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67) 진평(陳平)의 계략
유방은 패상으로 돌아오자 항우와 만났던 이야기를 장량에게 소상히 말해 주었다.
장량은 유방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한다.
"패공께서 <항우의 말(馬)이 되어 드리겠노라>고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잘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셨다면, 범증은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패공을 반드시 해치려 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범증은 워낙 집념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패공께서는 하루속히 파촉으로 떠나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유방은 별안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지며 말한다.
"떠나기는 떠나야 하겠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버리고 나 혼자서 떠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항우에게 허락을 받아 가지고 일단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떠났으면 좋겠는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유방의 부모는 그의 고향인 패현(沛縣)에 있었던 것이다.
장량은 대답하기가 곤란하였다. 아무리 급해도 부모님을 버리고 떠나자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고향에 가셔서 부모님을 모셔 오기까지 한 달 가량 말미를 달라고 항우에게 표문(表文)을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부모님을 그냥 내버려두고 떠났다가는, 부모님께서 어떤 박해를 당하시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아무리 급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하겠소이다."
유방은 그날로 항우에게 <부모님을 모셔 오게 한 달 가량 부임을 연기해 달라>는 표문을 올렸다.
유방의 표문을 받아 보고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은 범증이었다.
(옳다, 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방을 이번 기회에 죽여 버려야겠다.
이것은 하늘이 내려 주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범증은 그렇게 생각하고 항우에게 품한다.
"대왕 전하! 유방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파촉으로 떠나기를 차일 피일 미루는 것은, 엉뚱한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유방이 고향에 다녀오기를 일단 허락해 주시고 그의 부모를 우리가 먼저 붙잡아다가 볼모로 잡아 두고 있으면, 유방은 우리를 배반하고 싶어도 못하게 될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유방에게 한 달간의 말미를 허락해 주는 동시에, 패현으로 사람을 보내 유방의 늙은 부모를 강제로 연행해 왔다.
유방은 그런 줄도 모르고 부모를 모셔 가려고 고향에 와 보니, 부모는 온데간데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사방으로 알아보니, 수일 전에 항우의 군사들이 습격해 와서 자신의 늙은 부모를 강제로 납치해 갔다는 것이 아닌가?
유방은 크게 걱정하며 패상으로 부랴부랴 돌아와 장량과 상의하였다.
장량조차도 이번만은 크게 당황하며 말한다.
"사태가 매우 위급해 보이오니, 큰일을 당하기 전에 파촉으로 속히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유방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나만 살려고 늙은신 부모님을 사지(死地)에 버려두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소이다."
자식된 도리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장량은 매우 난처하였다. 유방이 부모를 데리러 가면, 범증은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서 유방을 죽여 없애려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장량은 심사숙고해 보다가 유방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백은 패공의 매제(妹弟)이옵고, 진평(陳平)은 진작부터 우리와 뜻이 통하는 사람이니, 제가 그들을 비밀리에 찾아가 대책을 상의해 보고 오겠습니다."
장량은 항백과 진평을 비밀리에 찾아가, 그쪽 사정을 물어 보았다.
항백이 대답한다.
"범증은 패공을 유인해다가 죽이려고 나의 장인 장모(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다 두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패공이 부모님을 모시러 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장인 장모님은 내가 잘 모시고 있을 것이니, 패공께서는 빨리 파촉으로 떠나가시도록 하소서."
그러나 장량은 여전히 난색을 표했다.
"패공의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기는 이미 틀렸다는 말씀이구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만 떠나가기도 어렵게 되었소. 왜냐하면, 우리가 떠나기만 하면 범증은 항우를 부추겨서 백만 대군으로 우리를 추격해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런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은 오로지 범증 때문이오."
장량은 이렇게 말하면서 진평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진평 장군! 범증이 없어야만 우리가 무사히 떠날 수가 있겠는데, 범증을 며칠만이라도 지방으로 출장을 보낼 수는 없겠소이까?" 하고 물었다.
