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쥐 마을에서 고양이 뽑는 선거는 그만

이찬조 2012. 3. 22. 09:41

 

2012년 411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편, 12월에는 새 대통령도 뽑는다. 나는 선거철만 되면 모든 국민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지,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가 된다는 루소의 명언과 더불어 소박한 독립영화 하나를 떠올린다. 15년 전 서울의 한 독립영화제에서 본 것인데, 제목은 <마우스콘신>이다. 쥐들의 마을에 선거가 있다. 이런저런 공약이 난무하고 마침내 대표를 뽑는다. 우습게도 고양이가 선출된다. 쥐들은 4년 내지 5년 동안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린다. 심지어 꼬리가 잘리거나 통째로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또 선거를 한다. 어이없게도 지난번엔 검은 고양이, 이번엔 흰 고양이가 뽑힌다. 설마 했는데, 역시다. 또 쥐들은 고양이에게 시달린다. 겉으로는 좀 나은 듯하지만 실상에서는 더 가혹하다. 고양이들이 쥐를 지배하는 노하우가 쌓인 까닭이다. 그리고 고통의 수년이 지나 다시 선거철이 온다. 아이쿠, 이번엔 얼룩 고양이가 뽑힌다. 처음엔 쥐들의 목소리를 듣는 척 하더니 갈수록 목을 더 죈다.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긴다. 그리고 또 고통의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새 선거철이 온다. 놀랍게도 쥐 한 마리가 용감하게 일어난다. “쥐 여러분, 이제는 절대 고양이를 우리 대표로 뽑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나섭시다!” 이 외침에 수많은 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영화는 쥐 죽은 듯 조용히 끝난다. 짧지만 큰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오늘 또다시 이 영화를 떠올리는 까닭은, 우리가 바로 <마우스콘신>의 쥐처럼 살아 온 게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고양이가 아닌 쥐, 풀뿌리 민초가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당장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고양이가 아닌 쥐를 대표로 뽑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참된 쥐는 있는가, 너도 나도 그런 쥐라고 나선다면 어떤 기준으로 가려내야 할까? 행여 쥐의 탈을 쓴 고양이는 없을까? 나의 삶은 물론, 우리 아이들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일꾼은 진정 어떤 쥐일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이렇다. 첫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여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를 실현할 쥐다. 둘째, 미국 등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쥐다. 셋째, 원자력이나 핵을 당장 폐기할 의지를 가진 쥐다. 넷째, 유기농 농민을 우대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하겠다는 쥐다. 다섯째, 남녀 아이들이 평등하고 행복한 교육을 받은 뒤 정말 하고픈 일을 하면서도 생계 걱정하지 않게 만들 쥐다. 여섯째, 부동산 투기, 금융 투기, 반민중적 철거나 국토 파괴를 금지하고 경제와 경영을 보다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방향으로 혁신하겠다는 쥐다. 일곱째, 온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도록 적극 지원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더 이상 중앙 권력체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쥐다. 요컨대, ‘돈의 경영이 아닌 삶의 경영을 할 쥐라면 주저없이 그 쥐를 뽑겠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참 척박하다. 민주 진보 진영조차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힘을 모으지 못하는 형국이다. 각자 자신이 최고이자 최선이라 믿기에 잘 뭉치지 못한다. 그러나 <마우스콘신>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대동단결해야 한다. 꼭 하나의 조직 속에 통합되지 않더라도 우선 쥐의 탈을 쓴 고양이는 막아야 한다. 느슨한 연대, 유연한 연대면 어떠랴? 그런 다음에 겸손한 자세로 역할 분담을 하면 된다. 각 조직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너머를 담당할 다른 조직에 마음을 열자.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더불어 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최대 장애물은 민주 진영 내부의 분열,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소, 총체적 사회변화에 대한 포기와 절망이다. 민초들이여, 짓밟혀도 또 일어서는 풀처럼 다시 서자. 우리 행복을 위해, 고양이, 특히 쥐의 탈을 쓴 고양이는 절대 뽑지 말자. 411일 뒤에도 우울한 노예가 아닌 행복한 주인으로 신나는 축제를 벌이자.

 

강수돌 교수님은 마을 이장을 하면서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셨던 분인다. 2006년 교원대 대학원 재학중 초빙하여 강연을 들었던 기억도 있어 유심히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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