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85 - 강종

이찬조 2021. 8. 15. 05:16

고려왕조실록 85 - 강종

- 늙은 왕의 등극.

 

 

 희종이 왕권회복을 위하여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면서, 명종의 맏아들 오(祦)는 또 한 차례 급하게 밀려오는 운명의 파고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는 대수(大菙), 이름은 숙(璹)·정(貞)·오(祦). 시호는 원효(元孝)로 1152년에 태어나 1173년 4월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명종의 장남인 오는 처음부터 왕이 되어야 할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1197년 9월 최충헌에 의해 명종이 강제로 폐위되면서, 오도 같이 강화도에 유배되고 맙니다. 그 후 줄곧 강화에서 지내다가 1210년 12월에 개경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나긴 유배 생활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다음해인 1211년 정월에 한남공에 봉해졌다가 그해 12월에 최충헌이 희종을 폐위시키고 그를 옹립함에 따라 고려 제22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니 그가 바로 강종입니다. 강종은 이 때 그의 나이는 이미 60세로 당시로서는 고령이었습니다. 물어 보나마나 최충헌은 힘없고 판단력이 흐린 늙은이를 보위에 앉혀 놓아야 자기 멋대로 하기가 편했을 것이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고령으로 그가 긴 유배 생활에서 풀려났을 때, 그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기만을 소원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질 않았습니다. 희종이 폐위되자 최충헌의 아들 최우와 평장사 임유가 찾아와 그를 강안전으로 데려갔고, 곧 고려의 제22대왕으로 즉위케 하였으니 말입니다.

 

환갑의 나이도 나이려니와 오랜 유배생활 끝에 병약한 몸이 되어버린 강종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저 날선 칼날처럼 느껴지는 최충헌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채 저물어가는 노년의 회심을 어루만질 따름이었습니다.

 

강종은 즉위하자 자신의 서녀를 최충헌에게 시집보내 정화택주로 칭하였고, 최충헌의 본부인 임씨는 수성택주로 봉하는데, ‘택주(宅主)’란 본래 왕녀에게만 허용되어 있던 칭호였기 때문에 본부인 임씨도 사실상은 첩실로 들어온 왕녀 덕분에 덩달아 택주로 봉해지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왕이 자신의 딸을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신하에게 첩으로 줘버린 것이지요. 나 좀 잘 봐 달라고. 또한 최충헌의 흥녕부를 고쳐 진강부라 하고, “무녕무위향리조안공신”의 칭호를 내려주며 나라의 모든 일을 최충헌에게 일임하였습니다. 말이 좋아 일임이지......  그냥 그대 마음대로 하소서...

 

2년이 채 안되는 강종의 치세 기간에 강종이 한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스스로 한 일도 없었고 하고자 했던 일도 없었으니, 무인들과 충돌이 있을 수도 없었기에 그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왕이 세워지는 불상사 없이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순조롭게 왕위를 이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차피 아무런 권한도 없는데 괜스레 깝죽거리다가 개죽음이나 당하느니보다는 목숨이나 안전하게 보존하고 그래도 만인이 우러러 보는 임금이라는 자리이니 이 자리나 자식 놈에게 불상사 없이 넘겨주자하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1213년 8월 강종의 병이 위중하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려 왕위를 아들 진(瞋)태자에게 물려주고 그날 밤 2시경에 운명하게 됩니다.

 

“내가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가 이제 몇 년째 되었는데, 박덕하여 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병으로 위독하게 되었다. 임금의 자리는 잠시도 비울 수 없기에 태자 진의 덕행이 인방의 동의를 얻을 만하고 그의 총명은 아랫사람들을 능히 통솔할 만하므로 그에게 왕위를 주어 중대하고 어려운 일을 맡기노니 여러 백관들은 각기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새 임금에게 복종하라. 나의 죽음 후 능묘 제도는 검박과 절약을 앞세우도록 하며 한 달 입을 상복을 3일 후에 벗게 하라.”

 

강종은 1년8개월의 재위기간에 향년 62세를 일기로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고려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왕조실록 87 - 고종 2  (0) 2021.08.15
고려왕조실록 86 - 고종 1  (0) 2021.08.15
고려왕조실록 84 - 희종 2  (0) 2021.08.13
고려왕조실록 83 - 희종 1  (0) 2021.08.13
고려왕조실록 82 - 신종 5  (0)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