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20 시황제 시대를 열다.
진왕 정은 6국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나자, 전국 문무백관들을 함양궁(咸陽宮)으로 불러들여
천하통일 축하연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진왕은 그 자리에서 문무백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시를 내렸다.
<나는 오늘날 천하를 통일함으로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소. 이제는 어느 누가 감히 나에게 싸움을 걸어 올 것이오? 앞으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니, 전국에 있는 무기는 모조리 거두어 들여서 무쇠로 녹여 가지고 철인(鐵人)을 만들어 버리도록 하시오. 나는 궁정(宮庭)에 철인들을 장식물로 세워 두고, 전국시대를 회상하며 평화를 즐기기로 하겠소. 그리고 과거에도 성왕(聖王)이 많았지만, 나처럼 천하를 통일한 제왕은 나 이외에 또 누가 있었소?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는 <대왕>이라는 칭호 자체부터가 너무도 왜소하게 느껴지는 바이오."
그리고 승상 이사(李斯)를 돌아보며 물었다.
"승상은 역사에 밝으시니까 하나 묻겠소. 오늘날까지 역사상 위대한 임금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었소?"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역사상 위대했던 임금에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있사옵니다."
"삼황이란 누구이며, 오제는 누구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삼황이란 고대의 천황씨(天皇氏), 지황씨 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의 세 임금님을 말하는 것 이옵고,
오제란 그 다음 시대의 소호(小昊), 전욱, 제곡, 요(堯), 순(舜)의 다섯 임금님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성업을 나의 통일천하와 비교한다면, 어느 편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소? 진실로 오만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신들은 약삭빠르게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삼황오제가 제아무리 성군(聖君)이셨다 하기로 그들의 업적을 어찌 감히 대왕의 통일천하의 대성업(大聖業)에 비교할 수 있으오리까.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진왕은 그 대답이 매우 만족스러워 크게 웃으면서 승상 이사에게 다시 물었다.
"삼황오제의 업적과 나의 업적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말들하는데,
승상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사가 대답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옵니다. 삼황오제가 선정(善政)을 베푸셨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지방에만 국한되었을 뿐이었고, 대왕께서는 천하통일 하셨으니 어찌 삼황오제의 업적으로 비교할 수 있으오리까?"
"옳은 말씀이오. 업적이 별로 대단치도 않았던 그들이<삼황오제>라고 불려 왔다면, 내게 대한 칭호도 무언가 새롭고 의미있게 불려야 옳지 않겠소?"
춘추 전국 시대에는 크고 작은 국가가 70여 개나 되었고, 그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임금을 한결 같이 대왕(大王)이라고 불러온 바, 모든 국가를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한 지금에 와서는 그 흔한 <대왕>이라는 칭호보다는 진왕은 조무래기 <대왕>들과 현저하고 뚜렷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임금님>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칭호로 불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승상 이사는 진왕의 그러한 심리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머리를 조아리며 품했다.
"천하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신 지금에 와서는 <대왕>이라는 칭호는 너무도 왜소하신 칭호인 줄로 아뢰옵니다. 고대에는 성군을 <천자>라고 불러 왔사오니, 오늘부터 대왕께서도 <천자>로 불리심이 어떠하겠나이까 ?"
"천자...? 천자라는 칭호는 <하늘의 아들>이란 뜻이 아니오?
그 칭호도 나쁘지는 않으나, <천자>라는 칭호는 남들이 이미 써 오던 칭호가 아니오?
그보다는 <삼황오제>처럼 나의 업적을 뚜렸하게 부각시켜 보이는 새로운 칭호로 불리고 싶구려."
"물론 그래야 하실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어떤 칭호로 부르게 하심이 좋으시겠나이까 ?"
진왕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별로 대단치도 않았던 임금들 조차 <삼황>이니 <오제>니 하고 불려왔던 모양이니, 나의 경우는 <삼황오제>를 하나로 뭉쳐서 <황제>라고 부르면 어떠하겠소?"
그 제안에 승상 이사는 크게 감탄하였다.
