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인문학?

이찬조 2012. 6. 5. 15:39

 

직원인문학강좌(7)

 

 

개요

 

1. 개설일자 : 2012.3.12. 개설

2. 강의시간 : 매주 월요일 18:30-20:30(13)

3. 강의장소 : 4302

4. 워 크 숍 : 4.20() 강화도

5. 소 감 문 : A4용지 3-5(2012.6.4. 제출)

6. 수 료 식 : 2012.6.11.()

 

 

이해완 기획부학장님 말씀

 

     ○ 백조의 우아하게 보임은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오리 발의 수고가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는데 학교의 다양한 일들을 여러 선생님들이 수고해 주심에 감사.

           13주 교육과정 소개와 워크숍, 소감문 등이 수료요건임을 안내하여 주심

     ○ 워크숍에 참석하여야 함을 강조

     ○ 2주 이상 결석시 수료 불가함 공지

     ○ 본 업무는 인문대학 기획행정실에서 이끌어 주심

 

 

1강 인간과 예술의 기원(고고미술사학과 이선복 교수)[2012.3.12.]

考古學이란 무엇인가?

          ○ 인간활동의 물질적 증거를 연구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옛사람이 어떻게 살았나를 연구하는 학문, 과정으로는

              발굴의 어려움, 재미와 처음 보는 자료에 대한 해석문제 등의 어려움이 있고, 과학적으로서의 고고학이 대세임

          ○ 고고학은 유럽에서 일찍 발달하였고 우리나라는 조선 세종때 뇌부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익의 성호사설을 거처

              김정희의 고고학에 관한 내용은 경주부윤으로 재직 중에 산으로 알고 있던 사실을 고분으로 인지하였고,

              북청 귀양시에는 여기가 숙신의 땅이라 하여 숙신의 화살촉을 연상하게 하였다.

          ○ 20C중반에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대두되고 있다.

 

         □ 사람이란?

          ○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다.(1950년대) 아니라고 밝혀짐

          ○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1960년대) 아니라고 밝혀짐

          ○ 인간만이 유희를 할 수 있다.(1960년대) 아니라고 밝혀짐

          ○ 인간만이 물건을 생산한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예술활동은 인간의 고유영역이다.(-perhaps)

 

         □ 인류진화의 추이

          ○ 8-500만년 전 직립보행의 원시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져 동아프리카에 등장

          ○ 200만년 전 무렵 최초의 호모등장, 곧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로 진출

          ○ 100만년 전 동아시아에 등장하게 됨

          ○ 다른 동물에 비해 매우 급격하게 진화, 진화의 촉진요인은 급격한 환경변화가 큰 역할을 함.

              즉 빙하기, 간빙기 등을 거치면서 급변하게 됨.

          ○ 호모의 도구화 표준화 : 도구제작과 사용은 손과 눈의 조화를 증진시켜 두뇌발달을 가속화함

          ○ 현대인 호모사피엔스 : 45000년 전부터 현대행위의 증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 즉 집을 짓고 산다.

              장거리를 이동한다. 등에서 상징행위의 폭발적 증가로 예술이 태어난다.

 

         □ 예술의 탄생

          ○ 4~35000년 전 무렵 본격적인 사실주의적 예술활동 증거가 많이 나타남

            - 주오 임신한 여성상이 많이 보임(다양한 비너스 상)

          ○ 예술이 왜 탄생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추상능력의 결과인가? 두뇌의 급작스러운 질적 변화인가?)

          ○ 최초의 예술행위는 16만년 전~7/9만년전 유적에서 발견, 뼈에 새긴 추상화, 조개껍질을 꿰어 엮은 간단한 장식 등.

          ○ 작품이 2만여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 4만년 전에도 작품에 손자국을 sign한 것은 오늘에도 변함이 없음

          ○ 예술에서 이미지 형성의 6개의 원칙과 3단계가 있음

 

2강 문명과 종교-원초적 삶의 의미(종교학과 김종서 교수)[2012.3.19]

 

1. 빛과 문명

인간의 문명 : 어둠과 빛, 混沌(혼돈)秩序(질서) - 진리

                - 우로보로스 : 비엔나 음악인의 묘비에는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상을 새겨 두고 있는데 이것을 우로보로스라하고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여 混沌의 상징으로 대표된다.

               - 프로메테우스 : 희랍신화에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제공한 죄로 징벌을 받아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참상을 당한다.

                    즉 불()을 가져다 준 신으로 미국 뉴욕 맨하탄 00공원에 설치되어 있음

                   - 인도신화에 진리를 찾다보니 빛이 있는 곳이 진리이다. 따라서 바다 가운데 진리의 섬을 발견 한다.

루부르의 호러스와 생명의 빛 : 天光(천광)

                - 이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호루스는 삼촌을 죽이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생명을 주고 싶어 볼 수 있는 눈을 하나 빼어

               아버지에게 드림으로 애꾸눈이 된 상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신앙이 생겨나게 된 것으로

               피라미드 안에 햇볕이 어떻게 들어오도록 할 것인가 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 눈이 생명의 빛이 되어 부활하였다고 믿어 후대 왕들이 부활을 꿈꾸며 피라미드를 만들었음

                 - 생명의 핵심이 빛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태양왕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

               - 루이 14세는 모든 권력, 여성을 다 알고 나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볕이 비취는 건물을 요구하여 베르사이유궁전이 건립되었다.

 - 후에 오스트리아 쉔브룬궁전과 터어키 토프카궁전이 건립되었다.

                   쉔부룬 궁전에는 모차르트가 6세때 궁전에서 반주하다가 숨는 모습을 벽화로 그려두었는데 숨은 그림찾기를 하여야 한다.

                         얼굴에 빛이 있어 찾기가 쉽다고 한다.

                    ․ 톱프카궁전의 86캐럿 다이아몬드(세계 3번째 큼), 모세의 지팡이 등은 영성을 보여 준다.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미들턴 플란테이션의 분수는 태양신(아폴로)이 나오는 장면을 재현시켜 놓은 것으로

              빛을 잘 소화한 작품임

              -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서 소원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을 때,

                   햇볕을 쬘 수 있게 비켜서 달라고 했던 일화/ 햇볕의 중요성?

 

2. 문명과 종교

          ○ 옥스퍼드와 근대의 지식의 탄생 : 최초의 대학들은 모두다 종교를 위해 출범하였다.

                  옥스퍼드는 인문학을 강조하였고 르네상스가 일어난 학교?

                - 종교를 모티브로 출범한 학자들을 보면, 피타고라스, 다윈, 뉴턴은 신학자, 플라톤은 철학자,

                     반고흐는 선교사를 하다가 감동이 지나쳐 교단에서 쫓겨나 할 일없는 사람이 되어 형이 그림을 그려보도록 권하여

                10여년간 그리다가 4년간 바짝 그림을 그렸다.

                - 단테는 이태리 피렌체 출생으로 신곡을 지음.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을 두고 그려낸 작품으로 어두움에서 빛을 생산해 낸 작품임

                     - 미켈란젤로와 바티칸 : 바티칸의 라오콘상은 독이 들어가 혈관이 팽창된 상을 나타낸 작품임

               ※ 바티칸을 제대로 보려면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 볼 수 있음. 천장을 보아야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볼 수 있음

                   (누워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음-실제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음)

최초의 문명의 발상지는 강이 있는데 강은 혼동을 상징한다.

 

3. 고대종교와 농경문화.

농경문화의 시작 : 먹을 것의 기원

                     - 농경문화는 여성이 먼저 알게 되었다고 하며, 딱딱한 씨앗을 먹고 겨울을 남(신석기 시대)

                 - 추수감사제는 추장이 2월경에 자결하여 흙에 묻히면 그곳에서 곡식이 풍성하게 됨을 알고 종자가 개량되었으며,

                     추장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생산한 곡식으로 추장의 모양과 같은 덕을 만들어 뜯어먹게 된데서 추수감사제가 유래됨.

