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26)> 단종 세조 4- 계유정난

이찬조 2021. 3. 24. 20:30

<조선왕조실록(26)> 단종 세조 4
- 계유정난

실록에 나타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결정적 명분은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의 역모였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이 역모를 꾀했을까요

단종실록에서 안평과 김종서의 역모 증거로 제시되는 첫 번째는 김종서의 측근 이징옥이 북방의 무기를 한양으로 빼돌렸다는 것인데, 안평과 김종서 등이 힘을 합쳤다면 역모사건을 조작한 후 한양의 군을 동원해 수양을 치고 단종을 압박하면 될 일이지, 대단한 것도 아닌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굳이 북방에서 한양으로 옮길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영의정 황보인의 노비 아무개가 황보인 등의 구체적 역모계획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갖바치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일개 종이 거사계획의 내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 아무개 종의 이름조차 실록은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모로 보나 이는 수양과 한명회가 만든 억지 명분에 불과하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수양은 계유년 모월 모일 거사일을 정하고, 활쏘기를 명목으로 군사를 모은 후, 가노인 임어을운, 양정 등 소수의 무사들만 데리고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가 임어을운으로 하여금 방심한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치도록 했고, 이로써 북방의 대호라고 불리운 천하의 명장 김종서는 허망하게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김종서만 해치우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한명회의 장담대로 김종서가 쓰러지자 달리 수양의 행보를 막을 그 어떤 시도도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수양과 한명회는 그동안 규합한 군졸들을 몰고 그날 밤 입궐해 안평이 김종서 등과 공모하여 불궤한 짓을 도모하였기에 먼저 김종서 부자를 베었다고 하면서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이게 하였습니다.

그날 밤 입궐한 대신들은 문 너머의 책임자 한명회의 손짓 여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는데, 야사에는 한명회가 직접 살생부를 작성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신들을 죽일지 말지를 고개를 끄덕이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날로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은 강화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뒤 사사되니 안평의 나이 36세였습니다. 또한 잠시 살아났던 김종서 역시 그 날로 이승을 하직했고, 그 외에 수양의 반대편에 섰던 무수한 대신들이 죽었으며, 그 아들 중 16세 이상은 교형에 처해졌고, 15세 이하의 아들은 관노로 전락했으며, 처, 첩, 딸은 노비 신분이 된 뒤 공신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안평과 김종서 등의 역모를 명분으로 난을 일으킨 수양, 그러나 그 역모의 진위를 파헤치고자 하는 어떤 시도는커녕 오히려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고 당사자들을 모두 서둘러 죽여 버렸으니, 이는 수양의 명분이 그야말로 명분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저세상에서, 손자 수양대군이 형제를 비롯한 무수한 신하들을 죽이고 장차 증손자인 단종까지 죽이려 한다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면, 과연 뭐라 했을까요? 자기를 닮아 과단성이 있다고 칭찬했을까요 아니면 다 자기의 업보라며 땅을 쳤을까요...태종만 생각한다면, 사실 조금 고소한 면도 있습니다.

계유정난의 손쉬운 성공으로 이제 세상은 온전히 수양의 것이 되었습니다. 어린 단종은 어찌 홀로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