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10/15 묵상)
<막1:2-3>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3절의 말씀은 이사야 40:3을 인용한 것인데 약간 변형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3을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
에서 우리의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즉 이사야 말씀에 따르면 외치는 자가 어디에
서 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고 외칩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에 인용된 구절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었다고 하면서 아예 외치는 자가 광야에서 외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외
치는 자에 의해 선포되는 말씀에 초점을 두었다면 마가복음은 외치는 자에게 더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외치는 자를 세례요한에게 적용시키기 위
해서 일 것입니다.
아뭏튼 중요한 것은 광야라고 하는 이 단어입니다. 이사야서에서처럼 광야에서 주의 길
을 예비하든지, 마가복음에서처럼 외치는 자가 광야에서 외치든지 분명 주님께서 우리에
게 오시는 데에는 광야가 필수코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는 광야의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도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모
습을 갖추어 갔고, 무엇보다도 출애굽한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백
성으로서 훈련받던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다윗도 광야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성군
(聖君)으로 다듬어져 갔고, 엘리야도 광야에서 죽기를 청할만큼 곤고한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그 공생애의 출발점은 팡파레를 울리면서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광
야에서 사십일이나 금식하시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에도 광야와 같
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로움과 고독 속에 기도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다짐하시기도 했습
니다.
광야는 허허벌판입니다. 먹을 양식도 마실 물도 낮에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나무도 별
로 없습니다. 광야에는 도시문명같은 그런 문명이 들어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서의 삶은 아주 단조롭습니다. 지금도 몽고벌판에서 양을 치는 사람들, 중동이나 아프리
카 사막에서 목축을 하거나 캬라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먹고 자고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활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처
럼 이렇게 도시의 문명에 익숙해 있을수록 광야는 살고 싶지도 않고 가고 싶지도 않은 곳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 한다면 광야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다고 말씀하지요.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으
려면 광야로 가야 합니다. 왜 사람많이 모인 곳에서 외치지 않고 사람도 모이지 않는 광
야에서 홀로 외롭게 외치는지 그 이유를 알려면 광야생활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것은 외치는 자의 소리는 광야에 있습니다. 즉 진정한 진리의
말씀은 광야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진정한 진리를 외치는 사
람은 결코 인기와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외치지 않고 광야에서 외칩니다. 우리가
지난 10개월 가까이 예레미야서를 묵상해 왔지만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며 예
언하던 곳이 어디였을까요? 지금의 TV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급의 목사님들처럼 수많은
관중 앞에서 열열한 환호를 받으며 예언했을까요? 그야말로 광야와 같은 곳에서 예언했
습니다.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어쩌다 들으면 예레미야에게 해를
가하고,,, 그야말로 광야에서 공허하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의 말씀 사역자들은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사람이 뒤집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자
랑하지만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은 유다백성들 중 누가 변화가 되었다고 성경은 밝히던가
요? 그 많은 분량의 예언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완전히 망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 망한 조국의 운명과 함께 광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오늘날의 우리는 광야를 잃어버렸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기 위해 광야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화려하고 쾌락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교회도 광야교회
를 찾아보기 이제는 거의 어렵습니다. 모든 교회가 크게 부흥해서 큰 성전짓고 좋은 시설
속에서 높은 문화수준을 즐기는 교회가 되기를 비젼 삼고 있지, 스스로 광야가 되겠다고
광야의 비젼을 가지는 교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광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지니
려고 하면 이 교회는 죽은 교회같다고 하면서 모두가 싫어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즐거
운 행사와 붐을 일으키는 이벤트를 행해야하고, 교회도 하나의 거대조직이 되어가면서 교
회정치에 열을 올리면서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리스도께서 걸
어가신 광야의 삶을 묵상하는 영성은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새벽기도회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때로는 주일예배 보다도
이 새벽기도회에 마음을 더 쓸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이 광야와 같은 시간이기 때문입니
다. 적어도 이렇게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자기의 삶의 한부분에 광야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새벽에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될 기도의 제목을 가
지셨기 때문에 나오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그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소망을 가
지고 광야의 삶을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그 광야에서 주님을 깊이 묵상하므로 진정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광야를 피하지 않게 하시고, 그 광야 한복판에서 주님을 만나뵙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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