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95)> 숙종 1 - 경신환국(庚申換局)(1)

이찬조 2021. 5. 4. 05:52

<조선왕조실록(95)> 숙종 1 - 경신환국(庚申換局)(1)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숙종대 초반의 정국에서 정국을 이끌어간 인물은 공작정치의 달인 김석주입니다.

서인의 대표적 명문가 출신에 현종, 숙종의 가까운 외척이기도 한 김석주는 송시열을 스승으로 모신 서인 출신이었으나, 송시열이 김석주의 조부인 김육(대동법 추진)과 반목하는 바람에 송시열과 관계가 좋지 않아졌습니다.

김석주는 한직에 머무르다 현종 말년의 2차 예송 논쟁에서 서인임에도 자신의 스승인 서인의 거두 송시열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결국 숙종이 즉위하면서 남인 정권이 권력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4세의 소년 임금 숙종은 즉위 후 곧 과거 예송 논쟁에서 송시열이 했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송시열 등 서인들을 줄줄이 내쳤고, 이로써 인조반정 이후 50여 년 간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남인들이 허적 등을 중심으로 하여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소년군주 숙종의 지원에다 김석주의 은밀한 공작을 발판 삼아 집권을 하게 된 남인세력은 오래지 않아 송시열 등 서인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측과 비교적 온건한 측으로 갈리게 되었는데, 전자의 사람들을 청남(淸南)이라 불렀고, 후자측 사람들을 탁남(濁南)이라 불렀습니다.(남인의 분열)

권력을 잡은 남인은 너무 오래간만의 집권이어서 그랬는지 힘이 강해지고 도가 지나치면 임금의 의심과 버림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안일에 젖기 시작했습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무사안일이 불러온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한편 소년 숙종은 성장해가면서 권력에 눈이 트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서인을 악으로 간주하고 남인에게 힘을 주었으나 남인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결국 임금도 어찌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숙종이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에는 김석주의 처세와 공작의 힘이 컸습니다. 원래 서인 출신인 김석주는 남인 정권 탄생에 기여했지만 허적이 이끄는 남인 정국을 그대로 두고 볼 생각은 당초부터 전혀 없었습니다.

김석주는 뛰어난 처신으로 자신은 근왕파라는 것을 숙종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는 한편 허적 등 남인에 대한 숙종의 경계심을 한껏 자극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