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24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불태우고 선비를 파묻고)
이때 쯤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빨리 완공시키라고 닥달을 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방궁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
새로 증축하는 궁전은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정전(正殿)만 하더라도 동서(東西)가 2백 보에 남북의 길이는 50장(丈 :어른키)에 이르렀고 궁전의 다락 위에서는 가히 1만여 명이 주연을 베풀 수 있도록 넓었다. 뿐만 아니라 궁전과 궁전 사이는 회랑(回廊 :복도)으로 연결하여 흙을 밟지 않고서도 다닐 수 있게 하였으며, 궁전을 짓는데 필요한 석재는 멀리 음산(陰山)에서 구해 왔고, 모든 목재는 천 리가 넘는 형주(荊州) 산중에서 운반해 왔다.
이렇듯 광대하고 거창한 아방궁을 증축하다 보니, 이곳에 부역하는 노역부만 70만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백성의 힘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조정에는 중신들이 들끓고 있었음에도
감히 시황제에게 공사의 부당함을 간언(諫言)하는 충신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했다가는 그곳이 어디이든 간에 그대로 끌려 나가서 단 칼에 목이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조정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시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신하들은 오직 듣기 좋은 소리만을 일삼는
간신배와 아첨배들 뿐이었다.
시황 34년 어느 봄날.
이날도 시황제는 아방궁에서 중신들과 더불어 주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취흥이 도도해져 오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70여 명의 박사(博士)들이 입을 모아 시황제의 성덕을 찬양하였다.
"옛날에는 진나라의 영토가 천리를 넘지 못했사온데, 폐하께옵서 신령 명성(神靈明聖)하시와 해내(海內)를 모두 평정하시어 오늘날 만백성은 전쟁을 모르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되었사오니, 이는 모두가
폐하의 위덕(威德)의 소치인 줄 아뢰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일월(日月)과 더불어 만수 무강하시와
만백성들이 태평성대를 길이길이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황제는 지극히 만족스러워 70여 박사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내렸다.
그중에 한 사람, 제나라 태생인 석학(碩學) 순우월(淳于越)이 머리를 조아리며 건의(建議)한다.
"신이 알자옵건대, 그 옛날 은(殷)왕조와 주(周)왕조가 천 년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왕의 자제(子弟)
들을 각 지방의 후주(侯主)로 봉하여 왕실을 튼튼히 지켰기 때문이었사옵니다. 그런데 폐하께옵서는 후주 제도를 철폐하시고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실시하심과 동시에 아무런 척분(戚分)도 없는 사람들을 지방관으로 임명하셨으니, 그들이 과연 먼 훗날까지 황실에 충성을 다해올지 매우 의심스럽사옵니다. 폐하께서는 그 점을 깊이 고려해 보아 주시옵소서."
그것은 군현 제도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비판이었다.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승상 이사를 불렀다. 기존에 유지되던 후주 제도를 군현제도로 개혁한 장본인이 승상 이사였기 때문이다.
시황제는 승상 이사에게 물었다.
"순우월의 건의를 들어 보건데, 진황조(秦皇朝)를 오래도록 누리려면 군현 제도를 후주 제도로 환원시켜야 할 것이라고 하는데, 경은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사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것은 역사의 변천을 모르는 부류의 우견(愚見)에 불과한 주장이옵니다. 은주 시대(殷周時代)에는 왕자들을 후주로 책봉하였기 때문에 후주들 서로 간에 세력 다툼을 하느라고 세상이 그토록 어지러웠던 것이옵니다. 지금 와서 또다시 후주 제도로 환원하신다면 10년이 못 가 세상은 또다시 전국 시대가 되고 말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군현 제도를 실시하여 각 고을에 군수를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게 되었으니 폐하의 권력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옵니다."
"음 --- ..., 듣고 보니 과연 경의 말씀이 옳은 것 같구려. 권력이란 한 사람에게 집중될수록 강해지게
되는 법이거든."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금후에는 학자들의 건의를 크게 경계하시옵소서."
"학자들을 경계하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학자들이란 본디 현실을 모르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 정부의 시책에 비방을 아니하면 입이 간지러워 못 견디는데다가 배를 아파하는 족속들인 것이옵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구려."
"그렇습니다. 그들은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며, 정부를 비방하는 것을 매우 고상하게 여기는 무리들이옵니다. 그런 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나라를 망치기 쉬울 것이니 금후에는 그들을 철저하게 단속하셔야 합니다."
"음 ----...."
"더구나 옛날부터 사관(史官)이라는 자들은 역사를 제멋대로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진나라의 기록이
아닌 역사책은 모두 불태워 버리셔야 하옵니다. 그리고 유생들이 가지고 있는 시서(詩書)나 제자백가
(諸子百家)의 저서 따위도 하나같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사오니 그런 것도
모두 관청에서 몰수하여 불태워 버리도록 하시옵소서. 폐하의 정령(政令)을 비판하는 자가 있어서는
나라를 원만하게 다스려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옵니다."
시황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과연 옳은 말씀이오. 짐의 명령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를 어찌 용서하리오."
이리하여 시황제는 그날로 전국 각지에 다음과 같은 엄명을 내렸다.