진평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얼굴을 들며 말했다.
"그런 계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항우 장군은 초패왕이 되시고 나서도, 아직 팽성(彭城)에 계신 의제(義帝)에게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범증을 팽성으로 보내어 보고를 올리도록 만들면 될 것입니다."
장량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그거 참 좋은 명안이오. 그러면 우리는 떠날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범증을 꼭 팽성으로 보내주도록 해주시오. 범증이 팽성으로 떠났다는 소식만 알려 주면, 우리는 그날로 파촉으로 떠나가겠소이다. 만약 이번 일이 성공하면 패공께서는 장군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오."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제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범증을 팽성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진평은 장량과 작별하고, 곧 항우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품했다.
"대왕 전하! 요즘 항간에는 매우 해괴한 소문이 떠돌고 있사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해괴한 소문이라니? 무슨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말인가?"
진평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뢰옵기 항송하오나, 백성들 간에는 <하늘에 해가 하나밖에 없듯이 나라에도 임금님이 둘이 있을 수 없는데, 우리 초나라에는 팽성에 초회왕이 있고 침주에는 초패왕이 있으니, 도대체 어느 임금님이 진짜이고 어느 임금님이 가짜이냐> 하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떠돌고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대왕께서는 그 점을 깊이 고려하시옵소서."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분노의 찬 얼굴로 소리친다.
"모르는 소리 작작들 하라고 이르시오. 나는 <초패왕>이 되면서 회왕을 <의제>로 받들어 모시기로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오?"
진평이 다시 말한다.
"회왕을 <의제>로 받들어 올린 것은 매우 현명하신 처사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워낙 무식하기 때문에 <의제>와 <패왕>의 위계(位階)를 제대로 분간할 능력이 없어서 결국은 초나라에는 임금님이 두 분이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소?"
"그대로 내버려두다가는 대왕께서 이신벌군(以臣伐君 : 신하인 주제에 왕을 쫒아낸다.) 했다는 비방을 면하시기가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대왕을 한결 같이 저주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 말이오?"
"해결책은 오직 한 가지 방도가 있을 뿐이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승상 범증을 팽성으로 보내시어, 의제를 깊은 산속에 숨어 지내시게 하는 일이옵니다. 그래야만 대왕의 위세와 체모가 제대로 확립되시게 되옵니다."
항우는 진평의 말을 고맙게 여기며, 곧 범증을 불러 다음과 같이 명한다.
"아부(亞父)도 알고 계시다시피, 지금 의제가 있는 팽성은 내가 출생한 곳이오. 그래서 나는 장차 팽성에 대궐을 짓고 도읍을 그곳으로 옮겨 갈 생각이니, 경은 팽성으로 의제를 찾아가 거처를 어느 산중으로 옮겨 가도록 하시오. 만약 산중으로 가기가 싫다고 하거든 침주로 모시고 돌아와도 무방하오."
항우는 천하의 권력을 잡고 보니, 이제는 의제의 존재가 몹시 귀찮게 여겨졌다. 의제를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신하가 임금을 쳤다>는 비난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여차하면 없애 버릴 생각에서 침주로 모셔와도 무방하다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항우의 이런 심사를 범증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항우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이와 같은 부작용이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기에, 미리 <초회왕>을 <의제>로 받들어 올리자는 제안을 범증 스스로가 한 것이 아니었던가.
범증은 팽성으로 떠나기 전에, 항우에게 말한다.
"그 문제는 신이 의제를 직접 만나 뵙고 선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이 길을 떠나기 전에, 대왕전에 중요한 부탁 말씀을 올리고자 하옵니다."
"무슨 부탁인지 어서 말해 보오."
"신은 대왕에게 세 가지 부탁의 말씀이 있사옵니다. 첫째, 지금 우리는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 두고 있사온데, 신이 없는 사이에 유방은 부모를 구출해 가려고 기도할지 모르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볼모를 유방에게 빼앗기지 않으시도록 각별히 유념해 주시옵소서."
