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78)> 광해 2 - 광해의 恨(2)

이찬조 2021. 4. 20. 21:55

<조선왕조실록(78)> 광해 2 - 광해의 恨(2)

왜란 통에 어쩔수 없이 광해를 세자로 책봉한 선조는 명나라에 세자책봉 승인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광해를 그렇게 높이 평가한 명나라 조정이 광해의 세자책봉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는 명나라 황제의 태자 책봉 문제와 맞물려 명나라 조정이 "장자로서 세자를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조는 명나라의 상황과 입장을 파악한 후 세자 책봉 승인을 위한 노력을 대폭 줄이는 한편, 나아가 광해를 사실상 세자로 인정하지 않는 기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광해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운 일이 또 하나 생겼으니, 이는 선조의 새 장가였습니다.

선조는 전쟁 이후 의인왕후가 죽자 새 중전을 맞이했는데 이 때 선조의 나이 51세, 새 중전 인목왕후의 나이 17세, 세자인 광해의 나이가 26세였습니다.

광해의 고민은 깊어갔습니다.
- "명나라는 세자 인정을 거부하고, 아버님은 날 미워하신다. 이제 또 새어머니께서 대군이라도 낳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광해의 우려대로 인목왕후는 곧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습니다.

이즈음 정권을 잡은 북인은 정인홍이 이끄는 대북, 유영경이 이끄는 소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 중 소북의 리더 영의정 유영경의 장기는 왕의 의중을 잘 읽고 그 뜻에 부합하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영경은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임금의 뜻은 광해가 아니라 영창대군에게 있다. 명분만 있으면 바꿀 것이다. 명분은 "적자승계"이다. 10년만 임금이 더 산다면 틀림없이 세자는 바뀐다. 영창대군에 올인한다.

선조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유영경을 더욱 총애했고, 덕분에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유영경의 무리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후궁들과 심지어 상궁 나인들마저 광해를 임시직 계약직 비정규직 세자로 여기고 무시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인목왕후라도 중심을 잡고 후궁 등을 단속하여야 할 것인데, 그러기는커녕 영창대군에게 세자 의상과 비슷한 옷을 입히기까지 하는 등 광해의 마음을 몹시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외로움과 울분이 뒤섞인 사면초가의 상태를 광해는 전쟁이 끝난 후 무려 10년이나 견디어 냈으니, 그 속에 품은 한이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