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 21 해동국 장생불로초

이찬조 2020. 1. 3. 22:42

열국지 21 해동국 장생불로초

 

시황제가 지방 순회를 마치고 함양에 다시 돌아온 것은 반년이 지난 이듬해 봄이었다.

황제가 오랫만에 환궁을 하게 되자, 맏아들 부소(扶蘇)와 둘째아들 호해(胡亥)가 만조백관들을 거느리고 함양 백 리 밖까지 마중을 나와 그날은 아방궁에서 성대한 환영연이 베풀어졌다.

때마침 화창한 꽃시절이어서 아방궁 정원에는 천자만홍(千紫萬紅)이 만발하였으므로, 황제는 만조백관들과 더불어 취흥이 도도하여,

"짐은 이번 지방 순행에서 많은 소득이 있었소. 이제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지방 순행을 꾸준히 다닐 것이오."

하고 말하니 만조백관들은 허리를 굽히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태평성대는 일월과 더불어 영원히 계속될 것이옵니다."

하고 제창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의 일이었다.

시황제가 현경전(顯慶殿)에 나와 정사를 살피는데, 여독(旅毒)이 몸에 쌓여 자기도 모르게 용상(龍床)에 앉은 채 혼곤히 잠이 들었다. 잠은 이내 꿈으로 변했다.

그런데, 꿈에 홀연히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童子)와 붉은 옷을 입은 동자, 둘이 나타나더니 진시황의 옥새(玉璽)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에 시황제는 크게 노하여,

"이놈들아! 너희 놈들은 어디서 온 놈들이기에 감히 옥새를 빼앗아 가겠다고 싸움질을 하고 있느냐!"

하고 호통을 지르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저는 옥새를 가져가려고 동방(東方)에서 왔사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고, 붉은 옷을 입은 동자는, "저는 옥새를 가져가려고 남방에서 일부러 달려 온 몸이랍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

시황제는 그 대답이 더욱 불쾌하여 가죽 채찍으로 두 아이를 마구 후려갈겼지만, 아이들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시황제를 놀리듯이 깔깔거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시황제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마침내,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저기 저놈들을 당장 끌어내어 능지처참(凌遲處斬)을 시켜라!"

하고 목이 터지도록 호통을 지르다가 자기 고함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음 - ...."

꿈이 너무도 흉악한 탓이었던지 시황제는 꿈에서 깨어 보니,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놈들이 옥새를 훔쳐 가려고 했다면, 누군가 나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든 시황제는 몹시 불쾌했지만 꿈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 할 수는 없었다.

시황제는 흉몽(凶夢)을 꾸고 난 다음부터는 심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느 놈이 감히 나의 자리를 노린단 말인가? 그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

사실 지금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도전해 올 사람은 아무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꿈만은 틀림없는 그런 의미의 꿈이 아니었던가.

시황제는 문득 계두산 위에 이상한 광채의 구름이 감돌았던 일을 회상하였다. 점성사 송무기는 그 구름을 <요기가 발동한 운기>라고 하면서, 그 요기를 억누르려면 추역산에 황제의 공덕비를 세워야 한다고 말을 했었고, 그의 말대로 거대한 공덕비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난데없는 청동자, 홍동자가 나타나, 옥새를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우는 흉몽이란 말인가?

시황제는 며칠을 두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다가 하루는 점성사 송무기를 불러 넌즈시 물어 보았다.

"짐이 근간에 꿈자리가 매우 사나운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떤 꿈을 꾸셨사온지, 꿈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소인이 정성껏 풀어 올리겠사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위신상 꿈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해 줄 수는 없어서 다음과 같이 얼버무렸다.

"꿈을 꾸고 나서는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에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으나, 어쨌든 꿈자리가

사나운 것만은 사실이니까, 거기에 대한 무슨 예방책은 없겠나?"

"단순히 꿈자리가 사납기만 하셨다면, 그것은 폐하께서 오랜 여행으로 심신이 피로해지신 탓일 것이옵니다. 그것을 치유하시려면 보약을 쓰실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장생 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해다 드시면 어떠하시겠습니까?"

"뭐? 장생 불노초? .... 세상에 그런 풀도 있단 말인가?"

시황제는 <장생 불노초>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해동국(海東國) 조선 땅에는 영주(瀛州 : 한라산), 봉래(蓬萊 : 금강산), 방장(方丈 : 지리산)의 삼신산(三神山)이 있사온데, 그 산에는 장생 불노초라는 선초(仙草)가 있다고 하옵니다. 그 선초를 달여서 먹으면 영생 불사(永生不死) 한다 하오니. 황제께서는 사람을 보내시어 그 약초를 구해다 복용해 보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면 폐하께서는 영원히 생존해 계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송무기의 말을 들은 시황제의 얼굴에는 환희의 빛이 넘쳐났다. 지금 같은 영화를 누려 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생 불사>라는 말이 얼른 믿어지지 않아서, 송무기에게 다시 물었다.

