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48) 약법삼장과 현인 여이기

이찬조 2020. 2. 1. 11:07

열국지 (48) 약법삼장과 현인 여이기

 

이세 황제 3년 이른 봄.

함양을 정벌하려고 10만 군사를 이끌고 팽성을 출발한 유방은 창성(昌城)이라는 소읍(小邑)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창성 성주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응전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성주가 거느린 병력이 4,5천 명밖에 없어서 10만 대군과 감히 대적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런대로 성을 사수하겠다는 각오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런 사태를 보고 번쾌가 유방에게 큰소리로 진언한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모양이니, 창성을 송두리째 때려 부숴 버립시다."

그러나 유방은 머리를 가로 흔들며 대답한다.

"우리의 막강한 병력으로 창성을 때려 부수기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오. 그러나 성을 때려 부수노라면 성안에 있는 백성들도 피치 않게 희생을 당하게 될 것이 아니겠소?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일어난 우리가 백성들을 우리 손으로 희생시키면 누가 우리를 <정의의 군사>로 받아 주겠소. 그러하니 무력으로 성을 정복할 생각을 접고, 먼저 선무 공작(宣撫工作)으로 민심을 회유(懷柔)해 보기로 합시다."

"어떤 방법으로 민심을 회유하시겠다는 말씀이오?"

"성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격문(檄文)을 날려 보내면, 백성들은 그 격문을 읽어 보고 우리한테 마음을 돌리게 될 것이오. 격문은 내가 직접 써서 보낼 것이니 두고 보시면 알게 될 것이오.

유방은 즉석에서 붓을 들어 <성안에 갇혀 있는 백성들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썼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성안에 갇혀 있는 백성들에게 고하노니, 나 초군 대장 유방은 진나라의 학정에 시달리고 있는 그대들을 구출하려고 왔노라. 선량하기 짝이 없는 그대들은 진제(秦帝)의 살인적인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얼마나 시달려 왔는가.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성을 때려 부수고 성안으로 돌입하여 그대들을 구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무력으로 창성을 함락 하노라면 선량한 그대들도 전화(戰火)의 희생을 면하기가 어렵겠기에, 그대들을 위해 무력행사를 자제하고 있노라. 성안에 갇혀 있는 백성들은 나의 이러한 고충을 십분 짐작하여,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나의 진영으로 스스로 귀순해 오도록 하라. 누구를 막론하고 나에게 귀순해 오는 자에게는 신분을 보호해 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금후에 생계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책임을 져 주기로 하겠다. 거듭 당부하노니, 사지(死地)에서 새로운 삶의 활로(活路)를 찾고자 하는 백성들은 서슴치 말고 내게로 귀순해 오라. 나는 그대들을 끝까지 애호해 줄 것을 거듭 다짐 하노라.>

초 서군 대장 유방 (劉邦).

유방은 이러한 격문을 써서 화살에 매어 성안으로 날려 보냈다.

성안의 백성들은 하늘로부터 격문이 날아 내려온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격문의 내용을 읽어 보고 나서는 저마다 감격스러워하면서,

"우리는 이제야 지옥 속에서 구세주를 만나게 된 셈이로구나!"

하고 모두들 큰소리로 외쳐댔다. 그리고 백성들은 격문을 돌려가며 읽어 보았는데, 격문을 읽어 보고선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글을 모르는 까막눈의 백성은 격문의 내용에 살을 덛붙여,

"초군 대장 유방 장군께서 우리들을 구출해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우리들이 어찌 귀순을 주저할 것인가. 오늘 밤으로 대거 유방 장군에게 달려가기로 하자!"

하고 대중을 향하여 외치자, 어떤 지혜로운 노인이 꾸짖는데,

"이 철딱서니 없는 사람아! 만약 이런 격문이 날아온 사실을 관헌(官憲)에서 알면 우리 모두가 죽어날 판인데 어쩌자고 귀순을 선동하는가? 이런 일은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실행하여야 하는 것이네. 혹시라도 관헌에서 알게 되면 한사람도 성을 빠져 나가기가 어렵게 될 것이라네."

