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29) 운석에 새겨진 망국지조

이찬조 2020. 1. 12. 09:27

열국지(熱國誌) (29) 운석에 새겨진 망국지조

 

소주(蘇州)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기후가 온화하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이곳 여자들이 다른 지방의 여자들 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점이다.

조고가 시황제를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꾀어, 예정에도 없던 소주에 들르게 한 것은 소주 미녀들을 듬뿍 안겨 주어서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겨울이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소주 지방은 기후가 온화하여, 산과 들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해 있었다.

한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어...함양(咸陽)은 지금 추위가 한창인데 이곳에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해 있으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구나! "

시황제가 행궁(行宮) 정원의 꽃을 보면서 그렇게 감탄하자 조고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황제 폐하,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기로도 유명합니다만,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이 또 하나 있사옵니다."

"그것보다도 뛰어난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그것은 해어화(解語花)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해어화 ?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처음 듣는 소리구나."

"해어화란 옛부터 미인의 고장인 소주 미녀들을 두고 일컫는 말이옵니다."

"옳치! 소주 미녀들을 가리켜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고 한단 말이지?

그것 참! "

시황제는 껄껄 웃으며 조고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조고는 허리를 굽신 거리며,

"예부터, <소주 계집을 안아 보기 전에는 천하의 미인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이런 말이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지방 여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애 ....? 그렇다면 오늘 밤은 기대가 크구나. 하하하...."

"오늘 밤 폐하를 모시게 하려고 소주 미인들 중에서도 50명을 특별히 선발하여, 지금 목욕을 시키고 있는 중이옵니다."

"하하하 오늘 밤을 위해서 50명씩이나? 50명까지는 너무 과한 것 같구나."

"폐하의 정력으로는 50명도 부족하실 것이옵니다."

"예끼 이놈! 너는 내가 물갠 줄 아느냐 물개라면 숫놈 하나가 암놈을 백마리까지 거느린다고 하더라만, 사람의 정력이 그렇게 까지 왕성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폐하는 인자(人子)가 아니고 천자(天子)이시옵니다. 자고로 천자의 정력은 끝이 없다고 들었사옵니다. 밤이 짧아 50명에게 은총을 골고루 베푸시기 어려우시면, 내일 밤이 또 있지 아니하옵니까?"

조고는 시황제의 실력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초인적인 정력가>로 치켜세웠다. 시황제가 무엇보다도 듣기 좋아하는 말이 <초인적인 정력가>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고는 이처럼 교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이날 밤 시황제가 침전으로 들어가자 조고가 부리나케 쫒아오며 아뢴다.

"미녀들을 지금 별실에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밤이 이슥하오니, 미녀들을 입실(入室) 시키는 것이 어떠하시겠나이까?"

시황제는 흔쾌히 웃으며 대답했다.

"미녀란 언제 보아도 즐거운 것이니라. 지금 불러 들여라."

"오늘 밤에는 폐하전에 특별한 쾌락을 드리고자 미녀들을 모조리 알몸으로 현신(現身)하게 할까 하옵는데, 폐하께서 윤허해 주시올른지 매우 걱정스럽사옵니다."

"뭐야? 옷을 입히지 않고 모두들 알몸으로 들어오게 하겠다고?

그거야말로 기발한 착상이로구나!"

"폐하전에 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드리려고 소인이 착안한 것이옵니다."

"네가 짐을 위해 이처럼 충성을 다해 주고 있으니, 실로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본디 여인의 참다운 아름다움은 육체미에 있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옷을 입혀 놓으면 정작 귀중한 육체미는 옷 속에 가려져 버려, 오직 용모만을 감상하시게 되기 때문에, 오늘 밤은 특별히 미녀들을 알몸으로 현신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올커니! 네가 알기는 아는구나. 계집이란 얼굴도 아름다워야하지만, 그보다도 더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육체미니라. 얼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정작 온유지향(溫柔之鄕)의 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거든. 온유지향의 맛이 좋으려면 결국은 피부가 곱고 부드러우면서도 전체적인 몸의 균형과 맵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조고는 머리를 연실 굽신거리며 다시 아뢴다.