                - 유태인 프로이트는 후처의 출생인데 조카들에게 왕따 당하는 배경에서 성장한 인물임.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마자 나중에 왕을 죽일 것이란 예언을 듣고 아버지 왕은

                오이디푸스를 밖에 가서 죽이도록 명령하지만 죽이지는 못하고 던져버리고 온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야생에서 살아남아 그 지역에 사냥을 온 왕과 결투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있는 동네로 찾아가 왕비를 범한다. 어머니를 범한 것이다.

절대적 신념체계와 종교공동체 : = 종교 : 선택의 여지가 없음(부여국)

 

4. 신화 : 신들의 이야기

신화 : 철학이전의 신화

  - 고대종교는 신화와 상징임/ 인간의 태초는 신화적 사고였다.(레비스타우스)

 - 태초의 원초적 인간들의 간증이다. (엘리아드)

                - 그랜드캐년 : 콜로라도강이 20억년동안 깎아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구의 역사이고 지질학의 교과서.

                - 키프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현세의 여성에게서는 매력을 얻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연모하여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기도하여 여신상에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피그말리온은 그 조각상을갈라테이아라 이름지어준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교육심리학에서 평범한 아이를 칭찬해주고 마음으로 지원했더니 성적이 좋아진 결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아테네 조각은 여성 600명을 선발하여 몸의 치수를 모두 재어 평균값을 내어 조각한다고 함

 ○ 영화 : 현대의 신화 = 영화는 현대의 신화를 낳고 있음/ 사람들이 주인공을 따라해 보는 것들

                      - 일본 미야자끼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의 대가로 신화적 모티브가 살아서 산업화가 된 것임

   - 컴퓨터게임도 모두 신화에서 나온 것들 임

   

5. 상징과 원초적 세계

 ○ 상징의 의미 : 글은 3천여년전에 출현되었으니 그 이전은 상징이 있었음

                 - 반야심경은 노래로 이루어진 것임, 이를 500글자로 축약한 것이 금강경이고, 300글자로 축약한 것이 반야심경 임

 ○ 고대 비너스와 달 : 풍요의 상징, 다산, (양수=생명수) 달의 변화를 여성과 비유함

 ○ 유대사상은 여성과 달의 상징에서 유래됨 즉, 현재의 고통은 얼마간 지나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

 

 6. 결론 : 인간은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음. 자유의 나라가 공산권이 되자 탈출하여 텐트생활을 하던 난민들이

 정상적으로 먹는데도 오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으나, 얼마 후부터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들의 생활이 활기찬

 이유을 알아보았더니 스와핑이 생겨나면서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본부에서는 이를 금지시켜야 할지 아니면 두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은 원초적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을 밝히는 것에 종교와 신화가 역할을 하게 되었다.

 

3강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2012.3.26]

 

 대처의 등장

          - 1925년 생, 아버지는 잡화상, 선거를 통해 시의회 업무 봄.

          - 200여년 역사의 최초의 보수당 여성대표(1975)

          - 최초의 여성 총리(1979-1991) : 11년 반을 수상직무 수행

          - 대처주의를 낳음/처칠은 주의는 남기지 못하였으나 국장 장례/ 대처는 처칠 후 국장으로 결정됨

          - 보수주의 혁명가 : 총리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 선거를 통해 선출된 또 한 명의 여왕

 

대처의 업적

          ○ 영국병의 치유

            - 저성장, 파업 열병, 통치가 불가능한 나라라는 시각-1970년대 병을 앓고 있다는 평

            - 정부에 기대는 무능한 경영진-당시 모든 조직이 국가의 통치를 받는 조직으로 노조가 막강함

               · 파업은 독일의 10배 이상으로 노조 파업이 심각하였음

            - 집단이익만 챙기는 노조

          ○ 강성노조의 병폐 혁파

            - 1945년 복지국가를 슬로건으로 하여 무덤에서 죽음까지경제활성화에 힘입어 부흥기

            - 석탄 노조의 경우 석탄이 존재하는 한 캐내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섬- 수입불가 주장

            - 일반적으로 3%실업을 완전고용이라고 보는데 당시 영국은 0%실업을 주창함

            - 공기업 증가로 기관산업이 모두 공기업화 하여 비능율의 대표적인 사례가 됨

          ○ 자본주의의 재평가

            - ‘돈 버는 일은 왠지 옳지 못하고 천박하다.’ 는 정서를 혁파

            - 돈은 벌어서 다른 분을 위하여 좋은 일에 써야한다는 논리로 바꿈

          ○ 대처의 성장과 경력

            - 아버지의 영향

             · 독실한 감리교 신자로-하나님이 내게 준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사는 것으로 금욕주의.

             · 장학금으로 옥스퍼드대학 진학하여 졸업

             · 삶의 철학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온다.

           - 24- 정치 입문

            · 내 힘으로 장학금을 얻어 대학에 갔습니다. 학비가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 34- 의회진출

           - 45- 교육과학부 장관

           - 54- 영국 최초의 총리

          ○ 대처의 장점

           - 복잡한 사상을 단순화하고 그것을 지지하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

            · 부나 특권을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 대처 이전의 영국

           - 닉슨이 나는 케인즈 주의자라고 천명 케인즈 사상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음.

            · 수요가 있어야 경제 활성화 됨-고용창출

           - 완전고용 강력한 노조 누가 영국을 통치하는가?”

           - 복지국가 나태, 무책임, 무능, 의존문화로 국가만 비대해지고 세금만 많이 거두어 비효율적

           - 1945년 이래 비대해진 정부는 개인 자유에 대한 침해/ 노동계의 지나친 권력화-국가위상 왜소화

         ○ 대처의 집권 배경

           - 1978년도 교통관계 파업으로 청소노동자까지 파업에 따라 런던 시내는 쓰레기 악취(몇주)

           - 1978-79년 불만의 겨울 통치가 불가능한 나라

           - 노조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노동당 이탈

           - 79.4월 총선에서 부동층을 잡아서 확실한 승리

 

         대처주의 혁명

          ○ 경제적 신 자유주의

            - 통화안정과 인플레 치유

            - 작지만 강한정부

            - 개인과 기업의 진취적 기상 도모

         ○ 사회적 도덕적 보수주의

            -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로 돌아가라.

            - 법과 질서의 존중

            - 애국주의

         ○ 강성노조 혁파

           - 광부노조의 파업(1984-85) : 아서왕(광산노조위원장)과의 전쟁

           - 노조가 사회의 큰 문제라는 점에 동의(7973%에서 871%)

           - 노동당 내에 극좌파 제거에 도움을 줌(토니블레어)

         ○ 시장경제의 정착

           - 공영 임대주택의 판매-2차대전후 승리한 군인들에게 살집 마련 등-150만호 매각

             · 중산층의 증가

           - 공기업의 민영화 재정적자 파산할 수 없는 것을 파산하게 만든다.”

         ○ 자본주의 미덕 설파

           - 돈은 수단일 뿐,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기독교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이웃을 위해 쓰는 것

         사회민주주의 혁파

           - 정부의 판단력이 개인보다 더 낫다는 전제-계몽된 개인에게 맡기는 게 낫다.

           - 긍적적 목표 ; 정신상태 개조-의존문화, 내 불행은 남의 탓, 도덕적 십자가 운동

           - 노동당의 변신

 

       대처의 리더십

         ○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 카리스마와 능력/ 강인함과 끈질김/ 대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

         ○ 국민을 설득

           - 간호사에 비유 : 간호사가 환자가 좋다는 대로해서는 빨리 치료할 수 없다.

         ○ 영국국민의 자신감을 확립

         ○ 공격적인 대인관계 - 영국의 영광

         ○ 확신의 정치가

           - 아마라는 단어를 지워버림

           - 타협의 정치 불신 길 중간에 서 있는 것은 위험

         ○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

           - 단기적 이익에 좌우되지 않는다.