"과연 기발하신 착상이시옵니다. 대왕께서는 <삼황오제>의 모든 업적을 통합한 것보다도 더 위대하신 업적을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칭호도 마땅히 <황제>라고 불러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이리하여 그날부터 진왕 정은 <황제>라는 새로운 칭호로 부르게 되었다.
진왕은 <황제>라는 새로운 칭호가 지극히 만족스러워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내 손으로 천하통일을 이루어 놓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 내려가며 황제의 자리를 누리게 될 것이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시황제> 와 <진시황>으로 부르고, 그 다음 대(代)에는 <이세 황제> <삼세 황제>로 부르게 하겠소. 이렇게 이 나라는 나의 자손들이 만대를 누려가며 통치하게 될 것이오."
이리하여 진왕은 그날부터 자기를 <시황제> 또는 <진시황>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그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황제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아 이런 말까지 하였다.
"지금까지 대왕들은 자기 자신을 <과인(寡人)>이라고 지칭해 왔었소. 그러나 대왕이 아니고 <황제>인 나에게는 그 말도 격에 어울리지 않으니, 그 말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겠소?"
이사가 잠시 생각해 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과인>이라는 말은 수많은 대왕들이 써오던 어휘이므로, <황제>께는 적합하지 않은 어휘이옵니다.
그러하오니 황제께서 신하들에게 자신을 지칭하실 때에는 <짐(朕)>이라고 하심이 어떠하겠나이까?"
"짐...? 짐이란, 어떤 글자를 쓰는 것이오?"
"짐... 이란, 나 짐(朕) 자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내 자신을 말할 대에는 <짐>이라고 부르기로 하겠소.
그 대신 <짐>이란 글자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황제께서 쓰시는 <짐>이라는 글자를 감히 어느 누가 쓸 수 있으오리까?"
이리하여 <황제>와 <짐>이라는 말은 진시황에 의해 최초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시황제 때부터 전국을 36군(郡)으로 나누어 각 고을 군수를 직접 임명하는 중앙 집권제(中央集權制)를 확립하였고, 모든 법률도 전국에 획일적으로 통하도록 조정하고, 도량형(度量衡 : 길이, 부피, 무게)도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만들어 놓았다.
진시황은 이렇게 국기(國基)를 튼튼히 다져 놓고 나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12만호에 달하는 부호(富豪)들을 모조리 함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게 하는 동시에, 자신도 아방궁(阿房宮) 이라는 거대한 궁궐을 새로 지어, 전국 각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젊고 예쁜 미녀들을 3천여 명이나 불러들여, 아방궁에서 지내도록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후(死後)를 대비하여 자기 자신의 묘궁(墓宮)도 축조하도록 시켰는데, 그 가묘(假墓)는 봉분의 높이가 4백자에 길이가 2천자에 이르게 하였고, 내부에는 축소한 황하(黃河)와 양자강(揚子江)까지 만들어 놓고, 물 대신에 수은(水銀)을 흐르게 함과 동시에 수많은 제장 제졸(諸將諸卒)의 호위 군사상(像)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그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던 가는 가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진시황 시대에는 이러한 거대한 토목 공사가 수 없이 이뤄졌는데, 그 모든 공사가 오로지 백성들의 부역(賦役)으로 충당되었으니 천하통일의 기쁨은 오직 진시황 한 사람에 국한되었고, 백성들은 언제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죽어나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승상 이사는 철저한 법치주의자(法治主義者)인 관계로, 새로운 법령을 만들고 공표하고, 이를 어기는 자가 있게 되면 죄질에 따라 오형(五刑)에 처하도록 하였다.
오형이란 얼굴에 글자를 새겨 넣는 형벌, 코를 베어 내는 형벌을 비롯하여, 남에 여자를 사사로이 범한 사내놈의 불알을 잘라내는 형벌, 다른 놈과 눈이 맞아 음행을 저지른 여자의 음경을 잘라내는 형벌,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는 거리에서 허리를 자르는 형벌 등의 다섯 가지 형벌을 말하는 것이다.
시황제는 나라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져 놓고 나자, 그때부터는 낮에는 사냥을 즐기고, 밤이면 아방궁에서 미녀들과 주연(酒宴)을 베풀며 밤을 새우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가 40세이었는데, 그때까지 40평생을 전국 통일의 전운(戰雲) 속에서만 살아왔었으니, 천하를 통일한 이제 와서는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상 이사는 시황제의 이러한 생활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바가 있어서, 하루는 이렇게 간한 일이 있었다.