<의약(醫藥)과 복술(卜術),농사(農事),진 나라의 역사(歷史)를 기록한 책 이외에는 한 권도 남기지 말고 관가에서 몰수하여 모두 불태워 버려라. 이 명령이 전달된 날로부터 30일이 경과하도록 책을 제출하지 않는 자는 얼굴에 자문(刺文)을 그려 넣어 만리장성 축조 공사에 노역부로 보내 버려라.>
모든 책을 몰수하여 불태워 버리라는 명령이 내리자, 시황제에 대한 선비들의 비난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다. 그러나 선비들이 반대를 하거나 말거나, 관가에서는 관원을 총 동원하여 책을 강제로 몰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관가의 뜰에서는 날마다 책을 태우는 불길과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검은 연기는 산과 들을 뒤덮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뜻있는 선비들은 목숨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책인지라, 시황제에 대한 비방을 거세게 하면서도 책만은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민(愚民) 정책을 써도 분수가 있지. 성현들의 유산을 불태워 버리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나라를 다스려 나가겠다는 말인가?"
"만고의 폭군이었던 길주조차, 책만은 태워 버리지 않았거늘, 진시황이란 자는 어쩌자고 책까지 태워 버리겠다고 하는 것인가 ? 차라리 내 몸이 불에 타 죽을지언정 책만은 못 내놓겠다."
뜻있는 선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적 몰수에 끝까지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선비들의 항거의 원성이 마침내 시황제의 귀에 들어갔다.
"뭐? 차라리 제 몸이 불에 타 죽을지언정 책만은 못 내놓겠다고? 그런 놈들은 불에 태워 죽일 것이 아니라, 구덩이를 깊이 파고 모조리 구덩이 속에 쓸어 넣고 생매장을 해 버려라."
시황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전국 각지에서 끌려 온 알짜 선비들은 무려 460여 명에 달했다.
시황제는 그들을 오연히 굽어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생매장 당하기 전에 용서 받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주겠다. 지금이라도 책을 내놓겠느냐, 어쩌겠느냐!"
그러나 선비들은 대꾸를 하는 대신에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시황제의 얼굴을 향하여 침을 뱉었다.
시황제로서는 난생 처음 당하는 모욕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여봐라! 이 자들을 짐의 눈앞에서 당장 생매장을 해 버려라!"
이리하여 460여 명에 달하는 저명한 학자들은 비참하게도 한 구덩이에 생매장 되었으니,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역사적 사실로 훗날 우리에게는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으로 알려졌다.
시황제는 책을 내 놓지 않은 선비들을 생매장 시키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다시 이런 명령을 내렸다.
"오늘 이후에도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숨겨 둔 자가 있으면 용서 없이 생매장에 처하라!"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서 생매장을 당한 선비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하던가, 이렇듯 시황제의 폭정이 높아갈 수록 백성들의 마음이 그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아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시황제에게는 아들 형제가 있었다. 맏아들은 부소(扶蘇)이고 둘째아들은 호해(胡亥)였다.
태자 부소는 일찍부터 경서에 통달하여 학문이 많고 덕이 높았다.
그러나 둘째 호해는 어려서부터 주색잡기를 좋아하는 천하의 망나니였다.
태자 부소는 아버지 시황제가 명령을 내려 전국의 책을 불태우고 천하의 선비들을 생매장해 버린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리하여 대궐로 달려 들어와 울면서 간한다.
"아바마마!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바마마께서 책이란 책은 모조리 불태워 버리라 하시고, 선비들을
생매장 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시황제는 태연히 대답했다.
"모든 것은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입만 살아 가지고 나라에 대한 비방만을
일삼고 있으니, 그런 것들을 살려 두어서 무엇에 쓰겠느냐?"
부소는 아버지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아바마마! 그것은 크게 잘못하신 처사이옵니다. 천하가 통일되었다고는 하지만, 귀속한 백성들은 아직도 아바마마에게 귀복(歸服)하지 않은 사람이 많사온데, 언제 어디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는 형편에 민심을 이반하는 정책을 쓰시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 않겠사옵니까?"
"아가리 닥쳐라. 젖비린내 나는 것이 무엇을 안다고 방자스럽게 주둥이를 놀리느냐!"
시황제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부소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바마마! 소자의 말씀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 주시옵소서. 선비들은 모두가 공맹사상(孔孟思想)에 근거를 두고 정부의 시책을 정당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아바마마께서는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만들어 놓은 법을 근거로 그들을 탄압하고 계시니 그래 가지고서는 민심의 안정을 기하기는 어렵겠사옵니다. 그 점을 재삼 고려해 주시옵소서."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전신을 후들후들 떨며 분노했다.
"이 후레자식 놈아! 네놈이 언제부터 부유(腐儒 : 썩은 선비)들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그와 같이 요망스러운 입방아를 찧고 있느냐. 보기 싫다 썩 물러가거라!"
태자 부소는 호위병에게 끌려 나왔다.
그러나 시황제는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다시 이렇게 명령하였다.
"여봐라! 태자 부소를 만리장성 공사 현장으로 정배를 보내 버려라!"
이렇게 시황제는 자기 아들의 간언조차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정배까지 보내라고 명령을 했으니, 그의 정신 상태가 온전한 것인지가 적이 의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출처] 열국지(熱國誌) (24) 분서갱유(焚書坑儒 : 책을 불태우고 선비를 파묻고)|작성자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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