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38) 역발산기개세 항우의 출사

이찬조 2020. 1. 22. 15:03

열국지 (38) 역발산기개세 항우 (力拔山氣蓋世, 項羽) 의 출사(出師)

 

항량과 항우는 진시황에게 망해 버린 초(楚)나라의 명장이었던 항연(項燕)장군의 후예들이다.

그들 숙질(叔姪)간은 진작부터 천하를 구할 웅지를 품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통일천하의 절대권 자였던 시황제가 죽고 나자 전국 각지에서 어중이떠중이들이 자신들이 영웅호걸임을 자처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겠노라며 속속 등장했다.

항량과 항우도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항량과 항우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아, 오랫동안 회계(會稽)라는 곳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계 성주(城主) 은통(殷通)이 천만 뜻밖에도 항량에게 만나자는 전달을 보내 왔다.

항량은 조카 항우에게 물었다.

"성주 은통이 나를 만나자고 사람을 보내 왔는데, 만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으냐?"

"성주가 무슨 일로 아저씨를 만나려는지 모르겠으나, 성주를 만나 본들 손해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저쪽에서 만나자면 얼마든지 만나 주시죠."

"허기는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만나 보기로 하지."

항량은 그날로 은통을 찾아갔다.

은통은 항량을 정중하게 맞으며 말했다.

"시황제가 죽고 나자, 전국 각지에 내노라는 영웅호걸들이 천하를 호령해 보려고 저마다 궐기하는 중이오. 때가 때인 만큼 나도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일어나 천하를 도모해 보았으면 싶은데, 항량 장군이 나를 도와줄 수는 없겠소? 이일이 성공하는 날이면 장군의 은공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요컨대 시황제를 대신하여 황제가 되고 싶으니 자기를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항량은 그 말을 듣자 ,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을 몰라도 영 모르는 위인이로다! 어쩌면 당신 같은 조무라기가 감히 황제의 자리를 넘겨다본단 말이냐!)

그러나 겉으로는 머리를 정중히 수그려 보이며 엉뚱하게 대답했다.

"성주께서 들고 일어나신다면 소생은 전력을 다하여 도와 드리겠습니다."

은통은 크게 기뻐하며 항량의 손을 힘껏 움켜잡으며 말했다.

"고맙소이다. 항량 장군이 나를 도와주신다면 대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소. 소문에 의하면, 장군의 휘하에는 항우(項羽)라는 장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

"예, 있사옵니다. 우는 저의 조카 아이옵니다."

"아, 그래요? 항우 장군은 힘이 천하장사인데다가 기개(氣槪)가 웅장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槪世)의 항우>라고 불러 온다고 하는데, 항우 장군이 그렇게나 대단한 인물이오?"

성주 은통이 내심으로 탐을 내고 있는 장수는 항량이 아니라 그의 조카인 항우였던 것이다.

항량은 은통의 검은 뱃속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생각하는 점이 따로 있어서,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대답했다.

"우는 올해 24세 이온데, 힘에 있어서는 그 애를 당해 낼 사람이 아무도 없사옵니다. 그 아이는 장차 큰 인물이 되리라고 믿사옵니다."

그러자 은통은 군침을 삼키며 묻는다.

"허어 ..... 항우가 그렇게나 뛰어난 인물이오?"

"힘도 천하장사지만, 기상 또한 웅장하니, 난세(亂世)를 평정할 큰 인물임에 틀림없을 것이옵니다."

은통은 그 말을 듣고 나자 항우가 더욱 탐이났다.

"항우가 그런 인물이라면 나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구려. 그 사람을 한번 보내 줄 수 없겠소? "

"그러시죠. 만약 우를 부하로 쓰신다면, 성주께서 계획하시는 대사가 틀림없이 성공하실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더욱 만나고 싶구려. 장군께서 돌아가시거든 항우를 꼭 좀 보내 주시오. "

항량은 집에 돌아오자, 곧 항우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성주 은통이 천하를 도모할 생각을 가지고 너를 부하 장수로 쓰고 싶다면서 자기에게 곧 좀 보내달라고 하더라."

항우는 그 말을 듣고 관자놀이가 들먹이도록 버럭 화를 낸다.

"뭐요? 은통 같은 쫄때기가 나를 부하로 쓰겠다고요? 아니 그래, 아저씨는 그런 놈을 그냥 살려 두고 오셨습니까?"

"하하하, 살려두지 않으면 어떡하겠느냐. 너는 은통의 부하가 될 생각이 없다는 말이냐?"