"자고로 성군(聖君)은 천하를 끊임없이 순회하시며 민정(民情)을 소상하게 시찰하시와, 모든 민원(民願)을 정치에 반영시켰던 것이옵니다. 황제께서는 오늘날처럼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에 깊이 앉아 계셔서는 천하의 고질(痼疾)을 아실 수 있으오리까? 그러므로 자체에 황제께서도 전국을 친히 순회하시며 민심을 두루 보살피심이 좋으실 줄로 아뢰옵니다."
시황제는 그 간언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거 참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소. 그렇지 않아도 짐은 짐의 나라 모든 국토를 짐의 눈으로 직접 순찰해 보고 싶었소이다. 우선 농서지방으로 떠나도록 할 테니, 짐의 행차에 불편함이 없도록 농서까지 새로운 길을 닦아 놓도록 하시오."
함양에서 농서에 이르는 길은 첩첩 태산이 가로막혀 있는 머나먼 천릿길이었다. 그 험난한 곳에 황제의 수레가 지나갈 황제 전용 도로(皇帝專用道路)를 새로 닦아 놓자니, 거기에 또 죽어나는 사람들은 백성들 뿐이었다.
만여 명이 한 달 동안이나 끼니를 굶어 가며 신작로를 닦았건만, 시황제는 백성들의 그 같은 노고에는 추호의 배려함이 없었다.
이윽고 시황제는 지방 순행 길에 올랐다. 황제가 타고 다니는 <온량차>는 창문이 여섯 개나 있는 거대한 수레여서 거기에는 시녀들도 10여 명이나 동승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앞뒤에는 각각 5천여 명의 기마대가 호위하였고, 이를 뒤따르는 무리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들은 음식과 예복(禮服), 침구류와 의료등을 전담하는 행렬이었다.
이렇게 거창하고 장대한 시황제의 행차에는 그가 탄 온량차가 진행하는 좌우편 길가에는 황제를 전송하고 영접하는 백성들의 도열이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그들은 온량차가 지날 때마다, <시황제 폐하 만세!>를 외쳐대야 했었다. 시황제는 그때마다 온량차 창문을 열고 손을 들어 백성들의 환호에 응하며, 백성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을 <성자의 은덕>이라고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영접하는 백성들은 모두가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어서 개중에는,
(우리나라를 빼앗은 자가 바로 저자였구나!) 하고 노골적으로 원한을 품은 자가 없지 않았지만, 시황제는 백성들의 그 같은 원성을 개의해 본 일조차 없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에게 나의 거룩한 얼굴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자비로운 성군이냐 ?)
진시황 자신은 속으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황제의 지방 순행에는 언제든지 대부(大夫 : 비서실장) 조고(趙高)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시황제 일행이 농서에 도착하니, 성안에는 환영 인파가 30만 명이나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어둡기만 하였다. 입으로는 <시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원망의 빛이 가득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얼마 전에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라
새로운 통치자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대부 조고는 그런 눈치를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황제 어전에서 젊은 청년 하나를 붙잡고,
"황제 폐하께서 지금 이 지방으로 순행 나오신 것에 대하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청년은 황제의 발아래 엎드려 울면서 대답했다.
"성은(聖恩)이 망극하옵게도 황제께서 저희 지방에 임어(臨御)해 주시와, 저희들 민초(民草)들은 눈물겨운 감격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조고는 그 대답을 듣고 시황제에게 품한다.
" 이 청년의 말을 들어 보시옵소서. 황제 폐하의 성덕이 전국 방방곡곡에까지 골고루 퍼져서, 만천하가 태평성대를 구가(謳歌)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옵니다."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고가 미리 꾸며둔 조작극(造作劇)이었다.
조고는 워낙 꾀가 밝은 인물인 지라, 황제를 기쁘게 해 주려고 문제의 청년을 돈으로 매수하여, 황제 앞에서 그렇게 대답하도록 미리 꾸며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밀을 알 턱이 없는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태평성대를 마음껏 즐기게 하리라."
