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남이장군 시 소개하며

이찬조 2018. 8. 2. 18:32

손자병법 중에서

 

親而離之: 친이이지. 친하면 이간시켜라.

 

 

친하면 이간시켜라(우리 역사 속에서)

 

조선조 8대 임금 예종 때, 간신 유 자광의 모함으로 남이 장군이 순절하였다. 남이는 태종의 외손으로 세조의 총애를 한 몸에 지녔고,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남이의 시 중에 .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 달아버리고,

 

豆滿江水飮馬盡, 두만강수음마진

 

두만강의 물은 말이 다 먹어버리고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 세 되어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 누가 나를 대장부라고 하랴.

 

磨; 갈다, 문지르다, 닦다. 숫돌, 연자방아. 盡: 다하다. 모두,

 

가령, 誰; 누구, 무엇, 어찌, 묻다.

 

 

 

남이 섬(가평)에 위치한 남이 장군 묘소.

 

원래 남이섬은 섬이 아니었다.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생겼다.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어 이름 하여 남이섬이라 하였다.

 

17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 13년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이 되고, 27세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당시 유자광은 병조판서 남이 장군 밑의 병조참지였다. 장군의 공을 시기하면서 모함이 시작되었다.

 

 

남이 장군이 변방에서 오랑캐를 정벌하고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우국충절의 패기에 찬 시를,

 

유 자광이 平자를 得자로 바꾸어서,

즉, 남아이십미평국을

남아이십미득국으로 바꾸어서

나라를 빼앗으려는 역모를 꿈꾼다고 모략과 모함을 하여 죽게 하였다.

 

.........................

 

중국의 전국시대 초나라 희왕 때의 사건이다.

 

희왕에게 이웃나라에서 대단한 미인을 보내주었다.

 

희왕은 이 미인에게 푹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희왕의 애첩이 이를 질투하였다.

 

애첩은 미인에게

 

“왕께서는 당신을 좋아하는데 다만 당신의 코가 보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왕 앞에서 절대로 코를 보이지 말고 코를 꼭꼭 가리세요.”

 

미녀는 애첩에게 고맙다 인사하고 그 후 왕 앞에서 자기 코를 늘가렸다.

 

왕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애첩에게

 

“저 여자는 어찌 나만 보면 코를 가리느냐?” 고 물었다.

 

애첩은 제법 망설이는 투로 아뢰기를

 

“저 미인은 임금님의 냄새가 역겹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를 잡고...호 호.”

 

왕은 화가 나서 곧 미녀를「코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親而離之(친이이지) : 친하면 이간 시켜라!

 

참고로

위 글은 유경석씨 글을 제가 잘못된 부분을 춘천을 가평 등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남이장군은 우리 가문의 어른입니다.

종종 춘천 쪽으로 갈 때마다 묘소 앞쪽을 지나면서 ᆢ그 어른의 늠름함을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