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92)> 효종 현종 3 - 북벌의 실체(2)

이찬조 2021. 5. 4. 05:47

<조선왕조실록(92)> 효종 현종 3 - 북벌의 실체(2)

북벌하면 효종과 송시열이고, 효종과 송시열 하면 북벌이라는 등식이 마련된 결정적 근거는 효종과 송시열의 독대 내용입니다.

송시열이 쓴 ‘악대설화’라는 책에는, 효종이 송시열과 독대하며 다음과 같이 북벌의 의지와 전략을 깊이있게 상의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 오랑캐(청)는 반드시 망하게 될 형편에 처해 있소. 오랑캐를 물리칠 좋은 기회가 언제 닥쳐올지 모르므로 정예화된 포병 10만을 길러 두었다가 기회를 봐서 저들이 예기치 못했을 때 곧장 산해관으로 쳐들어갈 계획이오.

그러나 송시열이 위와 같은 독대 내용을 공개한 때는 효종 사후 16년이 흐른 숙종 1년 때이고, 송시열은 이즈음 예송논쟁을 잘 못 이끈 죄로 유배되어, 죽은 효종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야 할 절박한 처지였습니다.

때문에 위와 같은 내용의 독대가 정녕 있었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 설령 위 내용이 독대 후 바로 기록해 둔 진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송시열이 북벌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 전혀 없는 점과 전회에서 본 사정을 종합해 보면, 송시열을 북벌의 기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북벌은 송시열과는 관계가 없고, 오로지 효종의 단독 기치가 되고 맙니다.

효종이 북벌을 꾀한다는 건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 널리 퍼진 이야기였고, 이로 인해 효종의 북벌 의지를 들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나, 정작 효종실록에는 북벌과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나 어떤 명령도 보이지 않습니다.(청에서 알면 골치 아프니까?)

그러면, 효종의 북벌 추진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효종 북벌론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라는 것과 효종이 가졌던 정통성에 관한 콤플렉스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기에 사대부의 지지를 얻지 못한 군왕의 권력은 사상누각이라 할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대부가 목숨과도 같이 숭배하는 주자의 나라 명을 오랑캐인 청나라가 침범했고, 그 오랑캐에 인조는 무릎을 꿇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계통을 중시하는 주자의 나라에서 장자도 아닌 몸으로 왕위에 오른 효종으로서는 사대부의 지지를 얻을 묘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더더욱 컸습니다.

이에 효종이 사대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주자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멀리하는 것, 즉 북벌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본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효종이 북벌을 꾀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나, 북벌은 효종이 현실적으로 달성하고자 한 목표라기보다는, 북벌을 강조함으로써 사림의 지지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과 더불어, 쉽게 침략당하지 않는, 즉 문약에 빠지지 않은 단단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합쳐진 다목적용 슬로건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