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43) 구전구승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의 진면목

이찬조 2020. 1. 31. 09:12

열국지 (43) 구전구승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의 진면목

 

진장(秦將) 사마흔과 동예가 하남 전투에서 초군에게 크게 대패하고 본영(本營)으로 급히 돌아와 장한에게 고한다.

"항우가 20만 대군으로 강을 건너와 지금 우리 본영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애...? 항우가 직접 쳐들어온다는 말이냐 ...? 그렇다면 초군의 사기는 어떠하더냐?"

"항우가 목숨을 걸고 싸울 기세를 보여서, 초군의 사기는 지극히 왕성해 보였습니다."

"음 ...., 항우가 결사적으로 덤벼 온다면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되겠구나...."

백전노장인 장한은 자기도 모르게 침통한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작전 계획에 골몰하다가 문득 측근에게 명한다.

"이제부터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격전을 치러야 할 판이니, 구호대장(九虎大將)들을 모두 이 자리에 불러오너라."

구호대장이란 왕리(王離), 섭간(涉間), 소각(蘇角), 맹방(盟防), 한장(韓章), 이우(李愚), 장평(章平), 주웅(周雄), 왕관(王官)등 아홉 명의 젊은 장수들에 대한 통칭(通稱)이었다.

진나라에는 실전경험이 많은 늙은 장수들도 많았지만, 위의 아홉 명의 장수들은 모두가 새파랗게 젊은 장수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용맹은 호랑이와 같아서, 장한은 평소에 그들을 <구호 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홉 명의 젊은 장수들이 쏜살같이 달려오자, 장한은 그들에게 장령(將令)을 내린다.

"초장 항우가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지금 우리에게 쳐들어오고 있다. 항우는 워낙 용맹이 뛰어난 장수여서 정공법(正攻法)으로 싸우다가는 반드시 패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각각 일군(一軍)씩을 줄 터인즉, 그대들은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분산 매복해 있다가 내가 항우와의 싸움에서 불리해 지거든 제각기 교대 교대로 달려 나와 나를 도우라. 나는 항우를 되도록 깊이 끌어들여서 일거에 생포해 버릴 계획이니, 그런 줄 알고 작전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장한이 명장다운 계략을 하달하고 초군과 대치하고 있는 일선으로 말을 달려 나오니, 항우는 장한을 보자마자, 말을 타고 비호같이 달려나오며 소리를 지른다.

"이놈 역적 장한아! 너는 나의 계부(季父: 항량)를 살해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다.

꼼짝 말고 나의 칼을 받아랏 ! "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장검을 회오리처럼 휘두르며 덤벼 오는 것이었다.

오는 말이 사나우니 가는 말이 고울 리가 없다.

장한도 몸을 날려 마주 나가며 외친다.

"이 우직한 도둑놈아! 네놈의 대가리를 베어 나의 술잔을 만들리라. 이 칼을 받아랏! "

용호상박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두 장수간의 싸움은 서로 찌르고 피하는 속도가 어떻게나 빠른지,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고 다만 말발굽 아래 뽀얗게 뭉개는 먼지 구름만이 보였고 , 창검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소리와 불꽃이 튀기고 있을 뿐이었다.

항우와 장한의 혈전이 계속되기를 무려 50여 합! 마침내 장한은 힘에 겨워 쫒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숲속에 매복해 있던 왕리(王離)가 함성을 울리며 달려 나와 싸움을 가로막고 나섰다.

이렇게 항우와 왕리와의 싸움이 새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왕리는 항우와 20여 합을 싸우다가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어 말머리를 돌리려는 순간, 어느새 항우가 왕리의 뒷덜미를 움켜 채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러자 초군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말에서 내동댕이쳐진 왕리를 결박해 버렸다.

장한은 그 광경을 보고 몸서리를 치며 말머리를 돌려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가는 장한을 그대로 내버려둘 항우가 아니었다.

"이 원수 놈아! 네가 도망을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항우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함을 지르며 장한을 맹렬히 추격해 왔다.

