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열국지(熱國誌) (25) 반동(反動)의 태동(胎動)

이찬조 2020. 1. 8. 08:42

열국지(熱國誌) (25) 반동(反動)의 태동(胎動)

 

세상만사는 물리적 원리에 의하여 순환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 작은 시내가 모여 강이 되고, 대해(大海)를 이룬다. 불은 위로 타올라 결국에는 소멸되어 버리는 것도, 천지 창조 이후에 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이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만사를 힘으로만 다스려 나가면 반드시 반동이 온다.

정치도 그와 같아서 자연의 섭리대로 물 흐르듯 다스려 나가는 정치를 덕치(德治)라고 부르고,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힘의 정치를 폭정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진시황의 정치는 틀림없는 폭정이었다.

제왕이란 백성들을 잘 살려 나가기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 백성들이 제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시황은 그것을 거꾸로 생각하고 백성들을 자신의 수족(手足)보다 못한, 개돼지처럼 취급해 왔으니, 어찌 반동이 없을 수 있겠는가 !

시황제가 만리장성 공사와 아방궁 증축 공사를 동시에 시공하여, 백성을 내 몰고 있는 이러한 때에 백성들의 반동이 서서히 태동(胎動)하기 시작하였다.

옛날 초나라시절에 소읍주(小邑主)를 지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진나라에 의해 통일이 된 후에도 진시황의 군현제(郡縣制)의 실시로 계속하여 소읍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방궁과 만리장성 축조 공사에 노역부를 동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으므로 여간 고충이 따르지 않았다.

국가적 대규모 공사로 인하여 일시에 많은 노역부를 동원해야 하는 형편인 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의 노역 기피 현상이 점점 농후해져서 노역부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시황제는 각 지방관 에게 다음과 같은 가혹한 엄명까지 내리게 되었다.

 

<지방관으로서 노역부의 책임 수량을 정한 날짜까지 공출치 못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참형에 처하노라.>

 

이로 인해 각 지방관들은 노역부를 제날짜에 공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에, 진승과 오광도 노역부를 기일 안에 공출하려고 가가호호를 이 잡듯이 찾아다니며, 젊은 사람이 눈에 띄기만 하면 불문곡직하고 노역부로 끌어 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승과 오광은 비록 출신은 초나라 사람이었지만, 새로 바뀐 진나라 진시황의 충성스런 공복(公僕)이었다.

그들은 공출할 노역부 각 5백 명씩을 강제로 징발해 가지고 만리장성 공사 현장으로 직접 인솔해 나섰다. 다른 사람을 보냈다가 노역부들이 도중에 도망을 가게 되면 공출 숫자를 못 맞출 것이 뻔한 일이었기에 그들이 직접 노역부들을 인솔하고 떠났던 것이다.

옛 초나라 땅에서 만리장성 축조 현장까지는 머나먼 천리 길이었다.

진승과 오광은 노역부들을 공사 현장까지 인솔한는 도중에 홍수를 만나, 열흘 동안이나 발이 묶여 버렸다. 그리하여 마감 날까지는 도저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감 날짜를 어기면 참형에 처한다고 했으니, 진승은 생사에 관한 중대한 사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진승은 날이 개었지만 노역부를 데리고 떠날 생각은 아니하고, 같은 처지인 오광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광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떡하긴? 노역부를 데리고 어서 공사 현장으로 떠나야지."

그러자 진승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자네는 지금 제 정신인가? 노역부 공출 날짜를 어기면 이유를 묻지 않고 참형을 시킨다고 했는데,

그래도 공사 현장으로 가자는 말인가?"

"이 사람아! 그런 걱정은 하지말게. 홍수 때문에 공출 날짜를 지키지 못했노라 하면서 노역부를 천 명이나 건네주면 설마 우리들을 죽이기야 하겠는가?"

"자네는 어리석어도 이만저만 어리석지 않네그려. 시황제에게 그런 변명이 통하리라 생각하는가? 지난번에 시달된 공문에도 <노역부를 제날짜에 공출하지 못한 지방관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한다.>고 분명히 씌어 있지 않았던가? 이미 그런 명령을 분명히 내려놓았는데, 무슨 변명이 통할 수 있단 말인가?"

오광은 그 말에 새삼스레 놀라면서 말했다.

"아닌게아니라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공사 현장에 나타났다가는 꼼짝없이 죽을 판이네그려.