         ○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

           - 강인한 추진력

             · 돌아가려거든 당신이나 돌아가십시오. 나는 돌아가는 것 따위는 모릅니다.

             · 별명 : 티나(TINA : There Is No Alternative :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으려는 욕심을 포기

         ○ 대처는 영국 국민과 제도로 하여금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거나 받아드리도록 했다는 점에서

             역사를 만들어간 지도자였다.

 

         4강 서양근대철학과 데카르트(철학과 이석재 교수)[2012.4.2]

 

데카르트는 1596-1650/ 12세에 예수회 대학에 입학/ 1640년 제1 철학에 관한 성찰/

 1644년 철학의 원리/1650년 정념론을 집필함

 

. 1 철학에 관한 성찰

기존 세계관 비판적 검토하여 새로운 세계관 제시함

1-6성찰까지 있으나 오늘은 2,3,6성찰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함

 

     1. 1성찰 : 회의주의로 시작 - 이른바 방법적 회의깨끗한 바탕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

기초토대부터 새롭게 세우기 위해 기존의 지식과 믿음을 제거함

          ○ 내가 안다고 믿는 모든 것들이 과연 믿을 만 한 것인가? - 감각에 대한 회의부터 출발함

  - 감각은 우리를 속인다.

  - 이상적인 관찰상황에서는 감각을 어느 정도 인정

꿈의 논증

        ○ 내가지금 신양관에 있다는 것이 확실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야한다.

그러므로 내가 신양관에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

   - 내가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감각을 통해서 아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악령의 가설

         ○ 꿈속이라도 회의로부터 살아남을 믿음들이 있다. 2+2=4(수학적인 것),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등

          ○ 어떤 악령이 나를 속이고 있다면 2+2=4 마저도 확실하지 않을 수 있지 않는가?

회의의 심연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함

 

2. 2성찰

회의의 심연으로부터 탈출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어도 내가 의심하고 잇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나는 그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는 것이다.

, 내면세계를 통찰하는 눈은 틀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는 한 그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역시 확실히 존재한다.

          ○ 생각을 하는 한 그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 - 생각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 확립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 나는 곧 나의 정신, 영혼이다. / 나의 본질은 생각이다./ 곧 사유하고 감각하고 느끼고

            특정한 것을 원하고, 누구를 사랑하고, 이러한 모든 의식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따라서 나와 나의 몸은 다르다.

 

3. 3성찰

2성찰에서 얻어진 확실성은 매우 빈약하고 나의 존재만 확실함

- 걷는다--- 꿈일 수도 있다.

타인 밖의세상, 물체, 자연 모두 아직 존재하는지 모르는 상태

유아독존적 고독

신의 존재 증명을 통해 세계의 존재 획득

 

신 존재의 증명

나에게 신의관념이 확실히 있다.

                   - 신은 하나님을 의미하며, 완벽하다. 완벽한 존재는 모든 속성을 가진다. 속성은 선함, , ,

                       존재를 믿으며 신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신의 과념을 유심히 따져보니 무한히 많은 실재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관념의 실재성은 어디로부터 왔어야만 한다.

무한히 많은 실재성을 지닌 신으로부터 신의 관념이 왔다는 결론에 도달

  - 신의 관념은 너무 많아서 설명이 불가함

 

4. 6성찰

선한 신의 존재에 의지하여 외부세계, 자연의 존재확보(존재=, )

나는 여러 가지 감각한다.

감각관념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감각관념을 일으키는 원인의 후보는 나 자신 자연 그 자체

 

외부세계의 존재증명

          ○ 감각관념은 비자발적으로 일어나니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신이 감각관념의 원인이라면 신이 선하다는 주장과 이러한 사실과 배치된다.

  - 외부세계가 있음은 신으로부터 왔다.

신이 감각관념을 일으킨다면 신은 우리를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가 우리의 감각을 일으킨다.

 

데카르트의 물질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자연

크기, 모양, 운동을 가진 연장(extension)

색깔, , 소리, 촉감 등은 자연 자체의 성질이 아니다.

         ○ 이러한 성질은 우리와 물질의 만남에서 등장하는 성질 물체자체에 있는 성질이 아님.과학적 세계관

 

데카르트의 이원론

세계는 두 가지 존재로 이루어진다.

정신, 영혼, 마음 그리고 연장되어 있는 물체

          ○ 정신은 사유가 본질, 사유만 하고 있으면 존재한다. 물질은 없고 존재만 가능하다.

          ○ 물체 물질은 연장되어 있기만 하면 존재한다. 정신없이도 물질은 존재할 수 있다.()

감각 존재 조건을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다.

정신과 물질은 전혀 이질적인 것이다.

정신은 자유영역 물질은 기계적인 결정된 영역이다.

 

이원론의 문제점

심신 상호작용의 문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임.

내가 팔을 들려고 할 때, 나의 영혼은 나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정신은 비물질적임물질적인 것인 팔을 드는 것, 정신에서 몸으로 가능한 것도 문제임

  - 몸의 변화가 어떻게 내게 영향을 미치는가?

  - 뇌에서 정신을 어떻게 작용하는가?(마음은 뇌의 상태로 마음은 헛개비임)

전적으로 이질적인 것 간의 인과는 어떻게 가능한가?

 

 5. 서구의 5대 철학자에 관하여

 

                             가. 플라톤 : 철학의 선구자로 철학에 영향을 아주 많이 끼친 사람으로 정신을 강조하였음.

   - 원형들은 따로 있다고 봄.

   - idea(이데아, 관념)

   - 원형의 세계는 참세계이고 육신은 허상으로 봄

   - 관념론으로 정신세계는 진짜세계이고 물질세계는 없다고 봄

 

 나.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수제자)

   - 참으로 있는 세계는 감각이 있는 세계이고, 관념은 추상세계로 봄

                   - 물질적 존재가 참 세계로 형질주의을 낳음, 재료와 모양, 재료와 형태가 필요.

 

 다. 데카르트

  - 물질도 진짜, 정신도 진짜로 봄

 

 라.

  -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인간을 알아보아야 한다.(자연주의)

  - 이성주의로 자연과 동떨어진 것 같으니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 이성은 욕망의 노예이다이성이 강력한 것이라 욕망을 통제 가능하다는 것이다.

                  - 원하는 바가 있으면 이성이 바꾸지 못한다는 것으로 원하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

 

 마. 칸트

  - 이성의 자리를 정립시킨 분이 칸트임

  - 과학적 지식은 경험에 의존함, 이런 지식은 보편적이기 힘들다.

  - 순수이성비판

 

5강 콜럼버스와 신세계정복(서어서문학과 임호준 교수)[2012.4.9]

 

콜럼버스는 누구인가?

          ○ 이태리 상인으로 욕심이 많고 아주 포악한 사람임

          ○ 포르투칼에서는 거절당하고 스페인의 여왕의 승인을 받고 인도를 찾아 1492.8.7.에 출항하여 10.12일에 쿠바에 도착한다.

             (여기를 인도 인줄알고 4차례나 찾아가지만 이름은 아메리고 베스푸치(1501년 발견)가 아메리고의 땅이란 뜻의 아메리카로 불린다.)

          ○ 쌀라망카대학(스페인)에서 콜럼버스에게 항해의 목적을 묻고 캔슬 당한다. 하지만 선주의 도움으로 여왕을 만나

              승인을 받게 되어 출항에 성공한다.(이때 신부의 도움을 많이 받음)

           - 출항의 목적이 돈에 있음에도 그것은 감추고 선교를 내세운다.

             - 항해술이 뛰어나 당시에 지구가 둥글며 거리는 22,000해리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콜럼부스는 750해리라고 주장한다.

