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27) 환관 조고

이찬조 2020. 1. 10. 21:12

열국지(熱國誌) (27) 환관 조고

 

환관(宦官)이란, 궁중에서 근무하는 남자 내시(內侍)를 말한다.

내시란 후천적으로 불알을 떼어내 성기능을 불가능하게 만든 성불구자이다.

궁중에는 왕비(王妃)를 비롯하여 비빈(妃嬪)과 궁녀(宮女)들이 많이 살고 있는 까닭에, 멀쩡한 남자들을 마음대로 출입시켰다가는, 치정 사건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궁중에서는 남자 시종을 쓸 때는, 반드시 불알을 떼어 사내구실을 할 수 없게 만든 고자(鼓子)를 쓰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내시, 즉 환관은 사내구실을 못하다 보니, 신분이 매우 낮은 부류로 취급되는데, 현실에서는 조금 다른 것이, 이들은 지체는 비록 낮으나 항상 왕을 비롯하여 귀인(貴人)들 곁에 머무는 관계로 환관의 세도는 재상들조차도 무시할 바가 아니었다.

황제의 비서실장 조고(趙高)도 따지고 보면 일개의 환관에 지나지 않았지만, 황제를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라면 승상도 감히 거역을 못했다. 지체는 보잘 것 없어도 실질적인 세도는 장상(將相)들의 뺨을 칠 정도였던 것이다.

조고는 여색을 모른다. 아니 알긴는 하여도 남근(男根)이 잘려 나가고 없으니, 비록 여자가 있더라도 어찌해 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그의 인생살이의 관심은 재물과 세도에 쏠릴밖에 없었다.

권력이란 한 번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지속적으로 탐(貪)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조고도 황제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다 보니, 나중에는 자기 자신이 황제인 듯한 착각조차 느끼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황제를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알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제나 내나 다 같은 인간일 뿐인데 무엇이 다른 것인가?)

조고는 황제의 일거수일투족과 음탕한 사생활 전반을 낱낱이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황제에게 계집을 제공하는 것은 조고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궁녀들은 조고의 눈에 들기 위하여 저마다 뇌물을 갖다 바쳤다. 조고의 눈 밖에 나면 제아무리 천하의 절색이라도 황제의 콧김을 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조고의 코는 자꾸만 높아만 가고 있었다.

(황제는 여색에 미쳐 돌아가는 광인(狂人)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황제는 내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황제에게 계집을 골라 바칠 때에는, 조고는 계집을 발가벗겨 일일이 몸 검사를 하였다. 자기는 직접 성행위를 할 수 없어도 황제의 안전을 위한답시고 젊고 예쁜 계집의 몸뚱이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만져보고 들여다보기를 일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제가 골라 바친 계집과 동침할 때에도 조고는 방의 한편 구석에 꿇어앉아 감시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남자가, 계집과 하는 적나라한 성행위를 지켜보는 사람을 곁에 두고 마음껏 즐길 수가 있을까. 그러나 진시황은 그러한 생활을 반복하며 밤을 보내 왔으니, 그는 아마도 <환관은 오직 환관 일 뿐, 사내도 사람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조고는 그와 반대로, (나는 황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황제의 운명은 오직 나의 손에 달려있다)

라는 생각조차 품고 있었다.

이처럼 권력이 가지고 있는 허실(虛實)은 사람의 마음에 혼란을 일으키는 기묘한 것이었다.

조고는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승상이나 대부를 조용히 불러서,

"이 일은 이러저러하게 처리하시옵소서. 소인이 말씀드리는 것은 폐하의 황명이시옵니다." 하고 말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조고는 이 모양으로 권력 행사에 재미를 붙이게 되자, 황제가 중신을 직접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해서는 황제를 자기가 독점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에 벌어진 창해공에 의한 황제의 암살 미수사건은 ,조고가 권력을 독점할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조고는 어느 날 황제에게 이렇게 품했다.

"오늘은 황제 폐하 전에 각별히 부탁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슨 일이냐. 어서 말해 보아라."

