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15. 6.11-14.
2. 백두산 서파, 북파
3. 재경 악양중 14회 13명
백두산 등반을 준비화며(서파)
백두산 북파쪽 지도
서파에서(오던비가 그쳐서 천지를 볼수 있었음)(12일)
천지 표지석에서 4명(문정호,이상열, 이찬조, 유남열)
중국과 조선의 경계석(예전에 5호였는데 37호로 바뀜)
서파 주차장 위쪽 첫번째 휴게소 옆에는 하산길에 눈이 1미터 이상 쌓여 있다.
변옥남 회장님이 찍어온 꽃(이름을 몰라서 아시는분 댓글 무탁드립니다.)
금강대협곡에서
금강대협곡
장백산주차장 (서파): 장백산이 푸른글씨
장백산 주차장(북파): 글시가 붉은 글씨(13일)
북파에서 매표해 올 동안
북파 입구에서
북파에서 본 천지
북파에서 남자 6명(천지 물결은 전혀 안보이는 듯)
남열이가 출장가고 없네요.(북파)
북파에서 안전 보호대를 따라 몰려온 인파..저 뒤쪽이 주차장과 기상대이다.뒤쪽에 보이는 차량은 10인승 봉고..
2000미터 이상의 토질과 풀이나 나무가 귀함.
붉은옷은 중국사람들의 대표적인 의상, 저 멀리 보호대 안쪽은 안전 요원.
장백폭포에서..
어제 먹지도 않은 술에 취한 이상열씨...(13일)
녹연담: 위치는 소천지 조금 아래.
중국사람이 찍어준 사진(녹연담)-규열이 정호와 좀 늦게 도착해서..
녹연담 남자들만
태풍에 쓰러진 나무뿌리를 이용하여 녹연담을 붙여 둠..
녹연담을 나오는 출구쪽에서 단체
북릉공원간개(우리말로는 북릉소개)(14일)
정호는 뭔가 기분이 영 아닌 모양이다. 상길이를 모르는것도 아니고..
북릉단체
북릉단체2..
인천공항에서 먼저 일부 가시고...
전체 내용은 게시판 5563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백두산 여행(20150611~0614)
1. 일시 : 2015.6.11(목)~6.14(일)
2. 장소 : 백두산 서파, 북파
3. 참석 : 김규열, 문정호, 배상길, 유남열, 이상열, 이찬조/ 강화자, 변옥남, 손옥희,유은숙, 이재선, 정영숙, 강정숙(비자발급 순서)
지난해 12월 계획하여 백두산팀 카톡방을 만들어 두고 소통하기 쉽게 하였다.
요즈음 유행하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망설이기도 하였다.
2015.6.11.(목) 맑음
인천공항에서 14:30에 개찰, 15:15에 이륙, 16:35 심양 도착, 手貨物(수화물)을 찾아 나오니 17:35인데 중국은 우리보다 1시간이 늦어서 16:35(이하 중국시간)이다. 우리가이드는 한진관광 피킷을 든 고량강(남, 28세, 전화: 186-4245-1853)이고, 일행은 부부팀, 안동팀 5명과 우리팀 13명으로 모두 20명이었다. 심양주변은 모두 옥수수 밭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중국 인구는 13억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15억이 된다고 한다. 면적은 약 960만㎢로 한반도의 44배이며, 남한의 97배정도로 세계 4위에 해당된다.
백두산의 해석을 가이드는 백 번 올라 두 번 볼 수 있는 산이라 백두산이라고 하며, 중국의 10대 명산에 속하고, 遼寧省 심양시 人口는 840만으로 10대 도시다.
여행시 필요한 인사말은 니하오(안녕하십니까?), 따거(형, 운전수: 그들의 성을 앞에 붙여서 쓴다), 쓰발노마(식사하셨나요?), 쎄쎄(감사합니다.), 신콜라(수고 하셨습니다.)를 가르쳐 준다.