"그러면 지금부터 한 명씩 호명 현신(呼名現身)하게 할 터이오니, 폐하께서는 마음껏 감상하시옵소서."

이윽고 50명의 미녀들이 휘황찬란한 불빛을 받으며, 한 사람씩 알몸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 어전에 큰절을 올리는데, 젊음이 용솟음쳐 오르는 그 육체들은 어느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오오! 소주의 미인들이 이처럼 천하의 절색일 줄은 미처 몰랐구나. 너무도 아름다워 눈이 부실 지경이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조고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아뢴다.

"폐하 ! 천하의 미인들 모두가 폐하의 소유물이오니, 마음에 드시는 대로 골라 즐겨주시옵소서."

"진수성찬이 너무도 요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나."

사실 시황제는 너무도 황홀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소주 미녀들에게 맛을 들이자, 시황제는 지방 순행을 중지한 채 언제까지나 소주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였다. 조고는 약삭빠르게 그런 눈치를 알아채고 시황제에게 품했다.

"폐하!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오니, 지방 순행을 잠시 중지하시고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심이 어떠하시겠나이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러면 겨울을 여기서 보내고, 봄이 오거든 지방 순행을 다시 떠나기로 하자."

이와 같은 일정 변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승상 이사였다.

군주(君主)의 행행(行幸)은 지엄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한번 공포된 여정(旅程)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음대로 변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사가 간언(諫言)을 올리고 싶어도, 조고가 중간에서 황제와의 면담을 가로막고 있음을 어찌하랴.

이사는 생각다 못해 조고를 정면으로 꾸짖었다.

"군주의 여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네. 그러하니 황제 폐하께서는 이미 공포하신 대로 지방 순행을 곧 떠나셔야 하네."

그러자 조고는 비웃는 듯한 어조로 대답한다.

"승상 합하! 법도란 백성들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황제 폐하께 어찌 법도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오리까?"

"그런 것이 아니래두 그러네. 황제께서 공포하신 여정을 중단하고 소주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계시면, 폐하를 영접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게 되겠나?"

조고는 그 말이 비위에 거슬려 승상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말했다.

"누가 뭐래도 황제 폐하께서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실 것이옵니다. 지금 소인이 승상에게 드리는 말씀은 폐하의 황명이시오니, 그런 줄 아시고 다시는 여러 말씀 아니 하시는 것이 신상에 이로우실 것이옵니다."

조고의 방자스러운 언동에 승상 이사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이로부터 두달 쯤 지날 무렵, 소주 고을에는 놀라운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다.

어느 날 밤, 하늘에서 커다란 별똥별이 긴 꼬리를 끌며 소주 고을에 떨어졌는데, 그 별똥(隕石)에는 <시황사이지분(始皇死而地分)>이라는 여섯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 글자는 <시황제는 죽고 진나라 영토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버린다.>는 뜻이었는데, 이것은 누가 보아도 <놀라운 괴변>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멀쩡히 살아 있는 시황제가 죽는다고 예언한 것도 예사로운 일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 소문은 백성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져서 마침내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의 귀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뭐야?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그 같은 해괴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더라구?"

승상 이사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시황제의 황음무도한 탈선 행위와 조고의 안하무인의 방자(放恣)한 언동(言動)으로 미루어 보아, 망국지조(亡國之兆)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고는 이같은 소문을 듣고, 하늘이 낮다고 펄펄 날뛰며,

"어느 놈이 그와 같은 요망스러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돌아다니는지, 그놈을 잡아 당장 물고를 내야 한다!"

하고 그 사실을 그날로 시황제에게 고해 바쳤다.

시황제는 조고의 말을 듣고 불같이 노했다.

"그런 글자가 새겨져 있는 운석이 사실이라면, 당장 그 운석을 가져 오너라!"

관헌들이 총출동하여 문제의 운석을 찾아내어, 시황제 앞에 갖다 바쳤다.

문제의 운석은 길이가 한 자 가량되는 말뚝같이 길고 둥근 모양이었는데, 거기에는 <始皇死而地分> 이라는 여섯 글자가 분명히 새겨져 있지 않은가.

