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118)> 경종 영조 15 - 사도세자(8)

이찬조 2021. 5. 8. 20:14

<조선왕조실록(118)> 경종 영조 15 - 사도세자(8)

 

사도세자가 노론과 소론 간 당쟁의 희생양이라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노론 가문 출신인 정순왕후가 세자의 죽음에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그 녀가 대궐에 들어왔을 때 고작 열다섯 살의 나이인데다 이때는 영조 35년으로 이미 왕과 세자 간의 관계가 충분히 악화된 때라는 점에서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사도세자가 소론에 기운 태도를 보였다는 해석 역시 지나칩니다. 세자의 대리청정의 영역은 극히 제한적 이었고, 영조의 눈치를 보느라 대부분의 일을 “대조께서 결정하신 일이오”라는 식으로 처리했다는 기록이 많은데다, 세자가 영조나 노론의 뜻에 반해(즉, 소론을 위해)한 결정적이거나 그럴듯한 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에는 영조가 노론의 득세를 경계하여 노론에게 당론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임오화변 당시의 기본 정치구도가 이미 노론과 소론의 대립을 벗어난 때였습니다.

 

또한 후궁 문씨와 그 오라비가 세자의 비리를 확대 과장 하여 이간질했다는 것도, 영조가 세자의 관서행을 넉 달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점이나(이것은 왜 영조에게 보고하지 않았을까?), 이들의 이간질은 정조가 집권한 후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임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일도 별로 믿을 것이 되지 못합니다.

 

또 사도세자의 친모인 선희궁 영빈 이씨가 친자식의 처분 을 청했는데, 영빈 이씨는 노론이 아닌데다, 친모가 친자식 의 죽음과 맞바꿔 얻을 당파적 이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점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세자는 그 원인이 어디 있던 중대한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이 분명하고, 상당한 정도의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당쟁 희생”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다만, 이상하리만치 이 부분에 관대한 입장을 보입니다)

 

사도세자가 사람을 많이 죽인 사실을 기록한 문헌은 참으로 많습니다.

 

한중록에 따르면, 세자가 내관 김한채를 죽여 그의 목을 잘라들고 궁내를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가 노론 집안인 친정을 비호하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 사건은 실록 에서도 드러납니다.(세자 본인의 입으로도 그 사건을 시인하고 내관 김한채를 위해 휼전을 내리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친정을 비호할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세자였던 남편, 왕이 될 아들의 친부를 살인마로 거짓으로 기록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