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94)> 효종 현종 5 - 환국의 시대 돌입
전회에서 본 예송논쟁은 단순히 복상 문제를 둘러싼 당파의 대립이 아니라, 왕권을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효종이 둘째 아들이라서 장자의 예를 따를 수 없다는 서인의 견해는 왕권도 일반사대부와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신권(臣權)의 강화를 꾀하려는 입장이었고,
반면 비록 효종이 둘째 아들이지만 왕은 장자의 예를 따라야 한다는 남인의 견해는 왕권을 일반사대부의 예와 달리 취급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왕권강화를 통해 신권의 약화를 꾀하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기준으로는 상복을 몇 년 입는 것을 가지고 온 나라가 몇 해 동안 죽고 살기로 논쟁을 벌이고, 이 문제로 귀양에 사람이 죽기까지 한다는 것이 이해될 리가 없습니다.(부국강병을 위해 이리 오래 논쟁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본질이고 또 한계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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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백성은 방납과 가혹한 군역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는데, 현종 말년에는 유례를 찾기 힘든 혹독한 기근이 연속해서 찾아왔습니다.
조선 8도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각종 전염병이 들끓었으며 곳곳에 파묻지 못한 주검이 언덕을 이루었고, 비가 오면 냇물에 시체가 떠내려갔으며, 거리에는 버려진 아이들이 넘쳐났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이때의 실록에 각 도의 감사들이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의 수를 월별로 보고 한 것이 나오는데, 전국의 아사자와 병사자의 합계가 1만 명을 웃도는 달이 많았습니다.(축소 보고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1674년 8월 18일, 15년 재위 기간 동안 별다른 치적도 없이, 또한 죽음에 이른 과정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34세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남인과 서인의 예송논쟁과 당파싸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기근 외에는 특별한 것이 전혀 없는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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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이 죽은 후 그의 외아들이 13세의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르니 이 사람이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입니다.
조선 후기의 역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의 하나는 당쟁(黨爭)입니다. 그것은 국정 운영은 물론 사상적 지향과 교유·혼맥 같은 인간관계에 이르는 여러 현상의 향배를 결정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숙종은 이러한 당쟁의 중심에 서 한평생을 보냈는데, 이러한 숙종의 치세를 요약하는 정치사적 단어는 “환국(換局)”(정치적 국면의 전환)입니다.
환국은 당파의 교체와 정책의 변화, 인명(人命)의 처분 등을 수반했습니다. 장희빈과 관련된 익숙한 주제는 환국의 과정에서 발생한 대표적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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