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96)> 숙종 2 - 경신환국(庚申換局)(2)

이찬조 2021. 5. 4. 05:52

<조선왕조실록(96)> 숙종 2  - 경신환국(庚申換局)(2)

1680년(숙종 6년) 2월, 남인의 리더 영의정 허적은 조부의 시호를 받은 것을 축하해 대신들을 불러 축하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렸는데, 숙종은 허적을 위해 왕의 잔치 때 쓰는 유악(기름 먹인 장막)과 차일을 영상에게 갖다 주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허적은 이미 유악과 차일을 갖다 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안 숙종은 "과인의 허락도 없이 임금의 물건을 가져갔단 말이냐. 한명회도 못한 짓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며 대노했습니다.

숙종은 그날로 남인이 맡고 있던 훈련대장, 총융사 등의 병권에 관한 요직을 서인측 인사로 물갈이해버렸고, 승지와 대간마저 대거 서인으로 교체했습니다.

이어서 남인인 좌의정, 우의정, 대사헌이 사직 소를 올리자 즉시 이를 수리해버렸습니다.

또 새로 제수된 서인 대간들이 남인의 비위를 들먹이며 파직과 유배할 것을 아뢰자 숙종은 이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을 "경신환국"이라 합니다.

그러나 경신환국의 원인으로 늘 제시되는 이러한 유악사건은 갑작스런 환국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설이라고 보여집니다.

허적의 잔치는 숙종이 이미 아낌없는 지원을 한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고, 특히 임금의 유악을 말도 없이 가져다 쓰는 일은 매우 신중한 허적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신환국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석주가 오래도록 준비한 드라마였고, 김석주의 노련한 공작에 세뇌된 숙종의 전격적 뒤집기 한판이었습니다.

김석주는 곧이어 정원로 등에게 허견(남인 실세)이 종실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아들들로, ‘삼복’이라 불리었음)과 함께 역모를 꾀한다고 고발하게 하였습니다.

일찍이 정원로의 집에서 허견과 삼복이 모인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복평군이 허견에게 “왕은 곧 돌아가실 것이오. 그대의 아비는 나를 왕으로 세우려 했는데 나는 곧 병조판서가 될 것이오. 그대와 피를 나누어 마셔 맹세하고 함께 의논하여 서인을 몰아냅시다”라고 말한 것을 김석주가 정원로로 하여금 고변하게 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남인의 실세 허적과 허견 그리고 삼복(三福)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김석주가 주도한 정치 공작은 결과적으로 남인 축출, 서인 득세의 권력 교체를 가져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김석주가 확실한 증거 없이 역모 사건을 조작한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