항우가 타고 있는 말은 천하의 준마(駿馬)인 <오추>다. 항우와 장한의 쫒고 쫒기는 거리가 시시각각으로 단축되어 올 수밖에 없었다.

장한은 오래 쫒길수록 불리함을 깨닫자, 홀연히 말머리를 돌려 다시 싸우기 시작하였다.

마침 그때, 산허리에 매복해 있던 섭간(涉間)이 달려 나와 싸움을 가로 막았다.

항우가 섭간을 상대로 10여 합을 싸우다가, 철추를 휘두르니 섭간은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장한은 대장 송문(宋文)으로 항우를 막아내게 하였으나, 송문 따위는 항우의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때, 영포와 환초가 항우에게로 가세하자 장한은 더 볼 것도 없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장한은 죽어라 도망쳤고, 항우는 악착같이 쫒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사 범증이 항우에게 품한다.

"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우리는 적진 속으로 너무도 깊숙히 추격해 왔으므로 이제는 적의 야습을 크게 경계해야 합니다."

항우가 반문한다.

"진군이 우리에게 크게 당했는데 야습을 감행해 올 기력이 어디 있겠소?"

"불경에 유단 대적(油斷大敵 :마음을 놓고 있으면 큰 실패를 부른다)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한은 칠전 팔기(七顚八起)의 명장이어서 , 오늘 밤을 결코 가만히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야습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말씀이오. 그러면 진군의 야습에 대한 대책은 군사가 직접 세워 주시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항우로부터 <야습에 대한 대책을 세워 두라>는 명령을 받은 범증은 즉시 수백 명의 병사들을 불러 명한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산에 올라가 마른 섶나무를 주어다가, 본진 막사 안에 가득히 채워 놓아라. 그리고 군영 앞에는 모든 군기(軍旗)를 질서 정연하게 세워 놓아라."

군기를 정연하게 세워 놓아서 겉으로 보아서는 본진이 틀림없는 것처럼 꾸며 놓았지만, 실상인즉 그곳에는 병사는 한 사람도 없게 하였다.

범증은 이런 작업을 끝내고 환초(桓楚), 우영(于英), 정공(丁公), 옹치(雍齒)등 네 장수를 한자리에 불러 이렇게 명한다.

"오늘 밤에는 적이 반드시 기습해 올 것인즉, 그대들은 각각 자기 부대를 거느리고 산중에 매복해 있다가, 본진에서 화염이 일어나거든 일제히 적을 공격하고 그들의 퇴로(堆路)를 막아 버려라."

그리고 대장 영포에게 명한다.

"장군은 서쪽 산중에 매복해 있다가 적의 후속 부대가 오지 못하도록 중도에서 진로를 차단해 버리시오."

범증은 야간 기습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세워 두고 항우와 함께 적의 야간 기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장한은 패잔병들을 가까스로 수습해 가지고 소각(蘇角)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와 보니, 사마흔과 동예 두 장수가 장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각이 장한을 반갑게 맞으며 말한다.

"초군은 여기서 30리쯤 떨어진 산중에 진을 치고 있사온데, 그들은 진종일 전투에 지쳐서 지금쯤은 곤한 잠에 떨어져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부터 적을 동쪽으로부터 정면으로 쳐들어가고, 장군께서는 서쪽으로부터 적의 후방으로 쳐들어가시면, 우리는 협공으로 대승을 거둘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장한은 그 계략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계략이로다. 병법에 공소부수(攻所不守 : 적이 지키지 않는 곳으로 쳐들어가라) 라는 말이 있느니라. 그대의 계략은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병법이 분명하다. 그러면 그대는 동쪽으로 먼저 쳐들어가라. 나는 서쪽으로 돌아가 그대가 싸울 때를 기다려 후방으로부터 적을 섬멸하리라."