중국의 黨체제는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법은 사회주의를 취하고 있단다.
후진타오 시대에 임대법을 추진하여 국가에 돈을 주고 토지를 100년동안 임대하게 되며, 본인이 죽으면 아들에게 양도되어 다시 임대 계약을 하게 된다고 한다.
도중에 南雜木服務區[남잡목복무구(휴게소)]에는 餐廳(찬청:식당), 客房(객방:모텔), 超市(초시:슈퍼마켓), 公側(공측:공중변소), 汽車修理(기차수리:차량정비)를 하도록 休憩所(휴게소)를 만들어 두었다.
通化市(통화시)에는 20:10도착, 21:20 저녁식사시 테이블당 10명씩 앉도록 하여 이때 동행한 분들과 좀 더 친근해 질 수 있었다.
21:30 라투르모건호텔(中東拉圖摩根; 중동납도마근, 0435-339-7777)에 투숙하였다. 412호에 모여 다과를 나누며 환담을 하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2015.6.12.(금)
04:00 기상 05:15분에 백두산 서파로 향한다. 마을을 지날 때 운동하는 사람을 구경할 수 있었고, 한 시간 쯤 이동(06:00)하니 白山市가 나오고, 그 외 마을이 거의 없다. 도시락은 빵 1개, 소세지 1개, 우유 1팩, 바나나 1개이다.
장백산주차장에서는 흡연이 불가하며, 천지에서는 흡연은 안 되고, 애국가를 불러도 안 되며, 만세를 불러도 안 된다고 한다.
장백산 가는 도로를 정비하는 중이라서 울퉁불퉁했다. 노폭이 좁아 비켜갈 수가 없고, 통행로를 막고 반대차를 통행 시킬 때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10:10경 송강하에 도착하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11:00 장백산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는 매표를 하려갔고 일행은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여기서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가이드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수용함이 좋다.
그 이유는 한두 명이 늦어서 같은 버스를 타지 못하면 20분을 대기하여야 했다.
11:15분 매표하여 2분정도 숲길을 나오니 검표소가 있다. 주차장에는 33인승 버스가 즐비하였다. 평일이라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11:30분에 출발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보니 90%이상은 자작나무이고, 전나무, 낙엽송 등이 보인다. 해발 2천미터 이상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천지주차장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내린다. 옷은 가을정도로 맞추어 입었는데 여간 추운 것이 아니다. 비옷을 꺼내 입고 배낭 카버도 씌우고 정상을 향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2인 1조의 가마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는 계단에는 5계단마다 표시가 되어있고, 모두 1442계단이라고 한다.
중간에 두 곳에 쉼터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장뇌삼도 팔고, 비옷도 파는데 1회용 바지 비옷을 4천원이라고 한다. 2천원에 거래하자고하니 안된단다. 포기하였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비가 내렸는데 점점 맑아지더니 천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주변의 산들도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백두산 제일봉인 장군봉(2774m/북은 2750m 주장)은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환호하였고 저마다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비옷을 벗고 중국과 조선의 영토를 표시하는 37호비를 지나 북한 땅을 폭 50미터 길이 100미터 정도를 밟아볼 수 있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밟아보고자 마지막 부근까지 다녀왔다.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북한을 통하여 백두산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포인터는 천지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입장료 1만원 주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 주는데 10분을 기다리면 사진이 나온다. 2인이 들어가면 12,000원이었다.
기사들이 몇 컷 찍어주고 팁을 요구한다. 상열이는 등산하면서 많은 포즈를 연구해 두었다. 만세 아닌 승리의 표시와 양팔을 벌려 찍은 모습도 돋보였다.
내 생각에는 낚시의자에 천지라고 써서 붙이고 앉아서 찍으면 제격이겠다 싶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삼삼오오로 흩어져서 하산한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얼마 후에는 정말 멋이 있을 것 같다.