"아저씨는 그걸 말씀이라고 하고 계십니까?"

항우는 분노를 참지 못해 길길이 날뛰다가,

"가만있자! 그런 놈을 살려 두어서는 심통이 풀리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그놈을 물고를 내고 오겠습니다."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방에서 달려 나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항량은 약간 당황해 하면서,

"우야! 그놈을 죽이려거든 내일 나하고 함께 가자!"

하고 큰소리로 제지하였다."

"주먹으로 한 방만 후려갈기면 그만인데, 무엇 때문에 아저씨까지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 잔소리 말고 거기 앉거라. 너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매사를 너무 서두르는 것이 큰 결점이니라."

항우는 마지못해 그 자리에 도로 주저앉으며,

"은통 같은 쫄대기 한 놈쯤 때려죽이는데 무슨 절차가 필요합니까?"

하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항량은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런 게 아니다. 성주를 때려 죽여서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그 점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게 아니냐?"

"참 그렇겠군요. 그놈을 때려죽임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이로운 점이 있을 지가 더 중요할 것 같군요."

항우는 잠시 골똘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결심한 바가 있는지 얼굴을 번쩍 들며 외쳐대었다.

"아저씨! 이왕이면 은통이란 놈을 죽여 없애고, 그 자리를 아저씨가 타고 앉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도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 근거지가 마련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항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생각해 주었다. 내가 진작부터 노리고 있던 점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러나 성주를 죽이고 내가 그 자리를 타고 앉으려면 백성들을 납득시킬 만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졸때기 한 놈쯤 죽여 없애는데, 무슨 대의명분이 필요합니까?"

"모르는 소리! 성주를 죽이는 데도 대의명분이 필요하지만, 성주의 자리를 타고 앉으려면 대의명분이 더욱 필요한 법이다. 그런 것도 없이 어떻게 성주가 되겠다고 하겠느냐."

"대의명분이야 아무렇게나 꾸며대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무슨 소리! 대의명분이야 말로 백성들을 위하는 내용이라야 한다. 은통이 백성들에게 미움을 사 오는데다가, 지금은 진나라에 역모까지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하니 이 점을 대대적으로 내세워서 그자를 없애 버리게 되면 우리들의 행동은 단순한 살해에 그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한 당당한 의거(義擧)로 간주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나를 성주로 인정하지 않겠느냐."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감탄하였다.

"과연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아저씨는 지금 당장 저와 함께 은통을 만나러 가십시다. 그래서 제가 대의명분을 내세워 은통을 때려죽일 터이니, 아저씨는 백성들의 성원을 얻어 성주가 되어 주십시오. 우리가 장차 천하를 도모하려면, 지금부터 그와 같은 비상 대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 입니다."

그리하여 항우는 항량과 함께 은통을 찾아가게 되었다.

은통은 두 사람에게 환영연을 베풀어 주면서 항우에게 말했다.

"항우 장군의 선성(先聲)은 진작부터 익히 들었소이다. 오늘은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려."

그러자 항우는 퉁명스러운 말소리로,

"내가 일부러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했다면서요?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나를 어떤 일로 오라 가라 하셨소?"

하고 대뜸 시비조로 나왔다.

은통은 흑곰 같은 덩치에 따지듯이 얼러 대는 항우의 소리에 그만 겁에 질려 몸을 부르르 떨며 항량에게 묻는다.

"내가 항우 장군을 왜 오시라고 했는지, 아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던가요?"

항량은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대답했다.

"성주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우에게는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를 부르신 이유를 본인에게 직접 말씀하십시오."

"아,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항우 장군에게 직접 부탁하기로 하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항우에게 말했다.

"진나라는 이미 망조(亡兆)가 들었기에 나는 이 기회에 천하를 도모해 볼 생각이니, 항우 장군은 나를 꼭 좀 도와주기 바라오. 일이 성취되면 장군의 은공은 잊지 않을 것이오."

은통이 말을 끝내자, 항우는 느닺없이 버럭 화를 내며,

"뭐야? 너 같은 쫄대기가 진나라를 배반하고 천하를 도모해 보겠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네놈은 배은망덕한 역적 놈이 아니냐 오냐! 네가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나는 너 같은 역적은 도저히 살려 둘 수 없도다!"

하고 우레와 같은 고함을 지르며 은통을 한 주먹으로 때려죽여 버렸다.

그리고 밖으로 달려 나가 거리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쳐대었다.

