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98)> 숙종 4 - 숙종의 여인 장희빈
숙종 6년에 왕비 인경황후가 세상을 뜨고, 그 이듬해에 새로 왕비를 들이니 이 사람이 노론 핵심인사인 민유중의 딸 인현황후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인현황후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뒤에 장희빈으로 불리게 된 여인 장씨입니다.
장희빈(글의 진행상 아직 희빈이 아니나 역사의 결과물이므로 편의상 장희빈이라 함)은 1659년 장경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오빠이자 맏아들은 장희재입니다.
장희빈의 가계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숙부가 역관 장현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역관은 중인이었지만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그것을 매개로 권력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었는데, 장현은 남인들과 매우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장희빈의 어릴 적 환경은 비빈의 자리에 오른 것에 비하면 매우 한미하다 할만 했는데, 이러한 배경의 여인이 입궁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안온한 환경이 여유와 평화를 준다면, 험난한 조건은 그것을 이겨낼 의지와 강단을 부여할 수 있는데, 장차 나타나는 장희빈의 행동과 품성은 이런 환경과 무관치 않다 하겠습니다.
“숙종실록”에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는 우의정 조사석 처가의 종이었는데, 조사석과 사통(私通)한 사이였고, 조사석은 인조의 후궁 조귀인의 손자 동평군에게 정부(情婦)의 딸을 입궁시켜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런 요청에 따라 장희빈이 나인으로 입궁했는데, 그녀는 미모가 특출 나게 뛰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희빈은 인경황후가 죽은 그 해 21세의 나이에 처음 숙종의 성은을 입었고, 이때부터 이미 큰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장희빈의 꿈은 바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당파적 색채가 강한 왕대비 명성왕후가 장희빈으로 인해 남인이 진출할 수도 있다고 보아 그녀를 내쫓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듬해인 1681년 노론 핵심 가문 출신의 인현왕후가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나이는 장희빈이 8세 위였습니다.
장희빈을 내쫓은 왕대비 명성왕후가 죽자 장희빈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현왕후가 명문가 출신의 현숙한 여인답게 숙종에게 “성상의 은혜를 입은 여인을 사가에 둘 수 없으니 불러들이소서”라는 청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숙종은 장희빈을 불렀습니다.(얼씨구나~) 이 때 장희빈의 나이 25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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