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76)> 선조 24 - 별이 지다!

이찬조 2021. 4. 20. 21:53

<조선왕조실록(76)> 선조 24 - 별이 지다!

정유년 2차 침략 시 히데요시의 목표는 조선 땅의 절반인 4도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히데요시는 이를 위해 조선인의 무자비한 살상을 공식적으로 지시하였습니다. 무자비한 살상으로 조선 국왕의 항복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이에 일본군은 한강 이남까지 갔다가 다시 남하하면서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였고, 그 징표로 일본에 보낸 조선인의 코가 산을 이룰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명량에서 이순신에게 패했다는 소식과 명나라의 2차 파병 소식이 전해져 왔고, 여기에 예상치도 않게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기에 이르자, 일본군은 철수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명나라 군대도 이번에는 도망치는 일본군을 제대로 박살내자는 의지를 불살랐으나(사기극 주범 심유경의 죽음도 고려한 것임), 울산성, 사천성, 순천 왜교성 싸움에서 조명 연합군은 모조리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명군은 다시 일본군의 철수를 용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군도 명군에게 뇌물을 보내는 등 작업을 통해 안전 철수를 보장 받았으며 선조도 일본군의 철수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큰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는 이순신 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명군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결코 적을 살려 보낼 수 없다”며 강경하게 길목을 지켰고, 결국 사천성의 일본 해선이 고니시군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할 수 밖에 없게 되자, 이순신은 노량 앞바다에 진을 치고 일본군을 모조리 수장시킬 준비를 하였습니다.

드디어 노량 앞바다에서 최후의 싸움이 벌어졌고, 조선 수군은 멏 배의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눈 먼 총탄이 이순신의 가슴을 파고들고 말았습니다.(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싸움은 대승으로 끝났으나, 승리의 환호성은 이내 통곡으로 바뀌었고, 오래지 않아 그 통곡은 남도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1598년, 7년에 걸친 전쟁이 끝났습니다.

일개 장수로서 완벽하게 전쟁에 대비했고,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다른 장수들이 도망가기 급급할 때 함대를 이끌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23회에 걸쳐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이끌어 낸 이순신!

그토록 무섭고 강력한 일본군이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두려움에 떨었고, 부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까지 진심으로 존경을 받았던 무장 이순신!
실로 큰 별이 졌습니다.(노량에서 전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선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리라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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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분의 1 가량이 줄고 농경지의 반이 소실 되었으며 인육을 먹는 극단의 풍조까지 생길 정도로 측량 불가의 고초를 준 왜란이 종결되었으나, 백성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 선조는 대국민 사과는커녕 논공행상에 있어서 마저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라를 보전한 공을 명나라에 돌리는가 하면, 자신을 호종한 자에게는 엄청난 선물을 주었습니다.

반면에 조국 수호에 소중한 목숨과 가산을 바친 의병장들과 백성들을 애써 무시했고, 장수들에 대한 평가도 불공정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의 고귀한 정신과 활약상은 점점 더 빛을 발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으니,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