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20)> 세종 문종 2- 역사의 아이러니

이찬조 2021. 3. 21. 15:26

<조선왕조실록(20)> 세종 문종 2
- 역사의 아이러니

이방원은 속세의 관점에서 보면, 권력의 노예이자 인간백정이라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정몽주를 때려 죽이고, 친동생 둘과 매제를 죽이고, 친형을 죽게하고, 마누라의 친동생 4명을 다 죽이고, 며느리의 아버지를 죽이고 며느리의 어머니와 형제를 관노로 삼았습니다. 그 외 죽어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지요

그런데 방원이 특히 자신의 부인인 왕비 민씨와 며느리 심씨의 가문을 초토화하는 등 외척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은 아버지인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가 이성계를 꼬드겨 공이 가장 큰 방원을 제치고 자기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삼은 것이 평생의 한이자 교훈이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방원은 기어코 작은 어머니인 신덕황후를 이성계의 첩으로 격하시키는 조치를 취합니다)

태종은 왕비 하나로도 이렇게 나라의 권력관계가 바뀔수 있는데, 거기에 더해 왕비의 친정에 실세까지 있을 경우 언제 어떤 정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태종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우환의 싹을 초기에 제거해버린다는 심정으로 어찌보면 야만스럽기 그지 없는 외척제거를 단행하였을 것입니다. 왕비는 왕실의 후손을 생산하는 역할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튼 태종은 선위를 함으로써 왕이 감내해야 하는 각종 귀찮은 일은 모두 세종에게 미루고, 실제 권력은 여전히 자신이 행사했으니, 실로 대단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태종은 한평생을 권력투쟁에 몰두하여 대부분을 승리로 이끌었고, 역대 왕 중 가장 가혹한 숙청을 단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사상 가장 가혹한 왕, 가장 확실한 권력의 노예로부터 권력을 이어 받은 이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인 세종이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태종이 가지를 모두 쳐버렸기에 나무가 쑥쑥 자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튼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지 4년 만에 눈을 감으니 이 때 그의 나이 56세였습니다. 이로써 세종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