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1- 생면부지의 만남

이찬조 2019. 12. 18. 15:15

#열국지 1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大), 중국 대륙에는 70여개의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 체제를 제대로 갖춘 나라는 진(秦),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등

일곱 나라에 불과하였기에 후세 사람들은 이들의 리더를 전국 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부른다.

이야기는 전국 칠웅시절 때인 조(趙)나라에서 시작한다.

* 성공(成功) 하려면 사람 장사를 하라.

 

온 산이 꽃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밤.

조(趙)나라의 산중에 있는 어떤 객줏집에 세 명의 투숙객(投宿客)이 한가한 등불 아래 둘러 앉아

식후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나이가 30밖에 안 되었지만 체격이 우람한 대부호(大富豪) 여불위(呂不韋)라는 거상(巨商)

이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70객 노인과 20을 갓 넘어 보이는 청년 보부상(褓負商)이었다.

생면부지의 세 사람이 오다가다 날이 저물어 객줏집에서 우연히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 된 것이었다.

 

70객 노인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아랫목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거상 여불위가 나이 어린 보부상에게 물었다.

"보아 하니, 자네는 보따리 장사를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모아 부자가 되겠는가?"

젊은 보부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보따리 장사를 해서야 어떻게 부자가 되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이런 꼴을 하고 다니는 것이지요."

"이 사람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농사를 지어먹을 일이지, 무슨 고생을 못 해서 지지리

못나게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부득이 보따리 장사를 집어치우지 못할 상황이라면 하루속히 밑천을 모아 가지고 더 큰 장사를 해야 하네."

 

"돈을 모으게 되면 어떤 장사를 해야만 대인(大人)처럼 부자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

여불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청년 보부상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며, 특산품(特産品)을 사다가 그 물건이 귀한 곳에다 비싼 값에 팔도록 하게.

가령, 조나라에서는 모직물(毛織物)과 말(馬)이 특산품이고, 제나라는 소금(鹽), 초나라는 금(金)과

귤(橘), 연나라는 대추(大棗),밤 (栗), 한나라는 강궁(强弓)과 옥(玉), 위나라는 피혁(皮革), 진나라는 단청(丹靑)과 명검(名劍)이 특산품일세. 이와 같은 특산품을 돈이 되는 대로 많이 사가지고, 그것이 귀한 나라에 가지고 가서 ,비싼 값에 되팔게 되면 대번에 수십 갑절의 이문을 볼 수가 있다네."

 

장삿속으로 전국 七國을 내 집 드나들듯이 누비고 다니는 여불위의 눈으로 보면 보따리장수 따위는

너무도 불쌍하게 보여 내친 김에 자신의 상술(商術)을 토설(吐說)한 것이었다.

그러나 등짐장수는 워낙 소심한 청년이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그렇게 이 나라 저 나라 국경을 맘대로 드나들기가 쉽겠습니까?"

여불위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젊은 사람이 이렇게도 아둔해서야 ... 쯔쯧, 이 사람아! 장사꾼에겐 돈이 장땡인데 국경이

대순가? 젊은 사람이 모름지기 큰 뜻을 가지고 크게 놀아야 할 게 아닌가? "

 

그러자 아까부터 자는 줄만 알았던 70객 노인이 자리에 누운 채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흥 ! 젊은 친구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주제에 제법 큰소리를 치고 있군!"

여불위는 생면부지의 늙은이로 부터 조롱(嘲弄)을 당하는 바람에 일순간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생각되는 바가 있어서,

"어르신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씀은 무슨 뜻이옵니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노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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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노인은 꿈틀거리며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른다는 말뜻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하며 핀잔하는 어조로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여불위는 또 한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노인의 말에는 자기가 모르는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미소까지 지으며

점잖은 말투로 이렇게 물어 보았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씀 자체의 뜻이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오나 제가 알지 못하는

<둘>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 점을 알고 싶습니다."

 

노인은 그제서야 여불위의 얼굴을 잠 깬 얼굴을 흔들고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허어 ...이제사 자세히 살펴 보니 공자(公子)의 관상이 보통이 아닌걸? 잘하면 후일, 왕후 장상(王侯將相)이 부럽지 않게 되겠는 걸?" 하고 부러운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불위는 노인의 <왕후 장상>이라는 말에 별안간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허우대가 장대하고 기상이 출중하게 생긴 덕택에 오늘날까지 <위장부(偉丈夫)>라는 말은 흔히 들어 보았지만, 자신을 두고 <왕후 장상>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여불위는 노인에게 선뜻 다가가 두 손을 덥석 움켜잡으며 이제까지와 다른 소리로 애원하듯 물었다.