시황제는 그 운석을 보고 더욱 노했다.

"별이 타고 남은 운석이라면 빛깔부터가 새캄해야 할텐데, 이게 어디 타다 남은 돌이냐 ! 이것은 어떤 반역 도배가 짐을 저주하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니, 그놈을 당장 색출해 내어라! "

시황제의 불같은 명령 일하에 소주 고을 관헌들이 총동원 되어 범인 색출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을 하여도 범인을 잡아낼 길이 없었다.

시황제는 그럴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그 운석이 떨어진 곳이 어느 곳이냐?" 하고 물었다.

"여기서 5리쯤 떨어진 <송백리>라는 마을 한복판에 떨어졌사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돌이 아니라, 어떤 선비란 놈이 돌에 글씨를 새겨 넣어 악담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 마을에 있는 선비란 놈들은 모조리 잡아죽여라."

시황제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명령을 내렸건만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가만 있자, 그 마을 이름이 <송백리>라 했겠다? 송백리란 절개가 송백같이 굳다는 뜻이 아니냐?"

"마을 이름을 송백리라고 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닌가싶사옵니다."

"그 마을은 사람이 얼마나 사는 마을이냐 ?"

"깊은 산속에 많은 집들이 흩어져 있어 자세히는 알 수가 없사오나, 대략 5,6천 명은 될 것이옵니다."

"알았다. 그러면 앞으로 이런 불충지사(不忠之事)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송백리에 사는 백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불태워 죽여 버려라."

그리하여 송백리의 1만여 백성들은 <운석사건>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것은 너무도 잔인한 시황제의 폭정이었다.

운석사건이 마무리 된 후로 시황제는 밤마다 몹시 사나운 꿈에 계속 시달렸다.

어느 날 밤은 흉몽(凶夢)에 시달리다가 깨어나 보니,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지 않던가.

시황제는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승상 이사를 불러서 꿈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짐은 요즘 밤마다 좋지 않은 꿈을 꾸게 되는데, 무슨 까닭으로 밤마다 꿈자리가 이토록 사나운지 모르겠구려."

"무슨 꿈을 꾸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짐은 어젯밤 꿈에 동해 바다에서 해룡(海龍)과 대판 싸우고 있었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적룡(赤龍)한 마리가 날아 내려오더니 짐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덤벼들더란 말이오. 하여 기겁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깨어 보니 꿈이었소."

이사는 고개를 무겁게 기울였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흉몽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마, 황제에게 <흉몽>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이사는 얼른 이렇게 둘러대었다.

"봄에 꾸는 꿈은 <개꿈>이라는 속담이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오랫동안 지방 순찰로 인해 옥체가 피로해지신 탓인 듯 싶사옵니다. 꿈이란 것은 믿을 것이 못 되오니,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지난번에는 산 위에 푸른 운기(雲氣)가 감돌아서 짐을 불쾌하게 하더니, 어젯밤에는 적룡이 짐을 삼키려고 했으니, 푸른 빛깔과 붉은 빛깔이 짐과 무슨 원수지간인지 모르겠구려."

시황제는 언젠가 꿈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동자와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옥새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우던 일이 또다시 연상되어, 기분이 매우 침울하였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계시면 마음이 침체해지셔서 꿈자리가 뒤숭숭해지기 쉬운 법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이곳을 하루속이 떠나셔서, 일단 함양으로 환궁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짐도 환궁하고 싶기는 하오. 그러나 지방 순행은 이미 공포해 놓은 일이니, 남은 지방도 잠시잠시 둘러보고 나서 환궁하기로 하겠소."

그리하여 시황제가 소주에 머문지 석 달 만에 다시 지방 순행의 길에 오르게 되자, 조고가 시황제 곁으로 다가와 귀엣말로 아뢴다.

"폐하! 평원진 별궁에서, 천여 명의 궁녀들이 황제 폐하의 임어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전갈이 왔사옵니다."

 

[출처] 열국지(29) 운석에 새겨진 망국지조 |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