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93)> 효종 현종 4 - 예송논쟁
북벌을 기치로 한 나름대로의 개혁군주 효종은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향년 41세)
효종은 귀 밑에 종기가 심각해 침의 신가귀로부터 침을 맞고 고름을 조금 짜낸 후 이것이 화근이 되어 몇 말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피를 쏟고 곧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한마디 유언을 남길 겨를도 없는 순식간의 일이었고(타살설이 있으나 근거나 배경이 취약합니다), 침을 놓은 신가귀는 교살형을 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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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이 죽은 후 선양에서 태어난 아들이 18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으니, 이가 조선 제18대 왕인 현종입니다.
현종 시대를 특징지을 수 있는 키워드 둘은 예송논쟁과 전례가 없을 정도의 흉년입니다.
예송논쟁은 왕이 죽었을 때 예법상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에 관한 남인과 서인 간의 격렬한 논쟁을 말합니다.
이러한 논쟁은 수년간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유배되고 더러는 죽곤 하였습니다.
효종이 죽은 후 그 상례(喪禮)로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에 관해 남인과 서인 간에 1차 예송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서인은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남인은 3년 동안 입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송시열 등 서인의 주장은 효종이 인조의 둘째아들로서 장자(長子)가 아니므로 1년간 모친이 상복을 입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허목, 윤휴 등 남인의 주장은 효종이 비록 둘째아들이기는 하나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와 다름이 없으므로 모친이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종시대의 이러한 1차 예송논쟁에서는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자의대비는 1년간 상복을 입었습니다.
2차 예송논쟁은 현종 말년에 효종의 부인이 죽자 다시 자의대비의 복상을 몇 년으로 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입니다.
이번에는 남인이 1년설을 주장했고, 서인은 대공설(大功, 8월)을 주장했으나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를 두고, 조선을 좌우하는 사대부들이 편을 나누어 몇 해에 걸쳐 논리와 꼬투리 잡기를 총동원해 물고 물리는 싸움을 이어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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