장한은 이날 낮에 항우로부터 그렇게도 혼이 났지만 초군을 섬멸시키려는 투지만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러면 소장이 먼저 출동하겠사오니, 장군께서는 때를 기다려 후방으로부터 협공을 해 주시옵소서."

소각은 자신의 신묘한 계략에 스스로 어깨가 으쓱해 옴을 느끼며 만여 군을 거느리고 초군 진지로 야습의 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 밤 전투에서 전과를 크게 올리면 논공행상(論功行賞)은 틀림이 없겠지 .... ! )

이날 밤 소각의 군사가 초군 본진에 접근해 간 것은 밤도 깊은 삼경(三更) 무렵이었다.\

소각이 정찰병(偵察兵)을 보내어 적정(敵情)을 염탐해 보니,

"막사 앞에 군기만 정연하게 세워져 있을 뿐, 불침번 파수병들조차 모두가 땅에 쓰러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습니다."

하는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소각은 그 보고를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놈들! 죽을 줄도 모르고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함성을 울리고 진고를 두드리며 노도와 같이 쳐들어가서,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닥치는 대로 죽여 버려라!"

소각의 명령에 따라 군사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일시에 함성을 울리며 노도와 같이 초군 본진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러나 웬일인가. 초군 본영에는 군사는 한 명도 없고 오직 섶나무만이 막사 안에 가득히 쌓여 있을 뿐이 아닌가.

"앗차 속았구나! "

소각은 크게 당황하며,

"적의 함정에 빠졌다. 급히 퇴각하라!"

하고 고함을 지르는 순간 홀연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불길이 불끈 솟아 오르더니, 그것을 신호로 초군이 사방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진군을 닥치는 대로 죽여 대는 것이 아닌가.

어둠 속에서 혼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한쪽은 함정 속에서 빠져 나오려는 군사요. 또 다른 쪽은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사인지라 죽어 가는 군사는 소각의 군사일 수밖에 없었다.

소각은 장한의 군사가 서쪽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믿고 그리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초군은 거기에도 매복하고 있었다. 환초와 우영이 왼쪽에서 공격하고 옹치와 정공은 오른쪽에서 몰려 나와, 소각의 군사를 협공으로 낙엽을 쓸 듯이 때려죽이는 것이었다.

진퇴양난! 소각은 앞이 막혀 뒤로 되돌아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항우가 나는 듯이 달려오며 장검을,

"휙!"

하고 휘두르니, 소각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무참히 굴러 떨어져버렸다.

한편, 장한은 소각이 전사한 줄도 모르고 함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급히 달려오는데, 영포가 앞길을 가로막고 나와 두 장수들 간에 백병전이 벌어졌다.

10합, 20합,30합...50합이 넘도록 승부가 나지 않는데, 초군 측에서는 항우가 달려오고 진군 측에서는 맹방이 달려와, 네 장수는 한바탕 엉클어져 70합이 넘도록 싸웠다.

드디어 장한이 힘이 다하여 급히 쫒기니, 환초가 맹렬히 추격해 온다.

장한은 기진맥진하도록 쫒기다가 마침내 풀밭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환초가 급히 쫒아와 창으로 장한의 가슴을 찌르려고 하는데, 홀연히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나 장한을 급히 구출하여 달아난다.

그는 구호 대장의 한 사람인 한장(韓章)이었다.

한장이 장한을 구출해 가지고 급히 도망을 가는데, 이번에는 초군 대장 우영이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그리하여 한장과 우영이 대판으로 싸우는 중에 초군 측에서는 항우가 가세해 오고 진군 측에서는 구호 대장의 한 사람인 이우(李遇)가 가세해 왔다.

그러나 항우를 당해 낼 자는 아무도 없어서, 군사 범증이 급히 쫒아오며 간한다.

"장군! 연일 계속되는 전투로 피곤에 지치셨습니다. 이제는 그만 추격하시고 잠시라도 쉬십시오."

항우가 추격을 멈추고 바라보기만 하니, 적은 산속으로 쫒겨 들어가 진지 속으로 깊숙히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범증이 그 광경을 보고 항우에게 품한다.