그러면 이 일을 어떡하지 ?"

진승은 고뇌에 찬 얼굴로 침묵에 잠겼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번쩍 들면서 말을 했다.

"이 사람아! 우리도 사내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대장부답게 큰 뜻을 한번 펴보아야 하지 않겠나?"

"큰 인물이 될 수만 있다면 누가 마다고 하겠나? 어떻게 해서 큰 인물이 되자는 것인지,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게."

오광이 궁금해 하자 진승은 별안간 딴 사람이 된 것처럼 희망이 넘치는 어조로 말을 하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들은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진나라 소읍주 노릇을 해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시황제라는 자의 폭정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옛날 초나라 백성들치고 진시황에게 불만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번을 기회로 망해버린 초나라를 재건(再建)하는데 우리가 힘을 합하여 보자는 말일쎄, 자고로 왕후장상(王侯將相:왕,제후,장군, 정승의 준말)의 씨앗이 따로 있던가?

우리들도 진시황을 때려 부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놓는다면 자네와 나라고 제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진승은 워낙 배짱이 크고 수완이 능한 인물인지라, 즉석에서 열변을 토해 놓았다.

오광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그것 참 기막힌 생각이네, 자네가 옛날 초나라를 복원(復原)하여 임금님이라도 된다면, 나는 정승 자리 하나는 따 놓은 당상이 아니겠는가?"

"그야 물론이지! 하하하 ...., 자고로 왕후장상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일쎄! 내가 왕위에 오르면 설마 자네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정승 자리 하나를 단단히 부탁해 둘 테니, 나중에라도 잊지 말도록 해 주게."

오광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그나저나 , 우리가 여기까지 끌고 온 노역부들은 어떻게 처리하지?"

하고 묻는다.

진광은 오광의 말을 듣고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하였다.

"하하하, 걱정도 팔잘세그려. 우리가 망해버린 초나라를 다시 세우려면 응당 부하들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니 노역부들을 우리의 졸도로 만들어야 할 것이야."

그 말에 오광은 무릎을 치면서 말한다.

"과연 명안일세. 그러나 억지로 끌려오던 저들이 순순히 우리들의 부하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것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자네는 구경이나 하고 있게."

진승은 곧 밖으로 달려나와, 노역부들을 한데모아 놓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여기까지 끌려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

노역부들은 진승을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승은 눈앞에 서있는 노역부 몇몇을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너희들은 지금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른다는 말이냐?"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만리장성 축조 공사에 노역부로 끌려가고 있는 중이 아닙니까?"

제법 덩치가 큰 장정 하나가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 너희들은 지금 만리장성 축조 현장으로 징발되어 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곳 노역부로 끌려가면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

"열에 아홉은 죽고 돌아오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노역부로 끌려가면 열에 아홉은 죽어 버린다. 나도 진작부터 그 점에 대해 혼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도 초나라 사람이요, 너희들도 초나라 출신의 사람임이 분명한데, 초나라 사람인 내가 진시황이라는 천하의 폭군을 위해 고국 동포인 너희들을 죽음의 길로 몰고 온 것은 나의 커다란 잘못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사 깨달았다. 내가 일시적이나마 진나라의 국록을 먹어 온 관계로 너희들을 이곳까지 끌고오기는 하였지만, 양심상 고국 동포인 너희들을 더 이상 괴롭힐 수가 없어, 지금부터 너희들을 모두 석방시켜 줄 테니, 너희들은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 형제를 반갑게 만나도록 하여라."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었다. 사지(死地)로 끌려가던 노역부들로서는 날뛰며 기뻐하여야 할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마음을 떠보려는 수작이 아닌가 싶어서 기쁨보다는 경계심을 앞세우며 두런두런 자기들끼리 수근거리고만 있었다.

진승은 노역부들의 분위기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다시 이렇게 말을 했다.

"너희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내가 별안간 해방시켜 준다고 하니 얼른 믿어지지 않는 모양인데, 사실이다. 나는 초나라 명문(名門)가의 후예로다. 따라서 조상들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너희들을 진나라 폭군에게 희생의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내린 결정이니 의심치 말기 바란다."

노역부들을 향하여 말을 하는 진승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였다.

그러자 늙은 노역부 하나가 감동되는 바가 있는지 진승에게 묻는다.