                (콜럼부스가 몰랐던 것은 아니고 알면서 속인 것으로 신부님께 고백한다)

           ○ 가문의 콤플렉스가 있었고, 포르투칼에서 전처의 자식이 있고, 스페인의 여성이 가문이 천하다고 자녀를

               두었음에도 결혼해 주지 않았다.

            ※ 스페인이나 포르투칼 사람들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는 개척이 되어 있었다.

           ○ 그 당시 아메리카는 알지 못하였으므로 곧장 인도가 나올 줄 알고 갔던 항해였다.

 

           1492년 이전의 세계

           스페인은 이슬람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오랜 전쟁을 끝내고 겨우 국가를 추스린 상태

           비단, 자기, 향료, 종이 등 동방은 유럽인들이 탐낼만한 많은 상품을 보유

         ○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실크로드가 막힘/해양을 돌아서 동방진출 불가피

당시의 스페인은 700여년간 아랍인들이 점령하고 있다가 쫒겨남-유럽미개인

이슬람이 천문학 발달/카돌릭 이교도 화형에 처함

유럽이 세계중심은 1492년 이후가 됨

한편 미국은 콜럼부스를 영웅으로 봄

 

콜럼버스와 그의 업적

이태리 제노바 출신의 사업가(이당시 이태리는 국가는 아님)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는 여러 개의 제노바인들의 공동체가 존재

포르투갈 왕실에서 거절당했으나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얻음

발견할 경우 항로에서 얻는 이익의 1/10을 받기로 함

         ○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라고 여김.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하여 카스티야 군주의 땅으로 만듦

 

콜럼버스에 얽힌 신화들

콜럼버스 지구는 둥글다

         ○ 서구인들의 모험심과 용기의 상징. 미국인들의 영웅: 스페인과의 연관을 끊어버림

           - (1012일 콜럼버스 데이, 콜럼비아 대학, 콜럼버스(OH), 콜롬비아)

         ○ 신대륙발견

           - 당시 지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두 도시는 테노치틀란과 베이징

         ○ 대서양을 처음으로 횡단한 사람

           - 몽골계가 알래스카를 거쳐 아메리카 원주민이 됨

           - 바이킹들 역시 콜럼버스 이전에 그린랜드를 드나듦

 

중남미의 정복

스페인 군주는 황금에 눈이 먼 사업가들에게 정복 사업을 허가

 - 개인들이 자금을 모아 군마와 화약을 사고 대원들을 모집

주로 하층민들이 신분상승의 기회를 찾아 아메리카로 향함

 - 하층민은 주로 돼지를 치던자들임

아메리카 대제국이 스페인 정복자에게 패배

 - 1521년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는 에르난 코르테스를 환대하여 수도에 받아들임.

잉카문명에서 이 백인을 5천년만에 온다는 신으로 알고 환대함

               - 1532116일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4만 대군이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기병62, 보병 106명에게 패함.

 • 쇠칼, 갑옷, , vs , 청동기, 나무곤봉, 손도끼, 물매

               • 피사로는 가로 6m, 세로 5m, 높이 2.3m 의 방을 가득채울 황금을 몸값으로 받고도 황제를 처형

                    - 근본적인 패배의 원인(이유)

구분

유럽

아메리카(신대륙)

비고

도구

철기

청동기

 

문자

문자사용으로 정보축적가능

마야문명에서 일부 사용

 

문명발달

,돼지,,,염소를 가축으로 성공

라마, 알파카 존재/5대 가축 멸종됨

5대가축

전염병

유라시아 고유 전염병(가축에서 발생)-유럽은 면역체계 갖춤

가축없어 전염병 없었음

 

항해술

매우 발달함

현재 문병안에서 안주함

 

정치조직

중앙집권적 조직

부족중심 조직

 

기타

정족내용 기록남음

기록없음

 

지리적 조건

동서로 위도가 같아서 동식물이 번식용이

남북기후차이로/맥시코의 열대우림으로 교류곤란

 

 

         ○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원주민

  - 75백만명(1520)75만 명(1620)으로 줄어듦

카리브 해 인구

  - 100만명(16세기초)500 (1548)으로 줄어듦

원인

  - 대량 학살

  - 전염병의 창궐(천연두, 홍역, 티푸스, 성홍열, 늑막염 등)/ 성병은 아메리카 유럽행

  - 천연두: “신세계를 위한 구세계 최대의 선물

  - 생태환경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인들이 전염병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자 심리적으로 제압됨

 

아프리카인들의 유입

1500년대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천이백만 명이 아메리카로 끌려옴

         ○ Middle Passage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서인도제도에 이르는 항로. 2백만 명이 배

안에서 사망.

당초 아메리카에는 흑인이 없었으며, 몽골에서 베링해를 통해 들어간 황인종 주류?

             - 남아메리카는 스페인 포르투칼인들이 황금을 캐내고, 북아메리카는 황금이 없어 후에 영국, 프랑스인들이 차지하게 됨

             - 농업은 남아메리카는 뉴기니 원산인 사탕수수를(기후가 동일함으로) 북아메리카는 면화를 주산업으로 육성

  - 쿠바는 흑인무역 중개지가 됨

 

인디오와의 전쟁의 합리화

야만인들의 인신공희의 의식을 단절시키기 위해

             - 하느님의 노여움을 일으키는 악마숭배와 이에 따른 가공할만한 인신공희의 죄악을 없애기 위해

  - 이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불신자에 대한 전쟁은 정당화 된다.

  ※ 합리주의를 말하는 유럽인들의 말잔치?

  ※ 아메리카에 한 부족이 식인종이 있었는데 전체를 식인종으로 몰아갔음

  ※ cannibal은 식인종이란 뜻임/카리브해(caribbean sea)도 식인종과 관련됨

 

명칭 붙이기

명칭 붙이기는 권력자의 폭력

인디언: 콜럼버스의 오해

- 그러나 인도가 아닌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을 안 이후에도 계속 사용

- 불편해지자 동인도, 서인도로 나눔

아메리카

- 아메리코 베스푸치의 땅이라는 의미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이 가져 온 세계사적 변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출현

아메리카 원주민의 대폭적인 감소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

아메리카의 혼종화

- 원주민+유럽인+아프리카인

아메리카 작물의 세계적 전파

- 옥수수, 감자, , 담배, 고추, 토마토 등

유럽중심주의의 기원

- 아메리카를 발견함으로써 세계의 중심이 됨

- 유럽적 근대성의 출발점

- 타자를 배제하는 근대성

- 유럽 내에서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임.

 

 

6강 한글과 레오나르도 다빈치(국어국문학과 김성규 교수)[2012.4.16]

위 두 인물의 관련성?

          ○ 관련이 없는 사물이나 현상을 관련시키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넓혀가는 것이 창조이다.

          ○ 동양과 서양의 문화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인물임

 

세종대왕과 한글

          ○ 세종대왕은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학문은 뛰어났다는 정평이 있음

          ○ 최만리가 한글창제 만대 상소를 올렸을 때 세종은 질의응답을 하는데 대제학 최만리가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

          ○ 최초의 훈민정음은 한문본이었음

          ○ 훈민정음 해례본은 번역자가 미상임(국보)

            - 훈민정음 해례본이 보이지 않았는데 종이가 귀하다보니 그책을 뜯어 뒤집어 다른 책을 썻던 것을 찾아내어 보존하게 됨

               /현재도 보면 뒷면에 글씨를 볼 수 있다.