조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황제 폐하께옵서는 성품이 관인후덕(寬仁厚德)하시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계시옵니다.

연나라의 자객 형가와 한나라의 자객 창해공 같은 암살시도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원인도 따지고 보면 폐하께서 사람을 많이 만나시는데 있었던 것이옵니다. 생각해 보시옵소서. 폐하께서 그런 불순분자들을 일체 만나 주지 않으셨다면, 그런 불상사가 어찌 일어났을 것이옵니까?"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기는 그렇지. 그자들이 짐을 아무리 죽이고 싶었어도 짐이 만나주지 않았다면 그런 사태도 없었겠지, 그건 네 말이 옳다."

"폐하! 그러하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외래객은 물론이고 승상, 대부와 재상 같은 고관들도 직접 만나는 것을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외객을 만나지 말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어도 승상이나 재상들 까지 만나지 않으면 정사를 어떻게 다스려 나가겠는냐, 그것만은 말이 안되는 소리로다."

그러나 조고는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품한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황제 폐하는 언제나 <신성불가침의 천상(天上)의 어른>이라는 권위를 보이셔야하옵니다. 승상이나 재상들이 비록 고관이기는 하오나, 그들과도 빈번히 만나시면 <황제의 존엄성>이 저절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 <신성불가침의 존엄성>을 유지해 나가시려면 누구하고도 직접 만나지 마셔야 하옵니다."

"승상과 재상들은 만나지 않으면 누구하고 정사(政事)를 도모해 나간다는 말이냐 ?"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폐하께서 승상부에 하교하실 일이 계시면 소인이 중간에서 전달하면 될 것이옵고, 승상부에서 폐하 전에 품결(稟決)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소인을 통하여 서장(書狀)으로 올리게 하면 무슨 일인들 불가능하겠나이까?"

" 음 ---- ....."

시황제는 조고의 충고를 그럴듯하게 생각하였다. 아무리 군신지간(君臣之間)이라도 얼굴을 자주 대하면 황제의 존엄성이 희박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음 .... 모든 정사(政事)는 비서실장인 너만을 통하여 하달(下達)하고 상신(上申)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지?"

"예,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하셔야 폐하의 존엄성이 더욱 거룩하게 되실 것이옵니다. 또 그렇게 하셔야

자객(刺客)들의 접근도 막을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자객들에게 여러 차례 봉변을 당했던 시황제는 <자객>이라는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 왔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그러면 오늘부터는 아무도 만나지 않토록 할 테니, 모든 일은 중간에 네가 나서서 처리하도록 하라." 하고 말해 버렸다.

조고의 교묘한 술책에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고 만 것이었다.

일국의 통치자가 행정부의 대신들을 직접 만나지 아니하고, 내시를 통해 국정을 다스려 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조고는 재주가 얼마나 비상했던지 시황제의 통치 방법을 그렇게 바꿔놓고 말았다.

황제의 허락이 내리자, 조고는 그날로 승상과 재상, 대부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황제 폐하께서는, 오늘부터 모든 사람을 만나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승상부에서 폐하의 재가(栽可)를 받으실 일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문서로 작성하여 소인에게 제출해 주시옵소서. 폐하께옵서 승상부에 하명하실 일이 있는 경우에도 역시 소인을 거쳐서 하달하실 것이옵니다. 이것은 황제 폐하의 황명이시옵니다."

승상 이사를 비롯하여 모든 중신들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그냥 들어 넘기기에는 너무도 중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승상 이사는 몹시 못마땅한 어조로 조고를 나무랐다.

"그대는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을 씨부리고 있는가? 승상인 나도 황제 폐하를 직접 만나 뵙지 못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 "

승상으로서는 당연한 노여움이었다.

