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

고려왕조실록 93 - 고종 8

이찬조 2021. 8. 19. 21:03

고려왕조실록 93 - 고종 8

- 김준(金俊, 김인준)의 집권 -1

 

 

그런데 그즈음 고려 내부에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1257년 최항(崔沆)이 죽고 그의 아들 최의(崔竩)가 무신 정권을 이어 받게 됩니다. 그런데 최의는 무신정권을 이끌만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보니 그의 집권과 동시에 최씨 무신정권의 종말이 시작되게 됩니다.

 

최항은 죽기 전에 아들 최의를 미리 세 사람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그들은 유능(柳能), 선인열(宣仁烈), 최양백(崔良伯)이었습니다. 이들은 최항 사후에 최의가 차질 없이 권력을 승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유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재상을 지낸 유력 가문집안 출신이고, 선인열의 가문은 불확실하지만 문관 출신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즉 유능과 선인열은 미천한 어머니를 둔 최의의 신분적 약점을 보완해주기 위해 최항이 선택했다고 볼 수 있고, 여기에다 믿을 만한 무장으로 최양백을 붙여준 것입니다. 최항이 최양백을 선택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면, 김준보다는 그래도 최양백이 더 믿을 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역으로 김준이 최양백 만큼 탐탁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최우(崔瑀)에게서 최항으로 정권이 넘어갈 때는 삼인방이 이끄는 가노 집단이 큰 역할을 했지만 최항에게서 최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가노 집단이 완전히 소외된 것입니다. 이에 아마도 김준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군을 위해 온 몸을 다 바쳐 충성을 다 바쳤건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따돌림 당했으니, 그 순간 그에게 들었던 소외감이나 실망감을 구태여 표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김준은 최의 집권 후 계속해서 그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고, 그러다보니 최의는 점점 김준을 멀리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됩니다.

 

아무리 불만에 가득 찬 김준도 최양백이 선인열과 더불어 빈틈없이 일을 처리해 놓았기에 김준은 속을 끓이면서도 일단 최의의 승계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김준이 결정적으로 최의의 눈 밖에 난 사건은 임연(林衍)과 송길유에 대한 청탁사건이었습니다.

 

김준과 가까운 임연(林衍)이라는 자가 남의 아내와 간통해 벌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는데, 이런 임연을 김준이 적극 비호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최의에게 호소하여 석방케 하고 후에 다시 벼슬까지 얻도록 해줍니다. 최의의 속마음이야 어쨌든 임연은 이때 김준의 덕으로 풀려나고 또 벼슬까지 다시 얻게 되었으니, 이때 입은 은혜로 해서 임연은 김준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동생을 숙부라고 부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임연은 김준의 심복이 되고 또 김준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 사건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이때가 최의의 집권 초기였다는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정권으로서 면모를 일신하여 엄정한 국가 관리의 기틀을 잡아 나가야 신망을 얻을 터인데, 초장부터 김준의 청탁으로 초를 친 것이지요. 최의는 마음속으로는 상당히 불쾌했을 거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래도 명색이 최고 권력자이고, 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감히 청탁이란 말인가? 벌써부터 깔보는 건가?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은근히 깔보는 건가? 제가 힘이 좀 있다고 날 깔보는 건가?’ 하는 불쾌감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최의는 겉으로는 대범하게 임연을 풀어주면서도 속으로는 김준을 꽁하고 찍어 놓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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