         ○ 한글창제의 목적은

           - 백성들이 알 수 있는 문자를 만든 것

           - 한자음의 표준을 정하기 위함이었음

         ○ 한글창제 배경은 시골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생김은 왕인 내가 가르치지 못해서임을 깨닫고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글을 창제함.- 삼강행실도(그림으로 행실을 설명함)

             - 창제는 임금이 했겠는가 하는 의문도 있지만 깊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고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

             -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허공에 뜨는데 이는 증명과정을 거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있음

           ○ 훈몽자회(1510년 편찬)는 어린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던 책임

                즉, (하늘 천)으로 하여 한자교육을 위한 우리말을 쓴 것임

           ○ 당시 한글창제 후 순청의 김씨 가문까지 전파되는 데는 100년이 소요되었음

         ○ 문자표기 방식은 형태음소적 표기법과 음소적 표기법으로 전자는 현재 우리가 쓰는 방식이고,

             후자는 소리 나는 대로 쓰는 표현방법임

         ○ 세종이 집필한 책은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부인을 위해 편찬)

 

           ※ 세종의 기타 업적

         1. 관노비가 임신을 하면 출산휴가를 주었다(100)/ 얼마 후에는 낳기 전에 1개월도 주었으며

             그 얼마 후에는 남편이 노비이면 남편에게도 30일 출산휴가를 주었음

       글자모양에 관한 분석

       ○ 한글의 글자모양을 , 을 사람을 모양을 왼손잡이가 그렸다면 현재의 반대 모양이 나올 수도 있었는데

           왜 , 으로 썼을까를 살펴보면

        - 그 당시 좌안이 우안보다 훨씬 많은 것은 오른손잡이의 그림이 많았다는 증거가 됨

        - 일본이나 서구에도 우안이 많았다는 증거가 있음

        - 따라서 혜의 모양을 오른손잡이가 그린 그림을 토대로 만들었던 것 같음

        수결이란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의 상 중앙에 사인을 말함/우리나라 문서에는 주로 노비문서에 이런 것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음

       레오나르도 다빈치

        ○ 왼손잡이가 음영을 그릴 때 좌에서 우하로 선을 긋는 특징이 있음

        ○ 위 두 분은 당대의 문화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인물임

        ○ 피카소도 왼손잡이로 알려져 있지만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볼 때 오른손잡이임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왜 오른손잡이가 많은지는 밝혀지고 있지 않고 증명된 것도 없음

       우리가 글을 쓸 때 주의할 점

        ○ 이글을 누가 읽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집필하라.

        ○ 말을 내가 내 밷는 순간 상배방의 것이 됨으로 주의하라.

 

7강 인도에서 보는 동과 서(고고미술사학과 이주형 교수)[2012.4.23.]

인도의 동과서

          ○ 인도는 동양과는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 교류가 쉽지 않았다. 동양과는 통한다면 불교로서 통했다고하겠다.

             서양과는 언어계통도 같고, 알랙산더가 인도까지 전쟁을 치루고 옴에 따라 교류가 이루어 졌으며,

             포르투칼에 이어 영국와 프랑스가 들어와 영프전쟁을 영국이 승리함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 BC2000년경에 출범하게 됨, 인더스강은 파키스탄이고, 인더스 문명의 남부지역은 주요 인더스 유적보다 시기가

             늦은 듯하다. 이 문명은 문자를 알았고, 문자체계는 약 250~500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부분적·잠정적으로 해독되었고,

             언어는 드라비다어로 추론되고 있다. 추정연대는 BC 2500~1700년경인 듯하나 남부지역의 유적은 BC 2000년기 후반까지도

             존속했던 듯하다.

         ○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고대 그리스어 'Μεσοποταμία'에서 온 말로서 '강들의 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래로 역사, 지리학 및 고고학적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지리학상 중동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주변 지역(현재의 이라크)을 일컫는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이 자연적으로 가져다 주는 비옥한 토지로 인하여 기원전 약 6000년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정착 주거하기 시작한 이래 점차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강의 범람이 불규칙적이고 잦아서 치수와 관개 등

             대규모 사업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러 도시 국가가 나타나고, 교역과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다.

 

인도-아리아인의 동진 서기전 1500~1000

         ○ 지금의 서아시아 북부의 초원지대에 거주하던 유목민들은 서기전 2000년경부터 수백 년에 걸쳐 이주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유럽과 이란, 인도에 걸쳐 거주하는 소위 Indo- European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란을 거쳐

             인도로 유입한 이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후대에 인도-아리아인이라 불렸다. 이들은 언어와 종교, 문화 등에서 이란인들과

             매우 가까웠으며, 그 이전의 인더스문명기 인도인들과는 갈래가 달랐다. 이들이 이제 인도문명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페르시아와 조우

         ○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기원전 334-323)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북쪽에서 마케도니아가 세력을 키워

             남하하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은 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시아를 정벌할 뜻을 세웠지만,

             얼마 후 암살당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아들 알렉산더가 왕위에 올랐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였다. 알렉산더는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다. 기원전 334년 보병 3, 기병 5천을 이끌고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페르시아로 향한 것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3세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알렉산더는 소아시아 지방의 고르디온이란 곳에 이르렀다. 그 지방에는 신전 기두에 매어져 있는 복잡한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 전설을 들은 알렉산더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칼을 빼어 단숨에

             매듭을 내리쳤다. 결국 그는 그 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소아시를 점령한 알렉산더는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멸한 뒤, 페니키아 연안, 아프리카 북쪽 해안을 평정하여 후방을 다진 다음 페르시아 본토로 쳐들어갔다.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더에게 대패하고 도주하다가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와 페르세폴리스를 불사른 뒤, 멈추지 않고 중앙아시아로 진격, 인더스강 부근까지 나아갔다.

             그는 갠지스강까지 계속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너무 오랜 전쟁에 병사들은 지쳐있었다. 마침내 알렉산더는 원정을 중단,

             기원전 324년 바빌론으로 돌아왔다. 알렉산더가 10년 동안 정복한 곳은 서쪽으로는 마케도니아, 동쪽은 인더스 강,

             남은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의 죽음은 몹시도 급작스러웠다.

             바빌론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열병을 앓다가 사망한 것이다.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알렉산더의 꿈은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는 2km에 달하는 원정길에 여러 학자들을 동행시켰다.

             그리고 정복지마다 새 도시를 건설하고 알렉산드리아란 이름붙인 다음 그리스의 학자, 예술가, 상인 들을 이주케 했다.

             또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사이의 결혼을 적극 장려, 대규모의 합동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 자신 다리우스 3세의 딸을 제2의 부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페르시아 청년들을 그리스 식으로 교육하는 한편,

             페르시아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12살 때부터 3년 동안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외국인은 노예가 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그리스 인은 부모형제처럼 대하고,

             외국인은 짐승처럼 취급하라. '고 가르쳤다 한다. 비단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우리가 아주 위대하다고 알고 있는

             당시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노예와 외국인, 여자는 인간, 즉 시민의 대열에 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철학이란 것이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전유물이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렉산더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는 '모든 사람은 세계를 자기 모국처럼 생각하라.

             선한 사람은 부모와 같이 대하고 악한 사람은 짐승처럼 취급하라'고 말했다 한다. 알렉산더의 동서융합 정책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를 헬레니즘 문화라고 부른다. 헬레니즘 문화의 특색은 세계동포주의와 개인주의이다.

             얼핏 상반된 두 성격처럼 여겨지지만, 이는 실인즉 폴리스 문화의 극복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즉, 고립된 폴리스를 뛰어넘어 좀더 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고, 폴리스라는 공동체 중심의 사고로부터 개인 중심의

             사고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헬레니즘이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한편으론 로마를 통해 서유럽으로 전해져서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오늘날 유럽 문화의 기저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두 흐름이다. 한편으로는 인도에 영향을 미쳐 간다라

             양식이란 예술조류를 형성했다. 이 간다라 예술은 서역지방을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이룬 대제국은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의 아내와 자식은 모두 죽음을 당했으며,

             수십 년간 후계자 전쟁이 계속되다가 결국 대제국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 세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다.

 

헬레니즘 로마와의 만남, 간다라미술

         ○ 간다라미술 서기전 3세기~서기 5세기

          인도에서 전개된 서쪽 세계와의 교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마도 간다라미술일 것이다. 간다라미술은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이후 이 지역에 전래된 서양 고전미술양식과 인도의 불교가 절묘하게 결합된 혼성문화의 산물이었다.