농서에는 계두산(鷄頭山)이라는 높은 산이 있었다.
황제가 계두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굽어 살펴보니, 저 멀리 하늘가에 오색영롱한 구름이 몇 조각 떠돌고 있었다.
"저게 무슨 구름이냐? 저 구름이야말로 이상한 구름이로다."
시황제가 묻자 조고가 대답했다.
"글쎄올시다 .....? 수행원 중에 송무기(宋無忌)라는 점성사(占星師)가 있사오니, 그를 불러 물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점성사 송무기가 즉시 불려와 구름을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대답하였다.
"구름에는 상운(祥雲), 채운(彩雲), 제운(霽雲),경운(慶雲)등의 여러 가지 구름이 있사온데, 지금 저것은 구름이 아니옵고 단순한 운기(雲氣)일 뿐이옵니다. 저 운기에는 요기(妖氣)가 감돌고 있사온데, 저 요기를 제압해 버리려면, 황제께옵서 남방으로 행차하시어, 추역산 정상에 거대한 돌로 황제의 공덕비(功德碑)를 세우시면 될 것이옵니다."
시황제는 <요기>가 발동했다는 말에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는 것만은 기쁜 일이기에 즉석에서,
"그러면 지금부터 <추역산>으로 가보자."하고 명령하였다.
추역산은 농서에서 동남방으로 5백 여리나 떨어져 있는 태산이었다. 황제 일행이 추역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황제 전용 도로>를 닦아야 할 판이었다.
얼마 후, 시황제 일행은 백성의 피 땀으로 급조(急造)된 <황제 전용 도로>를 이용하여 추역산으로 행차하던 도중에 갑자기 세찬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황제 일행은 길가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서 비를 피할 수가 있었다.
비가 그친 후, 황제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 느티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으니, 그의 기행(奇行)은 후세에도 전해져, 우리나라 조선 왕조 때에도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를 탄생 시키게 하였다.
이렇게 시황제가 추역산에 당도 해 보니, 추역산은 정상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2백 여리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명산이었다.
시황제는 점성사 송무기를 불러 물어 본다.
"계두산 상공에 감돌고 있는 요기를 제압해 버리려면 이 산꼭대기에 짐의 공덕비를 세워야 한다고 했것다? "
송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그러하옵니다. 허공중에 떠돌며 배회하는 요기를 제압할 수 있는 방도는 오직 이 산성에 성상의 위업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는 길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면 이 산성에 짐의 공덕비를 세우도록 하라. 공덕비를 크고 무겁게 할수록 효과가 클 것이니, 이왕이면 거대하게 세우라."
이리하여 추역산 정상에 시황제의 거대한 공덕비가 세워졌으니, 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제, 천위(天位)에 임하시사 관제(官制)를 새롭게 제정하시고, 법도(法度)를 분명히 밝혀 놓으시니 만천하의 백성들이 한결 같이 복종하여, 사상 처음으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도다. 이로써 치세(治世)의 도(道)를 천지와 더불어 운행하시니, 대의(大義)가 소명(紹明)하여 만백성들의 생업이 날로 번성해 가도다. 황제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신 이후 날이면 날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시고 저녁에는 늦게까지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국리민복(國利民福)에만 전념 하시니, 귀천(貴賤)이 융통하고 상하가 융합하여, 황제의 덕화(德化)는 천지와 더불어 무궁하도다.>
황제는 거대한 비석에 아로새겨진 자신의 공문 비문을 읽어 보고 적이 만족스러웠다.
그리하여 점성사 송무기에게 많은 재물을 내려주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황제는 함양으로 돌아오다가 <지부산>에도 올라가 보았는데 그곳도 경치가 매우 빼어나므로 그 산위에도 똑같은 공덕비를 또 하나 세우게 하였다. 그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낭야산>에 들렀을 때에도 눈앞에 굽어보이는 황해 바다의 경치 또한 너무도 뛰어나, 그곳에서는 석 달간이나 체류하면서 그곳에도 또 하나의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게 하였다.
이렇게 공덕비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전제 군주들의 공통적인 생리인지도 모른다.
[출처] 열국지 (20) 열린 <시황제> 時代.|작성자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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