"어르신! 제가 장차 어찌 되겠는지, 그 점을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노인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자네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니, 꿈을 크게 품도록 하게. 다만, 내가 자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것이네."

 

"그 <둘>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사옵니다."

"으음, 그것만은 말해 주지 .... 자네는 돈을 모으는 데는 특산품 장사가 제일이라고 했겠다?"

네.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일찍이 곤륜산(崑崙山)에서 명옥(名玉)

한 개를 50냥에 사다가, 제 나라 왕후(王后)에게 5백 냥에 팔아넘긴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

장사치고는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인은 여불위의 말에 도리질을 하면서,

"못난 소리만 하고 있군! 그러니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네."

"옛 ...? 그러면 더 좋은 장사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 "

 

"있다 뿐인가 ? 자네가 하고 있는 귀물 장사보다도 더 좋은 장사가 있다네! "

"어르신 ! 도대체 어떤 장사길래, 귀물을 파는 것 보다 더 큰 이문을 남길 수가 있다고 하십니까? "

 

여불위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어조로 노인에게 사정하듯이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허허 웃으며 말을 하는데,

"자네가 알고 싶어 하는 최고의 장사는 바로 '사람 장사'일세."

"예 ..? 사람 장사요?"

 

여불위는 너무도 뜻밖의 말을 듣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장사의 방법을 누구 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 오던 여불위도 '사람 장사'라는 말만은

금시초문(今始初聞)이었다. 그러기에,

"사람 장사라면, 창녀(娼女)나 노비(奴婢)를 사고파는 장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캐물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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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노인은 화를 벌컥 내면서,

"에끼! 이 벽창호 같은 사람아, 자네는 누구를 뚜쟁이로 알고 있는가?"

하고 호되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실언을 크게 후회하면서, 노인 앞에 넙죽 엎드려 사과하였다.

"어르신! 제가 크게 잘못했습니다.. 저의 장래를 위해 현명하신 가르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노인은 그제서야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한다.

"단순히 돈을 잘 벌어 모으려면 자네 말대로 특산물 장사가 제일일걸세.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는 법이야. 돈이 많게 되면 권력도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네. 그러므로 옛날부터 진짜

장사꾼은 돈보다도 권력에 탐을 내는 법이야. 그도 그럴 것이, 권력을 잡으면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거든. 게다가 그 돈을 관리하는데도 권력만 한 것이 없지."

 

듣고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러면 사람 장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옵니까? "

"자네, 태공망(太公望)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

"태공망이라면 제 나라의 시왕(始王)인 강태공(姜太公)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래, 알고는 있구만... 강태공은 본디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이나 해먹던 늙은이였지.

그런데 그 강태공이 어느 날 낚시를 하다가, 주(周)나라 태자인 서백(西佰)을 알게 됨으로써,

일약 군사(軍師)로 발탁되었다가, 후일에는 제나라의 왕이 되지 않았는가 ? ....

이렇게 강태공이 일국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 부터 서백과 친하게 지냈던 탓이니,

이야말로 <사람 장사>를 잘 한것 아니고 무엇이겠나? 자네는 '사람 장사'야말로 천하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거대한 장사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내 말 알아듣겠나? "

 

여불위는 노인의 말을 듣고 나자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을 느꼈다.

 

"어르신의 귀하신 말씀은 가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알았으면 됐네. 이젠 그만 하고, 잠이나 자세."

말을 마친, 노인은 돌아눕기가 무섭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불위는 잠이 오기는커녕 , 조금 전에 노인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와 잠이 오지 않았다.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것을 지키려면 권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 아니, 권력만 잡게 되면 돈은

저절로 굴러들어 온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는 돈을 모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으려고 힘쓰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겠나?)

 

노인의 말을 듣고 대몽(大夢)이 잉태(孕胎)된 여불위는 밤새껏 공상을 하면서,

(내일 아침에는 저 노인에게 권력을 잡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