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21)> 세종 문종 3
- 새로운 카리스마 그리고 한글창제
태상왕 태종이 세상을 뜸으로써 세종은 진짜 임금이 되었습니다. 태종이 죽자 신하들은 은근히 세종 길들이기를 시도했으나 세종은 이를 알고도 그대로 넘어가는 등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새로운 제왕의 리더십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종에게는 세종의 부인 심씨 가문을 박살낸 사건의 전모를 새로 밝히는 방법으로 신하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카드가 있었으나 이 카드를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고, 형님인 양녕에 대해서도 끝끝내 관용적 태도를 보였으며, 그러한 정치투쟁보다는 농업, 천문과 기상, 외국어, 악기, 북방 등 모든 분야에 있어 혁신을 기하기 위한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세종의 업적은 두루 나열하기가 벅차므로 모두 생략하고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한글창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1443년 12월 30일, 세종은 그의 인생 최고의 걸작품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최고 걸작품인 훈민정음, 즉 한글을 내놓았는데, 기이하게도 이날 이전의 실록엔 한글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글은 세종의 지휘 아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이나(한글 보급과정을 집현전 학자들이 도맡았으므로), 적어도 실록에는 집현전이 한글창제에 관여했다거나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글이 공포된 지 한 달 보름이 지난 후 최만리의 상소가 올라왔는데, 그 내용은 한글은 새롭고 기이한 기예일 뿐 한자 외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사대에 어긋나고 오랑케와 다를 것이 없다는 취지의 것이었습니다.
최만리는 집현전의 실질적 수장이었는데, 만약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면 어떻게 최만리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라는 점, 당시 시대상황에서 세종이 어떻게 드러내놓고 한글창제를 시도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점, 한글 창제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문헌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세종의 한글창제는 세종이 아들 딸 등 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들과 비밀리에 추진한 프로젝트였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암튼 세종이 창제한 한글은 만든 사람과 만든 때와 만든 이유가 자료에 의해 명백히 증명되는 유일한 문자이고, 그 월등한 과학성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이미 인정한 것으로, 세계문화유산에도 올라 있는데, 그 물리적 위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그 정신, 즉 지배의 효율성이 아닌 백성의 이로움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5세만 되어도 전부를 깨우칠 수 있는 쉽고, 과학적이고, 철학이 있는 문자 한글!!!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자를 쓰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세종의 위대성에 감복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실록(23)> 단종․세조 1- 열두 살 임금 (0) | 2021.03.24 |
---|---|
<조선왕조실록(22)>세종 문종 4- 비극의 서막 (0) | 2021.03.22 |
<조선왕조실록(20)> 세종 문종 2- 역사의 아이러니 (0) | 2021.03.21 |
<조선왕조실록(19)> 세종 문종 1 - 이중권력 (0) | 2021.03.21 |
<조선왕조실록(18)> 태종 4- 양녕과 충령 (0) | 2021.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