조고는 승상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공손한 어조로,

"지금 승상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정 수반이신 승상조차 황제 폐하를 직접 만나 뵙지 못하고 국사를 문서로만 상신한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인 것 같사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소인도 승상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옵니다. 그러나 황제 폐하께서는 소인더러 승상부에 그대로 하달하라는 황명이 계셨으니 소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조고는 어디까지나 <황명>을 내세웠다. 승상 이사도 <황명>이라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이미 그 절대적인 결과를 수 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이러다 보니 다른 재상과 중신들도 감히 <황명>의 부당함을 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어 그날부터 승상 이사조차 모든 국사를 조고와 상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마치 모든 국사가 조고의 손에서 놀아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조고는 아침부터 밤중까지 황제와 생활을 같이해 오면서, 황제가 뒷일을 볼 때에는 밑을 닦아 주고, 목욕을 할 때에는 때를 밀어 주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계집을 골라다 안겨 주고, 밤 행사가 끝났을 때에는 뒷물까지 시켜 주었다. 이처럼 겉으로는 온갖 충성을 다해 오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한손에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승상 이사는 조고의 간섭이 크게 못마땅하였다. 조고의 농간으로 국사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환관 조고를 단호하게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고를 제거할 사람은 시황제밖에 없는데, 조고의 방해로 시황제조차 직접 배알할 기회가 없음을 어찌하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이제는 승상 이사조차도 싫든 좋든 간에 조고의 비위를 맟출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조고가 자기한테 앙심을 먹고 시황제에게 엉뚱한 고자질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때에는 자기 자신의 목도 보장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고는 자기를 대하는 승상 이사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크게 만족스러웠다.

(음 ... 이제는 승상조차도 나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

이렇게 조고가 황제를 등에 업고 국정(國政)을 농단(壟斷)하는 사실이 시간이 갈수록 널리 알려지게 되자, 뜻있는 선비들은 눈살을 찌푸려가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진나라가 망할 날도 머지 않은게로다! "

그러나 그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유배(流配)중이던 태자 부소(扶蘇)였다.

부소는 그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만리장성 축영 도감인 <몽염> 장군에게 달려가 상의하니, 몽염도 펄쩍 뛰면서 말한다.

"일국의 국정을 환관에게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태자께서는 황제 폐하께 급히 상소문을 올리셔서 조고를 당장 참형에 처하도록 하시옵소서. 조고를 지금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후일 태자께서 등극하시는데 큰 고난을 면하기가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고맙소이다. 이 일은 단순히 나의 등극과 관계되는 문제라기 보다는 국가의 기강과 존망에 관계되는 일이오. 따라서 황제의 노여움을 사는 한이 있어도 상소문을 반드시 올려야 하겠소."

이리하여 부소는 시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제 폐하 , 그간 기체후 일양 만강하시옵니까? 듣자옵건대, 폐하께서는 조정의 만조백관들을 일체 만나지 아니하시고 한낱 내시에 불과한 조고를 통해서만 국정의 교지(敎旨)를 하달하시는 까닭에, 이제는 승상조차 조고 앞에서는 머리를 못 들게 되었다고 하오니, 국가의 기강이 이처럼 문란해 가지고서야 어찌 나라를 보존해 나갈 수 있으오리까. 지금이라도 조고를 당장에 능지처참하시고 폐하께서 친히 국정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시지 아니하면 모처럼의 통일천하의 성업(聖業)도 언제 와해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소자는 유배지에서 눈물을 머금고 간언을 올리오니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시와 부디 소자의 간언을 청허해 주시옵소서.>

태자 부소의 상소문은 황제가 머물고 있는 아방궁으로 급송되었다.

그러나 조고의 사전 검열이 없이는 여하간의 문서도 황제에게 전달될 수 없었다.

부소의 상소문을 읽어 본 조고의 얼굴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나를 당장에 능지처참해 버리하고 ..... ?)

조고는 상소문을 읽어 보기가 무섭게 즉석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리면서 혼자말을 씨부렸다.

(흥! ...., 태자면 그만인 줄 아느냐. 누가 누구의 손에 죽게 되나 어디 두고 보자. 너를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리라! )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악담을 퍼부었다.

 

 

[출처] 열국지 (27) 환관 조고(趙高)|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