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97)> 숙종 3- 서인의 복귀와 노론,소론 분열

이찬조 2021. 5. 4. 05:53

<조선왕조실록(97)> 숙종 3 - 서인의 복귀와 노론,소론 분열

전회에서 본 경신환국의 연출자는 김석주이지만, 결국 남인이 떠난 자리를 채운 건 서인이었습니다.

서인은 곧바로 잃어버린 6년의 복구에 나서, 먼저 서인의 영수 송시열을 복권시켰습니다. 임금도, 대비도 높이 받들고, 영상 이하 대신들도 모두 다 제자들이니, 송시열은 예전의 그 권위를 모두 되찾았다 할 만 했습니다.

송시열의 유배생활은 사형수의 하루하루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남인들은 틈만 나면 자신의 목숨을 원했고, 결단이 빠른 왕이 언제 ‘아뢴 대로 하시오’라고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남인 정권을 몰아낸 김석주는 구원자나 다름이 없었고, 이런 이유로 송시열은 여러 방면에서 김석주와 뜻을 같이 했습니다.

최강 권력자의 꿈을 이룬 김석주는 남인의 복귀 가능성을 우려해 남인을 사실상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고, 어영대장 김익훈을 파트너로 삼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김익훈은 남인들을 역모로 엮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무리수를 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 때 외척의 발호와 공작정치에 크게 염증을 느낀 서인측 신진사류들은 증거도 없이 사건을 만든 김익훈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서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송시열은 김익훈을 싸고돌며 그 처벌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송시열의 한 마디로 사태가 잠잠해졌겠지만, 송시열이 김석주로 인해 변했다고 생각한 신진사류들이 이번에는 반발했고, 이때 사림에서 송시열 다음으로 존경을 받던 박세채가 소를 올려 신진사류들을 옹호했습니다.

이에 신진사류들이 박세채를 떠받들었고, 박세채는 일약 신진사류들의 영수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소론이라 불렀고, 송시열을 따르는 이들을 노론이라 불렀습니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가 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선조 때 동인, 서인으로 파당이 형성되었다가,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파하고, 남인이 청남과 탁남으로 분파했으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한 것입니다.

한편 공작정치의 달인 김석주는 자신과 송시열에 반대한 박세채를 겨냥해 세찬 공격을 하던 중 51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빠른 죽음이 그에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방자함이 그를 어떤 불행에 빠트렸을지 넉넉하게 예상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