"그대는 그런 선초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송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인이 직접 선초를 본 일은 없사오나, 장생 불노초에 대해서는 방사(方士: 신선의 도를 닦고 있는)

서시(徐市)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서시란 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서시는 신선도(神仙​道)를 닦고 있는 소인의 친구이온데, 그가 지난날 삼신산에 가 보았더니, 삼신산에는 장생 불노초를 먹고 영생 불사하는 4,5백 살 먹은 신선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그들은 나들이 갈 때에는 학(鶴)을 타고 다니더라고 말하였습니다."

시황제는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서시란 도인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 송무기가 대답하는데,

"서시는 마침 소인의 집에 유숙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본인을 직접 불러다가 물으시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 도인을 곧 이리로 불러오도록 하라!"

시황제의 황명에 의해 서시가 즉시 어전으로 불려 왔는데, 그는 풍채가 늠름하고 백발이 성성한 것이 첫눈에 보아도 선풍 도걸(仙風道骨)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자 시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수그려져 와서,

"도인(道人)은 일찍이 삼신산에 가서 장생 불노초를 직접 자신 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하고 존댓말을 써 가며 물었다.

"예, 사실이옵니다."

"삼신산에는 신선이 많아서 그들은 학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다니더라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오?"

"예, 그것도 사실이옵니다."

시황제는 놀란 듯이 혀를 차며,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삼신산에 가면 장생 불노초를 구해 올 수 있겠소?"

"물론 구해 올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 도인은 짐을 위해, 삼신산에 가서 장생 불노초를 구해다 줄 수 있겠소?"

" ..... "

황제의 부탁에 대해 서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아니 하시오. 도인은 짐의 명령에 복종을 아니 하겠다는 말이오?"

그러자 서시는 담담한 어조로 의연하게 말을 했다.

"황명을 거역할 뜻은 추호도 없사옵니다. 그러나 삼신산에 들어가 장생 불노의 선약을 구해 오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라야 하옵니다."

"어떤 조건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그 조건을 어서 말해 보시오."

서시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대답한다.

"본인이 삼신산에 들어가 선약을 구해 오려면, 동남동녀(童男童女) 각각 5백 명과 금은보화(金銀寶貨)를 많이 가지고 떠나야 하옵니다."

"동남동녀를 5백 명씩이나 데리고 떠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짐은 그 이유를 모르겠구려."

서시가 조용히 대답한다.

"영생 불로초는 워낙 신령하기 짝이 없는 영초(靈草)인 까닭에, 바로 발부리 앞에 있더라도 신선들의

눈에만 보일 뿐이지, 보통 사람들 눈에는 결코 보이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남녀의 때가 묻지 않은

동남동녀만은 영생 불로초를 볼 수 있으므로, 선초를 구해 오려면 동남동녀를 많이 데리고 떠나야

하옵니다."

시황제는 그 말에 더욱 감탄하였다.

"신선과 동남동녀의 눈에만 보인다면 영생 불로초야 말로 영험한 약초가 분명하구려. 그러면 도인의 말씀대로 동남동녀 5백 쌍과 금은보화를 부족함이 없도록 줄 테니 영생 불로초를 기필코 구해 오시오. 그런데 시일이 얼마나 걸리면 돌아오실 수 있겠소?"

"영생 불로초는 워낙 희귀한 영초인 까닭에, 그것을 찾아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 아무리 빨라도 일년 내지 이태는 걸릴 것이옵니다.

"이태...? 시일이 너무 오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될수록 속히 다녀오시오."

이리하여 방사 서시는 동남동녀 5백 쌍과 많은 금은보화를 10척의 대선(大船)에 나눠 싣고, 영생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해동국 조선 땅을 향하여 떠났다.

 

시황제는 서시를 해동국 조선 땅으로 보낸 이후에도, 지방 순행을 끊임없이 다니면서, 서시가 영생 불로초를 구해 오기를 학수 고대로 기다렸다.

그러나 해동국 조선이란 곳으로 떠나간 서시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건만, 돌아오지 않았다.

시황제는 서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하루는 방사 (方士) 노생(盧生)을 불러 명했다.

"방사 서시가 영생 불로초를 구한다고 해동국 조선 땅으로 떠나간 지 3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그대가 조선으로 가서 서시를 찾아오도록 하오."

노생은 어명을 받고 마지못해 황해 바닷가로 나와 보았다.

그러나 만경창파 넓은 바다에는 검푸른 파도만 넘실거릴 뿐, 해동국 조선 땅이 어느 하늘 아래 붙어 있는지 조차 알 길이 없지 않은가?

 

[출처] 열국지 21 해동국 장생불로초|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