"알겠소. 유방이 제아무리 재주가 비상하기로, 유방의 볼모를 빼앗길 내가 아니오. 두 번째 부탁은 무엇이오?"
" 두 번째는 집극랑(執戟郞)으로 있는 한신(韓信)을 대장으로 승격시켜 주십사 하는 부탁이옵니다.
한신은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보이오나, 실상인즉 원수(元帥)의 경륜을 품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옵니다."
"뭐? 한신을 대장으로 승격시키라고요? 아부께서는 그자가 어떤 점이 비범하다고 대장으로 승격시키라는 말씀이오?"
"대왕께서는 한신을 하찮은 인물로 보고 계시오나, 알고 보면 한신은 경륜과 용병술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옵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집극랑에 불과한 사람을 어떻게 대번에 대장으로 승격시키라는 말씀이오?"
"한신을 대장으로 발탁할 의사가 없으시다면, 차라리 한신을 죽여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만약 대왕께서 한신을 등용하지 않으시면 한신은 불만을 품고 다른 나라로 달아나 버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커다란 우환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우는 한신이란 인물을 어디까지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대답한다.
"알겠소이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적당히 처리하겠소 .세 번째 부탁은 어떤 것이오?"
"세 번째는, 유방은 제가 없는 사이에 파촉으로 도망가려고 할지 모르오니,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패상에 그냥 잡아 두도록 하시옵소서. 유방에 대한 문제는 제가 팽성에서 돌아온 후 다시 품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부의 부탁은 잘 알았소이다. 아부가 돌아올 때까지 유방을 패상에 잡아 두도록 할 테니, 아무 걱정 말고 팽성 일이나 잘 마무리 해주시오."
그리고 항우는 그날로 유방에게 <당분간 파촉으로 부임하기를 보류하고 있으라>는 특명을 보내었다.
범증이 팽성으로 떠나가 버리자, 진평은 곧 장량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를 보냈다.
< 범증을 팽성으로 출장 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범증은 팽성으로 떠나기에 앞서, 항왕(項王)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패공을 패상에 잡아 두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범증의 부재중에 파촉으로 떠나시려거든, 장량 선생이 항왕을 직접 찾아오셔서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 가지고 떠나도록 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옵니다.">
장량은 진평의 밀서를 받아 보고, 유방과 상의한다.
"우리가 파촉으로 무사히 떠나려면, 아무래도 제가 항우의 허락을 받아 와야만 후환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선생께서 가신다고 항우가 우리의 출발을 허락해 줄 것 같소이까?"
"제가 직접 가면 그만한 허락은 받아 올 자신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수고스러우신 대로 선생께서 다녀와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이왕 가실 바에는 나의 부모님도 모시고 오셨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 하겠소이까?"
"매우 죄송스러운 말씀이오나, 지금 형편으로는 부모님까지 모시고 오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항왕의 손에 억류되어 계시더라도, 항백과 진평 등이 각별히 돌봐 드릴 것이니, 그 점은 너무 염려 하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장량은 유방의 걱정을 달래 주고, 곧 항우를 찾아갔다.
항우는 장량을 만나자, 대뜸 나무란다.
"자방은 내게서 떠날 때에는 당장 고국으로 돌아갈 것처럼 말하더니, 어찌하여 아직도 유방의 그늘에 그냥 머물러 있소?"
장량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저는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사오나, 저더러 대왕전에 심부름을 한번 다녀와서 떠나라는 패공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 있었기에 부득이 대왕을 다시 찾아왔사옵니다."
"유방의 심부름이라니? 도대체 유방이 자방에게 무슨 심부름을 시키더란 말이오?"
"패공은 파촉으로 속히 출발하고 싶으니, 대왕께서 허락을 내려주십사 하는 부탁이었습니다."
"그 문제라면 당분간 떠나기를 보류하라고 이미 명령을 내린 바 있는데, 무슨 이유로 명령을 무시하고 허락을 받으러 왔다는 말이오?"