하산 길에‘쌍제자하’란 좁은 협곡에 다리를 놓아 구경을 하고, 절반 쯤 내려오니 금강대협곡 나온다. 이곳에서 13명이 단체로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에 비교되는 곳인데, 풍화작용에도 끄떡없이 솟아 있는 바위들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출구 가까이에는 아름드리 천년송이 솟아 있고, 두 가지 나무의 連理根(연리근)도 이색적으로 浮刻(부각)시켜 놓기도 하였다.
장백산휴게소에 오니 입장객은 한사람도 없고 하산하는 분들만 있어 여유롭고 한가하였다. 휴게소 안에는 백두산의 모형을 만들어 두고 있는데 표시해 둔 곳이 몇 곳 되지 않았다. 서파에서 3시간을 관광하고, 14:30에 장백산휴게소를 출발 二道白河(이도백하)에 도착하니 17:30이다. 강원도식당이라 부르는데 간판이 없었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18:50에 나선다. 당초 여기서 발 맛사지가 있는데 내일저녁 통화에서 전신 맛사지로 세팀 대표가 합의에 서명하여야 했다.
18:50에 金水鶴호텔(0433-607-7777)에 도착하여 쉬는데 콜이 왔다. 총무님 방으로 집합하란다. 회의도 하고 환담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호텔은 아주 깨끗하였다. 비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비옷을 준비해 주었다.
2015.6.13.(토)
05:00기상, 06:00 식사, 07:35 출발하여 천문봉으로 이동한다. 08:10 산문주차장에 도착, 09:10 매표소 통과, 천문봉정상까지 에스코스를 오르는데 운전기사의 솜씨가 카레이셔 수준이다. 사람들이 괴성을 지른다. 길 난간의 찌그런진 가드레일을 보니 눈밭에서 운전의 어려움을 말해 주는 것 같고, 1대에 10명씩 타는 봉고가 30미터에 1대씩 오르는 것 같다. 20분 남짓 갔을 때 산림의 한계선이랄까 나무가 보이지 않고 검은빛 모래 산이 펼쳐진다. 30여분을 달려 09:40분 천문봉주차장에 내리니 엄청 춥다. 겨울등산복을 꺼내 입고서 움직였다. 의관을 정제하고 가이드가 10:10까지 천문봉주차장에 집결하도록 하였으나, 여기서도 개인행동이 우선했다. 38호 경계비를 찾아보지 못하고 와서 아쉬웠다. 10:30분에 버스로 산문주차장으로 출발하여 하산하여 11:00 산문주차장을 거쳐 다시 10분정도 올라 장백폭포 주차장에 이른다. 장백폭포에서는 약 40분간 관광을 한다. 장백폭포는 천지에서 흘러오는 물로 68미터 폭포인데 앞쪽엔 눈이 횡으로 걸쳐있고, 저마다 가까이에서 보고자하나 폭포와의 거리가 멀었다. 되돌아 나오는 길은 우측으로 돌아 온천지구로 왔다. 유황이 솟는 모습을 보며 온천을 윤영하지 않음이 이상했다. 계란은 20개를 샀는데 옥수수는 보이지 않았다. 하산버스로 하산하는데 도중 정류소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후에 알고 보니 거기가 ‘소천지’였다. 조금 아래 내려오면 ‘녹연담’이 나온다. 규열이가 다리가 아파서 포기하기에 두고 갔는데 건물을 돌아서 보니 길이 멀지 않아 규열와 동행하였다. 여기서 계란을 나누어 먹는데 일반계란보다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12:20분 녹원담을 내려와서 二道白河로 와서 우리버스로 바꿔 타고 점심은 龍昇山壯이란 식당에서 먹고 14:10에 통화로 향하여 출발한다. 오는 길에는 휴게소 3곳을 들려서 오는데 한곳은 휴게소도 아니었고 자연방뇨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조선족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가게 안쪽에 화장실을 보게 했던 집이었다.
