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58 - 인종 2

이찬조 2021. 7. 31. 10:43

고려왕조실록 58 - 인종 2

* 왕의 치욕

 

아무리 허수아비와 같은 왕이라지만 인종의 주위에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자겸의 전횡에 불안을 느낀 인종은 드디어 뜻을 같이하는 신하 동지추밀원사 지녹연, 내시지후 김찬, 상장군 최탁과 오탁, 대장군 권수 등 이들로 하여금 이자겸을 처치하도록 명을 내립니다.

 

이리하여 최탁 김찬 등이 군사를 이끌고 궁에 들어가 병부상서 척준신(척준경의 동생), 척순(척준경의 아들)을 죽여 궁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이에 당황한 이자겸과 척준경은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척준경이 군사를 끌고 궁으로 처들어가고 이자겸의 아들 이자 수좌인 의장이 승병 300여명을 끌고 지원을 해오자, 기세가 오른 척준경은 궁궐에 불을 지르면서 처들어가 왕을 호위하고 있던 군사들을 물리치고, 인종에게 다가가 주모자를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결국 빼앗긴 왕권을 되찾고자 일으킨 거사는 무참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주모자라 할 수있는 지녹현과 김찬 등은 곧 바로 유배의 길에 올랐고, 인종은 남궁에 옮겨 앉았다가 이자겸의 집인 중흥택에 감금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자겸은 인종을 감금하고 나서 행동의 제약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까지도 통제해 가며 자신이 왕위에 오를 꿈을 키워나갑니다.

 

한편 1126년 3월 금나라가 거란을 멸망시키자 조정에서는 금을 섬기는 문제로 왈가왈부하였는데, 고려에 조공을 바치던 여진이 세운 금을 상국으로 섬길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중신들이 반대를 하지만, 이자겸과 척준경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금나라를 섬김으로서 대외관계를 평온하게 하여야만 내분없이 자신들의 권력을 탈 없이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금나라가 이전에는 작은 나라여서 거란과 우리를 섬겼지만 지금은 흥왕하여 송나라와 거란을 멸망시키고 거대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국가와 인접되어 있으니 형편상 우리도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니 우선 사신을 보내어 예빙하여야 합니다”

 

이자겸과 척준경이 이러한 주장을 펴자, 이들에게 인질이나 다름없이 억압되어 있는 인종으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대로 따를 수밖에는.....

 

고려 스스로가 신하가 되기를 자청하며 신하를 파견하여 오니 금나라로서는 싫어 할 이유가 없겠지요,

 

한편 이자겸의 제거에 실패하여 그의 집에 감금 상태이던 인종은 겁에 질려 이자겸에게 왕위를 넘겨주고자 조서를 내립니다. 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인가, 이자겸으로서는---. 그러나 양부(兩府)의 의논과 세간의 눈이 두려워 감히 그 조서에 응낙하지 못하고, 조서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시간을 끕니다. 보나마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때가오면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 양부: 고려 때에 문하부(門下部)와 밀직사(密直司)의 병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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