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7)> 개국-5- 위화도회군과 최영의 죽음

이찬조 2021. 3. 16. 06:12

<조선왕조실록 (7)> 개국-5
- 위화도회군과 최영의 죽음

최영은 이성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동정벌 구상을 밀고 나갔고, 최영을 총사령관, 그 밑에 부사령관으로 이성계와 조민수를 임명한 후 총동원령을 내려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최영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총사령관인 자신이 개경에 남은 채 고려의 모든 군사를 요동정벌 반대의사를 명백히 밝힌 이성계에게 내어 준 것입니다. 설마 쿠데타를 일으키랴 했을까요

암튼 위화도에 이른 이성계는 예측대로 장마철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으면서 거듭하여 4불가론을 앞세워 회군을 허락해 줄 것을 개경에 요청하였으나, 최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위화도에서의 회군~생사를 건 이성계의 도박~그 맘은 어땠을까? 우왕이 원나라를 멸망시킨 강대국 명나라 주원장을 손 쫌 따금히 보라고 시켰으니~
이성계가 4불가론을 핑계삼아 꼬리내리는 건 당연지사~패전의 책임을 물어 부하들까지 참수당할거고~

최영은 자연스럽게 정적을 정리할 수 있는 상황~성계는 이래죽나 저래죽나~ 에라이~
차라리 이참에 역성혁명의 시점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날, 거듭된 회군 요청과 거부를 명분 삼아, 이성계는 드디어 전군을 거느리고 마치 개선장군 같은 기세로 개경으로 회군을 시작하였고, 이즈음 볼모로 있던 이성계의 가족은 소리 없이 이성계군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회군이 사전에 계획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상 고려의 전 군을 거느리고 입성한 이성계는 가볍게 고려 조정을 접수한 후 최영을 죽이고 실권을 잡았고, 이 와중에 우왕은 이성계를 기습 제거하려다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성계 일파는 이어서 우왕과 그 아들인 창왕을 한 번에 엮는 우왕부자 내란음모사건을 만들어 우왕과 창왕을 한 번에 정리한 후, 45세의 울보 정창군을 왕으로 세우니 이 자가 사실상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