          간다라미술이 예증하듯이, 서기전 3세기 이래 지중해 세계와 서아시아에 전래된 다양한 헬레니즘 문물은 인도가

          새롭게 도약하는 데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이슬람의 진입 13세기~17세기

          ○ 서기 12세기 말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내려 온 정복자들이 델리 일대를 장악하고 술탄왕조를 세웠다.

             이를 기점으로 인도에서는 외래 이슬람교도 지배 시대가 열렸다. 이들이 갖고 온 문물은 상층부 지배자들 사이에 주로

             유통되었으며, 대다수의 인도인들 사이에는 전통적인 문화가 연면히 이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외래 문물은 인도 문화의

             새로운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마쳤다. 이것이 인도의 전통과 만나 다른 이슬람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것이 16세기에 시작된 무갈제국 시대이다. 16세기부터는 서아시아의 이슬람 문화 외에 유럽인들의 진출과 더불어

             유럽 문물들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동서의 만남 - 세계 문화사 속의 교류의 역사

 

무슬림의 지배, 새로운 질서 문화

         ○ 무슬림의 지배는 서기 1200년경 인도 본토에 무슬림이 들어옴. 모스크 등장, 묘가 등장(당시 인도는 묘가 없었음)

          - 1505년 무갈왕조(무갈=몽골) 카불에서 인도 전역 지배(악바르왕때) 악바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묘

             (, 후마윤의 묘)가 타지마할 형태를 제공함. 150년간 이어짐.

 

유럽의 식민지 지배 19세기~20세기

         ○ 포르투칼 예수회 선교사들이 진출해 옴1590년 유럽풍이 많아짐

          -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야심은 18세기 중엽 영국인들이 프랑스를 물리치고 인도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면서 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인들은 약 200년간 인도를 지배하며 유럽의 근대문물을 다양한 형태로

            인도에 남겼다. 오늘날 교육받은 인도인들이 자유롭게 구사하는 영어의 습득과 유통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통해 인도인들은 새로운 변화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독립과 현대 인도

인도는 소수의 지식인들을 제외하고는 독립을 희망하지 않았다. 독립당시 인도는 560개 왕이 있었음

 

8강 동양예술이 그린 이상향과 어느 삶의 모습-왕희지의 삶과 글씨(미학과 박낙규 교수)[2012.4.30]

 

미학이란 무엇인가?

         ○ 미와 예술의 인문학적 접근이다.

 

         □ 왕희지는

         ○ 왕희지는 동진시대의 사람으로 시대적으로는 노장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였고, 노장사상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죽림칠현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국사를 피해 은둔하면서 살았고, 왕희지는 풍류를 즐기고, 여행을 자주하였으며,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깊이 체관하였다.

          - 그는 지금까지 700여통의 서한문이 남아있고, ‘하루 내내 마음을 성실하게 하고 여기에 온 마음을 쏟는다.(, ) 한다는 말씀을

             자기의 덕목으로 체득하려했다.

         ○ 의 모임 : 인간과 자연

         - 중국은 오래전부터 33짓날 냇가에 모여 냇물로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풍습이 있었다. 명승지인 난정에 명사들을 초청하여

            시를 짓거나 철학적 토론, 청담이나 불전의 을 하였다. 이를 라 한다. ‘즐거움이란 드물게 찾아오는 것이고 목전에서 끝나는

            것임을 알기에 즐거움에 집착했던 것 같다. 그는 육체의 건강을 위하야 선약을 복용하기도 하였다.

         ○ 글씨와 마음 : 그의 글씨는 편지글 정도이고,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을 가라앉혀야 한다.()

         ○ 왕희지는 타고난 감각의 섬세함으로 자연을 응시하고 그 속에서 유한성을 발견하였으며, 인생은 즐거움과 슬픔의 양면성이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에게 있어 글씨는 필묵의 기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의 근원에 있는 것

             즉, 천지조화를 응시하여 그것을 필묵을 빌어 표현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따라서 글씨는 그에게 있어 삶의 표현이자

             사상의 조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글씨의 기법을 집대성하고, 글씨가 인간의 깊은 내면의 세계,

             즉 정감의 세계에서 숙성하고 생명력을 불어 넣어다고 평가할 수 있다.

 

9강 무엇이 한국적인가?(국사학과 송기호 교수)[2012.5.7]

 

1. 무엇이 한국적인가?

          ○ 국사를 볼 때 우리민족은 단일 민족으로 우수하다고 하는데 우수한 것이 아니라 남다른 것

             - 외국인이 한국 체험시 비무장지대, 덕수궁, 한옥마을보다는 일상생활의 모습, 하이킹, 김치,

                떡볶이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음 고추 원산지는 아메리카유럽일본한국으로 전래됨

            - 빈대떡이 명품 패스트푸드가 될 수 있다.

            → 중국의 자금성, 만리장성,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 등은 독재주의의 유물

          → 조선시대는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공평하게 나누느냐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부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없었음.

              따라서 중국이나 이집트, 유럽처럼 웅장한 건축물이 나올 수 없음

           ※ 외국인들은 한국은 매운 음식, 중국은 기름진 음식, 일본은 담백한 음식으로 인식

         ○ 빨리빨리 문화가 군사유물이 아니고 세종 때에도 나타남. 삼성전자가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은 빨리빨리 AS를 함에

             성공비결이 될 수 있었음/ 한편 외국은 피자만 배달이 되었는데 다른 음식이 한국 사람들로부터 배워서 배달이 많이 늘어남

            →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온돌문화, 매운맛, 빨리빨리

           ○ 중국, 일본과 다른 문화

            - 의원 : 중국은 양의와 한의 공존, 일본은 양의, 한국은 양의와 한의원이 배척하면서 존재

            - : 중국은 춘절, 일본은 양력설, 한국은 양력, 음력설

            - 종교 : 중국은 살아서는 도관(도교사원) 죽어서는 절에 가고, 일본은 신사

            - 밥공기 : 우리나라만 놓고 먹음, 중국과 일본은 들고 먹는다.

            - 수저사용은 한국만, 중국과 일본은 젓가락 사용

            - 성을 갈 수 없는 우리(조선시대는 여성은 성만 사용)- 일본은 성이 30만개라고 함

            - 운동 : 한국 태권도, 중국은 유수, 일본은 가라테

            - 담배예절 ; 중국과 일본은 그런 예절이 없음

            ※ 담배는 임진왜란 때에 들어옴 : 초창기는 약으로 사용(회충)

             → 왕부터 상놈까지 담뱃대에 담배를 피우니 예절을 만들게 됨

 

            2. 먹거리 : 쌀밥에 고깃국, 커피와 술

            ○ 조선과 현대의 밥그릇 비교 : 조선이 3배이상 먹을 것으로 추정됨

              - 중국 사람은 혀로 먹고, 일본 사람은 눈으로 먹고, 한국 사람은 배로 먹는다.

              - 일본은 소식문화 : 하루 종일 삶은 토란 서너 개뿐이었다.