"이 고을 성주라는 자가 역모를 꾸미기에, 나는 항량 장군의 명에 의하여 그 자를 나의 주먹으로 때려죽여 버렸다. 항량 장군은 본시 초나라의 명장이셨던 항연 장군의 후예이시니 그분을 성주로 받들면 백성들은 진나라의 가혹한 학정(虐政)에서 벗어나 옛날 초나라 시절의 태평성대를 다시 누릴 수 있게 될 것이오."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하여 항량은 백성들에 의해 성주로 추대되었다.

항량은 수천 군중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외쳤다.

"친애하는 초국 동포 여러분 ! 우리들은 진나라의 억압에서 벗어나, 초나라를 다시 일으킬 때가 이제야 도래하였습니다. 백성들을 보호하고 초나라를 재건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지상의 명령입니다. 나는 일개 성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나라를 철저하게 때려 부수고 만천하를 초나라 일색으로 구현시켜 놓고야 말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항량을 열화와 같이 환영하였다.

그리하여 항량과 항우는 은통이 거느리고 있던 군사 8천여 명을 일약 부하로 삼을 수 있었다.

그 무렵 강동(江東)에서는 <진영>이라는 의사(義士)가 2만여 명의 초국 재건 독립군을 길러 오고 있었다. 진영은 항량이 성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군사를 몰고 달려와 항량과 합류하였다.

게다가 인근 각지에서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와서, 항량의 군사는 불과 몇 달 사이에 5,6만의 대군(大軍)으로 불어나 버렸다.

이렇게 항량이 회계성주가 되면서 그 세력이 나날이 불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항량과 항우의 세평(世評)은 좋은 편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은통과 교분이 두터웠던 계포(季布)와 종이매(鍾離昧) 같은 의사(義士)들은 은통이 항우에 손에 타살되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크게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회계로 달려와, 항우에게 서슬이 퍼렇게 따지고 들었다.

"그대는 남의 고을의 성주를 때려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 버렸으니, 그것을 어찌 의(義)라 할 수가 있겠는가. 은통을 때려죽인 이유를 분명히 말해 보라. 그대의 행동이 이치에 합당치 않으면 우리는 단연코 용서치 않으리라."

그러나 항우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껄껄껄 웃고 나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은통은 국록을 먹고 살아오면서 반역을 도모한 자다. 세상을 바로잡아 보려는 항량 장군께서 어찌 그런 자를 살려 둘 수 있겠는가. 진나라는 이미 국운이 다하여 이제는 초나라가 일어날 판이니, 그대들도 우리와 함께 진나라를 거꾸러뜨리고 초나라를 일으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대들은 구차스럽게 은통의 죽음에 연연해하지 말고 천하의 대세에 순응하여 우리와 함께 초나라를 일으키기로 하자. 그러면 그대들의 공적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항우의 기개가 너무도 당당하였으므로 계포와 종이매는 자기들도 모르게 머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그리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는데,

"실상인즉 우리들도 진작부터 초나라를 일으켜 볼 생각에서 영도자를 찾아 헤매던 중이었습니다.

장군께서 이 기회에 저희들을 모두 거두어 주십시오."

"좋소이다. 백성들을 구출하려는 의거(義擧)에 가담해 주신다면 어찌 마다고 하리오."

이리하여 항우는 계포와 종이매를 즉석에서 도기장군(都騎將軍)으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항량과 항우의 군사는 10만 명에 육박할 만큼 불어났다.

항우는 계포, 종이매 등과 술을 나누면서말했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군사를 기르고 있는 의사(義士)들이 많을 텐데, 그대들 이외에 우리와 뜻을 같이해 줄 의사들이 또 없겠소?"

그러자 계초가 대답한다.

"도산(途山) 속에는 우영(于英)과 환초(桓楚)라는 의적장(義賊將)이 8천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칩거(蟄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둑질을 해먹고 있으나, 그들의 마음을 돌려 대장으로 발탁하면 장군께서 대업을 도모하시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이옵니다."

항우는 계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도산 속에 그런 장수가 숨어 있다면 그들을 곧 만나러 갑시다. 그들이 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오."

항우는 계포와 함께 즉시 도산으로 떠났다.

그러나 수문장(守門將)은 항우 일행을 영내(營內)로 들여보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우리 두령님을 감히 만나겠다고 하오?"

항우는 그들의 군율(軍律)이 매우 엄격한 것을 보고 내심 감탄 하면서 수문장에게 말했다.

"나는 초국 대장 항량 장군의 명에 의하여, 당신들의 두령을 만나러 온 항우 장군이다.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당신들의 두령에게 항우 장군이 왔다는 말을 전하라."