"짐작컨데, 적은 오늘 밤 우리가 쳐들어오리라 믿고 본진을 비워 놓은 채 모든 군사들을 요소요소에 분산 잠복시켜 놓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장한을 사로잡을 계략을 꾸며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항우가 크게 기뻐하며 묻는다.

"장한을 사로잡으려면 어떤 계략을 써야 하겠소?"

"오늘 밤 장군께서는 적의 본진으로 쳐들어가시는 동시에, 다른 군사들은 몇 부대로 분산하여 적이 매복한 곳을 급습하면, 장한을 능히 사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항우는 군사 범증의 말을 옳다고 여겨, 밤이 될 때를 기다려 영포는1만 기를 가지고 북쪽으로 쳐들어가고, 환초는 는 1만 기를 가지고 북쪽으로 쳐들어가고, 항우는 3만 기를 거느리고 중앙으로 당당히 쳐들어가기로 하였다.

한편, 패주의 패주를 거듭한 장한은 절치부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이우, 한 장 등과 함께 새로운 계략을 꾸민다.

"적은 승리를 거듭한 여세를 몰아 오늘 밤에는 반드시 야습을 감행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비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이우는 5천기를 거느리고 남쪽산 기슭에 잠복해 있고, 한장은 5천기를 거느리고 북쪽산 기슭에 잠복해 있으라. 그랬다가 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좌우협공으로 적을 송두리째 섬멸시켜 버려라. 나는 본진을 비워 둔 채 사마흔과 함께 본진 후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적을 중앙으로부터 격파해 나가기로 하겠다. 사태가 그렇게 되면, 항우를 사로잡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고 지휘관 한 사람만 생포해 버리면, 전쟁을 승리로 끝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기에 초군은 장한을 생포할 계략을 면밀히 꾸미고 있는데 반하여 진군은 진군대로 항우를 생포하는 것을 승리의 첩경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날 밤 축시가 되자,

항우는 좌군(左軍)과 우군 (右軍)을 적진으로 먼저 쳐들어가게 하고, 자기는 3만 군사를 거느리고 적의 본진을 향하여 중앙으로 휘몰아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장한은 항우군의 함성을 매복해 있던 이우와 한장의 함성인 줄로 잘못 알고 기꺼이 달려 나왔다. 그리하여 반갑게 맞으려다 보니,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군사들은 모두가 항우의 군사가 아닌가.

"아차!"

장한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싫어도 정면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양군 사에 에는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장한은 항우를 당해 낼 기력이 없었다. 오래 싸우기에는 힘에 부쳐서 막 도망을 치려는데, 좌우로부터 또 다른 적군들이 휘몰아쳐 오면서,

"장한은 듣거라. 이우와 한장의 군사는 이미 전멸되었다. 너는 독 안에 든 쥐로다!"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영포와 환초가 어느새 이우와 한장의 군사를 무찔러 버리고, 이제는 항우의 군사들과 합류(合流)해 오는 길이었다.

장한은 그 소리를 듣자, 그렇지않아도 캄캄하던 눈앞이 더욱 캄캄해 와서 말머리를 돌려 무작정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항우를 비롯하여 영포, 환초등 이 장한을 추격해 가기를 무려 30여 리 워낙 캄캄한 밤인지라, 장한의 행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냐 ?"

항우가 뒤따르는 병사에게 물으니, 그곳은 조왕(趙王)이 진군에게 포위되어 있던 거록성(鉅鹿城) 부근이었다. 항우는 그 사실을 알고 영포에게 명한다.

"그대는 수색을 계속하여 장한을 꼭 생포해 오라! 우리가 이번 전쟁을 하게 된 목적은 조왕을 구출하는 데 있었으니, 나는 거록성으로 찾아가 조군(趙軍)을 구출하리라."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거록성으로 달려가니, 조군 대장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성문을 활짝 열고 눈물로 영접한다.