"장군은 초나라 명문가의 후예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명문의 후손이십니까?"

진승은 약간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대답했다.

"내가 워낙 못난 놈이기 때문에 조상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너희들이 꼭 알고 싶어하는 모양이니 솔직히 대답해 주겠다. 너희들은 혹시 <진수달(陳秀達)> 장군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있느냐 ?"

"알고 있사옵니다. 진수달 장군이라면, 지금부터 백여년 전에 진나라와 싸워서 큰 전공을 세우신 명장이 아니시옵니까?"

그러자 진승은 크게 감격하면서 말했다.

"오오! 나의 조부님께서 천하의 명장이셨던 것을 너만은 알고 있었구나! 나의 조부님은 그처럼 위대한 어른이셨건만, 나는 조부님의 위업을 계승은 못하나마 너희들을 원수의 나라에 팔아먹으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

진승은 이렇게 말하며 참회라도 하는 듯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백여 년 전에 초나라에는 진수달이라는 명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승과 진수달 장군은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승은 성씨가 같은 것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진수달 장군의 후예라고 선포하고 나섰다. 그래야만 노역부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진승의 연극은 보기 좋게 적중하여 노역부들은 모두가 경악과 존경을 마지않는다.

"장군께서 저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려는 것은 고맙기 그지없는 말씀이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장군께서는 진시황에게 처벌을 받게 되실 터인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시렵니까?"

조금 전만 하더라도 원수처럼 미워했던 그들이었건만 이제는 동지적인 입장에서 서로의 사정을 걱정해 줄 정도로 화합된 분위기가 되었다.

"음 ...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지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진승은 계획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일부러 말꼬리를 흐려 버렸다.

사태가 이에 이르렀으니, 이번에는 오광이 한몫 거들고 나서야 할 판국이었다.

오광은 앞으로 썩 나서며 말했다.

"너희들을 일단 해방시켜 주고 나서, 진승 장군은 초나라의 재건을 위하여 진시황과 정면으로 싸울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 다시 말하면 진승 장군은 잃어버린 우리의 조국을 되찾으려는 독립 운동에 여생을 바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나라 없는 서러움을 면하려면 모두들 진승 장군을 영주로 모시고 독립 전열(獨立戰列)에 참여하여 독립투사가 되면 어떠하겠느냐?"

노역부로 끌려 왔던 그들은 <독립투사가 되어 달라>는 말에 크게 감동되었다.

그들은 한동안 어수선하게 상의하더니, 대표자 한 사람이 진승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고향 천리를 떠나서 여기까지 노역부로 끌려 온 것은 우리들의 조국이 진시황이라는 날강도 놈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조국은 이렇게도 소중한 것이옵니다. 그런데 진승 장군께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일어나신다고 하오니 저희인들 어찌 집으로 돌아가 일신상의 안일만을 도모할 수 있으오리까. 나라가 없으면 노예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까닭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천여 명의 저희들은 장군을 수령으로 모시고 모두가 독립투사가 되기를 원하오니, 장군께서는 저희들을 부하로 기꺼이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노역부들의 순결무구한 애국 충정에, 진승은 눈시울이 뜨거워 오는 감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대들이 독립투사로서 나와 생사를 같이 해주겠다면, 나로서는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이제부터 다같이 고국으로 돌아가 동지들을 전국적으로 규합하여 진시황에게 맞서고 초나라를 되찾는 독립 운동을 거국적으로 전개해 나아가기로 하자! 하늘은 항상 정의의 편에 서는 법이니, 조국 광복의 승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리하여 진승은 오광과 함께 천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당당하게 고국으로 돌아오니, 진시황의 학정에 시달려 오던 초국 백성들은 <독립 운동의 영도자> 진승을 영웅처럼 받들며 열화와 같이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뜻있는 청년들이 독립 전열에 가담하려고 노역을 피해 숨어있던 곳에서 뛰쳐나와 앞을 다투어 진승의 그늘로 모여들었다.

진시황의 거대한 세력이, 이 작은 반동(反動)의 태동(胎動)으로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튼튼한 제방도 물 샐 틈으로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승의 반란은 시황제에게는 분명히 <불길한 조짐>이었다.

하물며 진시황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려는 수많은 의사(義士)들이 육국 각지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기임에 있어서이랴.

 

[출처] 열국지 (25) 반동의 태동|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