              - 1860년대 서양신부의 글을 보면 과식을 지적하고 있다.(샤를르 달레)

              - 한미 FTA의 쟁점 : 쌀과 쇠고기 개방문제

            ○ 음식의 변화

              - 냉장고 보급됨에 따라 불고기에서 등심으로, 돼지갈비에서 삼겹살로(원말은 세겹살)

              - 1980년대부터 로스구이 전문점 출현, 쇠고기 선호에서 돼지고기 선호로

            ○ 몽골에 돼지는 한국인이 전파

             - 집가자 안에는 돼지시자가 있는데 원래 사람은 돼지와 같이 살았음을 의미하고 그 이유는 뱀, 독사가 출현하면 돼지는

                지방질 때문에 죽지 않고 뱀에게 이김으로 돼지막에 집을 지음

            ※ 몽골은 총인구가 260만면인데 그중 10만명이 한국을 다녀감

            ○ 차 대신에 커피

              - (일상) : 차 마시고 밥 먹는 일=흔한 일/ 장가계에서 커피 판매로 돈벌기

              - 꽁피란 커피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담배꽁초로 염색하였던 1977. 5.11.경향신문

              ※ 우리의 맵고 짠 음식문화 때문에 녹차보다 강한 맛인 커피를 선호

              - 중국은 차문화 우리는 슝늉 또는 냉수문화, 중국이나 유럽은 물이 탁해서 차 문화, 유럽은 맥주

              - 조선시대 기근이 일어나 금주령이 많았으나 약으로 먹는 술을 약주라 하여 허락됨에 약주등장

              ※ 는 우리나라 원래 표현, (불탈소,진한술주)는 일본의 소주표현임

              ※ 고려 때에는 2가지 술이 있는데 탁주와 청주, 그 후에 소주가 들어옴

            → 소주의 원산지는 아랍몽고를 통래 전래됨

           ○ 음주가무와 노래방

            - 삼국지에 (고구려); ,(동예); (변진) 후한서에는 (동이); ,(부여)-노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가라오케는 일본에서 만들어 졌지만 꽃을 피운 것은 한국의 노래방이다.

            → 컴퓨터는 미국이 만들었지만 PC방은 한국이 우수함

            - 한국의 폭탄주는 매우 독특한 음주문화

 

           3. 백의민족

         ○ 흰옷을 색깔이 잇는 옷으로 바꾸도록 왕명이 여러 차려 있었지만 바뀌지 않은 한국복식사에서는 염료가 없어서라고 하지만

             감물, 황토 등을 이용했던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

           - 블라디보스톡에서도 흰옷은 한인임을 구별할 수 있었음

             - 189799일 조선실록에 의하면 천안과 직산 사이에서 뜻밖에 왜적 선봉이 모두흰옷을 입고 들판을 덮어오기에

                중국병사들이 처음에는 조선인이라 생각하여 공격하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음

           - 일제 강점기 켐페인으로 1920년 동래읍사무소 앞에 백의퇴산, 색복장려를 볼 수 있음

 

         4 남부여대 (일대)

         ○ 남부여대 셋트문화는 한국뿐임-중국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은 조선족임

           - 지게는 한국만 있음(너무 고유하고 생활과 밀접하여 기록이 없음)

         ○ 육체로 짐을 운반하는 수단은 지고, 이고, 등에 받치고 이마에 끈으로 매어서 운반, 3가지 정도

         ○ 지게의 발달은 도로가 좋지 못하였기 때문임; 도로가 좋으면 중국이 쳐들어올 때 고속도로가 염려되어 도로를 만들지 아니함,

           - 지게는 1500년 전에 사용한 듯함 : 백제 능산리 절터 출토 지게발채(567)

 

         5. 장가가고, 시집가고

         ○ 장가들기란 중국의 진나라 때의 데릴사위와 같은 제도임

           - 오죽헌의 주인을 살펴보면 사위사위사위사위로 이어짐을 볼 수 있음

         ○ 시집살이란 음양설에서 양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학설에 따라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바뀌게 됨

 

         6. 웃음으로 치루는 장례

         ○ 영화 축제는 웃음으로 장례를 마무리 하고 있다.

         ○ 사망하면 처음에는 곡하며 울지만, 장례를 치를 때는 북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죽은 사람을 보낸다. 매장이 끝나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쓰던 옷과 노리개(장신구),수레와 말 등을 무덤 옆에 두었는데 장례에 모인 사람들이 다투어 가져간다.

           - 장신구는 발달하였는데 귀고리는 안 되고 귀걸이는 됨(부모유산에 손대지 말라)

 

         7. 온돌과 찜질방

         ○ 온돌에 대한 역사도 없음

         ○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온돌이 사라질 위기

           - 보일러문화가 들어와 유지되고 중국에도 귀뚜라미 보일러가 많이 수출됨

           - 따라서 찜질방문화가 자리매김을 하고있음

         ○ 온돌문화로 말미암아 외부 온도는 0도 이하인데 방안은 온기가 지속됨으로 파리, 벼룩, 벌레, 바퀴 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 한국식 온돌, 바닥 난방 국제표준 채택(2008.3.13. 동아일보)

         ○ 미국 등 외국에도 온돌이 번져 나가고 있음

 

           10언어의 운명-독일어의 역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독어독문학과 강창우 교수)[2012.5.14]

              언어의 생로병사

         ○ 언어의 발생

           - 우주의 생성에서 인류의 발생까지-137억년전에 우주생성/지구의 탄생은 40억년전/생명체 탄생은 6억년전,

              고인류의 발생은 4-5백만년전으로 추정됨

           - 인류발생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 5백만년전/ 현생인류는 10만년전/알타미라 동굴벽화는 14500년전/

              언어의 발생은 기원전 1만년경~지금부터 35천년전으로 봄

          - 언어의 기원은 신성이론(성서)/창조설(플라톤)진화설

          - 언어발생의 신체적 조건은 이중음성경로소리가 울리는 부분과 울린 소리를 조정하는부분을 구분함은 직립보행이 시행된 후라야 했다.

         ○ 언어의 변천

          - 정치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에 따라 변하게 된다.

          - 단어의 생성은 차용, 신조어, 창조어 등이 있다.

          - 변천의 요소는 지배어와 피지배어/언어접촉 등이 있다.

          - 언어가 병드는 경우는 언어말살정책, 지배층에 의한 왜곡, 영어의 영향, 언어 타락현상 등이 있다.

          - 언어소멸은 국가나 민족의 소멸, 정복자의 언어수용, 공용어 수용

          - 세계 언어의 종류는 5,500여 가지

          - 한국어는 12위 정도로 사용자수가 7500만명

 

          □ 독일의 역사: 정체성 확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

          ○ 독일에 대한 기억: 맥주, 소시지(자오크라우트;시컴한 맛)아웃토반, 노이슈만슈타인, 로렐라이, BMW.

          ○ 독일어에 끼친 외국어 영향

           - 고대는 라틴어가 지배적 역할, 독어는 서민언어/초기근대에는 라틴어는 지속적/독어 표준화 후퇴/

              성경번역으로 독어발전토대를 마련함

           - 30년전쟁 후 프랑스 문화 유럽지배; 17C후반-18C초반에는 상류는 프랑스어, 서민 독어

           - 2차세계대전후 : 영어표현 증가, 경제 분야에는 영어표기 많았음

           - 19-20세기 독일어 정화운동.

 

          □ 우리말의 현실과 운명

          ○ 우리글 차별과 박해의 역사

           - 諺文(상말언,글월문)

           - 諺文禁亂(언문금란) : 연산군 10(1504)에 언문으로된 모든 서적을 불살라 버리게 하고 언문을 쓰거나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한 사건으로 누군가 임금의 죄행을 언무능로 폭로하는 글을 써냈다고 취한 조치였는데 연산 군 폐위와 함께 폐지되었다.

           -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 말살정책

         ○ 언어정체성 확립노력

           - 조선어 연구회 창립(1921) : 조선어학회(1931)와 한글학회(1949)의 전신

           - 조선어사전 편찬사업(1929)/ 맞춤법 통일안(1933)/한글 큰 사전(1957)

         ○ 영어교육 과열

           - 2006년 삼성경제연구소 영어 사교육시장 15조원

           - 영어식 명칭 선호 : “성채와 궁전에 사는 한국인

           - 영어 공용화 논쟁 : 1998 복거일, 그 이후 다양한 논쟁이 있었다.

