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5)> 태종 1-이성계의 회한과 죽음

이찬조 2021. 3. 18. 21:27

<조선왕조실록(15)> 태종 1
-이성계의 회한과 죽음

이방원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두번의 난을 거쳐 34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그에건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정통성 문제였습니다.

지존의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정통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노태우 부인 김옥숙이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이순자에게 평생을 형님대접을 하다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열린 축하연에서 "우린 국민의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니 그전과는 다릅니다"라고 하여 이순자의 속을 뒤집어 버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계승이 아니라 형제들을 쳐죽이고 애비에게 씻을수 없는 불효를 한 채 왕이 된 이방원을 백성들이 곱게 볼 리 없었고, 이방원에게 이런 정통성의 부재는 평생의 약점이었습니다.

이방원은 이런 정통성 부재의 약점을 씻고자 이성계에게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 둘과 사위 그리고 평생의 벗들을 허망하게 잃은 이성계가 쉽게 이방원을 인정할 리는 만무한 것이겠지요

한편, 이방원은 애비가 힘들게 천도한 한양을 버리고 제멋대로 개경으로 천도를 행해버렸는데, 개경민심이 대부분 이성계에 있다는 것이 이성계에게 마지막 희망을 던져주었습니다.

분노를 아직 씻지 못한 이성계는 다시 권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를 했고, 이성계를 신처럼 여기는 지역인 동북면에 나가 있던 조사의란 자가 이러한 이성계의 마음을 읽고 이성계의 복귀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키니 이것이 이성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조사의의 난은 직접 출동한 이방원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진압되었고, 이성계는 이와 더불어 무학대사의 죽음 이후 인생의 활기를 잃고 맥없이 지내다 죽으니 그의 나이 74세였습니다. 희대의 영웅 이성계의 말년은 이렇게 허망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