"장군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던들, 성안에 갇혀 있던 저희들은 고스란히 아사(餓死)했을 것이옵니다."

조왕도 항우의 손을 움켜잡고 감격의 눈물을 뿌리며,

"역발산기개세의 장군의 영명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막강한 장한의 군사를 이처럼 쉽게 물리쳐 주실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하고 극구 치하를 하며, 환영연을 성대하게 베풀어 주었다.

사실 항우가 아니었던들, 조왕과 조군은 거록성 안에서 아사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영포는 항우의 명령을 받기가 무섭게 장한의 행방을 맹렬히 수색하였다.

그리하여 저 멀리 나무 아래서 지쳐 쉬고 있는 장한을 발견했다.

"이놈 장한아! 네가 도망을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영포는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비호같이 달려갔다. 그러자 장한은 혼비백산하여 또다시 쫓긴다.

 

이렇게 쫓고 쫒기기를 무려 20여 리, 두 사람의 거리가 눈앞에까지 이르렀을 바로 그때 숲속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튀어나오며,

"영포야! 내 칼을 받아라!"

하며 고함을 지르며 내닺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구호 대장의 한 사람인 장평(章平)이었다.

영포는 장평과 장장 30여 합을 싸웠다. 장한을 멀리 도망시키려고 장평은 결사적으로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장평은 끝까지 영포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장평이 마침내 도망을 치기 시작하니 영포가 소리친다.

"이놈 어디로 가느냐! 장한 대신에 네놈이라도 내 칼을 받아라!"

이렇게 장평을 뒤쫓다 보니, 이번에는 <구호 대장>의 한 사람인 주웅(周熊)과 왕관(王官)이 한꺼번에 앞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세 명의 호랑이 같은 젊은 장수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니 아무러한 영포도 당해 낼 길이 없었다.

영포는 거록성으로 쫓겨 돌아와 항우에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

"장명을 받들고 장한을 생포하기 위해 맹렬히 추격했사오나, 도중에 구호 대장들이 훼방을 놓아 실패하고 돌아왔사옵니다. 군율에 의해 소장에게 중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항우는 껄껄껄 웃고 나서, 영포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위로의 말을 한다.

"장한은 불세출의 명장이므로 그대가 생포하기에는 벅찬 인물이었소.

혼을 내 준 것만으로도 공로가 대단한데 어찌 그대에게 벌을 주리오."

조왕이 항우와 영포를 영접하여 축하연을 베풀어 주려고 하자, 항우가 사양하며,

"장한은 워낙 지모가 출중하여,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언제 또다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장한을 끝까지 추격하여 함양까지 밀고 들어갈 생각입니다."

항우는 생포해 온 왕리(王離)와 섭간(涉間)의 목을 그 자리에서 날려버리고 다시 출동하려 하였다.

그러자 군사 범증이 다가와 말한다.

"장군! 긴히 여쭐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슨 말씀이오?"

항우가 마상에서 반문하자, 범증은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말했다.

"죄송스런 말씀이나,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오니 일단 막사로 들어가셔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범증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항우는 막사 안으로 범증을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좌정을 하고 나자, 범증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한다.

"지난 사흘 동안에 장군께서는 아홉 번 싸우셔서 아홉 번을 모두 이기셨는데, 이는 과거의 어떤 전사(戰史)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혁혁한 전과(戰果)이옵니다. 삼가, 축하의 말씀을 올리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런 말씀을 들려주시려고 나를 일부러 막사로 들어오라고 하셨소? 군사께서 그렇게나 칭찬을 해 주시니 대단히 기쁘오이다. 그러나 내가 구전구승(九戰九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의 탁월하신 지도와 막료 장수들이 용감하게 싸워 준 덕택이었소. 그것을 어찌 나 만의 공적이라 할 수 있겠소?"