그리하여 그날부터 성안의 젊은이부터 시작하여 밤이 되면 관헌의 눈을 속여 가며 열 명, 스무 명씩 성벽을 기어 넘어 초군 진지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유방은 자기를 찾아오는 젊은 청년들을 가족처럼 따듯하게 대해 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기에 귀순한 청년들 간에는 ,

"유방 장군이야말로 우리들을 구해 주기 위하여 하늘이 보내 주신 성장(聖將)이심이 분명하다."

하는 소문까지 떠돌게 되었다.

진나라 관헌들은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부터 창성 안에는 젊은이들은 씨가 마르고 집집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데도 쓸데없는 늙은이들뿐이었다.

이에 성주는 크게 당황하여 부하들을 거느리고 뒷문으로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창성 성주가 성을 비워 둔 채 도망을 쳐 버리자, 성안에 남아있는 백성들은 성문을 활짝 열어 유방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유방은 선무 공작만으로 창성을 무혈점령하게 되었다.

유방은 창성에 입성하자 모든 백성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위로연을 베풀어 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유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학정으로 고초가 얼마나 많으셨소이까. 그러나 오늘부터는 여러분들을 괴롭힐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 주시오. 진나라는 그동안 수많은 법령으로 여러분들을 괴롭혀 왔지만, 오늘부터는 그러한 법령들은 모두 폐기해 버리기로 하겠소. 그러나 사회의 안녕 질서를 도모하려면 법이란 것이 전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여러분 스스로의 안녕 질서를 도모해 드리기 위해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는 간략한 법규를 새로 선포하겠소."

"<약법삼장>이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내가 이제부터 <약법삼장>을 설명해 드릴 것이니, 이것만은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 주시오."

그리고 유방은 약법 삼장을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둘째, 남에게 상해(傷害)를 입히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엄벌에 처한다. 셋째, 지금까지 백성들을 괴롭혀 온 진나라의 모든 법령은 오늘로서 완전히 폐기해 버린다."

약법 삼장이 선포되자, 백성들은 너무도 감격스러워 원근 각지에서 앞을 다투어 유방의 그늘로 모여들었다. 창성 바로 이웃 고을은 고양성(高陽城)이었다. 고양 성주 왕덕(王德)은 유방이 <약법삼장>으로 백성들을 평화롭게 다스려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그리하여 유방을 일부러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장군께서 <약법삼장>으로 백성들을 평화롭게 다스려 나가신다고 하오니 바라옵건대 저희 고을도 함께 다스려 주시옵소서."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뻤다.

"귀공은 싸우지도 아니하고 고양성을 나에게 맡기겠다는 말씀이오?"

"성주의 사명은 백성들을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 주는데 있다고 여기옵니다. 장군께서 제가 거느리고 있는 백성들을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려는데, 제가 무엇 때문에 장군과 싸우려고 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저희 고을에도 친히 입성하셔서,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정치를 골고루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유방은 고양성도 무혈점령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고양 성주 왕덕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현인이었다.

유방은 고양 성주 왕덕과 의기상투(意氣相投)하는 바가 있어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중에 이런 부탁을 하였다.

"나는 썩어빠진 진나라를 때려 부수고, 백성들을 골고루 잘 살아 갈 수 있는 새 나라를 세워 볼 생각이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귀공이 나에게 힘을 보태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왕덕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저같이 무능한 사람을 그처럼 생각해 주시니 영광스럽기 그지없사옵니다. 그러나 저는 고양 백성들과 정이 들어서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사옵니다. 만약 장군께서 인재를 구하신다면, 저희 고을에 사는 현인(賢人) 한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사옵니다."

유방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하는 사람이오 ?"

"이름을 <여이기>라고 하는 68세의 노인이옵니다. 날마다 술에 취해 고성방가(高聲放歌)를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미친 늙은이>라고 부르옵니다. 외모로 보아서는 형편이 없사오나, 천문(天文)에 능통하여 흥망(興亡)의 천운(天運)을 알고 난세의 상황에 통달한 희대(稀代)의 현인이옵니다."

"그처럼 천운에 통달한 사람이 어찌, 날마다 술이나 마시고 고성방가만 하고 돌아다닌단 말이오?"

