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23)> 단종․세조 1- 열두 살 임금

이찬조 2021. 3. 24. 19:22

<조선왕조실록(23)> 단종․세조 1
- 열두 살 임금

조선 제5대 임금으로 즉위한 효자 문종은 슬픔을 딛고 세종 못지않은 정치를 펴 나갔지만, 그에겐 치명적인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즉 자신의 건강과 세자의 어린 나이, 그리고 아우들 특히 수양대군의 존재였습니다.

문종은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의 정치적 힘과 거침없는 기질, 그리고 언뜻 언뜻 내비치는 야심이 두려웠으나, 행여 섣불리 견제하다가는 오히려 반발의 명분만 주어 정난을 불러 올 수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그 성격상 수양을 제거하는 일 따위는 어울리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어찌 보면, 수양을 제거하기에는 수양이 너무 커 버려 오히려 문종이 수양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종은 자신이 진정으로 수양을 아낀다면 수양 역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양은 다른 마음을 가질 사람이 아니다”, “나는 수양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하면서 시종일관 수양을 감싸고 배려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종 재위 2년 3개월, 다시 등에 난 종기가 급격히 악화되어 이로 인해 곧 세상을 뜨게 되니,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과 신하들은 세종이 죽었을 때보다 더욱 슬퍼했다고 합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의 슬픔은 바로 나이 어린 세자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결혼도 안했으니 부인도 없고 처가도 없는, 그야 말로 이 험난한 세상에 홀로 선 열두 살 단종은 이렇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넓디넓은 궁궐에 홀로 남겨진 소년 임금은 막막하기만 했을 것이나, 국정운영이란 면만 보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수렴청정을 할 어른이 없으므로 당시 의정부에서 정사가 이루어졌고, 단종은 형식상의 결재만 담당했는데, 그렇다고 의정부 대신들이 왕위를 넘볼 것은 아니므로 단종이 제대로만 커준다면 사실 별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의정부에서 인사에 관한 사안을 올릴 경우, 미리 후보 중 한 사람 옆에 노란 표시를 해 두면 단종은 여기에 결재를 하곤 하였는데, 이를 황표정사라 했습니다.

단종은 비록 나이 어렸으나 세종과 문종의 혈통을 이어 받은 용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소년 단종은 즉위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자리의 막중함을 깨달아 갔고 성군의 자질도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니, 몇 년 만 있으면 단종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모두 안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소년 단종이 장성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