안에는 돼지시자가 있는데 원래 사람은 돼지와 같이 살았음을 의미하고 그 이유는 뱀, 독사가 출현하면 돼지는 지방질 때문에
죽지 않고 뱀에게 이김으로 돼지막에 집을 지음
※ 몽골은 총인구가 260만면인데 그중 10만명이 한국을 다녀감
○ 차 대신에 커피
- (일상) : 차 마시고 밥 먹는 일=흔한 일/ 장가계에서 커피 판매로 돈벌기
- 꽁피란 커피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담배꽁초로 염색하였던 1977. 5.11.경향신문
※ 우리의 맵고 짠 음식문화 때문에 녹차보다 강한 맛인 커피를 선호
- 중구은 차문화 우리는 냉수문화, 중국은 물이 탁해서 냉수 불가, 유럼은 맥주
- 조선시대 기근이 일어나 금주령이 많았으나 약으로 먹는 술을 약주라 하여 허락됨에 약주등장
※ 는 우리나라 원래 표현, (불탈소,진한술주)는 일본의 소주표현임
※ 고려 때에는 2가지 술이 있는데 탁주와 청주, 그 후에 소주가 들어옴
→ 소주의 원산지는 아랍→몽고를 통래 전래됨
○ 음주가무와 노래방
- 삼국지에 (고구려); ,(동예); (변진) 후한서에는 (동이); ,(부여)-노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가라오케는 일본에서 만들어 졌지만 꽃을 피운 것은 한국의 노래방이다.
→ 컴퓨터는 미국이 만들었지만 PC방은 한국이 우수함
- 한국의 폭탄주는 매우 독특한 음주문화
3. 백의민족
○ 흰옷을 색깔이 잇는 옷으로 바꾸도록 왕명이 여러 차려 있었지만 바뀌지 않은 한국복식사에서는 염료가 없어서라고 하지만 감물, 황토 등
을 이용했던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
- 블라디보스톡에서도 흰옷은 한인임을 구별할 수 있었음
- 1597년 9월9일 조선실록에 의하면 천안과 직산 사이에서 뜻밖에 왜적 선봉이 모두흰옷을 입고 들판을 덮어오기에 중국병사들이 처음에
는 조선인이라 생각하여 공격하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음
- 일제 강점기 켐페인으로 1920년 동래읍사무소 앞에 “백의퇴산, 색복장려”를 볼 수 있음
4. 남부여대
○ 남부여대 셋트문화는 한국뿐임-중국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은 조선족임
- 지게는 한국만 있음(너무 고유하고 생활과 밀접하여 기록이 없음)
○ 육체로 짐을 운반하는 수단은 지고, 이고, 등에 받치고 이마에 끈으로 매어서 운반, 3가지 정도
○ 지게의 발달은 도로가 좋지 못하였기 때문임; 도로가 좋으면 중국이 쳐들어올 때 고속도로가 염려되어 도로를 만들지 아니함,
- 지게는 1500년 전에 사용한 듯함 : 백제 능산리 절터 출토 지게발채(567년)
5. 장가가고, 시집가고
○ 장가들기란 중국의 진나라 때의 데릴사위와 같은 제도임
- 오죽헌의 주인을 살펴보면 사위→사위→사위→사위로 이어짐을 볼 수 있음
○ 시집살이란 음양설에서 양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학설에 따라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바뀌게 됨
6. 웃음으로 치루는 장례
○ 영화 축제는 웃음으로 장례를 마무리 하고 있다.
○ 사망하면 처음에는 곡하며 울지만, 장례를 치를 때는 북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죽은 사람을 보낸다. 매장이 끝나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쓰던 옷과 노리개(장신구),수레와 말 등을 무덤 옆에 두었는데 장례에 모인 사람들이 다투어 가져간다.
- 장신구는 발달하였는데 귀고리는 안 되고 귀걸이는 됨(부모유산에 손대지 말라)
7. 온돌과 찜질방
○ 온돌에 대한 역사도 없음
○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온돌이 사라질 위기
- 보일러문화가 들어와 유지되고 중국에도 귀뚜라미 보일러가 많이 수출됨
- 따라서 찜질방문화가 자리매김을 하고있음
○ 온돌문화로 말미암아 외부 온도는 0도 이하인데 방안은 온기가 지속됨으로 파리, 벼룩, 벌레, 바퀴 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 한국식 온돌, 바닥 난방 국제표준 채택(2008.3.13. 동아일보)
○ 미국 등 외국에도 온돌이 번져 나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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