"젊었을 때에는 학문연구에 골몰하며 지냈으나,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는 갑작스럽게 술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장군께서 거두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실 것이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여이기>라는 노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여 노인을 한번 만나보고 싶으니 귀공이 그 노인을 나한테 좀 데리고 오시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왕덕이 유방의 부탁을 받고 여이기를 집으로 찾아가니, 여 노인은 이날도 술에 취해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왕덕은 여노인을 붙잡고 간곡하게 말한다.

"선생은 오늘날까지 명군(明君)을 만나지 못해 오랫동안 취생몽사(醉生夢死)로 허송세월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관인 후덕(寬仁厚德)하신 유방 장군이 나타나서 왕업(王業)을 새로 닦고 있으니, 선생은 심기 일전(心氣一轉)하시어, 이제부터는 그분을 도와 새로운 세상을 성취하도록 하시옵소서. 저는 그 어른의 부탁을 받고 선생을 모시러 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 노인은 고개를 가로 흔들며 대답한다.

"유방이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는 말은 나도 들어 알고 있소. 그러나 그는 현인에 대한 예우(禮遇)를 모르는 사람이오. 그가 나를 예우로 맞아 가지 않는데, 내가 귀공을 호락호락 따라가면 더욱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게 아니오.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가겠소이다."

왕덕은 여 노인이 거절하는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얼른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본디 기변(機變)에 능하시니까, 그런 일은 그 어른을 직접 만나셔서 처리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옵니까?"

"허기는 그렇기도 하구려. 그렇다면 한번 만나 보기로 합시다."

여이기 노인은 즉석에서 왕덕을 따라 유방을 만나러 왔다.

때마침 유방은 걸상 위에 걸터앉아 있었고, 두 명의 여인이 발을 씻겨 주고 있어서, 여 노인이 방안에 들어와도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 노인은 방안에 들어와서도 두 손을 모아 잡고 서있기만 할 뿐,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유방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유방의 불손한 태도가 비위에 거슬렸던지, 유방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뜸 퍼붓듯이 묻는다.

"귀공은 진나라를 위해서 제후(諸侯)들을 치려는 것인가, 혹은 제후들의 도움을 얻어 진나라를 치려는 것인가. 도대체 그 두 가지 중에 어느 편인가?"

초대면의 유방에게 대한 모욕도 이만저만이 아닌 질문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제아무리 관인 후덕하다는 유방도 화가 불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유방은 발을 씻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퍼붓듯이 외친다.

"이 썩어빠진 늙은 것아! 온 천하가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에 시달리고 있기에, 나는 회왕의 명을 받고 서로(西路)로 진나라를 치러 온 정의의 지사다. 그러한 나를 보고 진나라를 도우러 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

 

그러자 여노인은 즉석에서 태연스럽게 꾸짖듯이 말한다.

"귀공이 진을 치러 온 의장(義將)이라면, 만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심복(心服)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 아닌가? 또 귀공은 어른이 나타났는데도 발을 씻으며 예의조차 갖출 줄을 모르니, 이런 무례한 행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현인들을 이런 식으로 모조리 쫒아 내 버리면 귀공은 누구와 더불어 천하를 도모할 생각인가? 귀공이 큰 뜻을 품고 있다면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로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여 노인을 부랴부랴 상좌로 모셔 놓고 새삼스러이 용서를 빌며 말했다.

"실상인즉, 선생께서 이처럼 속히 오실 줄을 모르고 결례(缺禮)가 많았사오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여 노인은 그제서야 파안대소하며 말한다.

"하하하, 패공은 역시 관인 후덕한 사람이 틀림없소이다. 내 비록 늙은 몸이오나 오늘부터는 패공을 위하여 신명을 다하겠소이다."

그리고 나서 천하 대사에 대한 경륜을 펴는데, 그의 경륜은 장강의 유수와 같이 도도하였다.

유방은 여 노인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저는 지금부터 10만 군사를 이끌고 함양으로 쳐들어가고자 하옵는데, 선생은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옵니까?"

여 노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한다.

"패공께서 지금 여기저기서 주어모은 10만 군을 이끌고 함양으로 쳐들어가시려고 하오나, 그것은 양의 무리를 이끌고 호랑이 굴로 덤벼 들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옵니다. 여기서 얼마를 더 가면 진류성(陳留城)이 있사온데, 그곳은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요충입니다. 게다가 성안에는 군수 물자(軍需物資)도 풍부하게 비축되어 있사옵니다. 그리고 천만 다행으로 진류 성주 진동(陳同)은 저하고는 막역한 친구이므로, 제가 그 사람을 만나서 패공의 휘하로 들어오도록 설득을 해 보겠습니다."