오면서는 전신안마를 받는데 18,000원씩 갹출하였고, 팁은 2천원으로 결정했다. 20:35에 통화시 영풍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다.
21:40에 발에 각질을 먹게하는 닥터피쉬(Doctor fish)를 10분하는데 상열이 발에만 모두 모여든다. 이 과정을 마치고 안마를 1:20분정도 받았다. 안마는 피로를 풀어주고 좋았다. 숙소에 오니 자정이다.
식당에서 써빙하는 여성을 부를 때 예전에‘소저’로 배웠는데 가이드는 소저는 술집 아가씨를 뜻하며, 이는‘훈양’이라고 하여야 한단다.
북릉에 대하여 설명은 후금의 시조인 누르하치 아들 홍타이지가 청나라로 개명하였고, 대금에서 후금으로, 후금에서 청으로 바꾼 이유는 금은 불에 녹으므로 청이라 하여 불을 이길 수 있도록 淸이라 하였다고 한다. 북릉은 홍타이지의 무덤이다.
서탑거리는 조선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고 소현세자가 볼모로 인질 5만명이 서탑거리에서 종으로 판매되었으며, 그후 3만명이 조선으로 귀국시 압록강에서 몸을 씻으면 깨끗해 진다하여 씻고 돌아온 여성이 화냥녀였다. 소현세자는 불경에 심취하여 불교를 전하다 암살당하였다고 한다.
북한의 북침이라고 하는 것은 북에서 먼저 남쪽을 침공하였다는 의미의 북침이라고 하는데 깜짝 놀랐다.
24:10에 숙소인 라투르모건호텔(中東拉圖摩根; 중동납도마근)에 투숙하였다.
상열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02:00이 지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2015.6.14.(일) 맑음
05:00기상, 06:00식사, 07:00 심양으로 출발 하였다. 4시간이 소요된다.
10:40분 북릉에 도착하여 2천원씩 주고 차를 타고 들어가도록 하였다. 한 시간 동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을 하였고, 청나라로 개명한 홍타이지는 나무를 좋아 했던 모양이다. 뽕나무의 오디는 참새들의 천국이었고, 세 가지 동물상이 있는데 말과 낙타와 코끼리였다. 말은 여진족, 후금이나 청나라의 중요한 전쟁도구이기도 했다. 낙타와 코끼리인데 두 가지는 제일 큰 동물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북릉의 봉상은 마사토로 쌓여있는데 흘러내리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고, 봉상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서탑거리를 걸어 볼 시간이 없어 차량으로 구경하고 점심은 元都(원도)식당에서 12:35~13:20까지 식사하고 심양공항으로 향한다. 중간에 混江(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혼강이란 두강이 만나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瀋陽의 瀋字가 이강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북한은 2003년까지는 러시아어를 공부하였고, 2004년부터는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함. 중국은 현재 한국보다 15년 뒤지고 있다고 보고 있음.
13:20~14:00 심양공항 도착 하면서 구입한 물건들을 공항에서 정리하고, 출국수속을 밟았다. 서울에 도착하면 인사할 겨를도 없기에 심양공항에서 이세도씨와 안동팀 사장님 등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16:35분발 항공기는 17:00에 출발하여 18:20(우리시간 19:20)에 인천에 도착한다.
소천지를 보고 오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40분이면 된다는데...
수화물을 찾아 20:20분에 해산하였다.
여수에서 함께한 상길이 친구,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한 마음 고맙고, 모든 친구들의 단합된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상열이의 걸죽한 농담도, 규열이의 독특한 목소리도, 정호의 우리팀 소개와 ‘안동역에서’ 모두 좋았습니다. 백두산 서파에서 단체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고 넉넉한 얼굴로 그렇게 삽시다.
백두산 건배사는 백 살까지, 두려움 없이, 산뜻하게 삽시다. 하면 “백두산”이라고 했던가? 더불어 유익한 모임이 되기 바라면서
회장님, 총무님 대단히 수고 많았고 감사합니다.
이찬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