수문장이 본부로 달려가 그 말을 전하니, 우영과 환초가 몸소 달려나와 항우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장군의 선성은 익히 들었소이다. 오늘은 어떤 용무로 이처럼 깊은 산속까지 찾아 오셨소?"

우영과 환초는 위풍이 당당한 것이, 첫눈에 보아도 대장의 재목이 분명하였다.

항우가 그들에게 말했다.

"진나라가 무도한 까닭에, 지금 전국 각지에서 조무라기 영웅들이 벌떼처럼 봉기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몹시 괴롭히고 있소이다. 두 장수는 좀처럼 만나 보기 어려운 호걸이라 들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도탄 속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구할 생각은 아니 하고 이 깊은 산중에서 도둑 노릇만 하고 계시오? 나의 숙부 항량 장군께서는 진나라를 쳐부수고 옛 초나라를 재건하기 위하여 궐기하셨으니, 두 분도 우리와 함께 새로운 왕업(王業)을 일으켜 나가기로 합시다."

환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진나라가 망조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막강한 군사를 가지고 있지요. 따라서 개세(蓋世)의 영웅이 나오기 전에는 진나라를 당해 낼 사람이 없을 것이외다. 장군이 의병(義兵)을 섣불리 일으켰다가 패하는 날이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터인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 당신네들은 나 자신이 바로 <개세의 영웅> 이란 것을 모르시는 모양이구려.

<역발산 기개세 (力拔山 氣蓋世 : 힘은 산을 뽑을 정도요 기상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의 영웅>이란 바로 나를 두고 일러 오는 말이오. 당신네들은 아직 그런 소문도 듣지 못하셨소?"

환초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과연 역발산의 용력(勇力)을 가지고 계신지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합시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

항우의 실력을 알기 전에는 부하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항우는 또 한 번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의 용력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나의 부하가 될 수 없다는 말이구려. 하하하, 무엇으로 나의 힘을 시험해 보려는지, 어서 말을 해보시오."

환초가 대답한다.

"이 산 아래 우왕묘(禹王廟)의 정원에 세 발 달린 돌솥이 있는데 , 그 돌솥의 무게는 만 근이 넘을 것이오. 그 돌솥을 자빠뜨렸다가 다시 일으켜 세워보시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될 일인데, 장군이 그렇게 해보이면 우리 두 사람은 두말 않고, 장군의 부하가 되겠소.

"그 돌솥이 어디에 있는지 어서 가 봅시다."

일행이 산을 내려와 보니 과연 우왕묘의 뜰에는 거대한 돌솥이 있었다.

높이가 일곱 자에 둘레가 두 아름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돌솥이었다.

"이 돌솥을 땅에 자빠뜨렸다가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말이오?"

"그렇소. 아무리 장사라도 아마 어려울 것이오. "

"이까짓 것이 어렵기는 ...."

항우가 돌솥에 손을 대고 "낑!" 하고 밀어붙이니, 그 거대한 돌솥이 대번에 땅에 자빠져 버렸다.

"엣....? "

환초와 우영은 까무러칠 듯이 놀라다가, 아직도 미덥지 않았던지,

"자빠뜨리기는 쉬워도 일으켜 세우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오."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보이겠소."

항우는 자빠뜨렸던 돌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마치 벽돌 한 장을 일으켜 세우듯이 손쉽게 일으켜 세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항우는 한 술 더 떠서, "제자리에서 뉘었다 일으켰다 하기는 너무도 쉬운 일이니, 나의 진짜 힘을 한번 보여 드리기로 하리다."

하고 말하더니, 그 무거운 돌솥을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안고 넓으나 넓은 뜰을 세 바퀴나 돌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었다.

"어떻소? 이만하면 당신네들의 대장이 될 수 있겠소?"

환초와 우영은 항우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들이 장군님을 미처 알아 뵙지 못하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오늘의 무례를 관대하게 용서하시고, 저희들을 부하로 거두어 주십시오."

"고맙소. 나의 동지가 되어 준다면 나는 그대들을 대장으로 삼을 것이오."

"다시없는 영광이옵니다. 저희들에게는 부하가 8천여 명이 있사오니, 그들도 모두 데리고 귀속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러면 막사에 들러서 그들도 직접 만나 보기로 합시다."

이렇게 하여 항우는 두 장수와 8천여 명의 정병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출처] 열국지 (38) 역발산기개세 항우 (力拔山氣蓋世 項羽) 의 출사(出師).|작성자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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