"아니옵니다. 우리 군사가 그처럼 용감했던 것은 장군께서 용감하셨기 때문이옵니다. 예부터 <용장지하(勇將之下)에 약졸(弱卒)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고 보면 구전구승의 찬란한 승리는 모두가 장군께서 용감하신 덕택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고맙소이다. 나는 이제부터 장한을 끝까지 추격하여 함양까지 쳐들어갈 참인데, 군사께서는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오?"

범증은 그제사 자세를 바로 잡고 새삼스럽게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말한다.

"실상인즉, 장군전에 여쭙고 싶은 말씀은 바로 거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항우는 그제서야 범증의 눈치를 알아채고 반문한다.

"군사께서는 나의 작전 계획에 찬성을 못 하신다는 말씀인가 보구려."

"찬성 불찬성보다도, 지금 당장 장한을 추격하여 함양까지 쳐들어가시는 계획은 일단 보류하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는 애초에 왕명을 받들고 출정할 때 조왕(趙王)을 구출하라는 군령만 받았을 뿐이지, 멀리 함양까지 쳐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은 일은 없사옵니다. 따라서 대왕의 윤허도 없이 독단으로 함양까지 쳐들어가는 것은 왕명에 위배되는 월권행위(越權行爲)가 되는 것이옵니다."

"음! 군사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 수 있겠구려. 그러나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있지 않소? 그렇다면 지금처럼 군사적으로 유리할 때에 적을 깨끗이 밀어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범증은 그 말에도 고개를 가로 젖는다.

"군사적으로도 계속하여 우리에게 반드시 유리하다고만 볼 수 없사옵니다."

항우는 범증의 말에 모욕감이 느껴져서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우리는 지금까지 진군과의 전투에서 구전구승 한 실적이 있는데, 어째서 군사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는 말씀이오?"

승리에 도취해 있는 항우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범증은 항우의 우직스러운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되도록 온건하게 말한다.

"무릇 군사란 연전연승을 하고 난 직후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기인 것이옵니다. 우리 군사들은 아홉 번이나 싸우면서 모두 이기는 바람에 마음이 교만해지고 몸은 지쳐 있사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군사들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안정과 휴식입니다."

항우는 그 점에는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 말씀은 알아듣겠소이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진나라 군사들이 비록 허약하다고는 하오나 함양에는 아직도 50만 대군이 건재합니다. 20만밖에 안 되는 피로한 군사를 수천 리나 무리하게 끌고 가서 앉아서 기다리는 50만 대군을 상대로 싸운다면, 어느 편이 유리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점을 깊이 고려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성미가 급한 항우는 승리에만 급급하여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항우는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범증의 손을 움켜잡으며 말한다.

"군사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내가 너무 서둘렀소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으며, 또 어떻게 하여야 함양을 우리 손으로 함락시킬 수가 있겠소?"

"우리는 여기서 멀지 않은 <장남>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병사들의 영기(英氣)를 추스려 가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그러노라면 저들에게는 반드시 내부에서 이번 전투에서 패한 것을 두고 혼란이 일어날 것이니 그때에 본격적으로 쳐들어가면 될 것 입니다."

"저들의 내부 혼란이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진나라의 이세 황제는 워낙 혼매(昏昧)하여 주색밖에 모르고, 조고라는 자는 권력 집중에만 급급하여 외침 방어(外侵防禦)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위인입니다. 그런데 장한은 많은 군사를 잃었기 때문에 지원군을 보내 달라고 본국에 성화같이 졸라댓을 것이 뻔한 일이옵니다. 그로 인해 조고와 장한은 의견 충돌을 일으켜, 진나라는 결국 그들의 싸움으로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가서 적은 힘으로 천하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범증의 말은 마치 천하의 대세를 손바닥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우는 범증의 지략에 크게 감동하였다.

"군사의 말씀은 마치 장님인 나를 광명 천지로 인도해 주시는 것만 같구려. 그러면 우리는 <장남>에 주둔하며 <때>를 기다리기로 합시다."

[출처] 熱國誌 (43) 九戰九勝 力拔山氣蓋世 항우의 眞面目.|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