         ○ 독일의 한 학자는 100년후 살아남을 언어는 과연 몇 개 일까? 90%이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

           - 영어가 차지할 것임

 

 

11강 강한 이들의 우정-관포지교 다시읽기(중어중문학과 김월회 교수)[2012.5.21]

  교과부에 예산확보를 위한 출장으로 결석함

 

 

12강 세익스피어와 사랑(영어영문학과 변창구 인문대학장님)[2012.6.4]

 

세익스피어는 1956.4.23.일생/ 1616.4.23.일 별세. 그의 작품은 37~8편정도 되고 희극 17, 비극 10, 사극 10편정도 됨.

Mimesis=(사건)의 모방즐거움+교훈 : 극적인 삶(dramatic) 희로애락-평범함이 아닌 삶의 근간이었음

있는 이야기를 모아모아 자신의 머리로 구상하여 정리한 책들임

작품구조는 정상 갈등 혼란 해결/ 기승전경의 5막극 구조임

극에서 이름이 신분을 나타냄은 허다함(Bottom : 밑바닥 인생, 당나귀 탈=ass=바보/변모희망)

사랑과 결혼 : 사랑은 개인 차원이고 결혼은 사회제도 차원이다. 결혼이란 새로운 세대를 잉태하고 사회지속 발전용이다.

희극이 암시하는 것들은

- 이 세상은 인간에게 대체로 호의적이다.

-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 가능하다면 여건/환경에 적응하라

- 우연을 인정하라

- 세상은 불완전하고 누구든 실수할 수 있으므로 서로 용서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희극은 We(더불어 사는 것)/비극은 I & You

맥베스의 변화와 깨달음

Wisdom comes through suffering(지혜는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내일, 내일, 또 내일

날마다 종종걸음으로

인간의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김없이 다가오고

우리의 모든 어제란 날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티끌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비춰왔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무대 위에서 맡은 시간동안만 뽐내기도하고

조바심도 치다가

그 시간만 지나면 잊혀지고 마는

불쌍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 것

그것은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로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 걸.

비극이 암시하는 것들

- 이 세상으 인간에게 무관심하다.

- 적대적이거나 잔혹할 때도 있다.

- 못된 짓을 하는 사람도 있고

- 곤경에 맞서 대적하는 사람도 있다.

- 운명을 당당하게 받아 들이고 자신의 의지를 추구한다.

- 운명의 힘에 패하면서 승리한다.

- 갈등, 고통, 苦悶(고민)을 통해 성장한다.

 

 □ 『한여름 밤의 꿈

              저작년도 : 1594-5년 경 / 배경 : 고대 아테네

 

사랑하는 두 쌍의 남녀가 서로 짝이 어긋나 있고 부모의 의사에 반하고 있어, 둘의 결혼에 문제가 생겼다. 이를 풀기 위한

  여러 계책과 도움이 얽히고 섥혀 복잡하게 진행되다가 드디어 결혼이라는 행복한 결말로 귀결된다.

 

고대 아테네는 히폴리타 여왕과 테세우스 공의 결혼 준비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 도시의 귀족 자제인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허미아의 아버지가 딸의 사윗감으로 드미트리어스를 생각하고

 둘의 결합을 강력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허미아는 라이샌더와 함께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아테네 외곽으로 도망가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하고 그들은 다음날 밤 숲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드미트리어스를 사랑하는 헬레나는 순전히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에게 허미아와 라이샌더의 비밀 도주 계획을 누설한다. 그리하여 약속된 밤, 숲에는 허미아와

 라이샌더, 드미트리어스, 헬레나 네 명이 각각 모두 모이게 된다. 먼저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숲 속을 헤매다

 쓰러져 잠이 들게 된다. 한편, 숲 속에서 요정 왕과 왕비인 오베론과 타이태니아는 서로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오베론은 자신의 종인 퍽에게 타이태니아가 잠든 사이 그녀의 눈에 제비꽃으로 만든 사랑의 묘약을 흘려 넣으라고 시킨다.

 그리하면 그녀가 눈을 떠서 처음 보는 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헬레나를 불쌍히 여긴 오베론은 또 한 퍽을 시켜

 드미트리어스가 헬레나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하도록 그에게도 같은 약을 뿌리게 한다. 그런데 이때 퍽은 착각하여

 드미트리어스 대신 라이샌더에게 약을 뿌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드미트리어스를 찾아 헤매던 헬레나가 라이샌더의 곁에

 오는 순간 그는 눈을 뜨게 되고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다. 퍽은 실수를 깨닫고 원래 하려던 대로 드미트리어스에게 약을 뿌리자

 드미트리어스도 헬레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쫓아다니게 되어 두 남자가 헬레나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기막힌 광경이 벌어진다.

 그 동안에 아테네의 광대들이 숲에서 테세우스공의 결혼 축하를 위한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퍽은 단원 중 한 명인 바텀의 머리를

 당나귀의 머리로 바꿔놓는데, 사랑의 묘약 영향아래 있는 타이태니아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당나귀 머리 바텀을 보고는

 그냥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베론 은 이와 같은 자신의 복수에 통쾌해 하고 퍽은 자신이 행한 마법을 해제한다.

 아침이 되자 드미트리어스는 자신이 헬레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허미아는 자신이 라이샌더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위의 축복 속에 테세우스의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그 두 쌍의 연인들도 결혼한다.

 

          □ 『멕베스

             저작년도 : 1605-1606년 경/ 배경 : 11세기 스코트랜드

 

 스코트랜드 자리에 대한 야심을 가진 맥베스 장군은 왕을 살해하려는 마음을 먹으면서부터 살해한 다음까지 계속 양심의

 갈등(선악)을 일으키며 고민한다.

 

 스코트랜드의 덩컨왕은 맥베스와 뱅쿠오가 적군을 대파하고 승리한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며 상을 내린다. 궁정으로 귀환하는

 길에 맥베스와 뱅쿠오는 세 명의 마녀를 만난다. 이들은 맥베스에게 장차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고, 이어 뱅쿠오에게는

 그의 자손들이 맥베스를 이어 왕이 될 것이라 말한다. 맥베스는 부인

 (Lady Macbeth)의 부추김을 받아 덩컨왕이 자신의 성을 방문했을 때 살해하고 왕이 될 결심을 한다.

 이어 맥베스는 왕을 살해하고 그 자리에 앉지만, 왕이 된 맥베스는 양심의 가책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편할 날이 없다.

 뱅쿠오의 후손들이 그를 이어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두려워한 맥베스는 자객을 고용하여 뱅쿠오와 그의 아들

 플레언스를 죽이기로 하나, 플레언스는 화를 면하고 도망한다. 왕위 취임 축하연에서 뱅쿠오의 아들 플레언스가 도망했다는

 보고에 접한 맥베스는 절망하고, 뱅쿠오의 환영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그 사이 덩컨왕의 아들 맬컴은

 맥더프 등과 힘을 합하여 영국왕의 도움을 받아 폭군 맥베스를 물리칠 계획을 짠다. 맥베스는 자신의 미래가 두려워 다시

 마녀들을 방문한다. 그들은 맥베스에게 첫째 맥더프를 조심하라, 둘째 맥베스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셋째 버어남 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맥베스는 안전하다는 예언을 해주는데, 이에 맥베스는 애써 안심한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데 그것은 맥더프의 성을 급습하여 그의 가족을 몰살하는 명령이다.

 맥더프와 맬컴이 영국군과 연합하여 스코트랜드를 쳐들어온다. 그 사이 맥베스 부인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몽유병에

 시달리고 피가 그녀의 손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묻어있다고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전투에 임하기 직전 맥베스는 자신의

 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삶에 대한 생각을 토로한다. 마녀의 예언이 실현된다.

 즉 버어남 숲의 나뭇가지를 꺾어 위장한 군대들이 진군하고 맥베스와 대결하는 맥더프는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온 사람이다.

 맥더프가 맥베스를 살해하고 맬컴이 스코트랜드의 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