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22)>세종 문종 4
- 비극의 서막
세종의 장자 “향”이 세자에 책봉된 것은 8세 때였습니다. 후일 문종 임금이 되는 세자는 아버지의 성품과 자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야 말로 성군 중의 성군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종은 세자로 30년을 지내면서 세종으로부터 고품격의 왕위 수업을 받았으나, 즉위 2년 3개월 만에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으니, 이것이 비극의 서막입니다.
사람들은 문종이 요절한 것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문종이 세상을 뜬 것은 39세로 성종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요절했다는 이미지를 갖는 것은 재위 기간이 위와 같이 매우 짧았던 데다가, 어린 단종을 남기고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에구~ 애만 좀 일직 낳았어도...)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번의 이혼을 하고(두 번째 세자빈의 폐출 사유는 동성연애였다고 합니다) 셋째 부인으로부터 아들을 얻었는데 산모는 바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견인을 잃고 말았으니 단종의 앞날이 참으로 막막하기만 합니다.
세종은 과로에다 운동부족에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소갈증(당뇨)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이유로 말년에는 문종에게 섭정을 시키고 뒷방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세종은 부인 6명에 18남 4녀를 뒀는데, 정비인 왕비 심씨가 낳은 아들은 8명이었습니다. 장자인 문종 밑으로 3, 4, 5살 등등 터울이 있었고, 하나 같이 총명하고 제주가 있었으나, 오히려 재주 있는 자식을 여럿 둔 것이 비극의 단초가 되고 맙니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과 달리 형제간의 우애를 매우 중시하여 자식들에게 일찍부터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맡겼고, 나아가 자신의 명령을 신하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세종 입장에서 보면, 장성한 잘 준비된 세자가 있고, 세손이 잘 크고 있으며, 대군들도 아비와 형님의 말을 잘 들으니 자신의 병 말고는 걱정거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그렇습니까. 갑자기 다섯째와 일곱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세상을 떴고, 거기에 세자마저 등에 난 종기가 갈수록 커져 위험한 지경에 이르니, 세종의 걱정은 깊어만 갔습니다.
세종은 이와 같이 자식들과 부인의 죽음을 맞고 세자의 병을 걱정하다가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뜨니, 향년 54세였고 재위기간은 31년이었습니다.
세종은 눈을 감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까요? 수양, 안평...이들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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