"선생께서 이처럼 애써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설득하시면 성주가 들어줄 것 같기는 합니까?"

"제가 이해(利害)로써 설득하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옵니다. 이렇게 하여, 진류성을 근거로 사방에서 군마(軍馬)를 많이 확충한 연후에 기회를 보아 함양으로 쳐들어가면 십중팔구는 성공할 것이옵니다."

유방은 크게 기뻐하면서 여 노인을 진류성으로 보냈다.

여 노인과 진류성 성주 진동은 막역한 친구인지라, 진동은 여 노인을 반갑게 맞이하여 후당(後堂)에서 단둘이 술잔을 나누었다.

여 노인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오자 진동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살고(良禽相木而栖 : 양금상목이서), 어진 선비는 주인을 택해 돕는다 (賢臣擇主而佐: 현신택주이좌)고 하였네. 진시황 시절부터 진나라는 무도하기 짝이 없어서, 지금은 각 제후들이 저마다 배반을 하고 있는 중이네. 내가 진시황 시절, 분서갱유 사건 이후로 술미치광이 행세를 하게 된 것도 명군(明君)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라네. 그러다가 내가 어제 유방이라는 사람을 만나 보았는데, 그는 관상부터가 제왕지상(帝王之相)인데다가 성품이 관인 후덕하여, 그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친부(親父)처럼 따르더란 말일세. 이제 그 어른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함양으로 쳐들어 가려고 하는데 그러자면 우선 진류성부터 공략하게 될 것이네. 내가 보기에는 유방이 이곳으로 쳐들어오게 되면 귀공은 그를 당해 낼 길이 없을 것이네. 그때에 가서 자네의 군사와 백성이 당할 고통을 상상해 보느니, 차라리 마음을 돌려 먹고 패공에게 진류성을 곱게 내주고 백성도 지키면서 자네의 후일의 영광을 도모해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진동은 너무도 뜻밖의 제안에 오랫동안 삼사숙고 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어 대답한다.

 

"자네의 말씀에 틀린 것이 없네. 그러면 진류성을 패공에게 내드리고, 그 어른의 부하가 되기로 하겠네."

"참으로 잘 생각해 주셨네. 그러면 내가 곧 돌아가 패공에게 그 말씀을 전할 테니, 귀공은 패공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둘러 주시게."

그로부터 며칠 후 유방은 성주 진동의 영접을 받으며, 소하(簫何),조참(曺參)등, 모든 참모를 거느리고 진류성에 무혈 입성하였다.

이로써 유방은 싸우지도 아니하고 창성(昌城), 고양(高陽), 진류(陳留)의 세 고울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 진류성에 와서 보니, 여 노인의 말대로 이곳에는 무기와 군량이 놀랄 만큼 많이 비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유방은 이곳에서도 <약법삼장(約法三章)>을 선포하여 백성들을 자유롭게 해방 시켜 주니, 백성들은 크게 감동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유방의 군사가 되겠노라고 자원하여 이를 모두 받아들이니 그 수는 무려 5만여 명에 이르렀다.

유방은 크게 기뻐하며 여이기 노인에게 말했다.

"오늘날 뜻있는 청년들이 이처럼 많이 모여 오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의 덕택입니다. 선생의 은공을 잊을 수가 없어, 선생을 <광야군(廣野君)>으로 받들어 모시고자 하오니 선생은 금후에도 언제든지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여 노인은 직위를 사양하며 말한다.

"늙은 몸이 현주(賢主)를 만나지 못해 오랫동안 낙백 생활(落魄生活)을 해 오다가, 다행히 패공을 만나 뵙게 되어 조그만 조언(助言)을 드렸을 뿐인데, 어찌 무거운 직위를 내려 주시옵니까? 이는 본인이 바라는 바가 아니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선생의 고매하신 뜻은 알고도 남음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나의 조그만 정성만은 물리치지 마시고 받아 주시옵소서."

여 노인은 마지못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면 직위를 고맙게 받고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출처] 熱國誌 (48) 約法三章과 (賢人 여이기 |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