"대왕께서 <출발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은 저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패공이 부임할 파촉의 사정을 미리 알아본 결과, 지금 파촉 지방에서는 도둑의 무리가 난동을 부리고 있어서, 치안이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대왕의 치적(治積)에 누를 끼치게 될 것 같아서, 패공은 하루속히 임지로 달려가 적도들을 깨끗이 소탕해 버림으로써 대왕 전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하옵니다."
항우는 장량의 말을 듣고 매우 난처한 생각이 들었다. 도둑의 무리가 난동을 치고 있다면, 어차피 그곳으로 부임하게 될 유방을 일찌감치 보내어 그들을 소탕해 버리게 하는 것이 상책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시간을 끌다가 치안이 더욱 험악해 지게 되면 백성들은 항우를 원망하게 될 게 아닌가.
그러나 항우는 <유방을 패상에 잡아 두겠노라>고 범증과 철썩 같이 약속했기 때문에 <속히 떠나라>는 허락을 내리기도 난처했던 것이다.
장량은 그러한 눈치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다시 말한다.
"대왕 전하! 백성들은 지금 대왕의 성덕을 한결 같이 찬양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그러나 파촉 지방의 치안이 난마처럼 되어 버리면, 그곳 백성들이 대왕을 얼마나 원망할 것이옵니까? 이런 점을 고려하셔서 패공에게 <속히 파촉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신속히 내려 주시옵소서."
항우는 장량의 말을 듣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둑의 무리들이 벌써부터 크게 난동을 부리고 있다면 ,백성들이 통치자의 무능을 매도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범증과의 철썩 같은 약속을 경솔하게 파기해 버리기도 난처하여, 항우는 진평을 불러 물어 본다.
"승상 범증이 팽성으로 떠나갈 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유방을 패상에 잡아 두라고 신신 부탁을 하고 떠났소. 그런데 장량의 말에 의하면 지금 파촉에서는 도적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서, 그들을 소탕하겠다며 유방이 파촉을 빨리 떠나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는지, 장군의 생각을 말해 보오."
진평은 이미 장량과 내통이 되어 있는지라, 모든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반문한다.
"승상께서 무슨 이유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유방을 패상에 잡아 두라고 부탁한 것이옵니까? 그 이유를 모르는 저로서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사옵니다."
항우가 다시 말한다.
"범증은 이상하게도 유방에게는 일종의 열등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유방이 반역을 못하게 하려고, 패상에 언제까지나 붙잡아 두고 싶어하더란 말이오."
진평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크게 끄덕이며,
"그런 문제 때문이라면 조금도 염려 마시고, 유방을 파촉으로 속히 보내시어 도둑의 무리들을 소탕해 버리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지금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 두고 있사오니, 무엇을 걱정하시겠사옵니까?"
항우는 그제야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장군의 말을 들어 보니 과연 그렇구려. 그러면 유방더러 파촉으로 속히 가서 적도들을 소탕하라고 할까요?"
"물론이옵니다. 파촉 지방의 치안 문제는 대왕 전하의 치적과도 직결되는 긴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즉위를 하시고 나서 치안이 더 어지러워졌다는 소문이 돌아보십시오. 백성들의 원망을 듣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 단단히 결심한 어조로 말한다.
"알았소이다. 그러면 유방을 곧 파촉으로 떠나게 하겠소."
이리하여 장량은 항우의 쾌락(快諾)을 받아 가지고 패상으로 급히 돌아왔다.
그런데 집극랑 한신은 그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듣고, 혼자서 항우를 이렇게 비웃고 있었다.
(우매한 항우는 장량의 교묘한 계략에 또다시 속아 넘어갔구나. 항우는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두었다고 안심하고 있지만, 그것은 후일에 커다란 앙화(殃禍)의 씨가 될 줄은 왜 모르는 것일까.)
[출처] 熱國誌 (67) 陳平의 계략 |작성자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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